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8년 만의 가요계 복귀다. 2008년 YG와 합작한 EP
그사이 겪은 시련의 흔적은 앨범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며 숨이 많이 섞인 질감으로 바뀐 게 그 예다. 가수로서 치명적인 타격이지만, 앨범은 이를 애써 감추고 덮으려고 하지 않는다. 윤상이 속한 작곡 팀 원피스(OnePiece), 이민수, 켄지, 프라이머리와 수란 등 그를 위해 모인 드림팀은 현재의 보컬에 어울리는 정서, 스타일, 작법을 동원해 오늘의 엄정화를 그대로 조명했다. 과거와의 비교도 불사한 용감한 결정이다.
덕분에 엄정화의 스탠스는 탄탄하다.
오랜 팬과 신세대 대중을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은 앨범의 타이틀곡 「Dreamer」와 「Ending credit」에서 특히 돋보인다. 엄정화의 시그니처인 서글픈 선율과 분명한 후렴, 몰아치는 댄스 비트의 조합에 세련된 전자음을 가미해 새로운 「배반의 장미」를 연출했다. 고유의 색깔을 잘 드러내면서 음향을 통해 신선도를 획득한 것이다. 스토리텔링에 힘을 준 「Ending credit」은 좀 더 각별하다. 래퍼 행주와 프라이머리가 쓴 가사에서 그는 ‘화려했었던 추억과 ‘영원할 것 같던 스토리’를 떠올리며 ‘한 편의 영화 주인공’ 같던 자신은 이제 없다고 말한다. 다른 가수가 불렀다면 이별 노래에 그쳤겠지만, 엄정화가 불러 남다른 무게감을 얻었다. 직접 가사를 쓴 발라드 「She」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의미가 깊다.
정민재(minjaej92@gmail.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스틴마녀
2018.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