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힘겨울수록 사람들은 판타지에 기댄다. 심리적 공허에 상상으로나마 위안과 같은 감정을 채워 넣고 싶어서일 게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물리적 시간 외에 또 하나의 마음속 시간이 존재한다. 엄태화 감독 같은 이는 이를 일러 <가려진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수린(신은수)은 외롭다. 엄마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고 새 아빠와 단둘이 섬으로 이사 왔다. 유체 이탈에 대한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지내는 수린에게 성민이 다가온다. 부모 잃고 보육원에서 자라 외로운 성민의 처지가 남 같지 않다. 수린은 성민과 둘만 알 수 있는 암호와 비밀 아지트를 공유하며 추억을 쌓아간다.
섬에서는 터널을 뚫는 공사가 한창이다. 발파가 이뤄지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섬이 흔들린다. 이에 호기심을 느낀 수린과 성민과 친구들은 발파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수린을 제외하면 모두가 사라진 상태다. 아이들이 실종되자 섬은 발칵 뒤집힌다. 그 와중 수린 앞에 서른은 돼 보이는 남자가 찾아와 자신이 성민(강동원)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는 지금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있다. 거리에서, 지하철역사에서, 물속에서 장소 불문하고 매일 같이 죄 없는 목숨이 사라지고 있다. 더 마음이 아픈 건 그 죽음 중 상당수가 꽃 같은 청춘이라는 데 있다. 그 때문인지,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검은 사제들> <곡성> 등 청춘이 사지로 내몰리고 부모들이 내 자식을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야기의 영화들이 부쩍 늘었다. 세월호 참사가 남긴 정신적 외상 탓이리라. 이런 종류의 작품을 일러 ‘세월호 영화’라고 한다.
<가려진 시간> 또한, ‘세월호 영화’다.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판타지 장르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성인이 되어 돌아온 성민은 그동안 ‘가려진 시간’에 갇혀 있었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수린과 함께 산에 있는 동안 공사장 발파가 이뤄졌고 그 여파인지 시간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또 하나의 시간대가 생겨났다는 것. 실종된 아이들은 그대로인 채 온 세상의 사람들과 사물들이 움직임을 멈췄다는 게 성민의 이야기다.
말도 안 돼, 수린은 성민이라 주장하는 이 남자를 이상하게 여기지만, 둘만 아는 암호를 근거로 내밀자 그제야 성민임을 인정한다. 여기서 암호의 실질적인 의미는 ‘공감’에 가깝다. <가려진 시간>에서 세상이 멈춘 시간은 4시 16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을 연상시킨다. 304명이 침몰하는 뱃속에서 수장 당했고 그 중 상당수가 학생이었다. 이후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세월호는 어떻게 침몰했는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대체 무엇을 했는지, 에 대해서는 속 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다.
살아 있었다면 지나간 시간만큼 더 성장했을 희생자들. 그들은 대체 어떤 모습으로 자랐을까. 여전히 그날의 참사가 믿어지지 않는 이들은 마음속 시계를 4월 16일에 맞춰두고 ‘만약에’를 상정해 지금을 상상하며 짧은 시간이나마 지옥 같은 현실을 탈출하려고 애를 쓴다. 물리적 시간은 흘러도 심리적 시간은 흐른 것이 아니요,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삶. ‘가려진 시간’을 살아간다는 건 어떤 상태일까. 할리우드의 판타지였다면 선한 존재가 마법으로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겠지만, 여기는 한국, 선과 상식과 도덕이 무너진 아수라의 세계다.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바라는 그 날과 혼자 나이 먹어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각각 시(時)와 분(分) 삼아 시간의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건 외로운 싸움이다. 그럴 때일수록 손 내밀어 주는 이의 존재가 절실하다. 수린과 성민에게는 서로서로 믿어주는 유일한 동반자다. 이들이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면 할수록 주변의 반응은 싸늘하다. 수린의 아빠는 수린을 방에 가둬두고 공권력은 성민을 아이들 실종의 주범으로 몰아간다. 조건을 따져 믿음의 여부를 결정하는 기득권자에게 수린과 성민이 보여주는 조건 없는 믿음이야말로 풀기 어려운 암호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혼탁해진 이유는 믿음이 암호 수준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존재는 사회의 건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시계다. 아이와 청춘이 부재한 채 흘러가는 한국의 시간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시간’(<가려진 시간>의 영문 제목은 ‘Vanishing Time’이다!)의 시침과 분침이 하나로 만나게 될 꼭짓점은 다름 아닌 절망이다. 절망의 시간을 희망으로 되돌려 놓는 데 필요한 건 믿음, 고통에 빠진 이들에게 조건 없이 손 내밀 수 있는 공감의 감정이다.
경찰과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면서도 성민이 희망을 잃지 않는 건 수린이 곁에 있어서다. “너만, 나를 믿어주면 돼” 이 문장 속 ‘너’의 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판타지에 의지하는 시간도 결국에는 현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림_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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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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