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쓸 수 없는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 찾기 라는 단어는 책 제목으로 무척 많이 쓰이는 말이다. 어쩌면 길 찾는 법에 대한 책이 실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길 찾기, 소통으로 길 찾기 등 수많은 길 찾기 책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지도. 검색 기능과 전시 분류는 역시 이렇게 중요합니다.
글ㆍ사진 고여주
20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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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일단 책부터 사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책은 간접 경험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들로 일종의 '장비병'처럼 책을 갖추어 읽고 나서야 실제 행동에 돌입할 용기가 나는 사람들이다. 실용서는 실제로 그런 의미에서 실용적이다. 책을 먼저 보고 나면 대충 감이 잡혀 이 일을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책만 사놓고 시도하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 책꽂이에는 '기타 잘 치면 소원이 없겠네'와 '구체 관절 인형 만들기' '종합격투기' '납작배 만들기' 등이 나란히 꽂혀있으나 이후 생략.

 

그러나 실제로 책을 보고 익힐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실용적인 차원에서 꼭 필요한 책이 하나 있는데 도무지 출간될 기미가 없다. '길치가 길 찾는 법'이 그것이다. ‘길 천재가 된 홍대리’나 ‘길 찾기 무작정 따라하기’쯤 하나 나올 법도 하건만. 회사 근처에서 길을 잃어 사무실에 전화하였던 자랑스러운 추억의 소유자로 말하건대 길 찾기는 실용의 차원을 넘어 생존의 문제다.

 

지도를 들고 자신이 이동하는 방향에 맞춰 지도를 빙빙 돌리고 있다면, 그는 길치다. 휴대폰 지도를 켜놓고도 핸드폰을 빙빙 돌리고 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지만 길 자체가 오른쪽으로 굽어지면 방향이 바뀐 줄 모른다. 그런 이들이 약도를 그리면 괴이하게도 자신이 걸어온 길은 전부 직선이다.

 

길치들이 길을 헤매는 이유는 길을 인식하는 체계 자체가 길치가 아닌 이들과 다르다는 말이 있다. 건물이 있고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식으로 공간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맥주 간판이 보이는 곳, 담쟁이 덮인 우중충한 담장, 비둘기 많이 앉아 있는 곳 같은 이미지로 길을 기억한다. 그들은 갔던 길을 거꾸로 되짚어 갈 때 높은 확률로 전혀 다른 길로 인식한다.

 

왼쪽 오른쪽을 구별하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길치다. 왼쪽 오른쪽이 헷갈린다고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밥 먹는 손이 오른손이잖아!"라고 하는데, 바로 그 밥 먹는 손이 어느 쪽인지 생각하는데 몇 초간의 인지시간을 요한다. 좌우 구분이 어려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역학조사를 해보면, 대다수 왼손잡이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오른손이 '바른손'이라는 이유로 교정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즉 밥 먹는 손이 오른손이라는 것조차도 교육을 통해 얻은 것이라 직관적으로 좌우 구분을 하는 데 밥 먹는 손 따위의 표지는 소용이 없었던 거다. 오히려 왼손으로 밥을 먹던 본성이 살아나 되려 더 헷갈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를 서기 위해 좌향좌 우향우 같은 제식훈련을 하는 것은 실로 공포스러운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오른손은 가위 왼손은 주먹을 쥐고 있었는데 이것은 좌우를 아는 데는 하등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대신 가위를 보면 오른쪽이 떠오르는 이상한 스냅스 연결을 남겼다. 왼손에 왼쪽 좌 라고 한자 문신을 하는 방법도 실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양쪽에 다 문신을 하면 안 된다. 한자로도 왼 좌, 오른 우는 어찌나 비슷하게 생겼는지. 영어로도 R/L 중 어느 쪽이 오른쪽인지 헷갈린다. 그러니 문신한 쪽이 왼쪽, 이 편이 실용적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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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성해 보았습니다

 

연애와 수영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는 데도 많은 연애 지침서와 수영법 책이 있다. 설사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길치가 길을 찾는 법, 좌우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왜 없는가 생각해보았다. 길치가 아닌 이들은 길치가 길을 찾지 못하거나 좌우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서 책을 쓸 수가 없고, 길치인 사람은 길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왜냐고? 책이 없으니까- 책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누구도 쓸 수 없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 찾기 라는 단어는 책 제목으로 무척 많이 쓰이는 말이다. 어쩌면 길 찾는 법에 대한 책이 실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길 찾기, 소통으로 길 찾기 등 수많은 길 찾기 책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지도. 검색 기능과 전시 분류는 역시 이렇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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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 #길 찾기 #검색 기능 #전시 분류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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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7.09.29

즐겁게 읽고잇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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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주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라는 변명 아래 책과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작년부터 알코올 알러지를 앓고 있는데 개가 똥 알러지 같은 소리라는 핀잔만 듣고 있습니다. 고양이 4마리, 개 1마리와 살며 책에 관한 온갖 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