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기 “인간은 선한 존재, 사회는 진보해나간다”
철학자라는 사람들은 그 일을 해온 거거든요. 자기가 당면했던 문제에 대해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내려고 노력을 해온 거예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 시대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철학을 공부하는 가장 큰 의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글ㆍ사진 신연선
201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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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철학자의 결론은 행복으로 연결될 겁니다.”


『한국 철학 콘서트』, 『고전의 시작』(전 4권, 공저) 등의 책을 써 고전과 철학에서 시대정신을 읽어온 『철학자의 조언』의 저자 홍승기는 다름 아닌 ‘행복’을 철학의 키워드로 삼았다.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스피노자의 ‘행복을 찾기 위해 철학하라’는 말을 인용했다. 철학과 행복. 이 대목에서 철학이 옷을 벗는다. 인간 존재나 정의, 국가론과 통치자의 덕목이라는 허울 좋은 옷을 벗고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무엇이 행복이냐, 어떻게 선(善)에 이를 수 있느냐, 이 질문에서 철학은 시작한다.


『철학자의 조언』에는 동서양과 시대를 뛰어넘는 ‘인류의 자산’이 응축되어 있다. 실존, 수신, 행복, 정의, 시민, 통치, 아웃사이더와 철학과 과학, 종교 철학이라는 아홉 개의 주제 안에서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담았다. “쓰는 과정이 공부하는 과정”이었다는 저자답게 아홉 개의 주제 역시 공부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철학자들의 공통된 언어였다. 저자를 따라가 보면 어렵게 느껴지던 철학자가 친절한 미소를 품고 손 내미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안에서 세상 속 나의 위치를 발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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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기 위해 철학하라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입니다. 니체, 에리히 프롬, 공자, 원효 등 동서양의 철학자들을 두루 다루었고요. 책을 쓰면서 가장 고민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철학자들의 주장을 얼마나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이게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플라톤의 『국가』는 이 책보다 더 두껍습니다.(웃음) 여기서 저는 플라톤의 고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 것이죠. 역사적 접근을 한 건데요. 보통 철학자를 볼 때 그가 산 시대는 안 보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는 그 시대에도 고민이 있었고 플라톤은 그것을 해결하고자 책을 쓴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거기서부터 플라톤의 사상이나 주장을 보기 시작한 거죠. 고대 아테나라는 곳은 인구 10만 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그 중 정치에 참여하는 자유민은 15,000명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도시국가였죠. 이곳을 이상적인 국가로 만들려던 게 플라톤의 고민이었던 거예요. 또 플라톤이 죽고 9년 후에 아테네가 망하거든요. 당시 아테네는 쇄락해가고 있었죠. 이곳을 다시 부흥시킬 방법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당연히 플라톤의 고민이었을 거고, 그래서 플라톤은 통치자의 문제를 두고 고민합니다. 통치자의 역할이 절대적인 시대였으니까요. 결론적으로 플라톤을 다룬 부분은 국가 통치자에 초점을 맞춰 통치자가 무엇을 하게 하려고 했는가를 본 거예요. 그렇게 ‘정의’라는 주제가 나왔고요. 이런 식으로 시대 상황을 통해 철학자의 사상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 했어요. 


실존, 행복, 정의, 통치, 심지어는 종교나 과학까지 다양한 주제 안에서 철학자를 다뤘거든요. 그렇다면 이러한 주제들은 자연스럽게 분류가 되었던 건가요?


그렇죠, 처음부터 주제를 구분한 건 아니었어요. 제게 쓰는 과정이 공부하는 과정이었거든요. 때문에 써가다 보니까 어떤 공통점들이 보였던 거예요. 진행하면서 분류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모두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특별히 가장 관심 갖고 계신 주제가 있나요?


행복입니다. 저는 수많은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행복을 하나의 소주제로 두었지만 책에 다룬 모든 철학자의 결론은 행복으로 연결될 겁니다. 특히 행복을 많이 생각한 이유가 있는데요. 오늘날 누구나 행복을 꿈꾸지만 과연 무엇이 행복인가를 따진다면 의견이 많이 갈리는 것 같아요. 많은 경우에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행복이라 생각하고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많이 노력하는데요. 스피노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하다가 안 되면 어떻게 되느냐, 더 불행해진다는 거예요. 스피노자는 행복을 찾기 위해 철학하라고 말해요.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에도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고요. 때문에 행복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몇몇 철학자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겠느냐고 할 때 에피쿠로스 같은 사람은 인간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의 정체를 알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거든요. 고대 아테네 사람인 에피쿠로스는 인간을 가장 불행하게 하는 것이 신과 죽음이라고 생각했어요. 신과 죽음의 실체를 밝혀낼 수만 있다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죠. 신과 죽음이 살아있는 인간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가르침으로써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교육한 사람입니다. 이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해요. 특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행복이 단지 어떤 정신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아요. 주변을 둘러싼 세상과 자기를 불안케 하는 것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행복이 가능하다는 가르침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르트르가 절망이라는 개념을 통해 강조하는 바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언가를 꼭 희망해야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경구를 상기시킨다.(중략) 1등을 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달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란 자신의 행위 전체, 그리고 자신의 삶과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좋은 일이 있든 나쁜 일을 겪든 삶 자체를 누리는 것이 인간이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누리는 것이 선(善)이다.(61쪽)

 

인간 소외와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모습을 드러내는 지금 같은 때에는 책에서 다룬 철학자들의 가르침이 유효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특히 사르트르의 철학은 그대로 현대인에게 전해도 좋을 내용들이었거든요.

 
인간 소외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요. 인간 소외란 거창하게 자본주의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학생들의 경우 취업 준비, 스펙 경쟁이라는 문제가 있고요. 직장인들의 경우 승진, 자기계발 같은 문제가 있죠. 그런데 스펙 경쟁과 자기계발이 자기를 위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회 혹은 집단이 요구하는 것을 따라가는 거거든요. 내가 원하고 좋아서라기보다 집단이나 사회적 욕구를 따라가는 것, 그게 인간 소외고 비주체적인 삶이죠. 그런 측면에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자답게 자기를 중시하고 있어요. 인간은 유일하게 자기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는데요. 자기 선택을 통해 다양한 문제들을 스스로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려주거든요. 때문에 사르트르는 이 시대까지 대단히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외에도 에리히 프롬은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을 참 정확히 그려내고 있어요. 프롬은 우리가 소유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요. 공부할 때, 연애할 때까지도 소유적인 거죠.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삶의 모습인데요. 그걸 넘어서는 존재적인 삶을 살라는 가르침을 주는 게 에리히 프롬이에요. 주변과의 관계,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요. 그런 점에서 에리히 프롬도 굉장히 중요한 조언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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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일을 하는 시대


시대적 맥락에서 철학자의 사상을 이해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시대적인 면을 파악하고 책으로 들어갔을 때 훨씬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1장 ‘왜 인간인가’를 열면서는 ‘기본소득’을 이야기하셨는데요.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미래에 대한 여러 전망이 있는데요. 부정적이냐 낙관적이나에 관계없이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 인공지능의 발달이라는 부분이거든요. 불가피한 현상일 텐데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라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하지만 인간의 일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죠.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결국에는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이때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인간에게 불행이 되겠죠. 인공지능 발달로 인간이 먹고 사는 노동에서 벗어날수록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이 필요해지는 거죠. 그것이 기본소득이라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투표가 부결돼 화제가 됐는데요. 그건 일시적인 현상이지 몇 년 내에는 현실화될 것으로 봅니다. 이런 시도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이고요.


이런 측면에 주목하는 것은 그렇다면 그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에요. 이제 놀고먹게 됐으니 그냥 놀다 갈 것인지, 아니면 무엇을 할 것인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왔어요. 인간은 인간다운 일들을 해야 하는 그런 시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본소득을 이야기한 것은, 그러한 때를 맞이하면서 오히려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에 대한 생각을 시작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언급한 겁니다.

 

‘인간다운 일들을 해야 하는 시대’라는 방금 말씀은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는 의미일까요? 철학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이 많은 부분 방향을 달리하게 되잖아요. 여러 대목에서 선생님은 인간이 선하다는 생각에 동의하시는 것 같기도 한데요. 

 
기본적으로 성선(性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선에 반대되는 성악(性惡)이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보는 거거든요. 유럽에서도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본 건 근대 사회 이후예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잖습니까. 사실 근대 사회가 나타난 건 얼마 안 됐죠. 긴 역사에서 볼 때 인간은 선한 존재라고 생각하고요. 인간은 선하기 때문에 사회가 진보해 나간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바람직한 삶을 살고 싶어 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원하거든요. 계속해서 보다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을 사회 진보라고 한다면 인간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봐요. 그런 맥락에서 인공지능의 발달 또한 사회의 진보 속에 위치해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최소한 그런 정도의 인간의 양식과 양심을 믿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저는 인공지능의 출현을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지는 않아요. 

 

비관적인 세계관이 워낙 만연한 때라 새롭게 들리기도 해요.


비관론을 가지고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해요. 주변의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비판적으로 보는 건 옳다고 보지만 비관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도 안 되겠죠. 그러나 미래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역사만 봐도 그래요. 1900년대만 해도 갑자기 식민지가 됐다가 해방이 되고 장기집권과 쿠데타, 그리고 민주화의 과정을 겪었잖아요. 그러다 지금까지 온 거고요. 이렇듯 사회는 계속 변화하는 거죠. 짧게 보면 사회가 진보하고 있나, 하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한 세대 정도의 시선으로만 사회를 봐도 세상은 바뀌고 있음을 알게 돼요. 지금까지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왔다고 생각하고요. 때문에 단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비관적인 전망을 할 필요는 없죠.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는 이유가 바로 그런 부분들이에요.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해봐야 하고, 그러다보면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을 거예요. 철학자라는 사람들은 그 일을 해온 거거든요. 자기가 당면했던 문제에 대해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내려고 노력을 해온 거예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 시대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철학을 공부하는 가장 큰 의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다면, 지금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답을 제시하고자 하세요?


가장 중요한 건 누구나가 삶을 누리는 존재라는, 아주 쉬우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억압이 있어서는 안 돼요. 차별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평등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봐야죠. 이런 부분이 너무 쉽게 간과되고 있거든요. 가령 주차 요원의 삶 역시 그가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갑질’을 하겠어요. 범죄도 그렇고요. 서로의 삶을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는 태도, 이런 시각에 의해 오늘날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내가 삶을 누리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그 누구도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해야죠. 또한 이것은 인간 사회에 한한 것이 아니에요.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동식물까지 삶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이 지금처럼 횡포를 부리지 않을 거예요.


이러한 개념은 유럽으로 치면 계몽주의 시대의 볼테르, 디드로,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 후기의 홍대용이나 박지원 같은 분들에 의해 시작된 거거든요. 차등적인 세계관에서 평등적 세계관으로 넘어가는 거죠. 근대 이념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이잖아요.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지금 새삼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 됐어요. 최근 이야기되는 여성 이슈도 그런 것이거든요. 서로 동등한 존재로 대하고 이해하지 않는 것에서 발생하는 문제예요. 분명 법적으로, 제도적으로는 평등을 추구하는 시대가 왔는데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직 인식, 사유가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평등적 세계관이 정착되어 나가면서 사회는 한 발 더 진보해 나가리라고 봅니다.

 

제도 정착과 사유 정착 사이의 불일치가 만든 문제란 말씀이네요.


사회과학적으로 보면 지배적 집단에 의한 기득권 유지, 이런 것과 연관이 있겠죠. 사회적으로는 평등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제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권력 관계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요. 이런 부분이 여전히 평등적 사회를 가로 막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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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사유와 실천, 그러니까 지행합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가령 하이데거 같은 경우가 그렇잖아요.


제일 어려운 문제죠.(웃음) 아는 만큼 실천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사회가 될 겁니다. 지행합일은 그 옛날 소크라테스, 공자도 말씀하셨거든요. 아는 걸 실천하라고 많은 철학자가 얘기했는데요. 기본적인 삶의 도리가 무엇인지 우리는 너무 잘 알잖아요. 아는데, 그걸 실천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다만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한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의 지행합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고요. 하이데거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죠. 유럽에서 가장 주목 받는 철학자였고, 당시 그의 제자들이 이후 철학계를 주도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나치 정권이 주목할 만했던 거죠. 그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어서 알 수 없지만요. 어쨌든 그의 판단이 일신의 문제 쪽으로 갔다는 사실이 아쉬움을 많이 남겨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지도층일수록 지와 행을 합치시키는 노력이 특히 필요한 거죠. 그것을 우리의 시선으로 본다면 지행합일을 위해 노력해온 사람을 지도자로 만들면서 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고요.

 

갑자기 청문회 생각이 나네요.(웃음)


그 위치에 갈 줄 몰라서 그런 고려 없는 삶을 살아온 게 아닌가 생각해요.(웃음) 그렇다면 포기해야죠. 자기 욕심이거든요. 그 욕심을 못 버려서 역사에 기록되는 망신을 당하는 거죠. 플라톤이 통치자의 정의, 올바름이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그런 면에 부끄러움이 많다면 스스로 하지 않는 자세가 있어야죠. 에리히 프롬 식으로 얘기하면 참, 지나치게 소유적인 사람들인 거예요. 안타까운 일이에요.

 

모두 현재적 의미가 있는, 생명력을 가진 철학자들인데요. 이들 중 가장 매료된 철학자를 꼽는다면 누구인가요?


스피노자인데요. 삶이 참 어려웠던 사람이에요. 교회에서 파문을 당하고, 고립되어 살죠. 다락방에서 평생을 생활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사람이 스피노자예요. 철학 자체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그의 삶 자체에도 본받을 점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삶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나갔다는 것이 의미 있죠.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위대함이 보인다는 차원에서 스피노자를 꼽을 수 있어요.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역시 행복이네요. 


네,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단 며칠만이라도 행복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매년 3월 22일이 UN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입니다. 이날이 되면 각 국가의 행복지수를 발표하는데요. 결과는 안 봐도.(웃음) 우리는 130여 개국 중 하위권에 해당되죠. 행복감을 못 느낀다는 거예요. 그런데 보면 참 열심히들 살거든요. 불행하고, 비관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위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사람들의 불행감을 더 크게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고요. 개인 차원에서는 이런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거예요. 그것이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일 거예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답을 찾길 바라시나요?


다른 철학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삶입니다.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결국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요. 이 책을 읽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저로서는 대만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책을 쓴 이유도 그것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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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계속 전할 예정인가요?


제가 전문적인 철학자는 아니니까요. 철학자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옛날로 치면 마당쇠 역할을 한 겁니다.(웃음) 이 책으로 손님을 모셨으니까 이 문을 열고 들어오신 분들은 이제 주인을 직접 만나시면 됩니다. 플라톤을 직접 만나고, 공자를 직접 만나면 되겠죠. 저는 또 다른 분들의 말을 전하려고 해요. 다음에는 역사철학서를 집필하려고 구상하고 있어요.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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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조언 홍승기 저 | 생각정원
이 책은 현대인들이 삶에서 부딪힐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전해준다. 그리고 철학자들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철학을 했으며 그들의 철학이 우리가 품은 삶의 질문에 어떤 답을 주는지 보여주기 위해 철학 탄생의 맥락을 자세히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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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