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매일 시간과 이별하는 중이다. 그건 그리 지독하지 않다. 다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지금은 잘 모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늦게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내게 지나간 시간은 아름답게 채색되고 아쉬움에 후회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나는 지나간 시간에 관대하고 언제나 좋게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지금을 즐기지 못하고,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참 좋았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래서 나는 정말 별로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면 분명 지금보다 지난 시간이 더 많이 쌓일 테니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그리고 안도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에.
저의 다섯 번째 책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의 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현재를 즐기는지, 언제나 저처럼 지나간 시간만을 그리워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미래를 위해 인내하며 사는지.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라는 게 있겠지만요. 저는 다만 그런 이야기들이 늘 궁금해요. 그리고 응원하고 있어요. 타인의 삶을 엿보는 사람이며 별로인 사람, 그런 저는 이곳에서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한 이야기, 위로의 한 마디가 모두에게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오늘은 그런 마음을 많이 전해보려고 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이불 위에 누워서 들어주셔도 좋겠네요.
<인터뷰 - 김병수 정신과전문의 편>
김동영 : 김병수 선생님, 지금까지 책 9권 내셨잖아요. 저보다 책을 많이 내셨어요. 의사이시면서 부지런히 책을 내셔서 작가들의 삶에 큰 타격을 입히셨어요.(웃음) 김병수 선생님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이세요. 지금은 놀고 계시고요. 전업 작가로 지내고 계세요. 옆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병수 : 네, 안녕하세요. 소개 감사합니다.
김동영 : 너무 길어요. 왜 이렇게 직함이 많으세요?
김병수 : 직함 중에 지금은 좀 뗀 것도 있고요.(웃음)
김동영 : 여러분, 제가 김병수 선생님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 하는 이력이 있어요. 자이툰 부대에 파병을 나가셔서 병사 분들 심리치료를 담당했던 군의관이셨어요. 그게 참 마음에 존경심을 일으키고 믿음이 가는 것 같아요.
김병수 : 고작 그것 때문에 믿음이 가는 거예요? (웃음) 제가 동영 씨 때문에 특이한 경험을 하는 것 같아요. 책도 같이 내고 말이에요. 어떤 정신과 의사도 가질 수 없는 경험이죠. 게다가 오늘은 제가 인터뷰를 당하는 거잖아요. 이런 일도 아마 거의 없을걸요?
김동영 : 이번에 나온 책 『나만 모르는 나의 가능성』 원작은 선생님이 아니잖아요. 번역을 하셨죠. 책의 저자는 에릭 메이즐이라는 분이에요.
김병수 : 심리학자고요. 주로 예술가를 코칭한다고 해요. 책에도 예술가들을 상담한 에피소드가 들어가 있어요. 작가나 음악, 미술하시는 분들이 슬럼프에 빠지거나 창의력이 고갈되어 힘들 때 코칭하고 상담했던 에릭 메이즐이라는 사람이 셀프 코칭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쓴 책이에요. 그런데 읽다 보면 단순히 예술가를 위한 책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거든요.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면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창의력이 고갈됐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많은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단순히 예술가만을 위한 책은 절대 아닌 것 같아요. 읽어보시면 느끼실 겁니다.
김동영 : 원래 에릭 메이즐이라는 작가를 알고 책을 번역하시게 된 거에요? 아니면 번역 의뢰가 들어온 거예요?
김병수 : 제가 찾은 거예요. 제 원래 전공은 우울증, 조울증과 같은 정서 장애, 감정 장애, 기분 장애라고 표현하는 감정과 관련된 장애거든요. 그런데 감정의 문제를 갖고 있는 분들을 상담하다 보면 예술가 분들이 엄청 많아요. 동영 씨도 약간 공유가 되겠지만요.
김동영 : 저희는 그런 것을 정서 장애라고 안 부르고요. 그냥 못됐다고 표현해요.(웃음)
김병수 : (웃음) 그런 감정 문제, 정서 장애 문제를 갖고 있는 분들을 보면 남들과 달리 아이디어가 많거나 창의적이거나 한 분들이 꽤 많아요. 그러다보니 이런 분들, 즉 정서 장애도 있고 예술적인 기질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아본 거죠. 그 일을 에릭 메이즐이라는 분이 하고 있더라고요.
김동영 : 그런데 선생님은 ‘스트레스는 절대 풀 수 있는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다스리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사실 그건 누구나 다 알아요. 못 할 뿐이죠. 좋은 방법이 있나요? 안 해주셨으면 하는 말은 빼고 말해주세요. 운동하기, 끼니 제때 먹기, 걷기.(웃음)
김병수 : 저는 환자 분들에게 운동해라, 걸어라, 햇빛 봐라, 엄청 많이 이야기하거든요. 그것만큼 돈 들이지 않고 효과가 분명한 게 없기 때문인데요. 그렇게 말하면 성의 없는 의사로 찍힐 까봐 말하기 조심스러워요.(웃음)
김동영 : 그렇다면, 다스리는 다른 방법 없어요? 방법 좀 알려주세요.
김병수 : 오히려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스트레스는 안 풀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훨씬 마음이 편해져요. 스트레스를 풀겠다거나, 왜 스트레스를 받지, 라고 생각하기보다 원래 스트레스는 풀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의 부담이 덜어지죠. 일단 그 인식의 기저, 베이스 라인부터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그걸 당장 해결하겠다는 마음보다는 약간 각도를 15도 정도 비틀어서 그게 아닌 다른 것에서 뭔가를 찾겠다고 생각하면 되죠. 대부분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의 원인에 달려들려고 하거든요. 돌진하려고 해요. 그러면 문제는 더 커지고, 힘만 빠지고, 해결은 안 돼요. 그럴 때 각도를 조금 틀어서 관심없던 데에 관심을 두는 거죠. 꽃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김동영 : 이거 선생님한테 여러 번 들은 이야기예요.(웃음) 그래서 저는 그렇게 인식했거든요. 어차피 스트레스는 없어지지 않을 거니까 곁에 두고 적응하자고요. 그러니까 좀 나아진 것 같아요.
김병수 : 맞아요, 죽을 때까지 스트레스는 계속 받죠. 그걸 약간 말 안 듣는 친구다, 가끔 귀찮게 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 애증의 관계에 있는 친구다, 라고 생각하면 제일 좋죠.
김동영 : 『나만 모르는 나의 가능성』에 진짜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창의력’이에요.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창의력이 있어야 하는 건가요?
김병수 : 기본적으로 저는 사람은 누구나 창의적이라고 생각해요. 단지 드러내지 않고 살 뿐이죠. 못 드러내는 사람도 있고요. 저는 그냥 개성을 잘 발휘하면 그게 창의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나다워지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창의력으로 반드시 이어지게 되어 있거든요. 그럼 왜 그걸 못하느냐? 세상이 나를 나답게 살지 못하게 하니까요. 억압도 많고, 사람들 눈치도 봐야 하고, 평가도 신경써야 하니까 창의적 자아가 밖으로 드러날 수 있는 기회가 없거나 좌절되는 경우가 많을 뿐이죠.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창의적일 수밖에 없어요.
김동영 : 책을 보니까 12주동안 창의성 기르기 위해 할 일을 정리해놨거든요. 정말 이대로 하면 돼요?
김병수 : 이걸 12주 하면 창의적인 사람으로 탈바꿈 하느냐? 사실 그렇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 않고 창의적일 수 있느냐? 그건 불가능할 거예요. 아마 창의적으로 살고 있는 분들 중에 이 과정을 안 거친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이걸 한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걸 안 하고 창의적으로 산다는 건 아마 불가능할 걸요.
김동영 : 저희 게스트 분들에게 항상 하는 질문이 있어요. 첫 번째 질문입니다. 최근에 구매해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다면?
김병수 : 『배신』을 사놓고 5분의 1정도 읽었어요. 지루해서 안 읽은 게 아니고요. 집중해서 읽고 싶어서 천천히 읽는 중이고요. 아마 완독하게 될 것 같아요.
김동영 : 두 번째,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책은?
김병수 : 이 질문을 받고 『당신이라는 안정제』를 추천하고 싶다고 하려다가(웃음) 너무 속보여서 접어두고요. 예전에는 항상 후지와라 신야의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를 추천했어요. 정말로 지금도 책에 나오는 비오는 장면이나 아내 죽고 걷는 장면 같은 에피소드가 그려지거든요. 그럴 때마다 마음이 촉촉해져서요. 감성이 사라지거나 마음이 삭막해졌을 때 꼭 그 책 읽으시라고 추천을 많이 드렸어요.
김동영 : 그런데 선생님, 요즘 마음 아픈 분들이 너무 많아요. 오랫동안 정신과전문의로 지내오셨는데요. 요즘 많이 눈에 띄는 건 뭔가요?
김병수 : 물론 우울증, 공황장애 문제를 제일 많이 호소하기는 하는데요. 특히 요즘 공허한 느낌, 허한 느낌, 무의미하다는 느낌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사실 허탈해요,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는 교과서적으로는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들의 전유물 증상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열심히 사는데도 불구하고 허무함을 호소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난 것 같거든요.
김동영 : 유명인의 자살과 같은 일로 힘들어 하는 분들도 정말 많죠. 그와 자신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매체에서도 걱정을 많이 하잖아요.
김병수 : 사실 누군가가 자살을 선택한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제일 좋은 건 너무 많이 언급하지 않는 거죠. 어떤 분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그 사건을 통해 더 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조심스럽긴 해요.
김동영 : 마지막 질문이에요. 『나만 모르는 나의 가능성』에서 청취자 분들이 꼭 기억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 하나만 꼽아주세요.
김병수 : 두 가지예요. 하나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에요. 창의적이라고 현실을 무시하거나 현실 때문에 힘들다고 할 게 아니고요. 중간을 찾아가야 해요. 내 꿈을 생각하면서도 당장 내일 납부해야 할 세금은 뭔가를 생각 해야죠. 써야 할 글을 생각하지만 설거지도 해야 해요. 그 사이에서 항상 균형을 찾는다고 생각하셔야지 꿈만 좇겠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위험해요. 제발 땅에 발을 단단히 붙이고, 가끔 점프는 하되 꼭 땅으로 돌아오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 하나는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인데요.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건 말도 안 돼요. 우리는 중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저는 우리 사회의 병폐가 심해지는 이유도 자꾸 선명해지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은 원래 희미하고, 약간 색깔이 섞여 있고, 회색 분자가 훨씬 더 많아요.
김동영 : 예전에 제가 TV에 나가서 회색 분자라고 얘기했다가 악플에 엄청나게 시달렸어요.
김병수 : 그게 정상이죠. 사람이란 원래 회색 분자죠. 겉과 속이 약간 다른 게 정상이고요. 그런데 너의 색깔이 무엇이니, 선명해져, 라고 강요하는 건 제 생각에는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살게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 그게 우리 삶의 본질이지 어떻게 모든 걸 드러내고 모든 걸 솔직하게 해요? 그렇게 사는 건 발가벗고 지내는 것과 똑같아서 괴로워요.
김동영(작가)
김동영이라는 이름 석 자보다는 '생선'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였고 마스터플랜 클럽에서 허드렛일을 한것이 인연이 되어, 음반사 문 라이즈에서 공연과 앨범 기획을 담당하였다. 델리 스파이스와 이한철, 마이 앤트 메리, 전자양, 재주소년, 스위트 피의 매니저먼트 일을 담당하면서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복고풍 로맨스」, 「항상 엔진을 켜둘게」, 「별빛 속에」, 「붉은 미래」등의 노래를 작사하였다. MBC FM4U [뮤직스트리트], [서현진의 세상을 여는 아침], [K의 즐거운 사생활] 등에서 음악작가로 일했다.『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나만 위로할 것』 두 권의 책을 썼다.
책사랑
2018.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