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고 현실적인 대안, 단편선과 선원들
낱개가 아닌, 앨범 전체를 염두에 두고 곡의 흐름을 생각하며 살을 붙인 단편선 그리고 선원들의 의도는 가히 성공적. <뿔>은 이 시대의 얼터너티브, 진정한 의미의 ‘대안’이다.
글ㆍ사진 이즘
20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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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다.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무당이 굿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 빚어내는 가사는 이해하기 어렵고, 엇박과 완성된 한 마디를 구성하지 못한 채 잘려나가는 음계는 감상을 방해한다. 결코 친절하지는 않다. 규칙은 존재하지 않고 항상 예상을 빗나간다. 「발생」의 사이키델릭하고 형식 파괴적인 서사구조로 획득한 자율성은 앞으로의 전개에 대해 일말의 기대도 허락지 않는다.

 

장수현의 신들린 바이올린 연주와 단편선의 괴성이 끝나면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와 함께 「뿔」의 후미와 「모든 곳에」의 선두가 바이올린의 선율로 묘하게 이어지며 전개된다. 한 곡 안에서 쉴 새 없이 이루어지는 변주는 다 곡과 맥을 같이한다. 「뿔」은 감상 포인트가 무려 세 곳이나 되면서도 단편선의 「오오오」로 앞뒤를 연결해 나름의 통일성을 갖춘다.

 

그렇게 약 10분간 혼을 빼놓는 격정적인 연주 뒤에 등장하는 「거인」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삽입곡처럼 선명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푸른 빛의 들판과 숲속과 모두를 품고 또 떠나보내는 거인이 떠오르지 않는가. 홍대 아이유로 유명한 곽푸른하늘과의 듀엣은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노래가 아닐까 싶을 정도. 「연애」까지 연이은 보편적인 감성은 「흙」이라는 인터루드를 거쳐 제2막을 예고한다. 「낮」을 지나 「그리고 언제쯤」에 다다르면, 세계의 원리와 역사를 조망하는 범인류적 메시지와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선원들의 연주가 합을 이루며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트랙 내내 바이올린은 피치카토로 가야금을 흉내 내고, 곡에 따라선 아쟁 소리를 구현하기도 한다. 북소리는 흡사 고수(鼓手)의 그것과 같이 흥겹고 「불」에선 추임새까지 들리니 이거 완전 퓨전 국악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동시에 단편선과 선원들은 어쿠스틱 카페(Acoustic Caf?) 혹은 두 번째 달처럼 감상에 적합한 뉴에이지 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한다. 곡마다 명확한 리프를 배치하고 그 위를 장수현의 연주로 채웠는데, 이는 그가 전 멤버였던 권지영보다 훨씬 대중 지향적이라는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최우영의 베이스 또한 이들의 음악을 현재와 동떨어진 특이한 어떤 것으로 규정할 수 없게 하는 요소다.

 

무엇보다 「연애 (feat. 김사월) 」는 요즘의 우리를 지독하게 담아내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가 아닌, "밀린 세금을 내고 오는 길에", "차가운 물에 쌀을 씻어낼 때도", "네가 생각"난다. 「불」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덧없이 흘러가는 짧은 존재이면서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사랑한다. 앞선 트랙에서 보여준 현학적이고 또 철학적인 가사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의식의 흐름으로 보여준다. 독립된 개체로서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고독감, 외로움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해소된다. 전작 <동물>처럼 이것이 「불」을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가 아닐까. (「이상한 목」은 회기동 단편선의 솔로 앨범 <백년>에 수록되었던 곡이므로 논외로 한다)

 

단편선과 선원들을 얘기할 때 언제나 따라오는 수식어 구는 ‘실험적인 포크록’이지만 사실 이들의 곡은 형식, 장르 내지는 규칙성에 얽매이지 않을수록 잘 들린다. 둘러싼 세계에 대한 고뇌를 역동적인 힘으로 승화시키는 외침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다가온다. 낱개가 아닌, 앨범 전체를 염두에 두고 곡의 흐름을 생각하며 살을 붙인 단편선 그리고 선원들의 의도는 가히 성공적. <뿔>은 이 시대의 얼터너티브, 진정한 의미의 ‘대안’이다.


2016/05 정연경(digikid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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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과 선원들 #뿔 #앨범 #얼터너티브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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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ouj

2016.05.25

https://www.youtube.com/watch?v=fJ8dAWjwWlE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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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