너와 나 사이의 최적의 거리는?
가족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20cm, 친구와 나사이는 46cm, 회사 사람과는 1.2m”라는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똑 부러지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책이 등장했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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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상황을 만날 때가 있다.

 

1. “영민 씨, 이제 말 편하게 할게. 그래야 일할 때 편할 것 같아” 같은 팀의 2년 선배가 첫 회식에서 술을 따르면서 하는 말이다. 나는 솔직히 그 사람과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김 선배, 아직 우리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요”라고 말할 배짱은 없다.

 

2. 몇 달 사이 아주 가까워진 회사 동료가 있다. 일 주일에 세 번은 같이 밥을 먹고, 한 번은 저녁에 술도 한 잔 하는 사이다. 성격도 맞고, 취향도 비슷하다. 속 얘기를 하다 보니 남에게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가족의 아팠던 비밀을 해버리고 말았다. 최근 살짝 그 동료가 틀어져서 소원해졌는데 내가 그 말을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3.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다. 누가 옆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 그래서 친구를 사귈 때에도 질도 중요하지만 양이 더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든 만날 사람이 있어야한다. 그러다 보니 누가 나와 멀어질까 봐, 나에 대한 험담이 나올까 봐 불안할 때가 많다.

 

이 모든 고민의 핵심은 관계의 거리 문제다. 1)은 거리를 두고 싶은데 치고 들어오는 상대방 때문에, 2)는 두 사람의 거리가 일시적으로 가까워졌을 때 털어놓은 비밀이 거리가 멀어지자 통제가 안될까 두려움에 3)은 먼 거리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불안과 긴장을 담고 있다.

 

사실 이 고민은 우리가 갖고 태어난 것이다. 우리는 일심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다.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에는 거리의 딜레마를 가질 필요가 없었다. 엄마의 자궁 안에서 탯줄로 단단히 연결되 있었다. 문제는 출생 이후 시작되었다. 탯줄이 끊어지고, 물리적으로 엄마와 분리가 되었다. 여전히 나는 엄마와 하나였던 시기를 원한다. 동시에 엄마와 독립해서 나만의 세상을 찾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엄마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일심동체의 욕망과 독립적 존재가 되려는 욕구는 서로 진자운동을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것이 관계의 거리 딜레마다. 온전한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고, 유지하고, 관계를 잘 해나가면서 나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쉽사리 얻어지지 않는다.

 

가족, 친구, 회사 사람들과 최선의 관계를 위해서는 각자에 맞는 나만의 거리를 산출해서 유지하고 또, 만일 부족하면 가까이 다가가거나, 확실히 공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거리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너무 가깝게 가면 태양에 접근하는 지구같이 확 빨려 들어가 타버릴 것 같고, 너무 떨어지면 최소한의 인력을 잃어버려 우주 미아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 가이드북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족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20cm, 친구와 나사이는 46cm, 회사 사람과는 1.2m”라는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똑 부러지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책이 등장했다.

 

초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의 저자 김혜남 선생님의 새 책 『당신과 나 사이』다. 김혜남은 정신과전문의로 국립서울병원(현재는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오래 근무하다 개업을 했다. 개인 정신치료 위주로 운영을 하다가 2014년부터 오래 앓아온 파킨슨병이 악화가 되어 병원 문을 닫고 현재는 요양을 하며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김혜남 선생님과 정신분석학회에서 처음 만났다. 정신과전문의 초창기에 만난 선생님은 까마득한 후배인 나에게 권위는 눈꼽만큼도 없이 대하시면서 대화를 즐기셨다.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인 선배였고, 개업을 하고,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면서 원하는 일을 마음대로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문이 열렸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병을 진단 받은 후 어쩔 수 없이 삶의 반경이 좁아졌고, 나 역시 선생님과 외부에서 만날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다. 이번 책을 읽어보면 저자가 파킨슨병을 앓게 되면서 생긴 변화, 가족과 관계에서 경험했던 여러 아픔, 고민, 좌절을 엿볼 수 있다. 이를 원망, 후회, 투사로 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오랜 기간 정신분석 치료를 하고, 글을 쓰면서 만들어낸 자아의 힘을 반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오직 ‘관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소스의 “사람을 대할 때에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을 인용하면서 나를 잃지 않으면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따뜻하고 안온한 마음은 유지하는 나만의 거리를 찾아내서 지켜나가는 것이 진짜 성숙한 어른이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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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의 개념은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저서 ‘숨겨진 차원’을 인용한 것이다. 가족과 연인과 같은 친밀한 관계인 ‘밀접한 거리’는 0-46cm, 서로의 팔 길이에 준하는 46cm -1.2m를 ‘개인적 거리’로 의사소통을 편하게 하면서 어느 정도 격식을 차려야 하는 관계다. 사회적 거리는 1.2-3.6m로 사무적이고 공식적 거리로 회의를 하면서 알고 지내는 사이 정도에서 지킬 거리다. 저자는 다시 세분해서 1.2m안에서 세 가지 존이 있고 가상의 거리지만 이 거리를 잘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개인차가 조금씩 있지만 대략 이 정도라고 여기고 지켜나가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관계를 현명하게 푸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랜 기간 상담을 해온 환자, 선후배와 살면서 나눴던 대화들, 그리고 직접 경험해온 가족과 관계를 풀어낸 이야기, 병을 앓으면서 변화한 본인의 공적, 사적 관계의 거리 재조정하기가 매 꼭지의 사례로 등장한다. 저자는 오래 함께 살아온 시어머니에 대한 미운 감정이 들었던 예를 들면서 심한 불면증까지 생겼는데, 정면돌파하거나 관계 자체를 단절할 각오로 싸우기보다 역으로 ‘거리를 두는 것’으로 해결했던 경험을 말한다. 적절한 거리를 확보하니까 관계를 단절하지 않아도 되었고, 상대를 향한 복수심을 키울 일도 없어지는 걸 느꼈다. 일정한 거리를 두니까 불필요하게 부딪힐 상황도 줄어들어 갈등이 발생하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휘둘릴 일이 없어지니 감정적 소모도 줄어들었다. 시어머니와 관계도 그런 식으로 서서히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해결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외로워 하면 강박적으로 사람을 찾아가지만, 억지로 이겨내려고 애쓰기보다 그 감정이 천천히 잦아들기를 기다리라고 한다. 인간의 삶은 원래 외로운 것이고, 우리가 바라는 외로움의 해소는 엄마 뱃속에 들어가야 해결되는 비현실적인 목표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나는 서로 다른 사람이고 다른 생각을 하는 남이라는 것,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외로움’의 갈증 해소는 현실적인 선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모두가 분리된 채 혼자 살아가는 독립적이고 외로운 존재라는 것이 어떤 관계에서든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 안에서 평판은 소중하지만 부작용도 분명하다. 끝없이 부탁하는 사람, 쉽게 말을 놓으면서 치고 들어면서 만만하게 호구를 잡으려는 사람에게 단호해지지 못하는 이유를 저자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본능’으로 진단한다.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슬그머니 자기 짐을 내 어깨 위로 얹어놓는 인간들이 있다. 이들에게 바로 거절을 못하는 것이 ‘이번 한 번 만이겠지’ ‘거절하면 실망하겠지’ 라는 망설임덕이다. 하지만 언제나 한 번은 두 번이 되고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 책에서는 직장에 다니는 동서의 아이를 일년간 키워줬는데 이메일로 더 아이를 더 봐달라고 요구한 사례가 나온다. 손해를 보는 느낌은 안으로 곪아 들어가서 결국 터지기 십상이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의 빈틈을 집고 들어와 적절히 지켜줘야 할 거리를 파괴하는 사람들에게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거리를 제시하고 지켜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분명한 어조로 “아니오”라고 말을 할 수 있어야만 나를 지켜나갈 수 있고, 그런다고 전체적으로 착한 사람임은 망가지지 않으니 그 걱정을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에너지가 든다.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지치기 일쑤다. 이럴 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한 번, 아니 두 번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현재는 썩 필수적이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중요한 것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이런 관계를 정리하는게 더 수월해지고, 의외로 별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마음은 더 편안하고 여유로워질 것이다.

 

이 책은 어려운 심리실험이나 정신분석 이론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기계발서나 명사의 에세이같이 말랑말랑하기만 하지도 않다. 오랜 시간 자기 경험과 성찰, 그리고 치료 경험을 통해 단단히 다져진 내공으로 씹고 또 씹어 체화한 것들을 저자 자신만의 말로 전환해서 조곤조곤 풀어낸 덕분이다. 관계에 지쳐서 모든 관계를 끊고 고독의 세계에 빠지고 싶은 사람, 관계에 휘둘려서 어느덧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위기를 경험한 사람, 본격적으로 관계의 세계에 던져져 프로들과 맞닥뜨리게 된 사회 생활이나 결혼생활 초심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당신과 나 사이김혜남 저 | 메이븐
관계의 유형을 거리에 따라 ‘가족?연인과 나(20cm)’, ‘친구와 나(46cm)’, ‘회사 사람과 나(1.2m)’로 나누고, 최적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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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