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어땠나요.
여러분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멋진 하루였다거나, 오늘은 너무 즐거운 날이었다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아마 그렇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1년 365일 하루하루가 항상 축제일 수도, 소풍일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직장인이거나, 학생이거나, 나이 많은 노인이거나 어린 초등학생이거나 모두에게 하루하루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하루하루를 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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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돌아본 그날 하루가 초라할 수도 있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 수도 있고, 아무 일 없이 심심할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잔인한 날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 미상의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오늘 하루』(북로드)는 오늘 하루 그냥 열심히 산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전형적인 그림책이라기 보다는 소책자에 그림이 곁들여 있는 책을 펼치면 집안이 좀 어지럽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설거지는 하지 않았고, 침대는 정리되지 않았고, 바닥에는 빵가루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정황상 청소를 하지 않은 지는 좀 된 것 같습니다.
집 주인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이게 뭐냐고 하겠지. 게으르다고 하거나 지저분하다고 할 거야. 그리고 아침부터 대체 뭘 한 거야라고 묻겠지”
하지만 주인공은 당연히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아이가 잠들 때 까지 어부바를 해주었어.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안아서 달래주었고.
아이랑 숨바꼭질을 했고.
아이를 위해 장난감을 흔들었어
삑 소리가 나도록 눌러댔어
그네를 흔들고 노래를 불렀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르쳤어.“
아시겠지요. 어지러운 집의 주인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어부바를 해주고,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안아서 달래주고, 아이와 숨바꼭질을 하면서 보내는 하루가 어떨지 아시겠지요. 당연히 설거지는 쌓이고, 집안은 엉망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대체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뭘 한 걸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를 돌봤지만 그게 뭐 대단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엄마의 머리에 마음에 스멀스멀 기어듭니다. 아이를 키우고, 하루 종일 아이 뒤치다꺼리를 해본 적이 있는 엄마라면,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
주인공 엄마는 이렇게 자신을 다독입니다.
“오늘 하루 나는.
눈이 맑고 머리카락이 몽실몽실한 이 아이를 위해
무척이나 중요한 일을 한 거야.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오늘 할 몫을 다 한 거야.“
엄마가 아이를 꼭 껴안고 있는 마지막 장면에선 엄마의 수고로움이, 아이를 향한 사랑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합니다.
이는 뉴질랜드 한 육아지원 센터 벽에 붙어 있던 작가 미상의 글이다. 일본의 한 잡지 편집자가 보고 사진을 찍어온 뒤, 일본 여성시인 이토 히로미에게 번역을 부탁해 가다듬은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아이를 돌보고, 키우면서도 도대체 내 삶은 뭘까라고 고민하는 많은 엄마들에게 위로가 되는 책이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아니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하지만, 때론 이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됩니다. 화려하고 빛나는 것만 아름다운 것 같은 세상에서, 담담하면서도 아름다운 빛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그것이 갖는 아름다움도 이야기해줍니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것도 이런 일상 속의 하나입니다. 우연히 접한 작은 책 한권에 위로를 받고, 그 책에 기대 자신의 삶을 다시 생각하고, 의미를 발견하고, 그래서 또 다시 출발할 힘을 얻는 그런 일상 말입니다. 그런 하루라면, 꽤 아름다운 하루 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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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작자 미상 원저/이토 히로 편역/시모다 마사카츠 그림/노경아 역
이토 히로미도 밝혔듯이 이 글은 그야말로 “찌든 삶 속에서도 어떻게든 열심히 아이를 키우는 모든 어머니에게” 전해주고 싶은 글이 담겨있다. 담담하게 엄마의 하루를 그려낸 이 글이 주는 울림은 아이 양육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느라 지쳐 있는 엄마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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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일간지 기자로 일하고 있다. 딸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그림책 세계에 매료됐다. 그림책 『불할아버지』 어린이책 『알고 싶은 게 많은 꼬마 궁금이』 『1가지 이야기 100가지 상식』 등을 썼고,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 을 공저로 출간했다. 현재 문화일보 문화부에서 영화와 어린이ㆍ청소년책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