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정, 긴 이야기
뮤지컬 <타이타닉>의 국내 초연이 시작됐다.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상연된 후 20년 만의 일이다. 같은 해 12월에 영화 <타이타닉>이 개봉됐으니, 뮤지컬이 영화보다 약 7개월 앞서 관객과 만난 셈이다. 작품은 공개된 바로 그 해에 ‘토니어워즈’ 5개 부문,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 1개 부문을 수상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번 한국 공연은 새로운 대본과 오케이스트레이션으로 만들어진 첫 번째 프로덕션으로, 기존 브로드웨이 공연과는 차별화된 무대를 선보인다.
1912년 4월 10일. 세계 최대 규모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 호의 첫 항해가 시작됐다. 당시로서는 “지구 위에서 움직이는 가장 거대한 물체”였다. 그만큼 첨단 기술력이 응집된 결과물이었고, 설계자 앤드류스가 “하나의 섬, 떠 있는 도시”라고 부를 정도로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공간이었다. 또한 그것은 꿈의 땅으로 가는 통로였다. 배에는 호화 여행을 떠나는 1등실 승객들과 함께 ‘기회의 나라’ 미국으로 향하는 가난한 이민자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3등실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꿨다.
2000여 명의 승객, 2000여 개의 설렘, 2000여 개의 희망을 싣고 타이타닉 호는 출항했다. 그러나 5일 간의 짧은 항해 끝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바다 깊숙이 잠겼던 선체가 드러난 것은 1985년.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 73년이 지난 뒤였다. 이 소식은 모든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이에 영감을 받은 극작가 피터 스톤과 작곡가 모리 예스톤은 함께 뮤지컬 <타이타닉>을 만들었다. 토니상, 오스카상, 에미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작가인 피터 스톤이 극본을 썼고, 모리 예스톤의 웅장하고 감성적인 음악이 더해졌다.
절대 가라앉지 않을 거라 믿었던 꿈의 선박. 타이타닉 호가 가라앉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5일 동안, 배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비극의 순간, 배에 탑승했던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뮤지컬 <타이타닉>은 짧았던 여정, 그 안에 담기에는 너무 많았던 이야기들을 기록한다. 영화 <타이타닉>과 달리, 이 작품에는 주조연의 뚜렷한 구분이 없다. 선주와 선장, 배의 설계자, 승객과 항해사, 화부에 이르기까지 타이타닉 호에 탑승한 모든 이들이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최대 5개까지 배역을 연기하는 ‘멀티-롤(Multi-role) 뮤지컬’이다.
순간을 함께한 모두가 주인공이다
뮤지컬 <타이타닉>은 각 인물들이 가진 이야기를 따라가며 전개된다. 선주는 타이타닉 호를 전설로 만들고 싶은 야심에 가득 차서 ‘더 빠른 속도로’ 항해하기를 재촉하고, 선장은 그와 갈등을 빚다 결국 속력을 높인다. 1등실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노부부가, 2등실에는 세계적인 부호들을 동경하는 이가 탑승해 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연인이 있는가 하면,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아일랜드 이민자도 있다. 그들 사이로 승무원과 항해사, 무선기사, 화부가 바쁘게 오간다.
이야기가 하나의 구심점으로 엮이지 않고 갈래갈래 뻗어나가는 만큼, 중반부를 향해 갈수록 흡인력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그 순간을 함께한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는 이러한 아쉬움을 상쇄시킨다. 무엇보다 독보적인 무대 디자인, 19인조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음악,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 넘버들이 뮤지컬 <타이타닉>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신인부터 베테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신춘수 프로듀서는 “타이타닉 호에 승선한 다양한 인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이제 막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실력을 갖춘 신인 배우들부터 말이 필요 없는 베테랑 배우들까지 각 배역에 맞는 연령대의 배우들로 선별하는데 주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타이타닉>에는 이희정, 김용수, 김봉환, 임선애 등 관록 있는 배우들이 출연해 무게를 잡아준다. 여기에 오랜 시간 관객들의 신뢰를 받아온 문종원, 윤공주, 임혜영, 정동화, 서경수, 조성윤, 송원근이 함께하며 힘을 보태고, 뮤지컬 신예 켄(VIXX), 이지수까지 합류했다. 실제 타이타닉 호에 탑승했던 인물들에 초점을 맞춰 각 캐릭터와 스토리를 구성한 만큼, 실존 인물과 캐스트의 싱크로율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실화를 바탕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빛났던 인물들의 사랑과 희생, 용기와 감동을 전하는 뮤지컬 <타이타닉>은 2018년 2월 11일까지, 샤롯데시어터에서 관객과 만난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