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문장(노안 이후 비로소 보이는 문장)
당신이 음악 외길을 걸어간 것은 절대로 쓸모 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노래에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만들어낸 음악은 틀림없이 오래오래 남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곤란하지만, 아무튼 틀림없는 얘기에요. 마지막까지 꼭 그걸 믿어주세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142-143쪽
1.
퇴근을 하려는데 메일 한 통이 왔다.
보낸 이는 40대 초반으로 치과를 운영하며 두 아이의 아빠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육아에 관심이 많아 육아서도 두루두루 섭렵했고 어쩌다가 최근 당신의 칼럼도 읽게 됐다. 일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쌓이면 가족들이 다 잠든 후 혼자 술을 한잔씩 했는데, 어제 밤에는 군대에 또 가는 악몽을 꾸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당신의 책을 다 읽고 너무 공감이 돼서 메일을 보냈다.
황송하고 감사했지만 내 책에 대한 과분한 찬사보다 메일의 마지막을 읽고 소름이 오도독 돋아버렸다.
“사족으로 저랑 와이프의 신혼여행은 노매드를 통해 발리로 갔었습니다. 벌써 9년전에 시청 쪽 사무실에 가서 계약했는데, 시간이 빠르네요. 작가님의 이력을 보고 저랑 와이프도 깜짝 놀랬지요.“
9년 전에 내 회사에 찾아와 여행을 예약한 고객이 9년 후에는 내 칼럼과 책의 독자가 되어 나에게 메일을 보낸다. 세상은 참 좁고 죄 짓고 살면 안 된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예측불허의 만남과 그 만남으로 파생되는 또 다른 역사들의 집합체가 결국 인생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하니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2.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있는지 모르는 체 얽히고 설켜있다. 그리고 역시 자신들도 모르는 체 영향을 주고 받는다. 도움을 준 사람은 모르고 있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은 대박을 치고, 도움을 준 사람은 도둑이 되어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도움 받은 사람의 집을 터는 식이다.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폐가 안에서 세 명의 도둑은 현재를 살고, 그들에게 상담 편지를 쓰는 고민남녀들은 과거를 산다. 1980년에 사는 사람의 고민을 2002년의 사람이 상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미야 잡화점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공간이다.
도둑들은 이미 다 지나 온 시간이니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암에 걸린 애인을 두고 올림픽 대표가 되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여자에게, 어차피 모스크바 올림픽은 일본이 보이콧을 할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믿지 않을 테고 미친 사람 취급을 할 테니까. 돌려 말하지만 확신에 찬 상담의 힘은 막강하다.
고민자들의 인생이 바뀐다. 호스티스가 되려는 가난한 처자에게는 돈 버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부동산 열풍 불 테니 땅 사라, 언제부터는 거품 빠질 테니 모든 투자에서 손을 떼라, IT 산업이 뜰 테니 인터넷 사업을 하라. 여자는 부자된다. 읽으면서도 신난다. 나에게도 미래에서 누군가 이런 팁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군침 흘린다.
감동도 있다. 가업인 생선가게를 할 것이냐, 무명가수로 살 것이냐의 고민 편지를 손에 든 도둑들은 알고 있다. 고민자가 보육원 화재 현장에서 아이를 구하려다 죽게 된다는 것을. 아이의 누나가 유명한 가수가 되어 이 청년의 곡을 유명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러나 그것을 말하면 이제는 아이가 죽게 되니, 안타깝게도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당신이 만든 음악은 오래 간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것을 믿어라”.
3.
나이가 들수록 자신감은 떨어지고 불안감은 커진다. 일과 관련해, 내가 뿌리고 있는 씨앗들이 풍년의 수확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낙관보다는 어쩌면 그냥 다 땅 속에서 죽어버리거나 엄한 새들의 먹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비관이 더 크다. 허공에서 헛발질과 헛수고를 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나미야 잡화점처럼 누군가 미래에서 나타나 내 귀에 속삭여주면 좋겠다. “ 지금 하는 일은 잘 될거니 아무 걱정 말고 저 일은 그만해. 그리고 참고로 800회차 로또 번호는 말야…”
그러나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가 없다. 나미야와 현실의 공통점이라면, 모든 존재가 연결돼있고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 다는 점이다. 내가 오늘 뿌린 씨앗이 어떤 결실로 나에게 올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씨앗을 뿌리는 과정에서 내가 품는 마음과 하는 언행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후 어떤 모양으로,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어마하게 중요하다. 엔지니어에게 한 시간 명상 지도를 했는데, 그가 어느 날 스님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그런 생각하면 인생이 설렌다. 비행기에 내렸을 때,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를 짐작하지 못하는 여행자처럼, 인생의 여행자들은 앞으로 나의 삶이 어떤 풍경으로 펼쳐 질지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미야 잡화점의 도둑들이 미래를 말해준다고 해도 흔쾌히 오케이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설령 불안하고 불확실한 인생이라도 설렘을 뺏기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이것 저것 생각하지 말고 그저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자고 마음먹는다. 그렇게 가다 보면 9년 전 고객으로 만난 사람을 9년 후 독자로 만나는 것처럼, 매복해있던 신기한 일들이 뿅뿅 나타날 것이다. 삶의 의외성과 반전을 만난다는 것, 살아있는 자의 특권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특권 말이다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
ldj1999
2017.05.30
문재인 대통령의 포옹...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 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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