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지상파로 한정해서 보면 토크쇼라는 장르는 점점 쇠락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 2012년 12월엔 8년의 역사를 쓰고 있던 MBC <놀러와>가 시청률 저조를 이유로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나누지도 못한 채 폐지됐고, 그 자리에 편성된 <토크클럽 배우들> 또한 두 달을 채 못 채우고 폐지됐다. 2013년 1월엔 KBS <승승장구>가 종영했고, 그 자리에 들어온 <달빛 프린스> 또한 2달을 채우지 못하고 폐지됐다. 2013년 2월엔 SBS <강심장>이 막을 내리고 그 자리를 <화신 - 마음을 지배하는 자>가 대체했지만 이 또한 8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동년 8월엔 잠정 종영과 재편성, 개편을 거치며 부활을 꾀하던 MBC <무릎팍도사>가 폐지됐고, 그 자리를 <스토리쇼 화수분>으로 대체했으나 한달을 간신히 넘기고 폐지됐다. 여전히 월요일에 SBS <힐링캠프>, 수요일에 MBC <라디오스타>, 목요일에 KBS <해피투게더>, SBS <자기야>, 토요일 밤 MBC <세바퀴>라는 라인업이 건재했다 해도, 지상파 방송 3사 모두 간판 토크쇼 프로그램들을 한두 개씩 잃고 그 자리를 대체하려던 시도도 무산된 것은 다분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2012년 말부터 2013년까지 폐지된 지상파의 간판 토크쇼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MBC <놀러와>, KBS <승승장구>, MBC <무릎팍도사>, SBS <강심장>.
물론 각각의 프로그램들이 폐지되고 새로운 시도들이 실패를 거둔 건 저마다 다른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였으나, 전반적인 토크쇼 장르의 부진은 보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남겼다. 대중은 더 이상 스타가 살아온 삶의 궤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1인 토크쇼에 예전만큼 큰 관심이 없었고, <놀러와>가 원천기술로 보유하고 있던 기획 섭외(특정 이슈나 콘셉트에 맞춰 공통점을 공유하는 게스트들을 섭외하는 방식)는 다른 토크쇼들이 흉내 낼 수 있게 되며 그 빛이 바랬다. <강심장>과 <세바퀴>가 연 ‘떼토크’라는 장르는 여전히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MBN <황금알>, <엄지의 제왕> 등의 프로그램으로 그 명맥을 이어갔으나, 토크 쇼라기보단 인포테인먼트 쇼에 가까운 형태로 모양새가 바뀌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대중의 인식 속에서 아직 종합편성채널은 영향력 면에서나 질적 완성도 면에서 지상파에 미치지 못하는 채널쯤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보수 시청자층을 노린 뉴스 쇼들과 과거 제작했던 드라마나 예능 재방송 등으로 낮 시간대를 가득 채운 편성은 어딜 봐도 진지한 채널로 대우해 주기 애매한 모양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토크쇼의 불황기 한가운데
정치 토크쇼를 선보이다
하지만 JTBC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다른 종편 채널들과 차별화를 해 제4의 지상파 반열에 들고 싶어했던 JTBC 입장에선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다른 종편 채널들과는 다르게, 떼토크를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접근과는 다르게, 똑 같은 토크쇼를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한계를 조금 벗어난 것으로. JTBC라고 <닥터의 승부>나 <유자식 상팔자>처럼 여타 다른 종편 채널들과 비슷한 종류의 인포테인먼트 떼토크쇼들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중장년층 시청자들이 아니라 콘텐츠의 입소문을 내고 구매력을 발휘하는 데 가장 중요한 블록인 2049(20대에서 40대를 일컫는 말) 시청자들을 잡을 만한 것이 필요했다. 2013년 2월, JTBC의 야심작 <썰전>이 방영을 시작했다. 방영시간대는 강호동과 유재석이 각각 <무릎팍도사>와 <해피투게더>로 버티고 있던 목요일 밤 11시대, 주제는 여타 종편 채널들이 자주 하던 정치 토크가 주였으며 MC는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김구라였다. 패널로 초빙된 이철희 당시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대중에게 익숙한 얼굴이 아니었고, 강용석은 tvN <화성인 바이러스>와 <강용석의 고소한 19> 등을 통해 방송인으로의 업종 전환을 꾀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비호감이었다. 과연 이게 가능한 싸움이었을까?
<썰전> 제작발표회. 이 때만 하더라도 이 프로그램이 순항하게 될 것이라고 쉽게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썰전> ⓒJTBC. 2013~
놀랍게도, 그게 먹히기 시작했다. <썰전>은 종편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정치 뉴스쇼라는 장르를 가져오면서도 나름대로 정파적인 균형을 잡기 위한 안배를 했다. 각각 친노와 친이 계파로 분류되는 이철희와 강용석은 주요 비판의 대상인 박근혜 정부와 친박에 대한 비판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고, 각자(당시)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실책에 대해 비교적 흔쾌히 인정하고 함께 비판하는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보여줬다. 더구나 과거 MBC <명랑 히어로> 등을 통해 시사와 정치에 대한 토크를 나눈 적이 있었던 김구라는 민감한 주제가 오가는 토크쇼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중재했다. 특정 진영의 ‘정치평론가’들을 데려와 허위 주장과 비아냥으로 일관하던 종편 뉴스 쇼에 염증을 느끼던 젊은 시청자들의 눈에는, 어느 정도 진영논리를 극복하고 양자의 의견을 기계적 균형으로나마 맞췄던 <썰전>은 굉장히 새로운 종류의 쇼로 보였던 것이다. 익숙한 정치 토크로 기존의 시청자층을 잡으면서 공정성을 담보해 젊은 시청자층을 끌어들이고,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필요하다면 피하지 않는 시도. <썰전>은 1~2%대의 시청률을 가지고도 강력한 인지도와 화제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정치를 이야기할 때 진보와 보수의 입장을 모두 살펴본다는 간단한 원칙을 세우자, <썰전>은 종편 채널의 정치색에 질려 있던 2049 시청자층에게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썰전> ⓒJTBC. 2013~
남들보다 반 발짝만 앞으로,
남들보다 반 발짝 더 공정하게
JTBC가 <썰전>을 통해 시도했던 것이 대단히 새롭거나 혁신적인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아주 살짝, 반 발짝만 금기를 넘어가는 시도였을 뿐이다. 예능이 정치를 다루려다가 실패했던 수많은 시도들 - MBC <명랑 히어로>, tvN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 등 - 에서 반 발짝만, 지상파에서 나눌 수 있는 정치 담론의 이야기보다 반 발짝만 앞으로, 그리고 기존 종편 채널을 수놓던 보수 일변의 색채에서 반 발짝 더 가운데로. 하지만 그렇게 금기를 넘음으로써 프론티어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남들이 미처 가보지 못한 영역을 선점하되, 너무 앞서가진 않음으로써 시청자들의 안도감을 자극하지 않고 안전하게 자리잡는 계산은 그 이후 JTBC의 스테이션 칼라를 결정하는 한 수였다. 흔히 지금의 JTBC의 색깔이 구축되기 시작한 시점을 손석희 보도, 시사, 교양 총괄 사장의 부임 이후로 잡는 이들이 많지만, 적어도 ‘다채로운 즐거움’이란 JTBC의 슬로건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한 것은 <썰전> 이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썰전>이야말로 ‘보수 신문사가 변칙적으로 만든 보수 일색의 채널’이란 이미지를 탈피해 한국 사회 양쪽 진영의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시도였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JTBC의 실험은 한동안 계속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상댕
2016.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