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표지의 작은 책 『언어의 온도』가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4주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언어의 온도』는 지난해 8월에 출간된 이기주 작가의 여덟 번째 책으로, 일상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를 담았다. 출간된 지 반 년이 지나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은 무척 이례적인 일.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서 많이 회자됐지만 SNS의 반응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은 흔치 않다. 예스24 독자들은 “무심한 듯한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책”, “따뜻한 남자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 “소소하게 읽기 좋은 책”이라고 『언어의 온도』를 평했다.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는 경제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현재 출판사 ‘말글터’ 대표로 일하고 있다. 『언어의 온도』는 출판사를 열면서 두 번째로 출간한 책. 활자 중독자를 자처하며 서점을 배회하는 일이 취미인 이기주 작가는 평소 쉽게 쓰기 위해 수없이 고민한다. 되도록 따뜻한 언어,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언어의 온도』는 이기주 작가가 지금까지 쓴 책 중에 가장 짧고 가볍지만, 가장 많은 독자와 통하고 있다. 출판 업무를 챙기느라 쉴 틈 없이 바쁜 이기주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글감에는 생명력이 있다
책이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실 것 같아요
제가 글을 쓰고 꾸준히 책을 펴낼 수 있는 건 온전히 독자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제 책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언어의 온도』가 많이 읽히면서 저도 분주해진 건 사실이지만, 분주할수록 제 삶의 본질에 집중하려 해요. 본질을 놓치면 모두 놓치게 되잖아요. 기둥이 뽑히면 건물이 폭삭 주저앉는 것과 같은 이치죠. 제 삶을 떠받치는 기둥은 ‘글’과 ‘책’입니다. 글을 쓰고 활자를 읽고 책과 관련된 일에 젖어 들고 거의 매일 서점을 드나들면서 하루 대부분을 보냅니다.
『언어의 온도』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는 버릇이 있는데요. 꽤 의미 있는 문장이 귓속으로 스며들 때가 있어요. ‘스며든다’는 표현보다 ‘들이닥친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듯한데요. 그러면 어로(漁撈)에 나갔다가 만선의 기쁨을 안고 귀항하는 어부처럼 괜스레 마음이 들뜨곤 해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차갑고 지저분한 말이 제 달팽이관을 난도질할 때도 더러 있어요. 그때마다 생각하죠. 언어에도 나름의 온도가 있구나.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르구나, 하고요. 이런 생각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다만 말과 글에 관한 정보를 단순히 나열하거나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요"라면서 독자의 손을 억지로 잡아당기긴 싫었습니다. 그저 제가 펼쳐놓은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독자 스스로 자신의 삶과 언어와 세계관에 대한 질문을 가슴에서 퍼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많은 분이 제 의도를 헤아려주신 것 같아요. 감사한 마음입니다.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를 잘 관찰하시는 것 같습니다. “엿듣고 기록하는 일을 즐긴다”고 하셨는데요. 글의 소재를 어떻게 발견하시나요?
글쓰기 좌우명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좌우봉원(左右逢原)’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겨서 간직하고 있는데요. 좌우에 있는 것을 취해 근원을 헤아린다 혹은 주변의 사건과 현상 모두가 학문 수양의 원천이 된다, 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어요. 글쓰기 소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굳이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지요. 세계적인 석학의 강연보다 부모가 들려주는 조언 한마디가 인생에 도움이 될 때가 있고, 신문의 경제면 기사보다 때로는 동네 편의점 사장님의 한마디가 훨씬 피부에 와 닿는 경우가 있어요.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글감에는 생명력이 있거든요. 그걸 눈과 귀로 채집해서 가슴으로 한참 들여다보곤 해요. 사람이든 현상이든 겉으로 대충 봐서는 몰라요. 유난히 호탕하게 웃는 사람은 남보다 많이 울어본 사람인지 모릅니다. 희맑아 보이는 사람일수록 남모를 슬픔의 밑바닥에 도달해서 밤새 베갯잇 적셔가며 꺼이꺼이 울어본 경험이 많더군요. 사람과 사물을 둘러싼 외피를 벗겨내고 속과 뼈대를 보려고 노력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육안(肉眼)이 아니라 심안(心眼), 그러니까 마음의 눈을 부릅떠야 하죠.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 않지만 말이죠.
에피소드로 시작해 단어의 어원, 유래를 소개하는 글이 많습니다. 평소 단어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글을 쓸 때, 단어 선택의 기준 같은 게 있을까요?
“너를 생각해”와 “너만 생각해”라는 문장은 비슷하면서도 느낌이 달라요. 한글은 점 하나, 조사 하나로 말맛과 의미가 달라지는 섬세한 언어입니다. 문장을 쓴다는 것은, 단어를 물감 삼아 지면과 화면을 채색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므로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우리말의 결과 무늬를 바지런히 공부하고 틈틈이 보듬어야죠. 언론인 생활을 마감하고 작가로 살아가기로 한 날, 제가 가장 먼저 한 일도 사전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탈탈 털어내는 일이었어요.
글쓰기는 '퇴적'과 '침식'을 동시에 당하는 영역입니다. 프랑스의 문호 기 드 모파상은 "흰 종이를 검은색으로 물들여야 한다"고 강조했죠.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 내공은 덩달아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퇴적된다고 할까요. 하지만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을 내려놓으면 쌓였던 내공이 어느새 깎이고 떨어져 나갑니다. 침식당하죠. 살다 보면, 공부는 끝이 없다는 뻔한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글쓰기가 꼭 그래요.
참, 저는 책을 출간하기 전에 어머니께 가장 먼저 보여드립니다. 제 책의 첫 번째 독자는 제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쉬운 말을 어렵게 비틀어서 쓰거나 현학적인 표현을 남발하지 않는 편인데요. 표현이 미려하고 문장의 하중(荷重)이 무겁다고 해서 무조건 깊이 있는 글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편하게 읽히면서도 중량감 있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죠. 머리를 물들이는 생각과 마음의 밑바닥에서 들끓는 감정을 장황하게 나열하기보다 간결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요. 단, 쉽게 쓰기 위해 수없이 고민해요.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4주째 1위입니다. 신간 도서가 아닌 책이 뒷심으로 1위를 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요. 저자로서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슬쩍 샛길로 빠져서 제 생각과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우리말에는 시옷으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 아름다운 단어가 많습니다. '사랑', '숨결', '숲'이 그렇죠. 특히 전 숲이라는 낱말을 발음할 때마다 숲을 걷고 있는 상상에 잠기곤 해요. "숲~"에선 바람 소리가 들려요. 거기에는 나무의 이파리와 이파리가 부대끼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배어 있어요. ‘숲’이라는 명사가 이러할진대 온갖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진짜 숲은 오죽할까요. 어쩌면 숲은 다리로 건너가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각과 청각 촉각 등 오감을 총동원해서 지나가야 하는 공간인지 모릅니다.
책이라는 숲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한 권의 책은 수십만 개의 활자로 이루어진 숲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자음과 모음으로 우거진 숲을 우사인 볼트처럼 쏜살같이 내달리기보다 최대한 느릿한 걸음으로 거닐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 바람과 진심이 전달됐는지, 『언어의 온도』라는 작은 숲을 자기만의 리듬으로 산책하는 분이 갈수록 늘고 있는 듯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언어의 온도』 ‘책 속 구절’이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독자나 리뷰가 있으신가요?
세월이 흐를수록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말이 늘어만 갑니다. 자꾸만 말을 삼키게 되죠. 다만 삼켜버린 말이 그냥 사라지거나 흩어지는 건 아닌 듯해요. 마음 한구석을 정처 없이 배회하는 느낌입니다. 숨이 붙어 있는 말이기에, 다시 밖으로 꺼내는 것도 가능할 테죠.
마음의 언저리에서 안쪽으로 욱여넣었던 언어를 슬며시 불러내서 차곡차곡 쌓으면 꽤 압축적인 문장이 됩니다. 그 문장을 조합해 문단을 구성한 다음 문단을 쌓아서 한편의 글을 축조하고 다시 그걸 책으로 엮을 수도 있습니다. 말을 아껴서 책을 만드는 셈이죠. 『언어의 온도』를 쓰면서 ‘그냥’의 함의에 대해 적은 글귀가 있어요. 이것도 위와 같은 발효와 숙성을 거쳐 태어난 문장입니다.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 이 문장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저와 감정의 주파수가 비슷한 분들이라고 할까요.
평소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언어의 온도』에 대한 리뷰를 자주 찾아보곤 하는데요. 몇몇 리뷰에서 "책 제목이 흰색이면 더 예쁠 텐데"하는 내용을 봤습니다. “제목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죠. 이후 독자들의 말씀이 제 마음의 비탈길에서 눈송이가 되었고, 또르르 굴러 내려가면서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났어요. 그래서 표지를 조금 수정했습니다. 제목을 은색에서 흰색으로 바꿨습니다.
책 판형이 작고 가볍고 예쁩니다. 책을 디자인할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으신지요?
오르한 파묵의 책을 읽다가 이런 글귀를 봤어요. '독서 무용론'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어퍼컷을 날리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당신 주머니나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는 것은, 특히 불행한 시기에,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다른 세계를 넣고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의 온도』를 가방에 넣고 다닐 만한 책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작고 가볍지만, 틈틈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었죠. 판형과 내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어요. 디자인 회사에 자문한 뒤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종이책의 아날로그적 물성(物性)을 살리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를 최대한 들어내기로 했죠. 덧셈이 아닌 뺄셈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제 선택과 포기에 도움을 주신 디자인 회사 관계자 여러분, 특히 박은영 대표님과 박가예 실장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요즘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이 베스트셀러의 이유를 찾기 위해, 작가님의 책을 사서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자이기도 하지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신데요. 출판인으로서 생각하는 베스트셀러의 조건이 있을까요? 또 좋은 책은 어떤 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전 아직 이런 질문에 감히 답할 수가 없습니다. 질문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럴 만한 깜냥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책도, 작가도, 서점도, 출판이라는 영역도 그리 간단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좋은 책은 '정서적 윤활유’를 제공한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하고 싶어요. 군 시절 전방 지역에 근무하면서 소나무를 우러러볼 때가 많았어요. 추위 속에서 제 색깔을 유지하는 게 신기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이유가 간단하더군요. 기온이 내려가면 소나무는 프롤린과 베타인이라는 물질을 스스로 분비한다고 해요. 일종의 자체 윤활유인 셈인데, 덕분에 한겨울에도 세포가 굳지 않고 초록빛을 유지할 수 있어요. 우리가 독서를 통해 얻는 깨달음도 일종의 정서적 윤활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독서의 효용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죠. 더 깊고 유연한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는 데 있습니다.
출간 후, 전국 일주를 하면서 주요 서점 탐방
경제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지금은 작가, 출판인으로 활동하고 계세요. 그간의 사회 경험이 출판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요.
토마스 매카시 감독의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면, 베테랑 기자들이 아동 성추행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기 위해 한 발 한 발 전진하며 취재 방향을 넓혀 나가요. 기자는 묻고 기록하는 사람이죠. 미심쩍은 사건과 현상 앞에서 송곳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취재하고 그걸 기록해야 해요.
기자가 수행하는 업무는, 송나라 시대의 문인 구양수가 글 잘 짓는 방법으로 꼽은 ‘삼다(三多)’와 일정 부분 맥이 닿아 있어요. 그 유명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죠. 읽고 쓰고 생각하는 행위를 반복해야 글쓰기 기초 체력을 기를 수 있다는 건데요. 언론인으로 살아가면서 위 세 가지를 꾸준히 실천했던 것 같아요. 그때 몸에 밴 습관이 글을 쓰고 책을 기획할 때 적잖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다만 저는 특정한 경험이 어떤 일을 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라고 도식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어차피 경험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잖아요. 남보다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나가는 게 삶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인생은 '자전거 타기'와 달라요. 자전거 타는 법은 한 번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됩니다. 오랜만에 안장에 앉더라도 페달에 발을 얹고 적당히 힘을 주기만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자전거를 밀고 나아갈 수 있어요. 내가, 아니 자전거가 땅을 밟기만 하면 정겨운 바람이 옆으로 따라붙고 길과 사람은 어느새 하나가 되죠. 그러나 자전거에서 내려오는 순간, 마음을 베이는 듯한 통증을 절감하며 서늘한 진리 하나를 깨닫게 되죠. 인생은 자전거 타는 법과 다르다는 것을, 아무리 피나는 훈련을 하고 수없이 넘어져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넘쳐난다는 것을. 그저 우리는 삶의 번민과 슬픔을 가슴 한편에 적당히 절여둔 채, 살아온 날들의 동력으로 페달을 굴리며 꾸역꾸역 전진하는 것뿐이죠. 저 역시 저만의 페달을 밟으면서 인생과 출판을 공부하고 있어요. 도착지 없는 여정일 거라고 생각해요. 평생 페달을 밟아 나가야죠.
출판사를 만들어 처음으로 펴낸 책이 『언어의 온도』입니다. 직접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혼자 글을 쓰고 교열하고 편집과 발행까지 하면서 진이 빠지는 일이 허다했어요. 책을 알리는 일도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밀려오는 어둠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어요. 우리는 어떤 일에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무언가 시도하지 않았거나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하잖아요. 밤새 뒤채였어요. 고민했어요. 결국 『언어의 온도』 를 출간한 후 혼자 전국 일주를 하면서 주요 서점을 탐방했어요. 총 넉 달이 걸렸어요.
책을 들고 서점을 찾는 일은 제게 일종의 순례(巡禮) 행위입니다. 제 책이 머무는 곳을 답사하면서 책의 운명을 가늠하기도 해요. 서점을 방문할 때마다 문학 분야 MD님들과 관계자 분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서점이라는 숭고한 공간에서 귓속으로 스며든 말들은, 그냥 흩어지지 않고 제 가슴에 눌러앉았어요. 정말 크고 깊은 도움이 됐어요.
전 여전히 활자의 힘을 믿어요. 책의 가치를 신뢰해요. 종이책의 낱장을 넘길 때 솟아나는 사각거림, 종이와 손이 맞닿을 때 전해지는 미묘한 감촉을 편애해요. 거기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리고 활자의 집합체인 책을 끌어안은 채 단어와 문장을 더듬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여전해요. 무엇보다 독자 분들의 관심과 응원이 제게 번져올 때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곤 했어요. 책과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무너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특별히 어떤 독자에게 『언어의 온도』 를 추천하고 싶으신지요?
잠시나마 삶의 공백(空白)이 필요한 분이 읽어주셨으면 해요. 세상이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해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이 낯설기까지 해요. 심지어 옳음과 그름의 기준도 시시각각 달라져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턱까지 오른 숨을 참아가며 뛰다 보니, 스스로 “타임 푸어(time poor)”라고 외치는 분들도 많아요. 다들 시간이 부족해요. 현실이 그래요.
다만 사람에 치이고 삶에 지칠수록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우린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어야 하는지 몰라요.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하죠.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다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그러니 가끔은 멈춰야 해요.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힘겨울수록,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삶이 버거울수록 우린 더욱 그래야 하는지 몰라요. 물론 각자의 방법으로요. 공백을 만드는 데 정해진 매뉴얼이나 법칙 같은 게 있을 리 없죠. 『언어의 온도』를 펼쳐 드는 순간, 누군가의 일상에 작은 여백이 생겼으면 해요. 제 책의 페이지를 넘기시면서 점심(點心), 그러니까 마음에 점 하나를 찍으셨으면 해요. 그러면서 잠시나마 삶을 돌아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두 가지만 꼽아주신다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도 늘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글쎄요. 전에는 '이런 문장을 써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문장이 ‘나’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쓰는 일' 못지않게 '사는 일'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잘 쓰기 전에 살아야죠. 우답(愚答)이군요.(웃음)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용기라고 생각해요.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과정은 글을 고치는 행위의 연속이죠. 작가라고 해서 무조건 일필휘지로 글을 써 내려가는 건 아닙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일수록 문장을 수정하는 데 공을 들이죠. 한마디로, 라이팅은 리라이팅(Writing is rewriting)이죠.
문제는 한 편의 글을 써 내려가는 여정에서, 다리가 꼬여 바닥을 뒹굴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죠. 아무리 머리털을 쥐어뜯어도 참신한 단어와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어요. 모니터가 매의 눈으로 째려보는 날이 있어요. 그런 날이면 들숨과 날숨보다 종일 한숨을 더 많이 토해내야 해요. 두려움 때문에 감히 펜을 들지 못하죠.
그러나 용기를 낸다는 것은 두려움을 완벽하게 이겨내는 게 아니라 그 농도를 묽게 희석하는 건지도 몰라요. 두려움을 완벽하게 지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걸요. 두려움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머리와 가슴을 채울 뿐이죠. 전에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눈에 들어온 글귀가 있어요. 최근에 YES24의 김도훈 MD님 덕분에 제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던 신영복 선생님의 문장을 다시 끄집어냈는데요. 이런 내용입니다.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글쓰기 감각과 능력을 키우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작은 용기로 큰 두려움을 연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약간의 용기를 내면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여백 위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어요. 안 가본 길에 들어선다고 해서 흔들릴 이유도 없습니다. 낯선 길로 들어서면 그때 비로소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올 테니까요.
후속작을 쓰고 계신지요?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최근 인문 분야 신간을 준비하고 있어요. 말과 사람에 대한 고민을 책으로 엮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건 독자 분들 덕분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해야 할 일도 명백해요. 독자 분들이 차분히 거닐기 좋은 ‘활자의 숲’을 제 방식으로 조성하는 것뿐입니다. 비옥한 땅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를 심고, 바람만 닿을 수 있는 벼랑 끝에는 동백꽃을 심고, 물이 없는 곳에는 맑은 계곡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까 해요.
부지런히 고민하고 옹골지게 준비할게요. 제가 만들어놓는 숲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도 괜찮습니다. 겨울을 견디며 봄의 꽃망울을 품어도 좋습니다. 후드득 지는 동백꽃 앞에서 시린 기억을 불러내 서럽게 울어도 괜찮아요. 앞으로도, 의미 있는 활자의 숲을 조성해 나갈게요. 산책하듯 거닐어주세요.
『언어의 온도』를 아끼는 독자 분들께 자유롭게 한 마디를 남기신다면요.
정말 자유롭게 얘기할게요. 얼마 전 집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연료 삼아 글을 써 내려가다가 노트북을 닫고 밖을 나섰어요. 봄 햇살을 온몸에 바르고 싶었어요. 봄바람의 흥얼거림을 듣고 싶었다고 할까요. 봄이잖아요.(웃음)
입구 쪽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불쑥 들여다봤는데요. 한 생애를 다 겪은 것 같은 메마른 얼굴 하나가 저를 쳐다보고 있더군요. 문득 '거울을 보는 행위'에 대해 생각했어요. 다들 매일 거울을 봐요. 옷매무시를 고치고 얼굴을 치장하기 위해서만 거울을 보는 게 아닐 테죠. 얼굴에 남아 있는 비극을 은연중에 지우고 싶어서, 아니면 얼굴에 남아 있는 희극을 더듬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마음에 거울을 응시하는 게 아닐까요. 자신을 돌보기 위해,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혹은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거울을 보는 건지도 몰라요.
인생은 친절하지 않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에게 슬픔과 좌절을 강요하죠. 다만 저는 삶이 버겁거나 제가 느끼는 죄책감이 비겁함으로 둔갑하려는 순간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들려준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대사를 나직하게 읊곤 해요. 그러면서 하릴없이 되뇝니다. “살면서 내가 진정으로 용서해야 하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나인지 몰라….” 인생을 살면서 우린 늘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나’를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해요.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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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이기주 저 | 말글터
『언어의 온도』는 저자가 일상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 그런 언어가 지닌 소중함과 절실함을 농밀하게 담아낸 책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문장과 문장에 호흡을 불어넣으며 적당히 뜨거운 음식을 먹듯 찬찬히 곱씹어 읽다 보면, 각자의 ‘언어 온도’를 되짚어볼 수 있을지 모른다.
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