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차트에만 역주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소소하게 시작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점점 많은 관객 수를 채워가는 <인사이드 아웃>을 보자면, 참 그럴 법 하단 생각이 든다. 흥행 역주행의 이유가 딱히 방학이 시작되었기 때문도 아니다. 아이와 함께 찾았다가 부모들이 더 좋아한다는 평가를 얻으면서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그래서 아주 오래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 그리고 팍팍해진 마음에 가려졌던 소소한 감정의 소중함을 느껴보고 싶은 어른들이 점점 더 많이 극장을 찾고 있다.
1995년 픽사와 디즈니가 함께 했던 <토이 스토리>는 인형이라는 사물에 언어와 인격을 부여하면서 어른이 되면서 쉽게 버리는 어린 시절의 상상력을 반추해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도 좋아했지만, 어린 시절을 반추하고 소중한 기억을 되짚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픽사는 한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 무의식과 감정에 인격을 부여한다.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 다섯 가지 감정이 함께 살고 있다는 상상은 상상 그 이상의 그림이 되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주인공은 11살 소녀 라일리와 그녀의 두뇌 속에 살아가는 다섯 가지 감정이다. 미네소타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라일리는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캘리포니아로 이사 오게 된다. 이사를 오는 내내 라일리는 좋은 집과 환경을 상상하지만, 막상 현실은 기대 이하다. 맛있는 피자집도 없고, 낡고 복잡한 동네에 집은 작고, 이삿짐 차가 잘못되어 가구가 채워지지 않은 집은 휑하게 비어 있다. 침대도 없어 침낭에서 자야 하는데 학교 친구들은 낯설어 가까이 가기 어렵고, 미네소타에 남아있는 친구는 자신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쉽게 적응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라일리 머릿속 다섯 감정들도 덩달아 바쁘다. 특히 라일리의 기쁨을 담당하는 기쁨이는 라일리를 웃게 만들기 위해 종일 고군분투해야 한다. 라일리의 감정이 복잡해질수록 슬픔이는 조금 더 분주해 진다. 그러던 중 컨트롤 타워에 보관된 라일리의 핵심기억을 보호하려다가 기쁨이와 슬픔이는 기억 섬으로 빨려 들어간다. 때문에 라일리에게서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사라져버린다.
<인사이드 아웃>은 우주만큼이나 복잡하고 내밀하면서도 스펙터클한 개인의 내면과 인간의 두뇌 속을 다섯 명의 귀여운 친구들의 소동을 통해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이 과정은 꽤나 설득력이 있는데, 상상 이상으로 인간 내면과 두뇌를 정교하게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매일 생성되는 새로운 기억은 감정별로 다른 색깔을 지닌 구슬로 시각화 했고, 기억이 모여 성격이 되고 그것이 하나의 거대한 섬을 이룬다는 상상력 또한 설득력이 있다. 또한 하루 동안 만든 기억이 장기 기억이 되거나, 쓰레기장으로 버려져 사라지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인사이드 아웃>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피트 닥터 감독은 최근의 인지과학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또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 등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허무맹랑한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로 직조해 낸다. 여기에 소멸되는 기억과 잠든 사이 기억의 일부를 꿈으로 연출한다는 에피소드, 잊고 지내는 것 같지만 내면을 떠도는 상상 속 친구 ‘빙봉’이라는 설정을 통해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 혹은 잊어버리고 사는 것에 관해 끊임없이 자극을 준다. 그래서 각각의 핵심 기억에 따라 관객들은 웃었다가 울었다가 각자의 추억에 맞는 체험을 하게 된다.
본질적으로 <인사이드 아웃>은 힐링 영화이지만 동시에 어른과 아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라일리에게서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이 사라졌을 때, 그녀의 생활은 조금씩 깨어진다. 그리고 그 깨진 틈새로 소중한 기억이 사라지고, 가족과 친구에 대한 소소하지만 소중한 감정들도 사라진다. 늘 밝고 행복해야만 한다며 다른 감정들을 통제하려고만 했던 기쁨이는 라일리와 함께 훌쩍 자란다. 기쁨이는 슬픔이와 힘든 여행을 통해서 눈물은 한 사람의 슬픈 기억과 눈물이 균열의 틈새를 깁고,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쁨이 눈물을 흘리고, 슬픔이 활짝 웃게 되는 순간 라일리의 감정도 균형이 잡힌다는 철학적 사유는 <인사이드 아웃>의 가장 큰 미덕이다.
100분의 시간을 가득 채우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촘촘히 쌓인 개인의 성장담과 추억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다. 울다가 웃다가 또 울다가 우리의 머릿속에 기쁨과 슬픔이 제 역할을 반복하는 동안 관객들은 찢어진 마음의 틈새를 메우는 슬픔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되고, 묘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된다. 그렇게 관객들은 각자의 유년시절로 돌아가 추억에도 잠겼다가, 각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빙봉과 조우하는 순간도 경험한다. <인사이드 아웃>은 그렇게 노란 구슬과 파란 구슬, 그리고 형형색색의 구슬을 우리의 기억 속에 예쁘게 심어 주었다. 그렇게 <인사이드 아웃>은 아이의 머릿속이 궁금한 부모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추해 보고 싶은 청춘들도 모두모두 만족할만한 영화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마음의 소동을 겪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도, 이 영화를 통해 그 답을 찾아냈을지 모른다. 그렇게 픽사의 상상력은 현실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간질간질 거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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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달팽이
2015.07.30
기쁨이가 진두지휘하려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었는데, 기사 제목이 딱이네요.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해서 늘 나쁜 것만은 아니죠. ㅎㅎ
kokoko111
201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