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원을 들고 떠난 세 사람의 ‘미친 방랑기’
이토록 계획적이지 않고, 그저 부딪치는 사람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한편 이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물음표 하나가 떠오른다. 당신의 여행은 즐겁습니까?
글ㆍ사진 신연선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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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한복을 차려입고, 등장한 사람들. 이들은 막 과거에서 온 듯 점잖은 말투로 “안녕하십니까, 허허허”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 모습에 미소가 떠오른 건 이들이 ‘미친방랑’ 내내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인사했으리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문방랑과 김방랑, 그리고 정수리, 이 셋의 뜨거웠던 방랑은 상상하지 못한 빛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아무 이유 없이 도움을 건넨 사람들, 그들의 다채롭고 특별한 삶 이야기는 방랑을 떠나기 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깊은 철학, 이것이 세 사람의 방랑에 가장 큰 수확이었다.


단돈 이십 원을 들고, 한복을 차려입고, 2014년 뜨거웠던 여름, 서울에서 부산까지 16박 17일의 여행을 떠난 세 사람은 입을 모아 얘기한다. “No Plan is the Best Plan”이라고. 그리고 “성공이냐 실패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이토록 계획적이지 않고, 그저 부딪치는 사람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한편 이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물음표 하나가 떠오른다.


당신의 여행은 즐겁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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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보자


바로 내 곁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어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요. 참 멋진 경험을 하셨다 싶었습니다.


김광섭: 떠나면서 청춘에 대해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누굴 만나게 될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가보자는 마음이었는데요. 방랑 떠나기 전에도 저는 여행을 하면서 외국 사람들도 참 따뜻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디 가서 정(情)하면 지지 않죠.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카우치 서핑이나 히치하이킹이 분명 가능할 텐데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간다 하면서 서로를 멀리하고 있으니까요. 만나보면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해보고 싶었던 마음이었죠.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구나, 우리나라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 맞구나 하는 것이 확 와서 정말 좋았어요. 또 정말 좋은 친구를 얻게 됐죠. 이것들이 원동력이 돼서 음반도 내고, 다양한 것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걸 하려고 떠난 건 아닌데 하고 싶은 걸 하는 그 재미가 저를 계속 하도록 끌어가주는 탄력적인 에너지가 돼 주고 있어요.

 

문정수: 저희가 하는 활동들 어느 하나도 예정된 게 없었어요. 기대도 없었고요. 아주 담백하게 이십 원 가지고 떠나자, 뿐이었어요. 우리 역시 대한민국에서 청춘으로 살아왔잖아요. 그러면서 갑갑하고, 안타깝고, 아픈 지점들이 있었죠. 자본주의가 원하는 규칙 말고 진짜 본질, 청춘다움을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십 원을 가지고 간 거거든요. 이와 반대되는 의미의 상징적인 돈이었죠. 길에 떨어진 십 원짜리 같은 인생이라고 하잖아요. 이십 원은 아무것도 아니죠.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 마음이 전부였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은 똑같다, 아름답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라는 걸 느끼게 됐죠. 저희가 느꼈던 것,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기적처럼 벌어진 일들이 그냥 보여서 아마 공감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방랑을 시작하기 전부터 저자 세 분에게 비슷한 공감이 있으셨던 건가요?


김광섭: 저희가 그에 대해 깊이 얘기를 해본 건 아니고요. 왜 여행을 가는지 했을 때 이것을 보여주는 게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요. 힘들겠지만 결국 부산까지 갈 거란 것도 알았고요. 해보지도 않고 말하긴 싫었어요. 청춘들 역시 계속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의 정서 쪽으로 가는 게 싫었고요. 그런 생각이 있던 찰나에 이런 얘기가 툭 나왔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생각이 맞아 떨어졌죠.

 

문정수: 그게 진실인 것 같아요. 저희가 각자 살며 느꼈던 현실, 세상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했던 부분은 지금 청춘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부분일 거란 거죠. 거기 매몰돼 있고 싶지 않다, 허상에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세상에서 말하는 열정, 꿈, 희망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죠. 꼭 도달해야 하고, 쟁취해야 하는 혹은 1등이 되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고 그걸 청춘들에게 요구하잖아요. 우리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조각내고 찢어서 속살을 마주해보아야 할 것 같아요. 이십 원을 들고 방랑을 하며 그런 걸 느꼈죠.

 

너무 좋은 말들이잖아요. 열정, 청춘, 행복, 이런 것들이요. 그런 걸 얻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없을 텐데 거기서 멀어졌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죠. 현실은 너무 엄혹해요. 도태되면 바로 아웃이라는 불안이 있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우리처럼 해봐’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단 생각도 드는데요.


문정수: 이십원 쁘로젝트가 말하는 건 ‘우리처럼 이십 원 가지고 너희도 해봐’가 아니에요. 각자 기준에서 하고 싶고, 즐거워하는 사소한 소박한 것들이 무엇인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걸 돈 같은 것이 막고 있다면 그냥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돈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중요하지 않아, 라고 하고 싶은 거예요. 여건은 타인의 기준이라는 거죠.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척 사소하고 섬세한, 내가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할 수 있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 꼭 비싼 레슨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죠.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건지 남들에게 보여주는 그림을 그리려는 건지 내면의 욕망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거죠. 그런 걸 지워도 됩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아주 작은 것부터 방랑을 하는 거죠. 일상 안에서, 방 안에서 나만의 위트있고, 즐겁고, 사소한 방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공유하고 싶은 정도예요.

 

김광섭: 출판사가 원고를 안 받아준다면 자필로 써서 책을 내자고 생각했었어요. 유명한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쓴 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것 중에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은 가치가 있으니 그걸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거든요. 또 책이 나왔으니 끝, 이게 아니라 저희는 계속 할 거예요. 더 이상 이 일이 재미없어질 때까지요. 한 번만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너희도 해’가 아니라 계속 하고 있다면 분명히 사람들도 알게 될 것 같아요.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재미있는 걸 계속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겠죠. 또 이런 것들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면 되는 거거든요. 미리 저 높은 곳을 보고 겁먹을 필요는 없죠. 물론 힘들죠. 하지만 힘들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건 아니잖아요. 대신 편하게 보여주고 싶은 거죠.

 

내 안의 어른이 하라는 대로
세상의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어느덧 말 잘 듣는
어른이 되어버렸나.

 

우린 우리에게 너무 어른이지 않나.
내 안의 그 천진난만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95쪽)

 

 

길에서 만난 사람들


세 분의 관계가 흥미롭습니다. 원래 친했던 사이가 아니었다고요? 솔직하게 떠나기 전에 정말 걱정되는 게 없었나요?


김광섭: 갈등 걱정은 안 했어요. 갈등은 풀면 되고, 안 되면 따로 가면 되는 거지 걱정할 일은 아니니까요. 제가 걱정한 건 먹고, 자는 문제였어요. 전 상대를 의식하지 않을 땐 굉장히 편안하게 잘 지내는데 상대와의 관계라는 것 안에 들어서면 긴장이 생겨요. 타인의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죠. 노잣돈 벌기 위한 아이디어를 형(문정수)이 내는데 걱정이 있었죠. 나는 짐이 되긴 싫지만 분명 불편해하고 있을 테고, 이것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나중엔 편안해졌지만요.

 

문정수: 김방랑과 성향이 달라서 그런지 저는 솔직히 걱정이 하나도 없었어요. 저는 재미있겠다 싶어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포기하지 않거든요. 또 저는 다툼을 너무 싫어하는데 그걸 또 너무 좋아해요. 무슨 말이냐면요. 가는 길에 생기는 갈등, 다툼은 제게는 놀이인 거예요. 그래서 치열하게 싸우고, 찾고, 힘들어해요. 그것은 제게 생명력이에요. 이건 정말 아름다운 다툼인 거죠. 이것이 진짜 살아있는 것이고, 파닥거리는 거죠. 지금도 어떤 결정을 할 때 서로 끝까지 싸우고 추적해요. 그건 힘든 게 아니에요. 싸우는 게 아니죠. 교감하고, 소통하는 놀이인 거죠.

 

이정수: 저도 솔직히 걱정은 하나도 없었어요. 먹고 자는 것에 대해서는 (문)정수 형을 믿었어요. 광수 형은 그 부분을 걱정했다고 하는데 저는 오롯이 다 믿었어요. 한두 끼 굶는 건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환경이 걱정이었어요. 출발하기 전에 생각한 이미지가 있거든요. 이런 장면은 꼭 만났으면 좋겠다 했던 게 있었는데요. 지금도 이십 원 방랑에 대한 이미지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길에 우리가 걸어가는 모습이에요. 그리고 아주 비가 많이 오길 바라기도 했는데 한 번을 안 오더라고요. 단 한 번도 제가 원하는 어떠한 상황도 오지 않았어요.(웃음) 태풍이 오고 있다가도 저희가 갈 때마다 태풍이 밀려나갔으니까요.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연금정 장면 같은 것도 있죠. 한복 입고 그곳까지 가는 게 정말 힘들었을 텐데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했기 때문에 그곳이 나왔을 때 그냥 형들에게 ‘저거다, 가’ 한 거죠. 그럼 형들은 ‘그러면 해야지’하고 순순히 가는 식이었으니까 그런 건 진짜 좋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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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궁금했어요. 갈등이 없었는지, 어떻게 해결했는지 말이죠. 심지어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기도 하니까요.


문정수: 치열하게 싸워야 그 안에 진짜 우리다움이 나온다는 거죠. 돌덩이를 조각내고 부시면 밀가루처럼 언어와 생각이 깨지거든요. 그건 기상천외한 우리다운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김광섭: 장호항에서 시작한 이후로 결정을 할 때 동전을 던졌어요. 출발 전에 회의 장면을 촬영한 게 있는데요. 그걸 보니 우리가 들고 가는 십 원짜리를 어떻게 써먹을까 얘기한 적이 있더라고요. 여행하면서는 그걸 까먹고 있었는데 돌아보니까 십 원짜리를 갈등을 해소하는 데 썼더라고요.

 

이정수: 저는 약간 관조자, 관찰자의 느낌으로 간 거였어요. 형들이 뭘 하고 있으면 저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들어가 있었어요. 일부러 많이 듣기도 하고요. 점점 객관적으로 이 사람들이 뭘 하는지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을 잃게 됐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면 방해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재미있는 건 그러나 결국 내가 뭘 하자고 해도 뭐든 해줬다는 거죠. 다른 건 없었고요. 콜라 사준 게 최고로 좋았어요.(웃음) 그날 진짜 진지하게 걸어가는 형들을 붙잡고 할 말이 있다고 했던 건데 그때 형들의 떨리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어요.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직접 질문을 하기도 했고,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들었잖아요. 지침을 새롭게 준 말들이 있었는지,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김광섭: 고모부가 해주신 말씀이요. “꿈? 내 가족 잘 사는 게 꿈인 거지”라고 얘기했을 때 정말 놀랐어요. 그전까지 많은 어른들은 가족에 대해 핑계 삼는 말들만 했어요. 그게 아니라 당연히 가족을 위해 산다는 고모부의 말씀이 멋있었어요. 멋있는 어른이죠. 전 부모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부모가 되는 것, 자녀와의 관계 등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많거든요. 과연 부모가 된다는 건 하고 싶은 걸 다 포기하는 건지 의문이 있었어요. 결국은 내가 용기 없음을 앞에 자식을 내세워 숨어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고 이 자체에 대해 ‘꿈’이라고 말해주는 고모부가 참 좋았죠.

 

이정수: 엄 선생님(김광섭의 고모부)은 특이한 어른이었어요. 흔한 어른인데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그게 이 책이 빛나는 점 같아요.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깊은 철학 같은 것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거든요.


문정수: 저희가 느낀 것도 그런 지점이에요. 누가 잘났고, 못난 건 없다는 거죠. 다 똑같고, 아름답고, 모두가 철학자라고 생각해요. 각기 다른 언어와 경험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뿐이죠. 방랑 다니면서 만난 분들은 사회적 기준에서 지식인, 배움과는 전혀 가깝지 않은 분들이거든요. 할머님들이 하신 말씀도 정말 기억에 남는 거예요. ‘세상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이제 살만하니까 오라하네’라면서 그러니까 지금처럼 즐겁게 살라고 하셨거든요. 그게 제겐 가장 큰 메시지였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하고 싶은 것 하라는 말이 대단한 걸 이룩하라는 의미가 아니잖아요. 그게 정말 가슴에 와 닿은 말씀이었어요. 우리가 길 가다 만난 사람들, 아주머니, 아저씨들 모두 철학자예요.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아요.


문정수: 진짜 죽을 뻔했어요. 신축 원룸텔이었어요. 아직 시멘트 청소도 안 돼 있고, 비닐도 안 뜯고, 분양 직전의 상태였는데요. 그때 들어간 거예요. 저희를 재워주겠다고 하신 분이 거기에 재워주신 거죠. 우리는 너무 감사했죠. 밤에 잘 데가 없었거든요. 갔더니 새 건물에 신축 빌라잖아요. 기가 막힌 거예요. 이불이 없으니 가지고 다녔던 이천 원짜리 돗자리를 깔고 잤죠. 아침에 일어났더니 방사능에 오염된 것처럼(웃음) 셋이 똑같이 너무 아픈 거예요.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그 척박한 여행 환경에서 하룻밤을 그 좋은 건물에서 재워주겠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하루 더 자라고 하시는데 셋 다 도망갔어요. 길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는 안 되겠더라고요.

 

이정수: 시멘트 독은 정말 무섭더라고요.(웃음)

 

길에서 만난 분들이 책 나온 걸 알면 정말 좋아하시겠어요.


김광섭: 전부 다는 아니고 좀 특별했던 분들은 차를 렌트해서 한 번 가볼까 해요. 만나서 또 얘기하고, 맛있는 거 먹고, 놀려고 하고 있어요.


다음 프로젝트가 있어요. 저희가 한옥을 지을 거예요. 장소는 모르고요. 책, 제작한 볼펜, CD 등을 다 모아서 처음에 가지고 갔던 이십 원 동전 두 개를 모아서 물물교환을 할 거예요. 이 물건들이 방랑을 떠나는 거죠. 계속 한옥이 될 때까지 물물교환을 하는 거예요. 물물교환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어느 날 한옥이 되면 처음 물건을 가져간 분이 입주식에 오시는 기회를 가지시는 거죠. 그 한옥은 청춘 문화 복합 공간으로 사용할 거고요. 지금도 저희 수익의 10%를 따로 모아두고 있어요. 저희 씨드머니는 20원이었지만 어떤 친구에게는 필요한 돈이 다르잖아요. 그걸 빌려주는 거죠. 기가 막힌 보고서는 필요 없어요. 눈빛을 보고 결정할 거예요. 그건 문방랑(문정수)이 체크할 거예요.

 

문정수: 이십 원의 주술사죠.(웃음) 교육, 여행 등 다양한 작당 모의를 하고 있어요. 이십 원이 바라는 세계가 있어요. 

 

이정수: 형들이 좋은 게 주도적으로는 형들이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지 말자고 하면 안 해요. 모두가 영혼의 울림이 있어야 해요. 마음이 가는 것만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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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즐겁게


일종의 생태계를 상상하시는 것 같네요.


문정수: 네. 지금 있는 청춘들의 꿈 융성이라고 하는 제도들은 정말 아름답지만 그 또한 경쟁이고, 시스템인 게 느껴져요. 저희는 돈을 지원하는 게 아니에요. 이십 원으로 상상하지 못했던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고, 즐겁잖아요. 이런 문화가 펼쳐졌으면 좋겠어요. 물물교환도 꼭 ‘한옥을 짓자’가 아니라 이 정신을 정말 좋아하고, 청춘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동참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 안에서 파생되는 이야기가 있을 테고요. 한옥으로 갈 때까지 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죠. 일종의 운동처럼 말이에요. 그 결과 공간이 딱 지어지면 그 과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동판에 기록할 거예요. 

 

이십 원 쁘로젝트, 이 ‘미친 방랑’은 성공했나요?


김광섭: 여러 갈래에서 의미가 달라요. 그런데 성공이냐 실패냐는 중요하지 않거든요. 이 방랑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내가 어떤 가치를 새로 알게 됐고, 알고 있던 걸 확인했고, 그게 중요해요. 제일 중요한 건 저희 셋이 이 방랑을 통해 하나가 된 것, 이게 가장 큰 가치거든요. 앞으로 살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세 명이 같은 방향으로 에너지를 썼을 때 훨씬 더 좋을 테니까요. 그냥 말하자면 이십 원 들고 서울에서 부산 갔으니까 성공한 건 맞죠. 저희가 정한 건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매일 즐겁지는 않았으니까 실패했을 수도 있어요. 다투지 않고 싶었는데 한 번 쯤은 다퉜으니 실패했다고 할 수도 있고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정수: 부산 도착해서 서울 올라오는 순간, 챕터 하나가 끝났고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1차 방랑은 도착했으니까 성공인 거죠. 계획은 했던 거니까요. 그렇지만 약간 다른 의미가 있어요. 저는 성공, 실패 생각은 안 해봤고 계속 갈 거니까요. 다음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생각밖에 안 했어요.

 

문정수: 저도 비슷해요. 성공, 실패라는 단어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아름다운 단어죠. 그런데 세상의 오물이 덕지덕지 묻다 보니 저는 성공이나 실패라는 단어가 싫어졌어요. 이십 원에는 그런 걸 생각해보지도 않았고요. 또 성공, 실패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우리가 즐거웠는가 안 즐거웠는가 그것인 것 같아요. 인생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죽을 때 저는 제게 ‘여행이 즐거웠니?’라고 물어볼 거예요. 좌충우돌이었는데 나답게 즐겁게 여행했다고 하면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거기엔 어떤 단어도 필요 없어요. 그래서 지금도 즐거운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기꺼이 덥고, 비오고, 돌풍이 부는 길에서 넘어져도 그걸 다 만나면서 걸어가는 거죠. 그게 너무 즐겁고, 아름답고, 이 친구들에게 고맙고, 무엇보다 재미있고요. 이십 원은 그렇게 우리의 기준, 생각으로 걸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아이다움’이 우리 셋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이십 원의 다음 프로젝트, 한옥 짓기도 세 분의 철학과 무척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김광섭: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이 정말 저희 마음을 잘 담아서 썼는데, 이 책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런 거 읽을 필요 없는 세상이요. 다 그렇게 살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안 살았나?’ 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문정수: 맨날 이 얘기를 해요. 멋있어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다 주체적이고, 경중을 떠나서 성공이나 실패라는 것 없이 각자 내 삶을 즐겁게 사는 거예요. 모두 그렇게 살고 있다면 이런 책은 필요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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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원 쁘로젝뜨 미친방랑문정수,김광섭 공저/이정수 사진 | 북하우스
그들은 그렇게 20원 들고 방랑길에 나섰고, 홍대 정문 앞을 출발한 지 16박 17일 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서울과 부산 사이에, 그리고 열여섯 밤 열일곱 낮 사이에 각기 다른 빛을 뿜어내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사람들을 만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이 품고 있는 진실된 욕구와 제대로 마주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과도 같았던 16박 17일의 방랑 에피소드가 드디어 한 권의 책에 담겨 나왔다. 책 제목은 그들의 프로젝트명이기도 한 [이십원 쁘로젝뜨: 미친방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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