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 “자주 조아리듯 책을 읽어요”
이 일 저 일 하면서 살다보니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너무도 적고 그래서 그 시간은 정말이지 귀해요. 그 귀한 시간에는 대개 책을 펴 들고 그렇게 펴 드는 모든 책은 소중해요.
글: 채널예스
201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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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있는 언제든, 독서는 즐거워요. 이 일 저 일 하면서 살다보니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너무도 적고 그래서 그 시간은 정말이지 귀해요. 그 귀한 시간에는 대개 책을 펴 들고 그렇게 펴 드는 모든 책은 소중해요. 자주 조아리듯 하고 책을 읽어요. 대부분이 독일 책이다 보니 좋은 책은 한 글자 한 글자 옮기면서 읽죠. 내게 의미가 각별한 책의 경우에는 더구나 옮기지 않으면서 읽을 수는 없어요. 기회가 닿으면 원고가 책이 되기도 했어요. 제 번역서들은 거의 다 그렇게 나온 책이에요.  (그래서 아래, 내 인생에 의미를 가지는 도서들 항목에는 나의 번역들이 들어 있다. 내 이름이 한 끝에 번역자로 들어 있다 해도 그 책들을 물론 내 책이 아닐뿐더러, 그 책들을 제쳐두고는 답이 되지 않아서, 몇 편만 넣은 것이다.)

 

지금은 대작 『파우스트』를 새로 번역하여 다듬고 있어요. 기존의 번역이 많은데도 새로 번역한 것은, 수십 년을 두고 책이 낱장이 될 때까지 읽으면서 품어온 소망 때문이에요. 운문의 보고인 『파우스트』를 나만의 언어로, 조금이나마 운문답게, 옮겨보고 싶었어요. 중요한 책인 줄은 다들 알면서도 막상 읽히지는 않는 『파우스트』를 조금은 더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고 싶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서로들 많이 참조를 하다 보니 국역들이 비슷비슷해져 버린 이 대작을, 마침 독일에서도 새 판본들이 나온 터라, 처음 번역인 듯, 나의 모든 경험과 힘을 쏟아 원전에만 집중하여 번역했어요. 『파우스트』를 독자에게 좀더 다가가게 할 수 있는 연구서도 동시에 집필 중이라 『파우스트』에 대한 구할 수 있는 책은 모두 섭렵해보려 해요.

 

최근 제가 쓴 『시인의 집』은, 시와 삶에 대한 물음표가 감당할 수 없이 커졌을 때, 한 시인의 삶의 자취를 찾아서 달려가고 말았던 행로의 기록이에요. 통상의 르포나 여행기와는 거리가 멀죠. 긴 모색의 길 끝에서 만났던, 지금은 거기 없는 한 시인에게 내가 던졌던 물음이자 그가 들려준 무언의 답이며, 인생의 무게를 시(詩)로써 감내했던 그들의 삶과 시의 전달이기도 해요. 그런 책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읽지야 않겠지만 읽으신 분들은 뜻밖에도 성심껏 읽어주신 것 같아요. 그 앞서 책, 처음으로 써본 에세이 『인생을 배우다』 역시 귀한 분들을 나에게로 데려다 줬어요. 감사할 뿐이에요. 그저 내 책을 읽어주셔서 감사한 게 아니고, 그런 책을 그렇게 읽는 분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기이할 만큼 큰 위로가 됩니다.

 

 

명사의 추천

 

토지 1-20권 세트
박경리 저 | 마로니에북스

<토지>가 출간되기 시작한 것은 나의 대학 시절의 가장 큰 사건의 하나였다. 이 작품은 모두의 자부심이었고, 그 선명한 인물들은 아직도 늘 내 이웃처럼 생생하다.

 

 

 

 

 

 

 

화두
최인훈 저 | 문학과지성사

작가 최인훈의 높은 문학성이야 일찍이 주목했지만, 작가가 자신의 거의 전 작품과 생애를 접목시켜 다시 소설로 쓴 이 방대한 작품은 나에게 하나의 경이였다. 그저 하나하나의 작품을 열거하고 그것이 태어난 토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헤치고 살아야 했던 험한 (분단) 시대와 그것을 통해 칼끝처럼 벼려진 역사의식이 선명한 작품이다. 막 냉전 시대가 마감되는 혼란한 시점에 동시대 세계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히고 적확한 지식인의 시선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

 

 

 

괴테 자서전 : 시와 진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전영애,최민숙 공역 | 민음사

자서전의 전범인 작품. 26세까지 밖에 다루고 있지 않음에도 결국 큰 예술가, 큰 인물이 되어버린 한 젊은이가 자신을 빚어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직접 번역했다.(최민숙과의 공역) 이 책을 잘 번역하기 위하여 그에 앞서 대시인 괴테가 전 생애에 걸쳐 쓴 시를 모조리 번역하기도 했다. (<괴테 시전집>)

 

 

 

 

 

 

카프카 : 프라하의 이방인
클라우스 바겐바하 저/전영애 역 | 한길사

내 생애 처음으로 번역했던 책. 삶과 양자택일의 대안일 만큼의 치열했던 문학에의 헌신이 그려져 있다. 내게 문학이 무엇인지, 무엇일 수 있는지 눈을 뜨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을 통하여 카프카가 내게 문학으로의 첫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에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괴테 서ㆍ동 시집 세트
괴테 저/헨드릭 비루스 편/전영애 역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괴테가 직접 공들여 단행본으로 출간한 유일한 시집. 나에게 시, 그리고 그때까지 낯설었던 오리엔트를 열어준 책이다. 만년의 괴테가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하피스의 시를 읽고 영감을 받아 쓰기 시작한 이 방대한 시편들은, 대시인의 다시 활짝 핀 시적 감성의 결실인 시편들뿐만 아니라, 그 산문 부분은 지금도 "오리엔트학의 마그나 카르타"라고 불리울 만큼 그 분야의 고전이다. 번역을 다듬고 그에 대한 연구서를 함께 써서 출간하는데 18년이 걸렸다. 연구서는 그 분야의 대석학 헨드릭 비루스 교수와의 공저 형식이어서 보람이 그만큼 더 컸다. 숨 가쁘게 읽었던 헤겔의 <미학> 같은 조직적인 론(論)도, 이 책의 직관적 기술의 바탕에서 가능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역사 앞에서
김성칠 저 | 창비

오래전에 읽었던 책. 그 험한 동란의 와중에도 하루하루의 일기로 그것을 기록해간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 오로지 역사 앞에서의 사명감으로 가능했을 그런 작업이 숭고해 보였고 감사했다.

 

 

 

 

 

 

 

바로크
임영방 저 | 한길아트

서양 미술사에 대한 높은 안목과 방대한 지식을 보여주는 책. (필자의 저작이 많건만) 이 책이야말로 필생의 업적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곧바로 드는 책. 애석하게도 정말로 마지막 책이 되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이런 높이의 성취가 국내 학자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이 너무도 반가웠다.

 

 

 

 

 

 

소년이 온다
한강 저 | 창비

시대의 상처를 이제 이렇게 기록하며 문학으로 수렴하는 작가가 있다는 것 - 기억이야 참혹하지만, 감사하고 든든한 일이었다.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곽아람 저 | 아트북스

제자의 첫 책. 나는 모든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나의 책>을 묶어보게 하는데 그 가제본은 누구에게나 첫 "책"이다. 그랬던 만큼 여러 해 지나서, 그들이 정말 책을 내게 되면, 나에게도 한 권씩 들고 오곤 한다. 그런 책을 받을 때의 기쁨은 말할 수 없다. 곽아람 기자는 어느덧 스스로의 책 시리즈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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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애 #명사의서재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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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ling2000

2017.07.04

전영애 선생님
선생님 같은 글을 언젠가는 저도 쓸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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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클라우스 바겐바하> 저/<전영애> 역

괴테 자서전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전영애>,<최민숙> 공역

역사 앞에서

<김성칠>

출판사 | 창비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곽아람>

출판사 | 아트북스

바로크

<임영방>

출판사 | 한길아트

소년이 온다

<한강>

출판사 | 창비

괴테 서ㆍ동 시집 세트

<괴테> 저/<헨드릭 비루스> 편/<전영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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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애

서울대를 졸업하고, 1996년부터 동 대학교 독어독문학과교수로,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독일프라이부르크고등연구원의 수석연구원, 뮌헨대학교의 초빙교원을 겸임했다. 2011년 세계적인괴테 연구자들에게 바이마르 괴테학회가 수여하는 ‘괴테 금메달’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2020년 삼성행복대상 여성창조상, 2022년 한독협회의 제11회 이미륵상을 수상했다.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파울 첼란의 시》《괴테와 발라데》《서·동 시집 연구》《독일의 현대문학?분단과 통일의 성찰》 등 많은 연구서,《카프카, 나의 카프카》《프란츠 카프카를 위한무지개》 등의 시집을 국내와 독일에서 펴냈으며《파우스트》《서·동 시집》《괴테 시전집》《데미안》《변신·시골의사》《나누어진 하늘》《나와 마주하는 시간》《은엉겅퀴》《그림동화》등 60여 권의 독일 문학을 우리말로 옮겼고 산문집《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인생을 배우다》 등을 통하여 소개했다. 한 번 역자의 손에서 나온 국역 괴테 전집을 기획하여 번역과 출간에 힘을 쏟고 있다. 2014년 여백서원을 짓고, 이어 괴테마을을 조성해가며 운영하고 있다. 여백서원에서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 ‘월마토’ 강연회, 셋째 주 토요일 낭독회,《파우스트》독회 등 여러 개의 독회, 작은 음악회, 청년인문강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보다 넓은 나눔을 위해서 ‘괴테할머니TV’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