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하면 바로 떠오르는 청년배우 박영수
이 작품은 시인 윤동주의 삶을 다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청년의 모습을 담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글ㆍ사진 윤하정
201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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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 문화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은 윤동주 시인이 아닐까 합니다. 일제강점기 29살의 짧은 생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마감한 윤동주. 지난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의 71주기였는데요.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개봉했고, 앞서 서점가에서는 1955년 발행된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복간본이 인기를 얻으며 그의 시를 직접 따라 써보는 필사책도 잇달아 출간되고 있습니다. 영화에 앞서 청년 윤동주의 삶을 다룬 작품은 2012년 뮤지컬로 초연돼 큰 감동을 선사했는데요.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오는 3월 20일부터 단 10회의 무대를 다시 선보일 예정입니다. 초연과 재연에 이어 이번에도 윤동주 역은 배우 박영수 씨가 맡았는데요.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보다 윤동주라는 인물에 대해 많이 생각했을 그를 서울예술단 연습실이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 만나봤습니다.

 

“이 작품은 시인 윤동주의 삶을 다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청년의 모습을 담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윤동주 시인이 그 당시에는 유명하지 않았잖아요. 유명해진 지금의 시선이 아니라 시대를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가는 문학인, 청년으로서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요.”

 

초연 때부터 윤동주로 무대에 서고 있는 만큼 누구보다 윤동주 시인에 대해 많이 생각했을 텐데,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윤동주 시인과 관련된 여러 책을 봤는데, 친구들이 이름을 부르면 미소를 띠며 바라보고, 과묵했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줬던 사람으로 표현돼 있어요. 암울한 시대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사람, 하지만 항상 즐기던 산책 중에 알 수 없는 탄식을 내뱉었다고 하는 걸 보면 행동하지 못하고 침묵했지만 내적 갈등이 많지 않았을까. 그게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요.”

 

윤동주 시인은 초연 때나 지금이나 29살 그대로지만 박영수 씨는 나이가 더해졌는데요. 다시 바라본 윤동주는 어떤가요?

 

“1980년대에는 대학생들도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잖아요. 대학생 때 벌써 세상이나 정권, 억눌림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한 건데, 지금 세대는 굉장히 늦죠. 제가 서른다섯 살인데 이제야 어떤 체제에 의해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느끼거든요. 그런데 윤동주 시인이 살던 시대에는 훨씬 빨랐다고 생각해요. 20대였지만 사고의 깊이가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서른한 살에 윤동주 시인을 만났을 때 그 아픔을 연기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그때 느끼지 못했던 무게를 여전히 공감은 못 해도 조금 더 느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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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화계에 ‘윤동주 시인’ 열풍이 불고 있는데,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 장면이 취조실이에요. 윤동주 시인이 사상범으로 잡혀서 한국어로 썼던 모든 글을 일본어로 번역해야만 해요. 무척 수치심이 일어나는 장면인데, 그때까지 뭘 하면서 어떻게 살았는지 시를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회상하거든요. 시인의 이야기를 극화한 거니까 저희들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시였어요. 시를 온전히 남겨두자! 그래서 작품에 6편의 시가 나오는데 그걸 노래로 만들지 않고 그 정서를 그대로 담아 읊어요. 그런가 하면 서울예술단의 장점인 군무는 여러 장면에서 아주 멋지게 펼쳐질 거예요. 2012년 초연 때 무척 힘들게 준비해서 공연을 올렸는데, 첫공에 막공 같은 관객 반응이 있었고, 막공 때는 4층까지 전체 기립해 박수를 보내주셔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어요. 다들 그 마음을 안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윤동주, 달을 쏘다.>에서는 박영수 씨와 함께 김도빈, 조풍래 씨도 중심인물로 함께 무대에 서는데요. 서울예술단의 삼총사라 할 수 있는 동갑내기 친구들인 만큼 합이 잘 맞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친해서 무대 위에서 곤란한 상황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있는 것 같아요. 셋이 한 작품을 할 때가 많지 않은데 지난해 <신과 함께>로 한 무대에 섰거든요. 그때 도빈이가 김자홍 역을 맡아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데, 순간 정말 웃기더라고요(웃음). 연습 때면 서로 준비할 걸 보여주고 신랄하게 지적도 하는데, 7년 정도 함께 생활하다 보니까 환상이 없어요(웃음).”

 

지난해에는 서울예술단 작품이 많이 공연돼서 꽤 바빴을 텐데, 10월 <뿌리 깊은 나무> 이후로는 <윤동주, 달을 쏘다.>가 첫 작품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11월에 지방공연 있었고, 저는 외부 작품으로 <무한동력>에 참여했고요. 보통 서울예술단 단원들은 공연이 없을 때 다음 작품 준비를 해요. 이번에도 오는 8월에 올릴 신작에 악기들이 많이 들어가서 지난 연말부터 계속 수업을 받았어요. 단원들이 매일 모여 있기 때문에 무언가 과제가 주어지면 더 빨리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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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박영수 씨의 경우 서울예술단 작품에서는 대체로 잰틀한 이미지의 배역을 맡는다면 외부 작품을 할 때는 파격적인 변신을 하네요?

 

“다들 저를 착하고 얌전한 이미지로 보시는데, 연출가 이지나 선생님은 저한테 사이코패스 같은 눈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악마도 해보고 뱀파이어도 해보고. 그쪽 옷도 재밌더라고요. 조금 더 자유로운 맛도 있고. <마마 돈 크라이> 할 때 ‘세라’라는 노래가 있는데, 섹시한 춤은 처음이었거든요. 그 장면은 각자 자유롭게 꾸밀 수 있어서 전 좀 뇌쇄적인 걸 해보고 싶었어요. 하이힐까지 신는데 의자에 다리를 거의 180도로 뻗고 거꾸로 앉아서 했더니, 사람들이 거미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윤동주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죠. 평상시에 언제 그렇게 해보겠어요, 재밌어요.”

 

무대 위 모습만 봐서는 실제 성격을 잘 모르겠어요.

 

“다 제 모습이에요. 누구나 여러 모습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주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거잖아요. 하지만 배우는 주가 되지 않는 모습도 끌어내야 하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일상에서는 절제하는 것들이 많긴 해요. 현실에서도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자제하는 편인데 무대 위에서 풀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무대가 탈출구 같아요.” 

 

윤동주 시인은 살지 못했던 30대를 배우로서 수많은 변신을 하며 치열하게 살고 있잖아요. 2012년 박영수라는 배우를 확실하게 알렸던 작품인 만큼 이번에 <윤동주, 달을 쏘다.>를 준비하면서 더욱 배우로서의 꿈이나 신념,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요즘 많은 생각을 하고 있긴 한데, 4년 전에 이 작품을 만났을 때는 능력이 안 되는데 너무 큰 역할을 만나서 정말 힘들었어요. 지금도 언제쯤이면 무대 위에서 연습했던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온전히 서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요. 온전히 그 인물로만 무대에 서 있을 수 있는 날이 언제 올까... 한편으로는 나이가 더해지니까 배우 외의 다른 이름들로 현실적인 부분에 많이 부딪혀요. 저는 원래 현실이 없는 아이였는데 이제는 현실도 봐야 하는 나이인 것 같고, 그 안에서 이상과 꿈을 꾸는데, 내가 지금 뭘 가지고 있고 앞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많이 혼란스러운 시기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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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끝내고 ‘오프 더 레코드’로 박영수 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더 나눴습니다. 일에 대해 고민하고 삶에 대해 고민하고, 여전히 꿈은 꾸지만 무언가 책임지고 한계에 부딪히는 것들이 많아지는 걸 알게 되는 것. 당연한 일이겠죠, 박영수 씨도 과거 윤동주 시인처럼 자신의 길을 만들어 걸어가는 청년이니까요. 지난 3년간 수많은 인물과 수많은 생각으로 ‘배우 박영수’를 만들어온 그가 2016년에는 어떤 윤동주를 보여줄까요? 3월 20일부터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에서 단 7일간 공연될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그나저나 다시 연습실로 가야 한다며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가볍게 걸어가는 박영수 씨는 유독 가늘고 길어 보여 서울예술단이 아니라 마치 국립발레단 연습실로 들어갈 것만 같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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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