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같은 일을 해도 같은 일이 되지 않는다.”
오래된 라틴 속담이다. 얼핏 모순되는 말처럼 느껴지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얼굴이 같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생각도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하물며 기후가 다르고 풍경이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무엇인가를 다르게 만들어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다만 현대에 들어 기계에 의해 대량생산으로 동일한 물건이 복제되어 생산되는 시대가 되면서 우리의 생각과 문화 또한 동일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른바 명품이라는 것도 남과 다른 개성적 소비를 의미하는 듯이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네가 가진 것을 나도 가지고 싶다’는 동일한 것을 추구하는 소비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이렇게 서로 같아지려고 하는 욕구는 가깝게는 왕따와 같은 따돌림에서, 멀게는 중세의 마녀사냥 같은 참혹한 비극을 초래했다. 서로 같아지려는 욕구, 즉 동일화의 추구는 이렇게 폭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문화는 끊임없이 서로 다른 것들끼리 충돌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 충돌 대신 동일화를 추구했다면 인류의 문화는 새로움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문화의 충돌과 변화를 설명하는 문화충돌Culture Shock과 문화접변Acculturation의 논리이다.
서로 다르기에 조화가 생기고 서로 같기에 다툼이 생긴다는 것이 원효元曉가 설파한 화쟁和諍의 핵심이다. 이를 문화에 적용하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생기는데 그 충돌 과정에서 파괴되기도 하지만 그 충돌을 해소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이 생기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무질서하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없이 아기가 태어날 수 없듯이 변화는 자연환경과 시대의 환경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진행된다. 그것은 계절이 찾아오는 이치와도 다르지 않다.
현대의 문화는 자연의 영향보다는 시대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 그로 인해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대량생산에 기초한 논리에 영향을 받고 동일성의 추구라는 상상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제기된 것 가운데 하나가 인문학이다. 과학과 기계를 토대로 한 현대 문명에 대한 인류의 문화적 대응 가운데 하나가 인문학이다. 인문학에 대한 열망이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닌 거센 열풍이 되어 불고 있는 것은 위에서 간략하게 밝힌 인류 문화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다만 인문학에 대한 열망에서 간과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면 인문학은 지식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지식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문학은 수능을 위해 암기하는 단편적인 또는 단절된 지식이 아니다. 인문학은 백과사전적인 지식의 모음은 더더욱 아니다.
인문학은 인류 문화가 그래왔던 것처럼 지속적인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변화의 과정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요즘 화두인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은 시간에 따른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풀어내는 것 역시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살아오는 과정에서 생겨난 변화, 즉 고난을 극복하고 얻는 가치나 그 과정에서 얻은 삶의 의미를 풀어내는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은 다르다. 그러나 스토리 없는 스토리텔링이 있을 수 없다. 예부터 인류는 언제나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것이 신화이든 저잣거리의 소문이든 늘 귀를 기울여 듣고 남에게 전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중동 지역에서 1,0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고받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아라비안나이트Alf Lailah and Lailha, 천일야화라고도 함》이며 또한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SNS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인류가 이야기를 좋아한 것은 이야기에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삶의 변화가 이야기 속에 들어 있기에 그렇다. 다만 오늘날의 SNS는 대체로 스토리에 머물고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량생산된 동일한 물건처럼 그저 소비될 뿐이다.
이 글은 인류 문화의 변화 과정을 이야기라는 수단을 통해 풀어놓은 것이다. 말 그대로 이야기나 생각, 물질문화가 자연환경과 시대적 환경이 다른 곳으로 전해졌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변화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했다.
문화의 변화라는 주제는 수많은 사례들을 가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대학에서 수업하면서 어려운 개념이나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활용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모아놓은 것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 가장 좋은 수단은 역시 이야기이다.
기본적인 구조는 서로의 다른 문화를 인정하는 문화상대주의를 바탕에 두고 문화충돌과 문화접변이라는 문화적 논리를 토대로 삼았다. 또한 문화 전래의 두 가지 이론인 진화론이나 전파론보다는 변화와 교류라는 관점을 기초로 삼았다.
인문학은 높은 산을 올라가는 것과 닮아서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또한 길을 찾아 정상에 이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길을 오르면서 함께하는 사람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세상을 느끼고 생각하며 즐기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처럼 인문학 또한 우리 삶과 마주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공유하고 싶은 바람이 이 글에 담겨 있다.
2015년 3월
이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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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덕
한양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그 후 한양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아시아 문화, 종교 문화, 신화와 축제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화 읽어주는 남자》, 《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기행》,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신화》 등이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고민하는 힘》, 《주술의 사상》, 《일본인은 한국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