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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글 쓰는 게 너무 형편없습니다. 어떻게 글을 좀 더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왜 나한테 그런 걸 묻는지 모르겠지만 주제넘게 나서보자면 좀 더 쉽게 쓸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다. 있었다면 대번에 알았겠지. 하지만 그렇게 물어보는 형제자매님들에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세요”라는 식으로 표준전과스러운 대답을 들려주는 것도 마땅치 않아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작가들에 관해 이야기하곤 한다. 세계 문학사를 찬연히 수놓은 유명한 작가들도, 이렇다 할 족적 없이 골방에서 쓸쓸히 죽어간 무명의 작가들도 모두들 자신의 글쓰기 방법이랄까 노하우 같은 게 있었다. 해서 오늘은 그 노하우들을 모아 유형별로 분류해 보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 기준에 의한 것일 뿐이니까 너무 엄격하게 따지지는 말아주시길.
1.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만 쓴다는 완벽주의형
얼마 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컨택트>가 흥행하면서 원작소설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집필한 작가 테드 창도 화제가 되었다. 열두 살 때 아이작 아시모프와 아서 클라크의 소설을 읽으며 작가로의 꿈을 키운 그는 ‘바빌론의 탑’으로 역대 최연소 네뷸러 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SF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바 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셋, 이후로 20여 년간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함께 네 개의 네뷸러 상, 네 개의 휴고 상, 네 개의 로커스 상을 받았다. 흥미로운 건 그가 지금껏 쓴 작품이 중단편 15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작임에도 그는 SF계에서 내로라하는 상을 휩쓸고 독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어째서일까? 테드 창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창작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개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오랫동안 생각해 본 뒤 사색한 내용을 적는다.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알게 되기 전까진 글을 쓰지 않는다. 즉 쓰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만 쓰고 없을 때는 쓰지 않는 것이다.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극히 적다. 무언가를 쓰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하려는 것이고, 그 이야기 방식을 숙련되게 익히는 것이다.”
2. 남들이 안 쓰면 내가 쓴다는 독고다이형
세이초는 소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고 마흔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데뷔했으며 아쿠타가와 상(은 순문학을 지향하는 작가에게 수여된다) 수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런데 어쩌다 추리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데뷔하기 전부터 세이초는 “퍼즐 같은 유희로 전락”한 당시의 추리소설에 불만이 많았다. 그는 “유령의 집 가건물에서 사실주의가 있는 바깥으로 (이것을) 꺼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급기야 자급자족적 차원에서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계기가 된다. 이를 기점으로 일본에서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추리라는 장르가 “여성을 포함하여”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자연스럽게 ‘추리소설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에 대한 궁금증이나 ‘사회파 추리소설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세이초는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일종의 글쓰기론을 연재했는데 첫 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글쓰기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는, 다만 남들이 가는 길은 걷고 싶지 않았다.”
3. 애쓰지 않아도 가만히 기다리면 쓸 수 있다는 안빈낙도형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를 두었고 이혼으로 인해 어머니와 헤어져야 했던 레이먼드 챈들러는 어린 시절부터 일찌감치 생활전선으로 내몰렸다. 단적으로 말해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글쓰기에 큰 뜻을 품었을 리 만무하다. 그저 “돈을 벌 수 있겠다 싶은 생각에” 쓰기 시작했다. 이때 챈들러의 나이는 마흔넷이었다. 정황으로 볼 때 그가 소설을 쓰기 위한 문예창작적 노력을 한 뒤에 데뷔작을 썼을 것 같진 않다. 전부터 쭉 읽어오던 탐정 소설들을 보며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다’는 판단 하에, 물론 상금을 받겠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슥슥 써나갔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챈들러는 글쓰기에 관한 한 상대적으로 느긋하다고 할지 여유로웠는데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라는 에세이에 이렇게 적었다.
“중요한 건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꼭 글을 써야 할 필요는 없다. 내키지 않으면 굳이 애쓰지도 말아야 한다. 그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물구나무를 서거나 바닥에서 뒹굴어도 좋다. 다만 바람직하다 싶은 다른 어떤 일도 하면 안 된다. 글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잡지를 훑어보거나, 수표를 쓰는 것도 안 된다. 글을 쓰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말 것. 학교에서 규칙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 원칙이다. 학생들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하면 심심해서라도 무언가를 배우려 한다. 이게 효과가 있다. 아주 간단한 두 가지 규칙이다.”
4. 일단 많이 쓰는 것이 장땡이라는 다다익선형
벨기에의 소설가 조르주 심농은 글을 쓸 때면 ‘방해하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걸고 사무실 차양까지 내렸다. 미리 파이프 대여섯 개에 담배도 채워 두었다. 파이프에 담배를 채우기 위해 글쓰기를 멈추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글을 쓰기 전후로 프로 권투선수처럼 체중을 쟀다. 1989년에 세상을 뜰 때 그가 펴낸 책은 400권이 넘었다. 글쓰기 중독자 아이작 아시모프는 1분에 90단어씩, 하루 열두 시간 글을 썼다. 거의 휴가를 떠난 일도 없는 그는 슬럼프를 경험한 적이 없다고 한다. “살아갈 날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쩌시겠습니까?”라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타자기를 더 빨리 두드려야지.” 아시모프도 400권 이상의 책을 썼다. 스물일곱에 데뷔한 이후로 매년 두 권의 장편소설을 상재하며 “무엇을 써도 걸작을 만들어내는 터무니없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 미야베 미유키는 작가생활 20년 동안 딱 한 번 슬럼프를 겪었다고 한다.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단편소설을 하나씩 쓰다 보니 슬럼프가 사라져 버렸어요.”
이 외에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쓴다”는 요령부득형, “좋은 글을 주구장천 베낀다”는 문장복사형, “어떻게 쓸까가 아니라 어쨌든 쓴다는 자세를 늘 유지한다”는 막무가내형 등이 있다. 이런 사례들을 목도하고 있노라면 쓰는 둥 마는 둥 하며 ‘아아 잘 쓰고 싶다’고 바라는 건 욕심임을 깨닫게 되는데 어쨌거나 자신의 글이 형편없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스텐리 엘린 같은 천재작가도 하룻밤에 원고지 여섯 장 이상을 채우지 못했으며 그마저도 형편없다 생각한 대목을 삭제하고 나면 고작해야 세 장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의 뛰어난 점은 여섯 장을 썼다가 세 장으로 줄이는 작업을 매일매일 했다는 거다. 결국 이 ‘매일매일’이라는 대목이 중요한 게 아닐지.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