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감함”
중국 작가로서 중국 정부의 말을 따르게 되면 설령 정부에 대한 비판 의식이 있더라도 작품도 그에 따라가게 된다. 작가의 현실감각은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글ㆍ사진 신연선
201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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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구호 아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어제의 혁명가는 오늘의 탄압을 피하지 못했다. 사회의 광적인 탄압은 사람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곳에는 오직 혁명만이 있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무려 10년 동안이나 중국을 지배한 ‘문화대혁명’ 풍경이다.

 

송범평의 목숨을 건 저항은 계속됐지만, 계단에 이르러 그만 발을 헛디뎌 구르고 말았다. 곧이어 여섯 붉은 완장들이 그를 짓밟아대면서 부러져 끝이 총검처럼 뾰족해진 몽둥이로 찔러대기까지 했다. 그때 끝이 뾰족한 몽둥이 하나가 송범평의 복부에 꽂혔고, 순간 송범평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자 그 붉은 완장은 몽둥이를 뽑아냈고, 송범평의 몸은 즉시 축 늘어졌다. (『형제 1』, 195쪽)

 

1960년 생으로, 문화대혁명 시기에 유년기를 보낸 위화 작가는 장편 『형제』에서 당시의 광기 어린 풍경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이렇게까지 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장면들. 작가는 이 같은 “불합리한 장면은 굉장히 흔했다”고 말한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작가는 “어느 곳에서나 미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는 그들을 외면했고, 세상은 앞으로만 나아갔다. 혁명 구호가 무색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본과 권력을 좇았다. 이 놀라운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또다시 미쳐갔다.


『허삼관 매혈기』, 『인생』, 『제7일』 등 사회 부조리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온 위화 작가는 현재의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대해 “우리 모두가 병자”라고 말했다. ‘모든 이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책임이 있고, 그 사회의 온갖 폐해에 대해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한 입센의 말을 인용한다. 지금, 위화 작가는 의사 입장이 되어 병자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작품을 쓰던 과거와는 달라졌다. 이제는 그 역시 병자의 입장에서 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취했는데 저 혼자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웃기는 일’이라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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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의 입장에서 쓴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에서 『형제』 집필 당시 오래 휴대전화를 꺼놨던 일화를 전한 적이 있다.  『형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소설인가.

 

1996년, 『허삼관 매혈기』를 쓸 때부터 『형제』를 집필하기는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잘 써지지 않았고, 2003년이 되어서야 순조롭게 쓸 수 있었다. 96년 당시 중국은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런데 2003년이 되어 그때를 돌아보니 그 당시 겪었던 변화가 오히려 큰 변화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2003년에 와보니 진정한 변화는 그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시기에 다시 『형제를 쓰게 된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글에서 『형제』를 쓰게 된 이유를 ‘내가 병자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작가는 사회를 비판하는 관점에서 작품을 쓴다. 작품에서 사회를 비판할 때 작가는 의사의 입장이 되는 것 같다. 만약 1996년에 『형제』를 완성했더라면 의사의 입장에서 썼을 것이다. 그런데 2003년에 완성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우리 모두가 병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문제가 있고 나는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사회 문제에 각자 책임이 있다. 모든 사람이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모두가 병자이다.

 

모두가 병자인 동시에 의사일 수 있다고도 보나?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 역시 모두가 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작가가 의사의 입장에서 쓴다고 했지만 지금은 병자의 입장에서 쓴다. 각도가 바뀌었다.

 

1부, 송범평의 적나라하고 불합리한 죽음 장면이 문제적이다.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한 장면인데, 이 장면을 솔직하게 날것 그대로 그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역사의 그림자에 묻힌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궁금하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다 그랬다. 법도 존재하지 않았고, 법원도 존재하지 않았다. 혁명 자체가 이유였다. 그렇기 때문에 불합리한 장면은 굉장히 흔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느낀 것은 어느 도시를 가도 미친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어느 곳에서나 미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이 미친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잡혀가고, 탄압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에도 혁명을 계속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4-5년이 지나자 이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들을 사회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게 되었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을 중국 사회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작가의 시선을 중국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것인가?


젊은이들,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미 문화대혁명에 대해 흐릿한 기억만을 가지고 있다. 그들 자신은 문화대혁명을 잘 모르고, 부모나 사회를 통해 전해들은 정도이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싫어해서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은 문화대혁명 50주년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원치 않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더 잊히는 추세다. 심지어 해외에서 문화대혁명을 연구하는 사람들조차도 50주년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것은 문화대혁명을 부정하는 시각도 있지만 나쁜 영향만을 끼친 것은 아니라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중국이 있을 수 있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통일된 의견이 없다보니 언급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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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은폐 시도는 큰 문제


쉽게 쓰인 장면은 없을 테지만 즐겁게 쓴 장면은 있을 터다. 어떤 장면일까.


2부에 많다. 고물 양복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게 썼다. 80년대에 고물 양복이 많이 수입됐다. 작품 중에 ‘여 뽑치’와 ‘왕 케키’가 반일 시위를 위해 동경에 가자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2006년, 2007년은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장면도 들어가게 된 것인데 그 장면을 본 사람들에게 말을 많이 들었다. 한국 고물 양복을 수입했다고 쓰지 왜 일본 고물 양복을 수입했다고 썼느냐는 것이었다. 그때 일본 고물 양복뿐 아니라 한국 고물 양복도 수입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일본 고물 양복을 쓴 것은 거기에 한자로 이름이 쓰여 있기 때문이었다. ‘자네는 어느 집안 옷인가?’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재미있어서 쓴 건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웃음)

 

너무 쓰기 괴로웠던 장면도 궁금하다.


송범평의 죽음을 쓸 때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란이 상해 병원에서 송범평이 자신을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는 장면을 쓸 때는 힘들더라. 이란이 하루 종일 송범평을 기다리다 결국 버스를 타고 고향에 왔는데 아이들이 거지꼴로 기다리고 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는 장면은, 참 힘들었다. 또 송강이 자살하는 장면도 쓸 때 괴로웠다.

 

송강은 류진을 벗어나 철로가 지나는 곳에 이르러 기찻길 옆 돌 위에 마스크를 벗고 앉아 행복하게 저녁 무렵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사방으로 수확을 앞둔 벼들이 가득한 논을 바라보았고 멀지 않은 곳에 붉은 노을에 물든 작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중략)
그때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송강이 안경을 벗어서 닦아 다시 쓰고 보니 태양이 반쯤 저물었고, 열차는 반쯤 지고 있는 태양을 등지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 인간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형제 2』, 420-421쪽)

 

창작의 고양감을 크게 느낀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형제』를 쓸 때는 고양감을 많이 느꼈다. 감정적으로 고양되어 썼다. 『허삼관 매혈기』가 평탄했던 것에 비해 『형제』는 계속 격앙된 장면들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형제』가 한 권으로 묶여 출간이 되었는데 거의 600쪽이 넘는 분량이었다. 그곳 평론가들이 평하기를 두꺼운 줄 모르고 한 번 들면 내려놓을 수 없다, 한 번에 다 읽어버리는 책이다, 라고 하더라.

 

작가의 글에서 사회의 심각한 불균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득 불균형, 문화 불균형 등이 꿈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진단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특히 작가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중국 사회의 변화를 꼽는다면.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먼저 환경 문제다. 땅과 물, 심지어는 공기까지도 오염이 되었다. 이것들을 복원하려면 오랜 기간이 걸린다. 큰 문제다. 두 번째는 정부 문제다. 중국 정부는 국가 운영에 대한 언급도 통제를 하고 있다. 비판을 피하는 것은 아주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문화대혁명, 대약진운동 등을 회피하려는 입장이다. 천안문 사태에 대해서는 더더욱 심하게 회피하려고 한다. 문화대혁명이나 대약진운동 등은 소설 속에서라도 쓸 수 있지, 천안문 사태는 소설에서조차 쓸 수 없다. 출판을 금지한다. 역사에 대한 은폐 시도는 후에 큰 문제로 돌아올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제대로 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어떤 사람들은 문화대혁명이 다시 오기를 바라기도 한다.

 

문화대혁명을 기다린다, 그 이유는?


문화대혁명은 반봉건, 반자본주의를 내세웠었다. 현재 중국은 고위직 공무원, 자본가 등에 대한 나쁜 감정이 많다. 만약 문화대혁명이 다시 오면 당시에 지주, 자본가를 때린 것처럼 다시 그들을 단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들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이번 방한에서 장강명 작가와의 대담이 있었다. 장강명 작가의 발제가 흥미로웠는데 그는 남한이 북한에 대해 관심이 없고,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그것을 남한이 일부러 외면한 결과라기보다는 그냥 말을 하지 않다보니 아무도 안 하는 분위기가 되어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글을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흥미롭더라. 지금 장강명 작가 정도의 중국 젊은 작가들은 역사나 문화대혁명, 사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데 장강명 작가를 보니 중국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과거나 역사에 관심을 두는 새로운 세대가 나타날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 대담 현장에 젊은 독자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장강명 작가에게 질문을 했다. 북한 혹은 사회 문제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의 관심이 독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좋은 표식이다. 중국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날 거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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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다. 지금,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상한 일인데 『형제』 출간 이후에는 변화가 빨라진 것 같지 않다.(웃음)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치는 케케묵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서로 돕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미덕이라고 하면 동정심이나 연민이지 않을까 싶다. 동정과 연민은 아주 중요한 가치다.

 

한국에는 ‘알파고’ 이후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등 변화할 시대에 대한 담론이 무척 많다. 중국은 이런 급변하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없나? 변화가 빠르지 않다고 한 이유가 있나.


중국은 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한국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인공지능, 생명과학 등의 분야는 계속 발전해나갈 것이다. 알파고와 이세돌 구단의 대국에 대해서 중국의 바둑 기사들도 이세돌 구단이 그렇게 빨리 처참하게 패배한 것을 처음 본다고 얘기하더라. 많은 사람들이 강(强)인공지능이 출현하면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강인공지능이 출현하면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일자리 문제는 인간의 지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개발되는 것보다 먼저 발생할 것이다. 그것은 우려할 만하다. 작년에 미국에서 관련 연구를 하는 과학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가 말하기를 연구를 방해하는 큰 장애물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저항이라고 하더라.

 

작가가 생각하는 소설가의 의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처음 작가가 됐을 때 소설가의 의무란 좋은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든 자기의 일을 잘하면 된다, 그것이 의무다, 라고 생각했다. 소설가로 살아온 지 30년이 되었는데 지금 드는 생각은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재능만 있어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용감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작가로서 중국 정부의 말을 따르게 되면 설령 정부에 대한 비판 의식이 있더라도 작품이 그에 따라가게 된다. 작가의 현실감각은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소설과 현실의 공명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현실은 소설에 얼마나 영향을 주나.

 

소설과 현실은 가까울 수도, 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작가와 작품은 다르다. 한 작가가 여러 주제로 다른 작품을 쓸 수도 있다. 그런데 소설이 현실과 가깝다고 해서 좋은 소설인지는 모르겠다. 반대로 소설과 현실이 멀다고 해서 나쁜 소설인 것도 아니다. 가까워서 좋은 소설도 있을 수 있고, 멀어서 좋은 소설도 있다. 현실은 물론 소설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즉각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몇 년이 지나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소설이 현실에 어떻게 작용하길 바란다고 하는 마음은 없나? 


문학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는 회의적이다. 그걸 믿지는 않는다. 다만 문학 작품에 효용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문학 작품이 한 사람의 시각을 변화시키는 정도의 효용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위화의 소설에는 절망 속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고, 인간 삶의 다채로운 면을 조명한다. 그것이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작가가 독자에게 바라는 점도 있을까. 내 작품을 이렇게 읽어달라, 고 하는.


20년 전에 『인생』이라는 작품을 썼다. 솔직히 사람들이 그 작품을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웃음) 작년에 중국에서 130만 부가 팔렸다. 매년 100만 부를 찍는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다른 나라에서도 사랑을 받고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늘 즐거운, 향락적인 것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비극을 읽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나.


구상이 다 끝난 것도 있고, 몇 년 더 구상이 필요한 이야기도 있다. 작품에도 발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설을 계속 쓰기 위해 일상에서 지키고 있는 자기만의 규칙이 있다면. 글쓰기 시간을 정해놓고 쓴다는 작가, 좋은 글을 수집한다는 작가, 명상을 한다는 작가,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사소하나마 지키려고 하는 규칙이 있는지 궁금하다.


없다. 소설 쓰기뿐 아니라 평소 생활에도 규칙이 없어서 문제가 많다.(웃음)

 

‘다른 사람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힘들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를 갖고 있으면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국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한국 독자는 나를 무척 가깝게 느끼고 계신 것 같다. 우호적인 느낌을 받는다. 거의 중국 독자가 나를 대하는 것만큼 호의적으로 대해준다. 감사하다는 말 외에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형제위화 저/최용만 역 | 푸른숲
이후 개혁개방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작품의 배경인 류진이라는 소읍(小邑)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다. 자신의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현 정부 청사 정문 앞에서 무기한 연좌 시위에 돌입한 이광두는 입에 풀칠이나 하기 위해 폐품 수집을 하다가 그 일을 기반으로 대형 사업체를 운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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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형제 1 #2 #사회 #용기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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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7.06.19

채널예스에서 위화 작가님 인터뷰 보니 반갑네요.. 역시 좋은 작가. 다 만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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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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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1983)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1988) 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1993)을 선보인 위화는 두 번째 장편소설 『인생』(1993)을 통해 작가로서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로 만든 『인생』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이는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 작품은 중국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매년 40만 부씩 판매되며 베스트셀러 순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1996)는 출간되자마자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았고, 이 작품으로 위화는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이후 중국 현대사회를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형제』(2005)와 『제7일』(2013)은 중국 사회에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전 세계 독자들에게는 중국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산문집으로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등이 있다. 1998 그린차네 카보우르 문학상 Premio Grinzane Cavour, 2002 제임스 조이스 문학상 James Joyce Foundation Award, 2004 프랑스 문화 훈장 Cheval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2004 반즈앤노블 신인작가상 Barnes & Noble Discovery Great New Writers Award, 2005 중화도서특별공로상 Special Book Award of China, 2008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 해외도서상 Prix Courrier International, 2014 주세페 아체르비 국제문학상 Giuseppe Acerbi International Literary Prize, 2017 이보 안드리치 문학상 The Grand Prize Ivo Andric, 2018 보타리 라테스 그린차네 문학상 Premio Bottari Lattes Grinzane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