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는 일에 국경이라는 게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태평양 너머의 음악인 팝도 한국에서 꾸준히 영토를 넓혀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결정타는 언제나 싱글보다 무겁고 오래 남는 앨범의 몫이다. 동그란 CD 안에서 곡과 곡이 어우러지며 뿜어내는 그 즐거움! 놓쳐서는 안 될 올해의 팝 앨범 열 장을 골랐다.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 - < Pure Comedy >
감상의 초점을 음악적 만듦새에 두면 앨범은 듣기 좋은 바로크 팝, 오케스트럴 포크의 모음이다. 음반 구석구석에는 1970년대의 엘튼 존과 해리 닐슨, 랜디 뉴먼의 흔적이 골고루 남아있다. 적재적소에 배치한 소리 장식과 쉽게 지나치기 어려울 만큼 매력적인 멜로디, 처연한 구석이 있는 조시 틸먼의 목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사운드 활용과 선율의 파워만으로도 앨범의 값어치는 상당하다.
이 음반의 특별함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 Pure Comedy >의 진가는 촘촘한 스토리텔링을 이루는 가사를 통해 완성된다. 열세 곡의 노래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조시 틸먼의 괴로움, 눈부시게 진보한 세상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 삶을 윤택하게 한 첨단 기술을 향한 냉소 따위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엔 빼어난 구성미가 존재한다. '순수 코미디'를 표방한 우리네 '블랙 코미디'. 음악과 내러티브,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은 올해의 작품. (정민재)
켄드릭 라마 (Kendrick Lamar) - < DAMN. >
전작들과 또 다른 스타일로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 To Pimp A Butterfly >와 < Untitled Unmastered. >를 장식했던 재즈, 네오 솔, 펑크(funk)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이번에는 보통의 힙합 문법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 수록곡을 성긴 비트로 꾸밈으로써 유행과 조금 거리를 뒀다. 이 때문에 시종 유지되는 음침한 분위기는 < DAMN. >을 한층 야릇하게 만든다.
변한 것은 반주의 표정뿐이다. 살면서 이런저런 시련을 맞닥뜨릴 때마다 느낀 두려움을 상기하는 'FEAR.', 총기 범죄가 만연한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XXX.',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는 'PRIDE.' 등 삶과 주변 사회를 살피는 무게감 있는 노랫말은 여전히 굳게 자리를 지킨다. 이따금 플로나 톤을 바꿔 가며 활기를 생산하는 감각적인 래핑 또한 변함없다. 음악적 쇄신, 묘한 흡인력과 숙고를 아우른 < DAMN. >으로 켄드릭 라마는 재차 특별함을 웅변했다. (한동윤)
시저 (SZA) - < Ctrl >
본인의 속마음조차 제대로 알 수 없어 결국 상대방의 관심을 통해 존재 이유를 찾게 되는, 어른이 되기엔 아직은 어린 20대의 한복판. 그 혼란의 정서가 뭉근하고 눅진한 비트 위로 나른하게 펼쳐지는 순간, 동세대 여성들의 삶과의 접점이 마법처럼 만들어 진다.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자존감과 외로움을 마치 대화를 하듯 리드미컬하게 노래하는 'Drew barrymore', 남녀관계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감정들을 별다른 수식 없이 있는 그대로 나열한 듯한 'Love galore' 등 남다른 보컬 퍼포먼스와 깊이의 정도가 다른 솔직함으로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한 '혼자만의 방'을 구축하고 있다.
베이스를 강조한 비트, 몽환적인 신스 리프를 동반해 성적 언어를 쏟아내는 'Doves in the wind', 규정된 여성상에 태클을 거는 'Normal girl'에선 성적인 화두를 부각시키며 이 모든 이야기가 단순히 '개인'을 떠나 '전체'에 대한 고찰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또한 놀랍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잘 짜인 러닝타임의 스토리텔링과 이에 맞는 음악을 제공해 준 프로듀서진의 역량,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를 흡수해 최대치를 발휘한 이 알앤비 신성의 보컬 퍼포먼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거창한 선언이나 성명은 커녕, 오히려 그 반대인 내면으로 침잠해 얻어낸 공감과 위로이기에 그 상징성은 더욱 강하게 와닿는다. 유난히 삶이 공허하고 버겁게 느껴질 어느 날, 유난스럽지 않게 마음을 달래줄 동반자가 될 2017년의 한 장. (황선업)
엘씨디 사운드시스템 (LCD Soundsystem) - < American Dream >
6년 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작별 후 해산을 알린 엘씨디 사운드시스템.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듯 밴드의 선장 제임스 머피와 그의 크루는 야심 찬 거대 레트로 프로젝트로 돌아왔다. 그 작품은 21세기 브라이언 이노를 꿈꾸는 베테랑 아티스트가 과거의 혁신가들이 남긴 사운드 유산을 쌓아 올린, 커리어 사상 가장 장대한 스케일의 < American Dream >이다.
미니멀리즘의 까칠한 펑크 록으로 새 시대의 허세를 비틀던 머피는 성숙한 시선과 농익은 실력으로 기막힌 사운드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웅장한 시작으로 커튼을 열어젖히며 쏟아져 들어오는 'Oh baby'부터 건조한 기타 리프의 질주 'Call the police', 일렉트릭 디스코 'tonite'과 'other voices'까지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긴 호흡의 연속이 이어진다. 크라프트베르크, 토킹 헤즈, 브라이언 이노,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까지. 1970년대 실험가들의 영전에 바친 < American Dream >으로 엘씨디 사운드시스템은 치밀하고 치열하며 성숙한 2017년의 기록을 썼다. (김도헌)
무라 마사 (Mura Masa) - < Mura Masa >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신인인가, 했더니 이미 이전부터 징조가 여럿 있었다. 처음엔 여타 뮤지션처럼 사운드 클라우드에 자신의 믹스 테이프를 올리면서 커리어를 쌓았고, 2016년 BBC에서 주관하는 사운드 오브(비평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루키 선정 투표 시스템)에서 신예 힙합 그룹 웨스턴(WSTRN)과 공동 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Beat slayer”, 약관의 나이를 갓 넘은 신인 프로듀서 무라 마사가 자신을 표현하는 말이다. 날카로움으로는 따라갈 검이 없었다던 일본의 명도(名刀) 무라마사의 이름처럼 비트와 장르를 난도질하여 해체, 재구성하고 혼을 불어넣는다. 박자를 제 손안에서 주무르면서도 난해한 리듬에 매몰되지 않고 청아한 사운드의 공명과 다른 이의 목소리를 빌려 만들어내는 명료한 훅은 이미 팝의 기본형이 되었다. 영국령 채널 제도의 작은 섬에서 태어난 시골 소년의 금의환향. (정연경)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Tyler the Creator) - < Flower Boy >
매니악했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가 달라졌다. 기괴함과 난폭함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던 'Yonkers'의 그가 분방함을 한 숨 죽이고 부드러움을 두 숨 늘렸다. 특유의 저음으로 빽빽하게 내뱉던 래핑도 여유로워졌다. 이유 있는 변신. 그가 이토록 잘 들리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음반을 만든 건 메시지 때문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는 자기 고백의 서사가 바로 이 작품에 담겨있다.
젊은 세대의 감성을 아우르며 감각적인 비트와 뮤직비디오, 또 옷차림으로 호응 받던 그가 겉옷을 벗고 자신을 드러낸다. 수록곡 'Garden Shed(Feat. Estelle)'에 서려 있는 은유적인 커밍아웃과 'I ain't got time!'에서 작정하고 적어낸 내면의 풀이가 그 심기일전을 보여준다. 타이틀 'Who dat boy(Feat. ASAP Rocky)' 정도가 이전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콘셉트를 보여주지만 상관없다. 거친 외관으로 감싸지 않아도 전달되는 음악적 호소력이 그의 발전을 알린다. (박수진)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 (Queens Of The Stone Age) - < Villains >
2010년대는 복고와 레트로 문화가 전반적인 유행이지만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 Villains >만큼 시계추를 완벽하게 돌린 앨범도 흔치 않다.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지향하는 EDM과 알앤비, 힙합과 달리 록 진영은 과거를 기반으로 오히려 예전을 향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가 정좌하고 있다. 7번째 정규 앨범 < Villains >는 그 확실한 영역표시로 기록될 작품이다.
< Villains >는 절대로 친절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서 좋은 앨범을 만들고 싶은 의욕도 없는 음반이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만들고 하고 싶은 말을 노래한다. 밀도가 높고 촘촘하지만 정리가 안 된 거친 사운드 그리고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곡점이 심한 곡 구조는 꾸밈없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로큰롤임을 대변한다. 2000년대 초반,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프리랜서를 선언한 라디오 피디 겸 진행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돈을 좇지 마라. 돈을 좇으면 못 번다.”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 Villains >는 계산기를 두들기는 음반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도 부와 명예를 획득한 '진짜' 로큰롤 음반이다. (소승근)
썬더캣 (Thundercat) - < Drunk >
퓨전 재즈의 자유로움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과의 연결점까지 잘 짚어낸 빼어난 앨범! 평균 2분을 조금 넘는 수록곡들 안에 꽉꽉 눌러 담은 상상력이 들을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프로듀서이기 이전에 뛰어난 베이시스트인 썬더캣의 연주는 작품을 지탱하는 든든한 뿌리다. 'Uh uh'에선 연주자로서의 자신감을 마음껏 뿜어내고, '소리'에 관한 깊은 관심은 'A fan's mail (tron song II)'같은 곡들의 몽환적인 사운드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다재다능한 천재 뮤지션의 고품질 퓨전 알앤비 세트다.
마이클 맥도널드와 케니 로긴스를 비롯해 퍼렐에 위즈 칼리파와 켄드릭 라마 등, 화려한 피처링 목록만 봐도 현재 팝 씬 안에서 썬더캣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쟁쟁한 스타들의 개성을 < Drunk >의 스타일 안에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전체적인 음악적 기획력이 빛난다. 밴드음악의 주춧돌인 베이스 기타처럼, 대중음악의 근간인 재즈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진짜 실력'이다. 수미상관 구성이나 곡들 사이의 긴밀한 연결 또한 이 앨범의 무시 못 할 즐거움이니 놓치지 마시길! (조해람)
빈스 스테이플스 (Vince Staples) - < Big Fish Theory >
적당한 괴팍함과 은근한 친근함이 < Big Fish Theory >에 놓여있다. 애정과 존중이 사라지고 혐오만 남은 커뮤니티와 그곳을 빠져나온 이를 감싸고 있는 허무함을 그려내기 위해 디트로이트 테크노와 하우스의 건조함을 선택, 노 아이디(No I.D.)를 비롯한 힙합 프로듀서가 아닌 플룸(Flume)이나 GTA, 소피(Sophie) 등 전자음악 프로듀서들을 끌어들여 완성한 음반은 이제 고작 두 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한 래퍼의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고 혁신적이다. 음반은 힙합과 일렉트로니카라는, 다른 두 장르가 선사하는 기본적인 즐거움을 밀도 있는 사운드와 정교한 짜임새로 충실히 구현한다.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찍어낸 양산형 비트들에 귀가 지쳐있던 올해, 좋은 스피커에 대한 구매욕이 강하게 든 작품은 < Big Fish Theory >가 유일했다. (이택용)
로드(Lorde) - < Melodrama >
데뷔곡 'Royals'에서 밝힌 것처럼 '금니, 보드카, 욕실에서 취하기, 핏자국'은 없다. 호화스러운 스웩보다는 절망스럽고 혼란스러운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17세의 나이로 그래미 어워드(2014)의 신데렐라가 되면서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그. 2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힘들고 아픈 사람과의 사이, 사랑의 슬픔을 전력을 다해 풀어놓았다. 하우스 피아노의 질주가 들뜨게 만드는 'Green light'를 시작으로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으로 끝나는 “그런데 대체 망할 완벽한 장소라는 게 뭐야? (What the fuck are perfect places anyway?)”('Perfect places')까지.
취한 듯 늘어트리는 발음들이 전자비트와 만나면서 더욱 몽환적이고 신경질적으로 펼쳐진다. 일렉트로니카 위로 무아지경으로 몸을 흔드는 그의 모습은 위태롭지만 아름답다. 뜨겁고 끈적끈적한 그래서 잡아먹힐 것만 같은 위험한 매력이 그대로 팔딱거리는 앨범. 아는 척, 있는 척, 멋있는 척, 특별한 척 하는 연출이 아닌 진짜의 광기가 서려있어 더욱 스며든다. (김반야)
전자음악이 강성했던 작년에 비해 올해 팝 씬은 흑인음악의 위세가 가히 대단했다. 특히 힙합은 매해 전성기를 갱신하며 첨단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힙합 밖의 진영에서도 멋진 노래가 고르게 많이 나와 줘서 귀가 참 즐거웠던 한 해였다. 그 수많은 좋은 곡들 중에 우리의 2017년으로 기억될 팝 10 곡을 선정했다. 곡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차일디시 감비노 (Childish Gambino) - 'Redbone'
미스터리 영화 < 겟 아웃 >의 도입부에 등장해 더욱 유명해진 곡이다. '겟 아웃!' 하면 이 노래가 연상될 정도니까. 음산하면서도 뒤숭숭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음악과 영화는 닮은 점이 많다.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흑과 백의 대비, '깨어 있어야 해'로 요약할 수 있는 'Redbone'의 가사. 서로가 매혹적으로 어우러져 우리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영화가 끝난 후 “처음에 나온 노래 제목 대체 뭔가요?”라는 질문이 쏟아져 나왔던 이유다.
앨범 커버에서 뜻밖의 무서움을 얻고 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차일디시 감비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범상치 않다. 그렇지만 올해 이 곡이 주는 마력에 많은 사람이 이끌렸음은 부정할 수 없다. 몽환의 어둠으로 서서히 이끄는 코러스, 소름 돋을 정도로 갈라지는 목소리. 영화를 보지 않고 접하더라도 충분히 그리고 분명히 매력적이다. 1970년대 음악의 탁월한 재현이자, 2017년 가장 감각적인 사이키델릭 소울. (정효범)
미고스 (Migos) - 'Bad and boujee' (Feat. Lil Uzi Vert)
콰보(Quavo), 오프셋(Offset), 테이크오프(Takeoff). 음악 산업에도 성과급 제도가 있다면 이 세 남자부터 단단히 챙겨줘야 할 것이다. 메트로 부민(Metro Boomin)의 세련된 트랩 비트 위에 미고스의 쫀득한 래핑과 릴 우지 버트의 광기가 올라탄 'Bad and boujee'는 올해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긴 힙합 트랙이다. 데뷔곡 'Versace'부터 'Bad and boujee'까지, 간단하고 반복적인 삼연음 플로우로 듣는 이를 단시간에 중독시키는 미고스 스타일은 현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되었으며, 올 한해 힙합 씬에 재미있는 얘깃거리를 만들어낸 멈블 랩의 유행에도 크게 기여한다. 스스로가 선도한 트렌드에 마르지 않는 창작력이 뒷받침해주니, 2017년은 미고스의 해였다 해도 모자람이 없다. (이택용)
숀 멘데스 (Shawn Mendes) - 'There's nothing holdin' me back'
어린 나이에 이런 능숙함이라니. '포스트 저스틴 비버'라는 별명을 얻기 충분한,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를 팝 영재의 출현이다. 숀 멘데스에게 하나 더 있는 메리트라면 역시 기타 연주! 'There's nothing holdin' me back'은 그런 그의 여러 매력이 모여들어 발생한 폭발적 시너지다. 청아한 기타 리프와 함께 시작해 신나는 댄스 팝과 거친 록을 자유롭게 오가고, 밴드 사운드의 한계를 뛰어넘어 일렉트로 댄스 팝의 분위기도 잠시 빌려온다.
청춘의 솔직한 싱그러움이 가득한 이 곡은, 거의 '힐링' 아니면 '탕진'으로 양분된 코드만을 섭취하고 있던 한국의 젊은 음악 팬들에게도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간만에 만나보는 '생음악'의 순수한 에너지도 반가웠다. 절로 몸을 들썩이게 하는 리듬과 잘 뽑은 선율, 소년스러움을 담은 매력적인 음색이 마치 청량음료처럼 시원하다. 히트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멋진 싱글이다. (조해람)
줄리아 마이클스 (Julia Michaels) - 'Issues'
감동의 곡이다. 진솔함을 넘어 처절하게 자기 자신을 분해하고 해체한 'Issues'는 지독히 개인적이라는 이유로 이 노래를 욕심 낸 다른 가수에게 주지 않고 줄리아 마이클스가 직접 불러 그 감정선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과용하지 않은 악기와 허스키하고 낮은 톤의 목소리로 고음을 넘나드는 보컬은 불완전한 자신의 심정을 담아내어 2017년에 발표된 노래들 중에서 가장 투명하고 영롱한 싱글이 되었다.
줄을 뜯는 현악기 소리와 일렉트릭 킥 드럼이 만들어내는 불규칙적인 비트는 신시사이저 건반의 변화 없는 코드 진행과 불균형을 이루며 감정 기복이 심한 줄리아 마이클스의 마음을 대변한다. EDM 시대에 전자 소리를 최소화한 일렉트로닉 싱글 'Issues'는 완벽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고백을 격정적으로 토해낸 줄리아 마이클스에겐 가장 완벽한 곡이다. (소승근)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 'Sign of the times'
출신으로 '앞으로'를 재단해버리는 건 얼마나 고리타분한 방식인가. 나지막한 건반 위로 그의 목소리가 등장하면서 원 디렉션의 귀염둥이 막내는 이곳에 없을 거라는 걸 직감하게 된다. 전주에서 바람처럼 휘날리는 전자사운드가 시작되면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잔잔하게 흐르다가 드럼과 함께 터지는 구성은 익숙하지만 여전히 '심쿵'하게 만드는 록발라드 스타일이다. 타이틀 뿐 아니라 앨범도 록의 고전미를 충실히 살렸다. 아재 느낌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록의 진지한 멋과 와일드한 스타일리쉬함을 부활시킨다. (김반야)
로직(Logic) - '1-800-273-8255 (feat. Alessia Cara & Khalid)'
미국 자살방지센터 전화번호를 곡목으로 한 로직의 래핑, 바로 이게 캠페인 송 또는 신파로 변질될 우려를 차단한다. 그만큼 건반을 타고 흐르는 언어들에 실린 진정함과 진실함이 다중의 공감을 획득한다. “나만의 것이라 할 공간도 없었어 / 집도 없었고, 아무도 내게 전화하지 않았지..”, “난 더 이상 죽고 싶지 않아..” 유년기의 불우한 처지를 딛고 '아픔과 희망'을 공유하려는 래퍼의 '진심'이 비극이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다른 길로 인도한다.
처절하지만 너저분하지 않게 절제와 동거한 것 또한 승리지점, 알레시아 카라, 칼리드도 한 절씩만 맡아 깔끔한 콜라보를 이뤘다. 그래미에도 진심이 통했다. '올해의 곡'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카라와 칼리드를 신인상 유력후보로 부상하는데도 기여했다. 이 트리플 크라운을 보면서 다시금 절감한다. '노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모처럼 우리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음악을 만났다. (임진모)
파라모어(Paramore) - 'Hard times'
'Hard times'의 헤일리 윌리엄스에게선 블론디의 데비 해리와 프리텐더스의 크리시 하인드가 보인다. 1980년대 뉴 웨이브 펑크 팝으로 돌아온 파라모어는 노골적으로 과거를 언급한 < After Laughter >로 총천연색 개성을 심으며 올 한 해 선명한 궤적을 남겼다. 선 공개 싱글 'Hard times'는 이모 코어의 틀을 넘어 팝 펑크 밴드로 돌아왔던 < Paramore >로부터의 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시한 곡이다.
옅어진 기타 톤에서부터 감지되는 변화는 댄서블한 비트 위의 신시사이저와 보다 절제된 헤일리의 보컬, 후반부 보코더로 구체화된다. 한 번 들으면 귀에 감기는 후렴부와 감각적인 멜로디 라인은 손쉬운 접근을 가능케 하고 헤일리의 독창적인 퍼포먼스 아래 숨겨진 밴드 재구성 과정에서의 우울한 감정은 레트로의 틀에 독창성을 부여한다. 'Hard times'는 30여 년 전의 영감으로부터 끊임없이 가지를 뻗어나가는 2017년의 록 씬을 대표한 싱글이다. (김도헌)
에드 시런(Ed Sheeran) - 'Shape of you'
가장 많은 사람이 듣고 여러 장소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다. 넘실대는 퍼커션 비트와 거칠게 생동하는 기타, 그 위를 유려하고 달콤하게 흘러가는 에드 시런의 보컬이 섞여 세련미를 발휘한다. 어느 팝보다 많은 영어를 담고 있지만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선율 덕에 누구에게도 쉽게 다가왔다. 곡에 맞춰 안무를 보인 < 프로듀스 101 > 무대는 입체적 분위기와 표정을 입히며 화제성의 온도를 높였다. 팝과의 거리가 멀어진 10대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즐겼다.
힙합과 알앤비 사이의 빠른 리듬감을 자주 들려준 에드 시런이지만, 그의 음악을 수식할 때는 대부분 어쿠스틱한 포크송이 앞에 왔다. 그루브한 보컬과 섹시한 톤이 여유롭게 출렁이는 이 곡은 전에 없던 강한 인상과 파동을 남긴다. 'Shape of you'는 수수한 너드 캐릭터 같던 에드 시런을 매력 있고 반전 있으며 재능 갖춘 싱어송라이터로 만들며 음악성과 스타성 모두 견인했다. 내한이 성사되었다면 더 특별한 마침표를 찍었을 싱글이다. (정유나)
디 엑스엑스(The XX) - 'On hold'
그 어느 때보다 세 멤버의 균형이 잘 이루어졌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8할을 차지하는 로미 메들리 크로프트와 올리버 심의 보컬, 제이미 스미스(제이미 엑스엑스)의 샘플링과 비트 메이킹, 미니멀리즘에 걸맞게 반주의 전부인 베이스, 극적 효과를 위한 연출에 머무는 로미의 기타 연주까지 특정 멤버의 돌출 없이 그야말로 '디 엑스엑스'의 음악을 구현했다.
밴드의 정체성과 가장 맞닿아 있으면서도 멜로디는 선명하게 남겨두었고, 후렴 부분에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는 홀 앤 오츠의 'I can't go for that(no can do)'를 붙여 넣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단순한 곡의 구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제 디 엑스엑스는 인디 팝이 아닌 인디와 팝이라는 두 개의 단어로 설명되어야 한다. (정연경)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 - 'Slide (Feat. Frank Ocean & Migos)'
그야말로 청량함 가득한 여름 특수 노래였다. 문을 여는, 휘파람 소리 마냥 밝은 피아노 반주에 착 달라붙는 클랩 비트는 간단히 덩실거리는 리듬감을 만들고, 그냥 떠나자, 즐기자 말하는 중저음 대세 래퍼들의 속삭임은 몸은 몰라도 마음만은 휴가지로 인도했다. 곡이 속한 앨범명 그대로 즐길 수밖에 없는 펑크(Funk), 웨이브, 바운스의 대행진!
곡의 가치가 더욱 반짝일 수 있었던 건 노래가 캘빈 해리스의 손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DM의 가장 대중적인 디제이이자, 안정된 사운드 메이킹 실력을 지닌 그가 과감히 변신했다. 바로 1980~1990년대의 복고적 향취가 풍기는 펑키한 리듬에 힙합을 녹여서 말이다. 스피커가 터질 듯 화끈한 드롭은 없지만 리드미컬한 선율에 언제나처럼 곡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맞춤형 피처링진이 그에게 허술함이란 없음을 보여준다. 진정 안주하지 않는 이 시대의 노력형 아티스트다. (박수진)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