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엄마와 영화를 보러 간 적 있었다. 제목이 <애자>였다. 최강희가 인생 안 풀리는 노처녀 작가 역으로 나오는 영화였다. 병든 엄마를 지키며 병원 밖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고, 거지깽깽이 같은 차림으로 다니는 꼬락서니가 우리 엄마는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 쯤, 죽음을 목전에 둔 엄마와 딸이 단둘이 떠난 여행길에서 두 사람이 마구 언성을 높이는 장면이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엄마도 엄마를 위해서 좀 살아봐!” 대강 이런 분위기였다. 나는 막 쿨쩍쿨쩍 눈물이 났다.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최강희가 막 악을 쓰는 장면에서 우리 엄마, 나지막하지만 단단하게 주인공을 향해, 한 마디 했다.
“시집이나 가라, 이년아.”
엄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너무 컸고 순식간에 관객들은 우리 엄마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여기저기서 키득대는가 싶더니 급기야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관객들이 모두 따라 박수를 쳤다. 그날 엄마는 뜻밖의 박수세례를 한참이나 받고 돌아왔다. 창피해서 정말이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일산시청 소속 장대높이뛰기 선수와 결혼하는 꿈을 꾸어서, 일산시청에 정말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있는지 알아보려 했는데, 고양시청도 아니고 일산시청이라는 곳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 같은 거 안 하고 엄마에게 매일 욕이나 먹으며 살 운명이려니 했다. 그럼에도 나는 2년 전 어찌어찌하다 보니 결혼을 했다. 결혼 준비는 생각보다 복잡했고 결혼 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자 머릿속은 다 부푼 풍선처럼 멍하고 어지러웠다. 엄마의 전화가 그때 걸려왔다.
“야, 포항에서 가는 손님들은 얼마 없어. 나는 니가 뭐 시집을 가겠나 싶어서 다른 집 결혼도 딱 둘째까지만 갔어. 셋째 결혼식들은 하나도 안 갔어. 그러니 니가 간다고 해도 나는 사람들한테 와달란 소리도 못해. 벌써 두 번씩이나 사람들을 불렀는데 또 어째 부르나. 세 번짼데. 야마리 까졌다고 사람들이 욕해. 해봐야 서른 명이나 가나. 예식 시간이 늦어가지고야 사람들 밥을 어째야 하나 내가 고민이 말이 아이다. 니는 뭔 예식 시간을 그래 늦게 잡나. 열두 시나 한 시가 딱 좋지. 별 수 있나. 밥하고 떡하고 고기랑 실어가지고 가야지. 술도 좀 받고. 경수 엄마가 내한테 그러잖나. ‘아이고, 형님. 국은 내가 끓여갖고 버스에 실을게요.’ 내가 그래갖고 막 뭐라 했어. ‘야, 니 신랑이 아파서 병원에 누운 지 몇 년인데, 니가 뭔 정신이 있다고 국을 끓이고 말고 하나. 고마 씰데없는 소리 마라.’ 그랬는데도 자꾸 국을 끓여온다 그러잖나. 경수 동생 희영이 알제? 희영이가 결혼을 해서 직장을 댕겨. 근데 희영이를 데리고 가겠다는 거라. 버스에서 사람들 수발 들고 할라면 젊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내가 미쳤냐고 욕을 막 했어. 직장 다니는 아를 뭘 심부름을 시킨다고 주말에 서울에 델고 가나. 돌았나. 직장 댕기면서 새끼 키우느라 진이 쪽쪽 빠진 아를 니 결혼이 뭐라고 거길 가자 해. 그랬더니 상혁이 엄마가 국을 또 자기가 끓인다고 안 하나. 니 상혁이 엄마 알제? 환호동 사는 엄마. 그 집도 손주들 둘 봐주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 아들 둘이 하나씩 아를지 엄마한테 맡겼잖나. 그래서 내가 그랬어. ‘형님, 우리가 인제 다들 늙어서 그런 짓 못한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가주기만 해도 내가 너무너무 고맙소.’ 우리가 젊었을 때는 어디 갈 때마다 국도 끓이고 중간에 버스 세워놓고 밥도 먹고 그랬어. 아무데서나 자리 깔고. 근데 야, 우리도 인제 다 늙어서 여기저기 아픈 엄마들도 많아. 서울 가자 하기가 안 쉬워. 많이 못 가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미쳤나. 버스 대절하는 돈을 니가 왜 주나. 고마 시끄라. 그 정도 돈은 나도 있어. 시끄라. 욕은 안 먹을만치 떡이랑 음식이랑 해서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니들 둘 다 한복 안 하면 난 결혼식 안 가. 아니, 한복도 없이 어째 어른이 되나. 말이 되나. 이번 주에 가서 내가 둘 다 한복 해 입힐 기야. 그런 줄 알아. 고마 시끄라.”
천명관의 소설 『고령화 가족』에는 엄마가 등장한다. 자식들이 무슨 사고를 치고 기어들어와도 매 끼니 밥을 짓고 삼겹살을 굽는 엄마다. 이 소설은 그 엄마 때문에 몹시도 아름답다. 엄마는 그냥 밥만 해주는데, 이 엉망진창 가족들은 그 밥만 먹고도 삶을 유지하고 지탱해 나간다. 엄마엄마, 징징대는 소설이 분명 아닌데도 말이다. 책장을 살펴 『고령화 가족』을 뽑아낸다. 희한하게도 이 책에서는 삼겹살 냄새가 난다. 농담처럼 말이다.
김서령(소설가)
1974년생.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어디로 갈까요』와 장편소설 『티타티타』, 그리고 산문집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를 출간했으며 번역한 책으로 『빨강 머리 앤』이 있다.
invu9569
2017.08.25
결혼하신거군요
방금 작가님 우리에겐..책읽고
좋아서 검색하다가 들어왔는데..오옷
봄봄봄
2017.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