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고 하는 여행
에어비앤비로 방을 빌려주면서 만난 삶 『이토록 쉽고 멋진 세계여행』, 새로운 감각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이기호의 소설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야당이 욕을 먹는 와중에 정치의 본질에 대해 냉철하게 말하는 강준만의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등 주목할 만한 이 주의 신간을 소개합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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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쉽고 멋진 세계여행
최재원 저/임호정 그림 | 북로그컴퍼니

시작은 단순했다. 원래 저자는 광고회사에서 일 잘한다고 인정받고 높은 연봉을 받는 삶을 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서른 즈음 더는 하고 싶은 일을 미룰 수 없다고 결심, 음반 레이블로 직장을 옮기고 합정동으로 이사를 갔다. 집 계약금 때문에 은행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부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남들이 다 가는 관광지가 아닌 '진짜 홍대'를 소개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독일에서 온 사람은 망원동 노가리 가게에 데리고 가서 한국식 피시 앤 칩스라고 소개하고, 미국 아리랑TV 아나운서와는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밴드들의 공연과 핫한 파티에 같이 놀러 다녔다. 현재 저자의 방은 에어비앤비 최고의 인기 게스트하우스로, 보통 6개월 치 예약이 꽉꽉 들어차 있다. 외국인 친구랑 사귀면서 돈까지 버는 삶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기호 저/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웃고 싶은가, 울고 싶은가, 그럼 '이기호'를 읽으면 된다."(소설가 박범신) 등단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언제나 새로운 감각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저자의 짧은 이야기 단편집이다. 계속되는 취업 낙방으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변해가는 '우리'가 강원도의 한 밭에서 배추 출하를 목전에 둔 사연, 서른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여자 친구를 사귀어보지 못한 '그'가 동물원에서 한 첫 데이트의 결말, SNS의 세계에서 '멋진 남자'로 살아가는 남편의 이중생활을 바라보는 아내의 심정……. 모두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세상사가 마음처럼 쉽지 않음을 알게 된 이들이 마주한 당혹스러운 순간들이다. 하지만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이 순간에 그들은 체념과 자조가 아닌, 그럼에도 생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긍정을 보인다. 무작정 긍정이 아닌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성실한 긍정에 불순물은 없다. 일러스트레이터 박선경의 재치있는 그림도 책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강준만 저 | 인물과사상사

'야당 분열, 알고나 욕합시다!'라는 부제처럼, 저자는 이 책에서 야당 분당의 원인과 본질을 파헤친다. 일부 야권 지지자들은 "분열은 배신이자 자멸", "역사에 죄를 짓는 일", 이라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욕심내지 말자"고 일축한다. 그동안 야당과 진보의 행태가 '정권교체'와는 거리가 멀었고,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한다고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정치의 고질적 폐단이자 야당 분당의 주된 원인으로 '정치의 종교화, 인물중심주의, 지도자 숭배'를 거론한다. '정책'과 '이슈'보단 자신이 추종하는 인물 중심으로 모든 걸 환원하는 행태가 정치를 피폐하게 만들고, 소통과 화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분당의 내막에 대해 다이내믹한 이야기를 펼치지만, 핵심은 '정치의 본질'과 '인권'에 관한 이야기다.

 

 

포르노그래피의 발명
린 헌트 편/전소영 역 | 알마

현대 사회에서 포르노그래피는 검열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포르노그래피의 출현은 서양에서 근대성이 태동하는 순간과 맥을 한다. 불온한 음란 서적이 급증하던 18세기 프랑스혁명이 발발했고, 이후 자유사상, 계몽주의, 유물론 철학 등이 발전한다. 유럽의 근대사 및 문화사를 연구하는 명망 높은 9명의 교수가 참여한 이 책은 검열하고 금지하려고 하는 종교와 정치계의 욕구, 쓰고 구매하겠다는 작가와 독자의 다른 욕구가 만나 포르노그래피라는 독립된 범주가 탄생했음을 밝히는 작업을 성실히 수행했다. '포르노의 모든 것'이자, 외설 작품을 통해 유럽 근대사를 풀어낸 흥미로운 책이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저/이빈 역 | 박하 | 번역서 : Shot in the Heart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형수' 게리 길모어가 두 명의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스스로 사형에 처해달라고 주장하며 전 미국을 충격에 몰아넣은 사건이 있었다. 이미 유명한 사건이었지만, 이 책의 출간은 사건을 넘어선 또 다른 사건이었다. 게리 길모어의 친동생인 저자가 자신의 형이 왜 그토록 끔찍한 괴물이 되었는지 길모어 집안에서 이루어졌던 폭력과 학대를 가감 없이 노출했기 때문이다. 가차 없는 모르몬 교도 집안이었던 어머니와 술주정뱅이에 절도와 사기를 일삼던 아버지, 거기에 아이들에 대한 학대와 알코올중독, 범죄, 간음, 그리고 살인으로 점철된 가문의 역사를 안고 저자는 살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어 판에서 "인간에 대한, 아니 어쩌면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라는 깊은 회환을 옮긴이 후기에 남기기도 했다. 2001년 초판본의 오류와 오역을 수정한 개정판이다.

 

 

푸른 기차의 정거장
이순원 글/이주윤 그림 | 보랏빛소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 부모를 둔 준호는 백일장에 나가 '오해'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 장애인 가족이 겪어야 하는 불편한 상황들, 가족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과 오해 등. 백일장을 통해 인연을 맺은 동화작가 선생님의 제안으로 준호는 '시각장애인의 사진여행' 도우미로 여행을 떠난다. 주인공 준호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 영수가 서로 마음을 나누고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 동화. 장애인이 겪는 편견과 불편함을 아이의 시선으로 잔잔히 보여준다.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저 | 교유서가

타고난 입담을 자랑하는 작가와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 웃고 울던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맛깔난 문장으로 풀어낸 음식 회고록이다. 전쟁을 피해 괭매이(경기도 광명)의 어느 외양간, 옆집 소녀가 쥐여주던 누룽지 맛에서 첫사랑을 떠올리고, 베트남전 참전으로 피폐해진 영혼을 치유해준 한 여인과 주고받은 편지, 출가하여 절집을 돌아다녔던 이야기, 군대 시절 닭서리를 하여 철모에 삶아 먹던 이야기,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함께 먹었던 언 감자국수에 얽힌 사연, 감옥에서 봉사원과 함께 만들어 먹던 부침개, 노티(평안도 지방의 향토 음식)에 얽힌 이산가족 이야기, 함께 먹거리 여행에 나섰던 사람들과의 이별 이야기 등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굴곡진 한국 현대사와 묵묵히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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