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꿍 최영대』,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등 많은 동화로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온 채인선 작가와 어린이들이 만났다. 예스24 어린이 글쓰기 특강 세 번째 순서였다. 지난 8월 24일 수요일 오후 4시, 마포구립서강도서관에서 진행된 특강은 채인선 작가의 책 『글쓰기 처방전』을 바탕으로 어린이들이 직접 주제에 맞는 글을 써보고 발표하며 글쓰기에 자신감을 키우는 시간이었다. 『글쓰기 처방전』은 매일 다른 주제로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약 40여 명의 어린이들이 참석한 이날 특강은 어린이들의 창의적인 글과 글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글씨는 나의 얼굴, 글의 내용은 나의 마음
채인선 작가는 가장 먼저 글을 왜 써야하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핵심은 ‘발자취’였다.
“우리가 글을 써놓지 않으면 다 없어져요. 여러분, 바닷가 모래사장에 가면 발자국이 찍히죠? 그것처럼 태어나서 지금까지 찍힌 발자국들이 있는 거거든요. 그냥 생활만 하고 전혀 글을 안 쓰는 건 발자국이 지워지는 거랑 똑같아요. 기억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요. 도서관에 책들이 굉장히 많이 있죠? 그 책을 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쓴 책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는 거죠. 글쓰기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보세요.”
이어 글쓰기가 곧바로 시작되었다. 첫 번째 글쓰기는 재미있는 글쓰기였다. 횡설수설 시를 써보기로 했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로 시작하는 가능한 한 말도 안 되는 시를 쓰는 것이다. 생각을 확 뒤집어버려야 한다, 글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고 말하는 채인선 작가의 말처럼 횡설수설 시 쓰기는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아주 훌륭한 장치였다.
어린이들이 글을 쓰는 동안 채인선 작가는 “글씨는 나의 얼굴, 글의 내용은 나의 마음”이라는 문구를 칠판에 적었다.
“여러분 자기 얼굴 한 번 만져보세요. 예쁘고 잘생겼죠? 이 얼굴은 엄마랑 아빠가 만들어준 거죠. 여러분 공책에 쓰고 있는 글씨는 자기가 만든 자기 얼굴이거든요. 그 얼굴은 처음부터 예뻐지지 않아요. 쓰면 쓸수록 예뻐져요. 글씨는 내가 만드는 나의 얼굴이라는 걸 여러분이 꼭 기억해두길 바라요. 또 우리가 자기 마음을 숨기려고 해도 글을 쓰다보면 마음이 글에 담기거든요. 그래서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사람인지, 뭘 하고 싶었는지 알게 되는 점이 있어요. 이걸 기억하면서 써보세요.”
집이 거꾸로 세워져있어 / 들어갔더니 다시 세워졌어 / 그런 줄 알았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도 거꾸로 되어 있는 거야
-김주원 어린이의 글 일부
점심은 개구리 지렁이 파스타인 거야 / 그래서 그냥 그걸 먹어버렸지
-박보빈 어린이의 글 일부
두 번째 글쓰기는 계절에 관한 글쓰기였다. 어린이들이 여름과 가을을 어떻게 느끼는지 들을 수 있는 흥미로운 순서였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오는 계절에 이런 글쓰기를 해봄으로써 계절을 더 적극적으로 느낄 수 있을 터였다. 채인선 작가는 어린이들에게 자신이 겪은 여름과 가을을 떠올리면서 써보라고 조언했다.
“글쓰기는 모두 백점이에요. 수학은 정답이 있어서 틀릴 수 있지만 글쓰기는 모두 정답이에요. 머릿속을 막 뒤적거려 보세요. 글 쓰는 게 왜 좋을까요? 여러분, 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내게 여름, 가을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한 번도 생각 안 했잖아요? 글을 쓰면 내가 쓴 글을 보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나에게 여름이 이런 거지, 이렇게 의미를 되살릴 수가 있어요. 글을 쓰고 책을 낸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과 같이 나눌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어요.”
여름은 수박, 가을은 도토리 / 여름은 페트병, 가을은 초콜릿
-강민정 어린이의 글 일부
여름은 한낮의 뜨거운 바람, 가을은 새벽녘의 싸늘한 바람 / 여름은 웅장한 오페라, 가을은 잔잔한 클래식
-박정은 어린이의 글 일부
마지막 글쓰기는 앞선 글쓰기와 달리 긴 글을 써보는 순서였다. 제시된 낱말을 이용해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 제시된 낱말은 ‘배고픈 돼지, 잔소리하는 앵무새, 찢어진 우산, 노란 장화, 돈 980원’이었다. 다소 어려워하는 어린이들에게 채인선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렸을 때 몸이 약했어요. 책을 좋아하니까 어머니께서 50권짜리 전집을 사주셨어요. 『소공녀』, 『톰 소여의 모험』, 『작은 아씨들』 등 많은 책들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책값을 나눠서 냈거든요. 어머니께서 다달이 내다가 돈이 모자라서 책값을 밀리게 됐어요. 그랬더니 책값을 받으러 오는 아저씨가 화가 났어요. 급기야 책값의 반을 안 냈으니까 25권을 가져가겠다고 했어요. 선생님은 깜짝 놀랐어요. 책 50권이 영원히 선생님 것인 줄 알았거든요. 엉엉 울면서 책을 다 읽었어요. 다음 날, 보내야 할 책을 골라놓고 학교에 갔죠. 그렇지만 담임선생님 말씀은 귀에 하나도 안 들렸어요. 학교가 끝나고 제발 그 아저씨가 우리집에 못 오셨으면 좋겠다, 하는 상상을 하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집에 왔어요. 보내려고 골라놓은 책들이 어떻게 됐을까요? 간절하게 있었으면 좋겠죠? 바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거예요. 현실에는 없었거든요. 문을 여니까 없었어요. 그렇지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으로 글을 쓰는 거예요. 글을 쓸 때는 자기가 바라는 대로 현실을 바꿀 수가 있거든요.”
선생님께 묻습니다
어떻게 작가가 되셨어요?
책을 많이 읽다보니 글을 잘 쓰게 됐고, 글을 잘 쓰다보니 선생님 딸들에게 이야기를 지어주게 됐어요. 그러다보니까 시간이 흘러서 작가가 된 거예요. 작가가 되려면 글쓰기를 좋아해야 할까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야 할까요? 글쓰기를 더 좋아해야 되겠죠? 동화작가가 되려면 어른을 좋아해야 할까요, 아이를 좋아해야 할까요? 아이죠. 또 동화작가가 되려면 책을 좋아해야 할까요, 수영장을 좋아해야 할까요? 책이에요.(웃음) 선생님이 좋아하는 세 가지가 글쓰기, 책, 아이잖아요. 이 세 가지를 더하면 동화작가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도 내가 나중에 뭐가 될까, 고민하지 말고요. 내가 지금 잘하고 좋아하는 걸 더 잘하고 더 좋아하도록 해보세요. 그러면 나중에 내가 꿈을 이뤘구나,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이 되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이야기는 어디에서 나오나요?
책을 많이 읽으면 쓰고 싶어져요.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어떻게 될까요? 넘치죠. 물을 조금만 부으면 안 넘쳐요. 책을 한 권 읽었는데 한 권 분량의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못 쓰죠. 많이 읽어야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요. 글을 쓸 때 주위를 잘 관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가장 좋은 건 나한테 어떤 생각이 들었을 때 메모를 하라는 거예요. 메모를 하지 않으면 날아가버려요. 그것도 좋은 습관이에요.
책을 쓰면서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어떤 책은 깔깔 웃으면서 썼고, 어떤 책은 울면서 썼어요. 아까 현실은 그대로지만 자기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고 싶을 때 글을 쓴다고 했죠? 책이 없어졌는데 안 없어졌으면 좋겠다 싶을 때 글이 나오는 것처럼요. 『내 짝꿍 최영대』는 아이들과 영대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글을 쓸 때 굉장히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데요. 여러분도 글을 쓰면 자기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하는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될 거예요. 슬픈 이야기를 쓸 때는 정말 슬프고, 웃기는 이야기를 쓸 때는 선생님도 많이 깔깔 웃으면서 써요. 글을 쓰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에요. 여러분이 세상을 만드는 거예요. 주인공도 만들고, 세상을 아름답게도 만들고, 행복하게도, 슬프게도 만들 수 있어요. 그런 기쁨을 글쓰기로 많이 느끼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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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처방전채인선 글/정우열,권윤주 그림 | 책읽는곰
이 책에는 일기에 옮겨 쓸 수 있는 글감이 날마다 한 편씩 담겨 있습니다. 제시한 글감을 가지고 일기를 쓰다 보면 ‘오늘 일기 뭐 쓰지?’라는 답답한 마음이 싹 사라질 거예요. 그야말로 ‘일기 쓰기 싫어’ 병에 걸린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처방전을 제시할 것입니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
책사랑
2016.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