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안녕, 여름> 배우 정문성 "무대에서 더 진실되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글ㆍ사진 윤하정
201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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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에야 <헤드윅>이 끝났으니 좀 쉴 줄 알았던 그는 바로 <트루웨스트 리턴즈>로 무대에 오르고 있고, 얼마 전부터 9월에 개막할 <안녕, 여름>을 위해 연습에 들어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2007년 데뷔 이후 좀처럼 쉬지 않고 참 열심히 무대를 지키고 있는 그. 작품도 배역도 쉽지 않은 것만 맡는지라 그 바쁜 일정에 인터뷰로 끼어들 틈을 찾기도 쉽지 않았는데 드디어 만나게 됐군요. 하지만 낮에는 연습, 저녁에는 공연이 있으니 연극  <안녕, 여름>의 연습실이 있는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점심시간에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끼니를 해결하면서 말이죠. 처음 만난 사람과 밥을 먹는 일은 비단 남녀 간의 소개팅뿐만 아니라 배우와 기자 사이에도 어색한 일이라 웬만하면 피하는데요. 본의 아니게 식사를 함께 하게 된 그, 배우 정문성 씨는 무언가를 먹으면서도 참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배우가 공연을 하는 건 일이잖아요. 연습하고 공연하고 연습하고 공연하는 과정이 이어지면 안 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연습 기간에는 수입이 없거든요. 공연 자체가 계속 이어져야 생활에 타격이 적어요.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고 어쨌든 저한테는 직업이니까요. 꼭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작품들이 시즌별로 맞물려 있기도 하고요.”

 

그렇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죠. 밥을 먹으면서 인터뷰를 해서인지 진솔한 얘기들이 바로 터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질문을 바꿔보죠. 맞물려 있는 작품의 색깔이나 분위기는 많이 다릅니다. 작품을 선택할 때 나름의 기준이 있는 거겠죠?

 

“일단 대본을 보고 결정하는데 최대한 저에게 공부가 되는 작품을 선택해요. 제가 가진 것으로 많이 노력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캐릭터라면, 물론 그런 인물도 캐보면 할 게 엄청 많지만, 수월한 것보다는 어려운 게 마음에 더 와 닿아요. 그만큼 힘들고 스트레스도 받지만 저에게 다 재산이 되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주로 준비를 많이 해야 하는 캐릭터를 맡아 오셨잖아요. 공연이 맞물리다 보면 낮에는 연습하는 인물, 저녁에는 공연하는 인물, 결국 둘 다 쉽지 않은데 감정적인 밸런스는 어떻게 유지하세요?


“그런 면에서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잘 선택한 것 같아요. 오랫동안 집중하는 걸 잘 하지도 못하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서 공연에서 좀 어두운 역할을 하면 그 시간 외에는 밝고 더 재밌게 살려고 노력해요. 반대로 재밌고 좀 가벼운 캐릭터라면 밖에 나와서 진중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온전한 정문성이 사라지만 이 일을 못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공연 외 나머지 시간은 그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자유를 누리려고 해요. 그래야만 무대 위에서 고민하고, 누군가를 웃기면서 가벼워지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 저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아닐 수 있고, 매 순간이 새로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단편적인 예로 <헤드윅>을 할 때 일상에서는 어땠나요?


“아, <헤드윅>은 다른 공연과 좀 달랐어요. 그 이유를 지금 생각해보면 <헤드윅>은 혼자 하는 공연이 아니거든요. 혼자 해야 하는 부분이 많지만, 관객이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같은 무대 위에 있어요. 그래서인지 공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뒤에는 같이 행복하고 같이 즐거운 게 있어서 밖에 나와서도 비슷한 모습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물론 헤드윅의 성적 정체성이나 사랑에 대한 생각은 같이 가져올 수 없지만. 사실 <헤드윅>은 제작진이며 연출, 밴드, 관객까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헤드윅에게 주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자신이 있다고 할까요? 나라는 인간이 태어난 게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헤드윅>은 배우도 관객도 매번 새로운 해석과 느낌으로 접하게 됩니다. 특히 지난 시즌은 역대 쟁쟁한 헤드윅들 속에 뉴 페이스라서 부담이 많았을 것 같아요.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부담됐던 건 맞아요. 그런데 저는 영화에서 본 헤드윅에 최대한 가까워지고 싶었어요. 나와 헤드윅을 적절히 섞어서 효과를 내기 보다는 어떻게든 헤드윅 뒤에 완벽하게 숨고 싶었어요. 그래서 드라마에 집중했고, 좀 답답하고 재미없을 수도 있었겠지만 정문성이 멋있고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게 제 목표는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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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으로 워낙 주목받았던 터라 다음에 어떤 작품을 하실지 궁금했는데, 연극 <트루웨스트 리턴즈>였습니다. 2013년에도 참여했던 작품인데, 당시에는 형 리로, 이번에는 동생 오스틴으로 무대에 서고 계세요. 역시 쉽게 가지 않는 건가요?


“그때 형을 하면서 마흔 살이 되기 전에는 절대 다시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형의 마음은 알겠지만, 세월이나 삶이 주는 상처 같은 어떤 깊이가 있어야 하는데, 30대 초반의 저는 그런 게 없으니까 그 사람이 할 수 있을 법한 것들만 무대 위에서 하고 있더라고요. 물론 그게 절대적으로 나이와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창피했어요. 정말 열심히는 했어요. 어쨌든 내게 그런 깊이가 없다는 걸 들키지 않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동생을 한 거예요.”

 

그렇게 따지면  <안녕, 여름>도 이해하기 힘든 작품 아닌가요? 게다가 유부남 태민 역에 함께 캐스팅된 송용진, 김도현 씨는 40대 초반에 결혼도 했잖아요.


“맞아요(웃음).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이 작품, 인물을 풀어가는 데 있어 결혼을 했는지 여부는 큰 영향이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결혼한 형들이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 등은 좀 더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죠. 하지만 작품의 주제를 중심으로 생각할 때 어렵지만 할 수 있고,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소개되는 작품인 만큼 정문성 씨가 참여해서 관심을 갖는 관객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어떤 작품인지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사실 연습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겠어요. 보통 이런 인터뷰를 연습 초반에 하는데, 인터뷰 때 작품에 대해서 얘기하면 결국 시간이 지나서 후회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말한 것도 달라질 수 있지만, 일단 여기 나오는 사람들이 다 다른 사랑을 해요. 제 기준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와 똑같을 수도 있을 거예요. 마냥 재밌고 슬픈 작품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사람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힘들고, 그 과정이 사랑이 아닐까 라는 걸 보여주는... 개인적으로는 지금  <안녕, 여름>을 하는 게 좋아요. 작은 극장에서 일본 정서의 연극을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한다는 것. 흔히 마니아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 작품은 무대 위에서 진실로 살아줘야 하거든요. 그만큼 관객도 가까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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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성 씨는 어떤 사랑관을 갖고 있는데요?


“저는 원래 사랑이 인생에서 가장 우선이고, 어떤 배역이든 사랑을 기반으로 해야 연기를 푸는 데 수월해요. 그런 연기를 좋아하고. 예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명확했는데,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모든 걸 책임지고 든든하게 버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결혼에 쫓기는 마음은 없어요. 예전에는 사랑하면 결혼해야 하고, 결혼은 꼭 해야 하고, 나랑 똑같은 아이를 낳아야 하고... 다 욕심이지 않나.”

 

지금껏 맡은 캐릭터 중에서 외적인 장치를 벗어나 본질적으로 가장 닮은 인물은 누굴까요?


“모든 인물에 제가 조금씩 들어 있고, 그 여러 가지가 제 성격을 조금씩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캐릭터들이 가끔씩 일상에서 나오기도 해요(웃음). 그래서 예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많이 없어졌어요. 배우로서는 더 좋을 수 있는데, 인간 정문성의 색깔이 옅어진 거니까 어떻게 보면 속상한 일이죠.”

 

오늘, 지금 이 순간에는 어떤 인물이 가장 많이 나오려고 하나요(웃음)?


“오늘은... ‘태민’이 반, 그리고 ‘리’가 좀 있는 것 같네요(웃음).”

 

수많은 캐릭터들이 더해진 지난 10년. 어떤 배우를 꿈꿨고, 얼마나 가까워졌나요? 또 어떤 모습을 꿈꾸고 계신지요?


“데뷔 초반 제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을 때 연륜 있는 선배의 연기를 보게 됐어요. 그런데 어떤 때는 가슴이 뭉클하고 어떤 때는 안 그렇더라고요. 뭉클할 때가 마음으로 연기한다는 건가 싶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해보고 싶은데 뭔지 알아야 노력을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어떤 작품, 어떤 연기를 하든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했어요. 드라마를 한 뒤로는 배우는 일단 연기를 잘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도 했고요.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때마다 했던 생각들이 제 안에 쌓여 있겠죠? 지금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어떤 연기든 잘 할 수 있는 건강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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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우를 꿈꾸느냐는 질문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답변을 종종 듣습니다. 배우들은 결국 자기 안에 있는 모습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이기 때문이겠죠?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에는 70점 정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정문성 씨는 자기애가 강해서 90점을 100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답변을 하느라 줄지 않았던 그릇도 말끔히 비우고, 먼저 악수를 청한 뒤 연습실로 사라졌습니다. 참 진진하고 의외로 유쾌했던 인터뷰, 무대 위에서 만나는 정문성 씨와 딱 닮았죠? 그래서 더 기다려지네요. 꾸밈없이 좀 더 진솔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날  <안녕, 여름> 무대의 정문성 씨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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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