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속마음을 얘기해주는 아저씨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어요”젊은이가 이런 바람을 이야기하면 인생사 산전수전 겪어본 나이 먹은 이들은 속으로 ‘순수한 사랑? 개나 주라고 그래. 그런 것 믿다가 다치지나 말아’는 마음이지만, 차마 대놓고 말은 못한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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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어요”

 

젊은이가 이런 바람을 이야기하면 인생사 산전수전 겪어본 나이 먹은 이들은 속으로 ‘순수한 사랑? 개나 주라고 그래. 그런 것 믿다가 다치지나 말아’는 마음이지만, 차마 대놓고 말은 못한다. 대신,

 

“그래, 사랑은 순수해야 하지. 꼭 니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바래”

 

라는 덕담을 하기 일쑤다. 그게 참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상대가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봐 차마 살면서 경험한 사랑의 쓴 맛을 대놓고 말을 할 수 없는 법이다. 또 괜시리 남의 인생에 감놔라 배추놔라 훈수두는 꼰대는 더욱 되고 싶지 않다. 듣는 젊은이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때 상대의 표정에서 언뜻 지나가는 묘한 망설임을 놓치지 않는다. 뭔가 숨기고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더 물어보기는 두렵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프고 쓴 대답듣겠다고 물어본 것도 사실 아니긴 했다. 그러니 사랑이나 결혼관련한 대화는 갈수록 겉돌기 마련이다.

 

여기에 대놓고 할 말을 하는 아저씨가 한 명 있다. 그는

 

“순수한 사랑 어쩌고 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못생긴게 아닐까. 남자들이 자기에게 작업을 걸지 않으니 순수한 사랑론을 내세워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끌어들이려는 속셈이 아닐까. 순수한 사랑이란 기본적으로 섹스가 없는 것이야. 즉 섹스로 가는 길이 막힌 것이지. 순수한 사랑으로 포장하면서 할 것은 다 하는 사람도 있어. 신주쿠에서 중년 회사원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여고생이 자기 남자친구에게는 손도 못잡게 하더라. 우리 사랑은 순수하니까라고. 말이 되냐”

 

그는 또,

 

“남자들의 최종목표는 다름아닌 몸을 합치는 것이야.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언제나 전전긍긍하며 기회를 엿본다고. 순수라고 말은 하지만 말이야. 무엇이 진짜 순수인지도 모른 채 순수한 사랑이라는 허울뿐인 이름으로 욕망을 억누르는 쪽이 오히려 더 불순하다고 생각해.”

 

라고 주장한다. 이런 대담하고 한 편으로 속시원한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아저씨는 일본의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다. 그는 ‘소나티네’, ‘키즈 리턴’, ‘자토이치’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으로 한국에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일본에서 신랄한 만담 개그로 유명한 코미디언이다. 그의 전작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등에서도 일관되게 자신의 독특한 생각을 펼쳐왔다. 이 책 ‘모두들 하고 있습니까’에서는 그의 연애, 섹스,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필터없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성취를 이룬 한 중년 남자가 생각하는 사랑, 가족, 자식에 대한 솔직하고 당당한 이야기들로, 보통의 아저씨들이라면 차마 대놓고 하지 못할 말을 참으로 용감하게 대놓고 하고 있어서 같은 아저씨의 한 명으로 ‘이래도 되나’ 싶은 조마조마한 마음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진짜 사랑인지 판별하기 위해 “날 위해 죽을 수 있어?”란 질문을 흔히 한다. 그러나 이 말에 “난 너를 위해 죽을 수 있어”란 말을 듣는 순간 무서워진다고 한다. 말도 안되는 공갈이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당신 아이를 낳아줄 수 있어”와 같은 수준으로 섬뜩한 말이다. 차라리 “사랑을 위해 나를 죽일 수 있냐”고 묻는 것이 낫다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 죽음으로 그 사랑을 보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었다면서 사랑을 완성한 사람은 죽으면 그만이지만 남은 사람은 평생 그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야하니 불공평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남녀 사이의 거짓말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남자는 상대를 위해 거짓말을, 여자는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런 면에서 남자에게 거짓말은 여자의 ‘화장’과 비슷해서 말로 화장을 하는 것이 거짓말이다. 또 애매한 거짓말을 하느니 “애인과 데이트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상사에게 말해서 야근을 빼달라고 하는 것 과 같이 반대로 치고 들어가서 상대가 부탁을 거절 할 경우 남자답지 못하다고 자신을 인식하게 만들어서 할 수 없이 허락하게 만드는 작전을 펼치라고 조언한다. 사실 그것도 거짓말이지만 결국 얻을 것을 얻는 고등기술이라고 조언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자신을 무엇보다 사랑한다. 자신을 열심히 사랑하고 나서도 철철 흘러넘치는 사랑이 있으면 그중 흘러넘치는 받침에 넘친 분량만큼만 누군가에게 ‘자!’하고 주고 싶어진다. 그는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그러고 남는 이런 정도를 나눠주는 사랑이 현실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내 모든 것을 다 주는 그런 사랑은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고. 그런 면에서 사랑의 결실이란 결혼에 대해서도 냉정한 자기 생각을 말한다. 그는 결혼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사람과 하라는 중매장이의 말을 인용한다. 결혼으로 평생 꿈꿔온 대로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미칠듯이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으로 굵은 마음의 끈으로 이어져있다고 믿기 쉽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 그딴 것은 없다.

 

부부는 어차피 각자 자식이나 돈으로 맺어져 있는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더욱이 마치 남편이란 원양어선을 타고 돈 벌러 간 사람같이 사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꼭 그렇게 사는데 만일 매일 집에 붙어있었다면 따뜻한 가정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인데 그러면 긴장도 없고 애틋함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집에 들쑥날쑥 들어간다. 아이들도 “저 아저씨 이상해”라고 여기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줬고 잘 자랐다. 아버지에게 의존하다가는 망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원양어선타고 돈벌러 간 선원이 어쩌다 집에 가면 아내는 친절히 잘 대해주고, 아이들도 “아빠!”하면서 반기는 것과 같은 그 정도가 딱 좋은 것이다. 그러니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을 꿈꾸지 말고 “또 다녀올께”가 제일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다운 독설로 마무리한다 ‘여기저기에 항구를 만들어두고서’라고.(!)

 

기타노 다케시가 하는 말을 금과옥조로 마음에 새겨놓고 하나하나 지키라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 사람들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더 이상 상대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다. 그저 쿨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여긴다. 답답한 마음에 조언을 구해도 남의 인생에 개입하기 부담스러우니 좋은 이야기를 해줄 뿐이다. 결국 중요한 인생의 결정은 갈수록 나 혼자 알아서 해야하고, 그 책임도 오롯이 혼자 져야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때 좋은 얘기만 듣다보면 진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한쪽으로 치우칠 위험이 있다. 특히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그렇다.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타당한 결정을 했으면 하는데,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면을 투사하기 쉽고, 이 부분의 비현실성이 타인의 조언에 의해 교정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기타노 다케시의 ‘모두들 하고 있습니까’는 내 주변에서는 멸종되어버린 ‘쓴소리 해주는 사람’을 대신해줄 책이다. 꼭 따라야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생각도 있구나’라는 태도로 한 번쯤 읽어보면치우치기 쉬운 마음의 균형을 잡는 데 충분할 것이다. 그만큼 한 쪽으로 편향된 이야기이니까. 양비론이 지긋지긋한 사람에게도 좋은 대안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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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하고 있습니까 기타노 다케시 저/권남희 역 | 중앙북스(books)
『작가, 화가, 배우, 코미디언 등 전방위 예술가이자 천재 영화감독이라 불리는 기타노 다케시가 쓴 어른을 위한 남녀 이야기. 상식과 관습을 조롱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통념을 비틀어보는 독설가로 유명한 그가, 이번에는 사랑과 연애, 결혼과 섹스에 대해 작정하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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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모두들 하고 있습니까 #19금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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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i

2015.08.09

흔하디 흔한 마초 아저씨네요. 여지껏 소개해주신 책 중 제일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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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인

2015.05.28

와... 저에게 꼭 필요한 책입니다. 바로 리스트에 담을게요.
교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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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