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들의 명성에 끌려 책을 샀다가 몇 쪽 읽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모자람을 탓하거나 너무 어려운(?) 그 소설을 탓해 본 경험도. 이런 독자들을 위해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이 어째서 고전인지를 설명하는 책 『고전의 이유』가 출간되었다.『돈키호테』에서부터 시작해『백 년 동안의 고독』까지, 15편의 소설에 얽힌 지적이고도 품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자 김한식 교수를 만났다.
처음 책을 받아보고 콘셉트가 너무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 같은 평범한 독자들은 남들이 좋다는 소설을 읽으면서 왜 그렇다는 건지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한편으로는 ‘그냥 나한테 좋으면 좋은 거지, 꼭 그 이유까지 알아야 할까’ 하는 생각으로 자기 위안(?)을 하기도 하고요.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책은 사실 없습니다. 취향에 따라 사람마다 좋아하는 책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냥 좋으면 되는데 이유까지 알아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동의합니다. 읽고서 감동을 받는 것보다 독서에서 더 중요한 일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보다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무 책이나 골라 읽기만 한다고 저절로 감동이 올까요? 오래된 작품들 같은 경우에는 그 작품의 배경 정도는 알고 읽어야 큰 감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작품의 역사적 의미나 작가의 특별한 이력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되지요. 그런데 고전은 작품마다 그것이 고전으로 불리게 된 이유가 각기 다르답니다. 이 책은 그런 각각의 이유를 독자들에게 설명해 줍니다. 그러니까 고전에 담긴 매력을 많은 독자들이 향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라면 동기인 셈입니다.
책을 보면 『돈키호테』에서부터 『백 년 동안의 고독』까지 다루는 소설들의 국적이나 시대가 아주 다양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이 소설들을 고르셨나요? 그리고 책을 쓰시면서 특별히 신경 쓰신 점은요?
우선 비교적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을 고르려고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세계문학사에 나름대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작품을 찾았지요. 지역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을 고르다 보니 서구 중심으로 목차가 짜이게 되더군요. 이십 여 편을 우선 고르고 주제나 의의 등에서 중복되는 작품을 제외했습니다. 프랑스의 스탕달이나 영국의 디킨스, 독일의 귄터 그라스가 이런 과정을 거쳐 탈락(?)하게 되었네요.
『돈키호테』는 우리가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첫 번째 작품입니다. 형식과 내용 면에서 이후 소설의 탄생을 예견한 작품이지요. 이에 비해 『백 년 동안의 고독』은 기존의 소설과 전혀 다른 상상력으로 21세기 소설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입니다. 흔히 말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품이지요. 이 두 작품 사이에 사실주의, 자연주의, 낭만주의, 모더니즘 등의 사조들이 명멸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나의 작품을 두고도 상이한 해석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 고민이 크셨을 것 같은데요. 관련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제가 가장 고민한 부분을 물어보시네요. 사실 고전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없다면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이 되지도 못했겠지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대부분의 평자들이 인정하는 ‘공통된’ 해석들을 참고하려 했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알 수 있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요? 결론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모두 설명하려 하지 말고 몇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친절히 설명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글을 써 나갔습니다.
15편의 소설을 다루고 있지만,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각별하게 생각하시는 소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같은 책이라도 언제 읽었느냐에 따라 감동의 정도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어떤 소설을 제일 좋아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다시 읽었을 때는 『돈키호테』와 『모비 딕』이 좋았습니다. 예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돈키호테』는 현대 소설의 모든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서술자, 서사 진행, 현실 인식, 인물 형상화 등에서 놀라운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모든 현대소설은 『돈키호테』를 참고하거나 다시 쓰고 있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모비 딕』은 장대한 스케일로 독자를 압도합니다. 신화적이고 낭만적인 상상력 속에 푹 빠지며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율리시즈』는 정말 유명하지만 막상 읽기는 쉽지 않다고 소문 난 소설들이잖아요. 우리가 왜 이런 소설들을 읽어야 할까요?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좀 더 욕심을 내면 시대사이자 정신사 그리고 지성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면 세계를 보는 인간의 관점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알 수 있지요. 이 두 작품은 인간의 감각과 이성에 대한 획기적인 시각을 제공해 주는 작품입니다. 특히 기억과 무의식 그리고 망각이라는 관점에서 인간과 세계를 다시 보게 해 주지요. 오래전부터 문학은 막연한 감상을 구체적인 감상으로, 구체적인 감상을 보편적인 의미로 만들어 주는 일을 해 왔습니다. 개인의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도록 돕기도 했고요. 이 두 작품은 매우 정교한 방식으로 이런 문제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개인이 가진 근본적인 고독과 우울, 삶의 유한성과 기억의 영원성 등 무수한 생각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그래서 위대한 작품이지요.
머리말을 보면 소설이란 결국 인물에 대한 이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써 주셨는데요. 저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설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설을 대하면서 늘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소설은 역사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지요. 소설과 역사 모두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며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 대해 말합니다.
소설과 역사의 차이는 인간을 다루는 방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역사에서는 인물이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그들이 만들어 낸 사건과 그 사건의 결과가 역사에서는 더 중요합니다. 이에 비해 소설은 그냥 인물, 아니 하나의 인간에 대한 탐구에 집중합니다. 프랑스 혁명을 다루더라도 소설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욕망이나 운명에 더 큰 관심을 보입니다. 역사라면 아마 그 인간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주목하겠지만요.
독자 입장에서 소설은 특수한 개인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인간성의 한 토막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통해 나와 다른 타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매력적인 인물이 없다면 소설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 안 그런가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소설 읽기는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도 아닌데 일부러 고통스러운 독서를 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런데 같은 책이라도 의미를 알고 읽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느끼는 재미는 매우 다릅니다. 규칙도 모르고 야구 경기를 보거나 자막 없이 외국 영화를 볼 때에 무슨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요?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전을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이더라도 원전을 천천히 읽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서두르다 의미를 놓치지 않도록 말이지요. 그런데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다면 친절한 안내서를 참고하는 것도 좋습니다. 안내를 따라가면 최소한 도랑에 빠지거나 산으로 올라가는 일은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쪼록 이 책이 여러분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필자로서의 소박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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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이유김한식 저 | 뜨인돌
수백 년의 시간을 새긴 채 우리 앞에 당도한 소설들이 있다. 너무 어려워서, 지루해서,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책을 팽개쳤던 지난날을 자책하지 말자.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