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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덕후가 된 까닭

『나는 아직 친구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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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칠 곳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책이었다. 책은 그 어느 때도 날 배신하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다가 손을 뻗으면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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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낯가림이 심해 누가 먼저 말을 시키면 대꾸를 잘 안 한다던가, 어쩔 줄 몰라 하다 조금 늦게 대꾸를 하면 “쟤는 혼잣말을 한다.”, “너 입 냄새 나.” 같은 놀림을 받아야 했다. 까닭은 단순했다. 키가 크고 못생기고 뚱뚱해서. 이런 날 도와주려는 선생님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예를 들어 이런 식, “영주 같은 애가 크면 미인이 되는 거야.”, “어머니 엄청 미인이셔.”, “영주네 아버지가 만화가야.” 칭찬은 부작용만 컸다. 아이들은 “말도 안 돼.”, “그런데 너는 왜 그래.” 같은 소리를 하며 교실이 떠나가라 웃어댔다. 나는 놀림을 받으며 매일 생각했다. 아, 친구 같은 거 필요 없다. 혼자 있어도 충분히 즐겁게 지내자.

 

도망칠 곳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책이었다. 책은 그 어느 때도 날 배신하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다가 손을 뻗으면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펑펑 울거나 실실 웃어도 날 비웃거나 놀리지도, 따돌리지도 않았다. 최근 우연한 기회로 선물 받은 만화 에세이 『나는 아직 친구가 없어요』를 보자니 이때의 일이 떠올랐다. 이 책엔 친구를 만들려고 무던히 노력하던 시절의 내가 있었다. 만화 에세이와 현실은 좀 달라 결국 중학생인 나는 친구 만들기를 포기했었다. 그냥 책으로 도망치는 덕후가 되어버려 지금에 이르렀다. 뭐, 결과적으로 본다면 나쁘지 않았던 선택이었던 듯하다. 이렇게 당시의 일을 담담하게 떠올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때나 지금이나 내 옆엔 책탑이 쌓여 있다. 무슨 책을 또 이렇게 갖다 놨더라, 책등을 훑다 보니 한 권, 유독 특별한 책이 눈에 띄었다. 어쩌다보니 갑작스레 카페를 그만뒀다. 그만두기 직전까지 다녔던 3개월 남짓한 사이, 몇 명이고 단골과 얼굴을 익혔다. 그 중엔 오후 2시 10분 전쯤 하여 매일 오시는 단골 한 분이 있었다. 평일엔 늘 양복 차림이고 주말엔 폴로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는 멋쟁이 할아버지다. 5월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카페에 놓으라며 시집이며 자신의 자서전을 주고 가셨다. 감사한 마음에 “늘 감사 드립니다.”라는 짧은 메시지와 사인을 적어 내 책을 드렸다. 다음 날, 할아버지가 자신의 자서전 한 권과 함께 작은 봉투를 건네 주셨다. “책값이야. 많이 안 넣었어. 5만 원.” 뭉클했다. 책값을 챙겨주신 분은 처음이었다. “이 책은 꼭꼭 씹어 읽어야지.” 하며 할아버지의 사인을 받아 책을 집에 모셔 갔다. 그 책을 책탑 사이에 끼워놓고는 잊고 있었다.

 

책을 손에 들었다. 낯익은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마다 나던 특유의 향이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잘 지내실까. 오늘도 카푸치노를 드셨을까. 내가 갑자기 그만둬서 걱정하시면 어쩌지.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눈길을 끄는 글을 발견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놓지 않는다면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고 삶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잠시 책탑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내가 사는 까닭은 뭘까.
그야, 자명하다. 내 삶은 실비아 플라스와 마찬가지로 의문형이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많이 써 보면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작품을 잘 쓸 때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할까?”

 

나는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산다.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그런고로 나는 지금 ‘살아있다.’ 지금 이 순간 또 한 번 작품을 잘 쓰기 위해 책탑을 쌓는다. 누가 뭐라든 간에 삶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하여 아마 나는 계속 덕후의 삶을 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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