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내가 덕후가 된 까닭

『나는 아직 친구가 없어요』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도망칠 곳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책이었다. 책은 그 어느 때도 날 배신하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다가 손을 뻗으면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image1.JPG

 

중학생 때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낯가림이 심해 누가 먼저 말을 시키면 대꾸를 잘 안 한다던가, 어쩔 줄 몰라 하다 조금 늦게 대꾸를 하면 “쟤는 혼잣말을 한다.”, “너 입 냄새 나.” 같은 놀림을 받아야 했다. 까닭은 단순했다. 키가 크고 못생기고 뚱뚱해서. 이런 날 도와주려는 선생님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예를 들어 이런 식, “영주 같은 애가 크면 미인이 되는 거야.”, “어머니 엄청 미인이셔.”, “영주네 아버지가 만화가야.” 칭찬은 부작용만 컸다. 아이들은 “말도 안 돼.”, “그런데 너는 왜 그래.” 같은 소리를 하며 교실이 떠나가라 웃어댔다. 나는 놀림을 받으며 매일 생각했다. 아, 친구 같은 거 필요 없다. 혼자 있어도 충분히 즐겁게 지내자.

 

도망칠 곳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책이었다. 책은 그 어느 때도 날 배신하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다가 손을 뻗으면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펑펑 울거나 실실 웃어도 날 비웃거나 놀리지도, 따돌리지도 않았다. 최근 우연한 기회로 선물 받은 만화 에세이 『나는 아직 친구가 없어요』를 보자니 이때의 일이 떠올랐다. 이 책엔 친구를 만들려고 무던히 노력하던 시절의 내가 있었다. 만화 에세이와 현실은 좀 달라 결국 중학생인 나는 친구 만들기를 포기했었다. 그냥 책으로 도망치는 덕후가 되어버려 지금에 이르렀다. 뭐, 결과적으로 본다면 나쁘지 않았던 선택이었던 듯하다. 이렇게 당시의 일을 담담하게 떠올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때나 지금이나 내 옆엔 책탑이 쌓여 있다. 무슨 책을 또 이렇게 갖다 놨더라, 책등을 훑다 보니 한 권, 유독 특별한 책이 눈에 띄었다. 어쩌다보니 갑작스레 카페를 그만뒀다. 그만두기 직전까지 다녔던 3개월 남짓한 사이, 몇 명이고 단골과 얼굴을 익혔다. 그 중엔 오후 2시 10분 전쯤 하여 매일 오시는 단골 한 분이 있었다. 평일엔 늘 양복 차림이고 주말엔 폴로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는 멋쟁이 할아버지다. 5월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카페에 놓으라며 시집이며 자신의 자서전을 주고 가셨다. 감사한 마음에 “늘 감사 드립니다.”라는 짧은 메시지와 사인을 적어 내 책을 드렸다. 다음 날, 할아버지가 자신의 자서전 한 권과 함께 작은 봉투를 건네 주셨다. “책값이야. 많이 안 넣었어. 5만 원.” 뭉클했다. 책값을 챙겨주신 분은 처음이었다. “이 책은 꼭꼭 씹어 읽어야지.” 하며 할아버지의 사인을 받아 책을 집에 모셔 갔다. 그 책을 책탑 사이에 끼워놓고는 잊고 있었다.

 

책을 손에 들었다. 낯익은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마다 나던 특유의 향이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잘 지내실까. 오늘도 카푸치노를 드셨을까. 내가 갑자기 그만둬서 걱정하시면 어쩌지.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눈길을 끄는 글을 발견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놓지 않는다면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고 삶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잠시 책탑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내가 사는 까닭은 뭘까.
그야, 자명하다. 내 삶은 실비아 플라스와 마찬가지로 의문형이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많이 써 보면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작품을 잘 쓸 때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할까?”

 

나는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산다.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그런고로 나는 지금 ‘살아있다.’ 지금 이 순간 또 한 번 작품을 잘 쓰기 위해 책탑을 쌓는다. 누가 뭐라든 간에 삶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하여 아마 나는 계속 덕후의 삶을 살 듯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4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나는 아직 친구가 없어요

<나카가와 마나부> 저/<김현화> 역10,800원(10% + 5%)

“외롭다 외로워. 어째서 이렇게 외로운 걸까.” 휴일에 놀 사람도 고민을 상담할 상대도 없는 일상 어른이 되고 보니 친구 만드는 게 절실한 문제가 되었다 『나는 아직 친구가 없어요』는 사람 사귀는 게 서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어른 남자의 좌충우돌 친구 만들기 스토리를 담은 만화 에세이다. 주인공은 나..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가장 위험하고 위대한 발명, '내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서 더 이상 자책할 필요가 없어졌다. 저자는 인류를 오늘로 이끈 힘이 도구나 불, 언어의 사용이 아니라 "내일 보자!"라는 인사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학문적 근거를 바탕으로 '내일'의 발명이 가져 온 인류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인간의 노래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인간을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로 표현하고, 끊임없는 삶의 고통을 노래한 시 122편을 수록했다. "어쨌든, 오늘 나는 괴롭습니다. 오늘은 그저 괴로울 뿐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의 노래는, 여전히 우리들의 노래이기도 하다.

유토피아는 판타지가 아니다

과거 사람들이 그토록 꿈꾸던 모든 것은 이미 실현되었다. 그러나 당신이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주 15시간 노동. 보편적 기본소득. 이것은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극찬한 참신하고 독창적인 시대적 비판과 담대한 미래지도.

우리가 바로 힙합이다!

힙합에 대한 편견은 이제 그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마음껏 털어놓는 주인공들을 통해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힙합 동화가 탄생했다. 아이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랩 속에 유쾌하게 담아낸, 주인공 ‘한눈팔기’와 개성 넘치는 친구들의 힙합 크루 만들기.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