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대한 캣츠비>가 2015년에 이어 2017년 더욱 새로워진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강도하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위대한 캣츠비>는 순정파면서 한편으로는 나쁜 남자인 캣츠비, 다른 남자와 결혼했지만 캣츠비 주변을 맴도는 페르수,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선, 그리고 어쩌면 이 실타래의 출발점인 하운두 등 20대 청춘들의 지독한 사랑과 이별을 담고 있는데요. 캣츠비 역에 캐스팅된 네 명의 배우, 조상웅, 김지휘, 이우종, 천지(틴탑) 중에 이우종 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공연장 인근 카페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뮤지컬 <위키드>의 보크, <꽃보다 남자>의 소지로, 연극 <안녕, 여름>의 동욱 등 그간 객석에서 봐왔던 이우종 씨의 이미지가 캣츠비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저한테 철딱서니 없고 아이 같은 모습이 좀 있나 봐요. 어릴 때 정말 순수하게 살긴 했어요. 시골에 살면서 아무 것도 모른 채 논밭에서 축구하고 연 날리고. 그렇게 살다 서울 사람들을 만났더니 저를 좀 망가뜨리고 싶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모자를 쓰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우종 씨는 무대에서 봐왔던 모습보다 더 어려 보였습니다. 목소리까지 앳돼 그를 망가뜨리고 싶다던 ‘서울 사람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될 정도였는데요(웃음). 그래서인지 그동안 대체로 순하고 착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해 왔죠. 캣츠비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네 명의 캣츠비가 다 다른데, 어떤 캣츠비는 조금 더 애교가 있고, 다른 캣츠비는 조금 더 슬픔이 있고, 누군가는 조금 더 웃음이 있고, 저는 좀 더 바보 같아요. 사실 저는 제 이미지를 잘 모르겠어요. <꽃보다 남자>에서 소지로는 말이 바람둥이지 까불거리는 역할이었는데 그렇게 저한테 잘 어울렸대요. 그리고 이번에 캣츠비를 했더니 또 잘 어울린대요. 저는 캣츠비가 찌질하고 바보 같고 답답한 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내가 잘 까불거리면서 바람둥이면서 찌질하면서 바보 같은 남자인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웃음).”
실제 성격은 어떤데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혈액형이 AB형인데, A형의 모습이 두드러질 때도 있고, B형이 나올 때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잖아요. 30대가 되면서 좀 진지해지긴 했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에너지 좋고, 매일 파이팅이 넘친다고 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아요.”
타이틀 롤은 처음이죠? 작품에 여러 사랑이 등장하지만 하나 같이 쉽지 않아서 힘들기도 하고 부담도 컸을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니까 제가 생각한 만큼 잘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잘 해내고 싶은 부담이 있어요. 그런데 캣츠비를 이해하기는 정말 어려웠어요. 제가 좋은 남자는 아닌지 ‘나라면 페르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사람을 다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부분에서 가장 부딪혔고요.”
작품 내용을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쉽게 얘기해서 날 떠난 페르수와 날 바라보는 선, 실제 상황이라면 누구를 선택할 건가요(웃음)?
“정말 힘들겠지만, 저는 미래를 위해서 선을 택할 것 같아요. 선한테 너무 미안한 것도 있고요. 물론 <위대한 캣츠비>에서는... 공연을 보시면 압니다(웃음).”
웹툰은 읽어보셨나요? 원작이 웹툰이라 비교하는 관객들도 많을 텐데요.
“읽어봤죠. 보면서 눈물이 나는 부분도 있고.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겪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은 공감이 가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연출님이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래서인지 연습 때도 배우들이 많이 슬퍼했어요. 요즘 세대가 더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지독한 사랑을 하고 싶거나, 해보셨거나, 궁금한 분들은 꼭 한 번 공연을 보셨으면 좋겠어요.”
배역마다 더블에서 많게는 쿼드러플 캐스팅이라 공연 끝날 때까지도 항상 무대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연습 때 배우들을 많이 만나서 대사를 맞춰봤어요. 나이 차이가 많은 형님들과는 술을 한 잔씩 하면서 친해지기도 하고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는 서로 속 얘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친해진 것 같아요. 연출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게, 사람들이 자기의 속 얘기를 꺼내게 만드시더라고요.”
그러게요, 연습실 분위기가 궁금했습니다. 아이돌 가수를 비롯해 다양한 배우들이 모였잖아요.
“소통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이번 팀은 서로 애틋해요. 사실 공연을 같이 해도 친해지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그리고 작품의 성격상 연습 때도 슬픈 감정이 많아서 어떤 배우들은 눈만 마주치면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러면 덩달아 다른 배우들도 같이 울고요. 그래서 연출님이 그 두 분은 가끔 맞붙게 했어요. 누구인지 말하고 싶지만, 공연을 보러 오시면 느낌이 다른 날이 있을 거예요(웃음). 아이돌 친구들은 오히려 새롭고 순수한 게 있어요. 같이 만들어 가는 과정이 굉장히 호의적이고 재밌고, 생각지 못한 것들이 나와서 저도 배워요. 바쁜 게 문제죠(웃음).”
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죠?
“그럼요. 정말 여성스러운 역할도 해보고 싶고, <캣츠>처럼 몸을 많이 쓰는 작품도 참여하고 싶어요. 아크로배틱, 탭, 발레, 재즈를 다 배웠거든요. 그리고 진짜 나쁜 인물도 연기해 보고 싶고, 요즘은 연극도 많이 하고 싶어요. <안녕, 여름> 했을 때 정말 재밌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행복한 작품을 하고 싶어요. 물론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지만, <위대한 캣츠비>를 공연하면서 정말 행복하거든요. 며칠 전 선 역의 유주혜 배우와 연기를 하는데, 그 순간 완전히 캣츠비인 것 같아서 정말 행복했어요.”
나쁜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면 캣츠비보다는 하운두가 탐났겠는데요? 이런 선한 이미지로 악역을 하면 관객들이 정말 성질나게 재밌을 것 같아요(웃음).
“이 작품에서는 캣츠비를 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하운두도 연기해보고 싶어요(웃음). 어쨌든 악역을 맡게 된다면 작품을 연구하면서 저도 바뀔 수 있으니까 다른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나쁜 남자’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캣츠비도 어떤 의미에서는 나쁜 남자라고 생각해요.”
남자배우들은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장르도, 배역도 훨씬 다양해지는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각오를 들어볼까요?
“예전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공연을 위해 시간을 할애했는데, 요즘은 잠도 많아지고, 술도 먹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고, 친구도 만나고 싶고, 가족도 보고 싶고... 생각이 많아졌나 봐요. 예전에는 생각 없이 밀어붙였는데 말이죠. 그래서 스스로 채찍질을 하고 있고요. 관객들이 ‘저 사람 공연은 꼭 보러 가자!’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배우가 되고 싶고요.”
이우종 씨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소년 같은 외모에 앳된 목소리에서 뮤지컬 <뉴시즈>를 비롯해 몇몇 작품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이우종 배우의 앳된 이미지와 동안의 비결은 아래 영상에 더 많은 얘기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 순한 외모로 악역을 연기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상상해봤는데요. 이 기대감은 조만간 이우종 씨가 채워줄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일단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에서 전작들과는 얼마나 달라진 모습으로 무대에 서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죠? 같은 이유로 곧 개막할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북한군 리해진도 기다려지네요!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