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에는 원초성과 직관성이 다분하다. 콘셉트 앨범과 연작 형식에서 벗어남에 따라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이해는 이제 필요치 않게 됐다. 그래서 음반은 단순하다. 큰 주제나 이야기가 없기에 개개의 노래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결코 다른 트랙의 러닝 타임을 침범하지 않는다. 고전적인 펑크 스타일과 그린 데이 특유의 팝펑크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3,4분 짜리 곡들이 가득할 뿐이다. 「Jesus of suburbia」을 연상시키는, 세 곡을 이어 붙인 미니 오페라 「Forever now」가
물론 누군가는 이 반항아들, 무법자들, 바보들, 멍청이들이 써내는 서사시와 멜로드라마를 기대했으리라. 탄탄한 연출과 아름다운 스토리, 날선 조롱과 재미있는 유머, 날카로운 펑크 사운드와 캐치한 멜로디가 섞인 명작의 연속을 계속 마주하고 싶었을 테다. 그러나 이 단편의 펑크 앨범 역시 충분히 괜찮다. 좋은 곡들이 가득하다는 데에 한 차례 장점이 실리고 그린 데이의 스타일이 잘 살아있다는 데에 또 한 차례 장점이 실린다.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어올리는 「Revolution Radio」와 이 땅의 모든 세인트 지미들을 위한 낭만주의적 헌사 「Outlaws」, 주변에 아낌없이 조소를 날리는 「Bang bang」, 그린 데이 특유의 사운드에 앤섬 식 코러스 구성을 더한 「Say goodbye」, 펑크의 전형을 그대로 담아낸 「Too dumb to die」 등이 여실히 증명한다. 이들의 멋이 날카롭고 까칠하며 간단하고 직선적인 면모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멋진 앨범이다. 그린 데이의 다음 페이지를 장식함에 있어 결코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자신들의 사운드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계속해서 멋진 노래들을 만들어내고, 지난 결과물들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을 이끌어냈다. 「Revolution radio」와 「Bang bang」 같이 골든 레퍼토리에 들어갈 만한 곡들도 음반에 놓여 있으니 작품의 가치는 실로 상당하다. 여기에 대단한 혁신이나 실험과 같은 변화는 없다. 하지만 그린 데이는 그 단순함으로 위대한 밴드의 반열에 올라서지 않았던가. 이들의 매력이 잘 나타나는 작품이다.
이수호 (howard19@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