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 횡단보도에서 우산이 없는 나에게 자신의 우산을 내밀고 같이 신촌역까지 걸어 주셨던 이름도 모르는 아주머니, 나에게 인간의 깊이를 보여 주셔서 고마워요. 술집에서 내 머리카락 잡아당기며 일본에 돌아가라고 하셨던 옆자리의 술 취한 아저씨, 나에게 인간의 악함을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 지하철에서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자신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서 준 여학생, 나에게 인간의 희망을 보여 주어서 고마워요. (146쪽)
사람들이 환한 빛을 이야기 할 때 그림자를 생각한 사람. 사람들이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든 ‘개념녀’라고 생각하든 모두 반가운 사람. 방송인 사유리 이야기다. 엉뚱한 매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녀는 사색가다. 책을 많이 읽고, 사소한 순간에 사소하지 않은 것을 배우고,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이라는 사실 앞에 담담하다. 그러니 생각한다. 함부로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방송을 통해 보는 사유리의 모습은 사유리의 전부가 아니다.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모습도, 식당 주인 앞에서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모습도 모두 그녀다. 그녀가 에세이집을 펴냈다. 그녀는 세상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사유리의 첫 에세이집 『눈물을 닦고』는 그녀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생각했던 것들이 차분한 필치로 담겨있다. 사랑과 우정, 용기, 인연 등 개인적인 생각부터 차별과 정의처럼 무게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소신 있게 이야기한다. 놀라운 사건이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상이다. 그 이야기 속에서 사유리는 삶을 긍정하고 희망을 꿈꾸고 약한 존재인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사유리는 생각이 반짝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기를 쓴다. 그녀가 쓰는 일기는 종이에 적는 일기가 아니다. 머릿속에 쓰는 일기, 언제든지 다시 펼쳐볼 수 있도록 꼼꼼하게 기억하는 일기, 매 순간 느낀 것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일기다. 그 일기가 모여 책이 되었다. 그녀는 계속 일기를 쓰고 싶고, 계속 글을 쓰고 싶다. 오늘도 모든 것을 선생님 삼아 배우고 싶다.
정신이 자유로운 사람이 이상형
그림이 정말 귀여워요. 직접 그리셨죠?
글을 더 많이 써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보니까 그림으로 채우자, 하고 무리하게 했어요. 사실 별로 필요 없었어요. 글을 더 쓰고 싶었는데 부족해서 그림을 넣었어요.
어렸을 때 아이들이 밀린 일기 쓰느라고 그림 그리고 했던 그런 거였군요?
맞아요. 초딩 그림이었어요.
재주가 많아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시고요.
감사합니다. 여기에 제가 아끼는 친구들이 나와요. 조정치와 정인(223쪽 그림)이에요. 제가 힘들 때나 행복할 때 조정치와 정인을 항상 그려요. 두 사람을 많이 좋아해서요. 휴대폰 메신저 단체방도 있어요. 그래서 정인, 조정치한테 항상 감사하고요. 조정치, 정인한테 말했더니 웃었어요. 또 저도 있어요. 저도 몇 개 나와요. 여기 알파카라고 하는, 라마에 타고 있는 저예요(39쪽 그림). 조정치, 정인이 항상 나와요. 저작권 침해 때문에 언젠가 고소당할 거예요. 똑같이 생겼어요.
정신이 자유로운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하셨는데 흔치 않죠? 어떤 사람이 정신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흔치 않은데 찾아보니까 있어요. 한국에서 진짜 정신에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봉원 씨예요. 이봉원 씨는 때가 안 묻는 것 같아서 이봉원 씨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요.(웃음)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보다 잘 나가는 사람한테 아부하고 이런 거 전혀 없는 거예요. 정말 그냥 모두에게 착한 거예요. 그런데 그건 노력해서, 어떤 경험이 있어서가 아니라 원래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요. 뭘 해도, 어떤 위치에 있어도 때가 안 묻어요. 그걸 박미선 언니한테 말했더니, 박미선 언니도 그렇다고 느낀대요. 정말 제가 그런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사람이 사업하면 망해요. 그래서 사업 안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착해서(웃음).
정신이 자유로운 사람이란, 차별이나 편견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인 것 같은데요. 책에서도 차별, 편견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셨고요. 실제로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외국인이라서’ 라고 하는 것보다 모든 나라 사람에게 있어요. 차별하는 사람이 모두에게 차별해요. 옆집 애 대학교 안 나왔어, 옆집 가족이 그렇더라, 부터 시작하고요. 차별하는 사람이 계속 차별을 해요. 나는 커피 맛있는데 걔는 오렌지 주스 맛있더라, 부터 시작하고요. 차별하는 사람은 한계가 없더라고요. 그런 사람은 어느 나라에도 있고, 인간은 어느 시대도 있는 것 같아요.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성애라고 하는 대목에서 사유리 씨가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면이 엿보였어요. 그런데 혹시 여자로 태어난 걸 후회한 적이 없었나요?
많아요. 제가 남자라면 화장도 안하고 그냥 비치샌들 신고 밖에 나갈 수 있는데, 여자라서 예뻐야 해요. 특히 한국에서는 어리고 예뻐야 되는 압박감이 더 큰 것 같아요. 외모나 다른 것도요. 남자는 그런 거 별로 없어서 능력만 있으면 받아주거나 그렇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 생각하면 ‘여자로 태어나 힘들다.’라고 느껴요.
그런 부분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는데요.
아유, 신경 써요. 다이어트는 요즘 안하는데요. 강남이 제가 화장 안하면 너무 못생겼다고 TV에서 말했어요. 걔를 죽여야 돼요. 언젠가 걔 복수할 거야. 걔가 요즘 싸가지가 없어요(웃음). 서로 친해요.
평소 책을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요.
요즘 책을 별로 안 읽는 것 같아요. 읽는다고 하면 더 있어 보이는데, 핸드폰 있다 보니까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핸드폰 하게 돼요. 나쁜 습관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책을 자주 읽었는데 요즘 안 읽으니까 다시 한 번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느꼈어요.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세요?
저는 다큐멘터리 책만 읽어요. 소설을 사실 안 좋아해요. 초밥 가게 하는데 초밥 안 먹는 사람처럼 제가 소설, 에세이, 특히 어드벤처 이런 종류를 싫어해요. 영화도 러브 스토리 같은 것을 싫어해요. 그런데도 쓰고 싶으니 참 신기해요. TV도 다큐멘터리만 프로그램이 좋아요. <그것이 알고 싶다>와 <서프라이즈>요. 제 꿈이 <서프라이즈>,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거였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는 범인밖에 못 나와서 포기했어요.
『언씽커블』이나 빅터 프랭클 등이 여러 번 언급되는데 혹시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제가 빅터 프랭클이라고 하는 유대인 박사 책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 사람의 영향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제가 유대인 사람이 쓴 것, 유대인 사람과 관련된 것, 유대인 교육하는 법, 이런 책들을 무척 좋아해서 많이 읽는 것 같아요. 그런 책에서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그냥 선생님 같이 느껴요.
한국에서 아직 여자가 혼자 택시를 타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남아 있지만 수많은 택시기사 중에 몇 명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기사님 전체가 욕을 먹게 되어 안타깝다. 만약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택시기사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잘못한 사람의 직업이 우연히 택시기사였던 것뿐이다. (144쪽)
모든 사람에게 배운다
택시기사 에피소드에서 사소한 깨달음에 대해 언급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 사람한테 배우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 못하니까 한국어 숙제를 하려고 커피숍에 가잖아요?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 다 선생님인 거예요. 이거 몰라요, 하면 다 가르쳐줘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저의 선생님이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해요. 기사님도 전부 한국말도 잘하시고, 오래 사셨고, 좋은 사람 정말 많아요. 그리고 아저씨들이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타다 보면 가끔 이상한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 좋은 사람이 많아요. 저는 도사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도 많이 만났어요. 그런 사람들한테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또 들려주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여자 택시기사분이 있었어요. 전화번호도 서로 받았어요. 강아지를 키우신대요. 저도 강아지 키우니까 가끔 문자도 해요. 아들이 엄청 잘 생겨서 연예인 될 수도 있다고 해서 봤는데 그냥 많이 멋있진 않았었어요(웃음). 엄마 눈으로는 장동건보다 멋있다고 저한테 계속 말했어요.
방송인이시고, 알려진 사람이라 처음 본 사람에게 연락처 주지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 아주머니는 TV를 아예 안 보셨어요. 처음에 저를 태웠을 때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상암동 간다고 하니까 상암동 왜 가냐고 물어보셔서 제가 MBC에서 일한다고 하니까 작가라고 생각하실 정도로 아예 몰랐어요. 저를 알고 있다고 해도 괜찮아요. 제가 진짜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 문제없어요.
사유리 씨가 긍정적이고 편안하기 때문에 상대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플러스의 사슬’(23쪽)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느낌이네요?
제가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사람들도 편하게 되니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잖아요? 만약 너무 부정적인 사람 많이 만나면 저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사기꾼 같은 사람이 다가왔어요. 그러면 저는 ‘나도 그런 면을 가지고 있는 건가?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엄청 성격이 급해요. 하루 이틀 같이 있으면 사람들이 다 알아요. 커피 시키잖아요? 빨리 빨리 나와야 돼요. 성격이 누구보다 급해서 한국 친구들이 이렇게 급하면 안 된다고 천천히 하라고 해요. 다행히 제 주변 한국 친구들이 한 명도 급한 사람이 없어요. 저를 받아들인 사람이다 보니까(웃음). 성격을 천천히 하고 싶어요. 마음이 커야 되는 것 같아요.
“아기가 그네를 탈 때 부모가 아기의 등을 밀어주잖아. 넌 나의 등을 밀어서 그네를 태워 줄 생각은 하지 않아도 돼. 내가 너에게 했던 것처럼 네 자식의 등을 잘 밀어줘야 한다. 사유리, 그 순서를 꼭 지켜야 해. 네 자식도 너에게 잘해 주는 것을 바라고 살지 마라. 네 자식의 아이, 네 손자에게 잘해주는 것을 바라.”(127쪽)
부모님에 대한 따뜻한 추억이 많습니다. 참 좋은 부모님을 두신 것 같아 부러웠어요.
특히 제가 존경하는 게 우리 엄마예요. 엄마가 저보다 훨씬 긍정적인 사람이라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사실 어머니만큼 긍정적으로 살 수도 없어요. 저는 좀 더 예민한 부분이 있어서요. 그런데 엄마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엄마에 대한 순간순간의 기억이 있는데요, 세 살 때부터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만약 아이가 생기면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아기니까 모르겠지,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어머니에 관한 첫 기억이 무엇인가요?
세 살 때 수영장에 갔는데 수영복을 거꾸로 입었어요. 부끄럽다는 마음은 없었는데 불편했어요. 그때가 제일 처음 기억이었어요. 엄마는 별로 신경 안 써줬어요. 바로 잡아줘야 하는데 엄마는 별로 신경 안 쓰니까 약간 불편했던 그 기억이 제일 처음에 있어요. 신기해요.
“나에게 주어진 고뇌를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190쪽)라는 대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제가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읽고, 그 이야기를 보면서 어떤 슬픈 일이나 힘든 일도 낭비할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슬픈 일도 낭비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아무래도 일본식 표현으로 하는 게 있어서 몇 부분은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오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음식도 그렇잖아요. 모든 음식을 쓰는 사람도 있고, 별로 필요 없다고 버려 버리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는 다 음식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생에 낭비되는 게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통해서 이유 생기면 시간 낭비, 인생 낭비도 아닌 것 같이 느껴요.
“나는 후회도 사랑한다”(198쪽)라고 하신 것과 같은 맥락이네요.
슬픈 일도 이유를 찾아서 가치를 두면 낭비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해서 쓴 것 같아요. 연애도 그렇잖아요. 그 남자와 헤어져야겠다, 잊어버려야겠다, 하면 잊어버리지 못해요. 차라리 평생 좋아하겠다, 라고 하면 사실 그렇게 힘들지 않거든요. 무조건 자기 마음을 강요하면 오히려 그것에 집중하게 돼요. 내버려두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편안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땐 무엇을 해도 편안하지 않아요. 힘든 시기 있으면 순간순간 너무 시간이 길게 느껴져요. 자기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사람처럼 그러는데 지나가면 힘든 시기가 반갑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런 힘든 시기가 있으셨어요?
특히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항상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 남자랑 결혼 안 해서 다행이다, 라고 몇 년 후에 알게 됐어요(웃음). 사람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모든 것에 인연이라고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만약 고정 이야기가 왔는데 뭔가 잘 안 돼서 못 들어갔어요. 그때는 그냥 인연 아니다, 인연 아닌 걸 무리하게 하면 다칠 수 있다, 라고 생각해서 지나가는 게 더 좋다고 느낄 때가 있으니까요. 인연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혹시 이와 반대로 너무 잘 되고 그럴 때 불안하기도 한가요?
오히려 더 불안해요. 왜냐면 내려가고 있으면 올라갈 일밖에 없잖아요. 올라가고 있으면 내려갈 수밖에 없으니까 오히려 그럴 때는 더 조심스럽게 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많이 칭찬해줘야
균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것에 가치를 안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연예인이 되거나, 인정받거나, 고정 되거나, TV 나오거나, 돈 많이 벌거나, 출연료 올라가면 사람들이 오해해요. 자기가 레벨이 올라갔다고요. 그렇지만 사실 이건 하나의 일이에요. 그것에 가치를 두었다가 자기가 내려가면 자기의 모든 게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게 되잖아요. 내가 어떤 식으로 일을 대하고 어떤 식으로 맞아주는지를 생각하고 살면 그것 자체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결과만 봐요. 결과만 보고 자기가 만족하지 못하면 무조건 우울하게 돼요. 자기 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몇 개월 전에는 일을 많이 했는데 이번 달에 일이 많이 없어요. 옛날이라면 스트레스 받았을 텐데 지금은 그러면 그 사이에 나는 어떤 식으로 해결했는지에 대해서만 가치를 두려고 해요.
예전에는 그랬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변화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좀 편안해진 것 같은데요.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편안해진 것 같아요. 혼자 스스로 깨달은 것이에요. 나이가 많아서(웃음). 쓸데없이 나이 먹는 거 아니기 때문이에요.
어느 학자는 이야기된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고 했는데요. 자신의 생각, 아픔과 슬픔, 불안, 혹은 기쁨까지 이렇게 이야기로 풀어낸 사유리 씨는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매일 일기를 쓴다고 했는데 그것이 저자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일기를 안 써요. 책에서 일기 쓴다고 한 것은, 종이에 쓴다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만 쓴다는 거였어요. 어떤 순간, 매일매일 머릿속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 것 같아요. 머릿속에서 항상 생각하고 그것에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잊어버리지 않고요. 어떤 순간에 어떤 느낌을 받았다면 내가 거기에 어떤 식으로 해결을 하고 어떤 식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어떤 행동하는지에만 집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누가 상처를 줬어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상처를 어떻게 줬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잖아요. 저는 제가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그 사람한테 어떻게 대화를 하고 어떤 식으로 극복했는지에만 집중해요. 그러면 그렇게 힘든 일이 없어요. 누가 나에게 상처 줬다, 욕했다, 그것만 기억하면 스트레스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 이후에 나는 어떤 식으로 대처했다, 이런 식으로 해결했다, 이런 식으로 그 사람에게 지지 않고 극복할 수 있었다, 가 사실 더 중요하고 그것에만 가치를 둬야하는데 말이에요. 자기가 자기를 많이 칭찬해줘야 돼요. 누구한테 말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그걸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 안 받는 방법인 것 같아요.
이런 생각에 영향을 준 것들이 있나요?
힘들었던 시간들인 것 같아요. 책을 읽어도 사실 힘든 일이 별로 없으면 동의할 수 없거든요. 예전에는 셰익스피어 읽고 ‘왜 이렇게 재미없는 게 세계에서 인기가 있지?’ 라고 생각했는데요, 그건 셰익스피어라고 하는 책이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거기까지 따라갈 수 없는 제가 문제였던 거예요. 그래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책을 읽으면 책을 깊게 알게 되고 배우게 되니까 힘들었던 시간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화가 나고 그렇죠. 예민하니까요 계속 생각하게 돼요. 그럴 때 욕하고 끝나는 게 복수가 아니라 그 일에 긍정적인 이유를 만들면 제가 이기는 거예요.
“악의적인 말과 행동에게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좋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이다.”(176쪽)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든 반가워요
방송과 책에서의 모습이 사뭇 다릅니다. 대중이 어떤 쪽을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이 저를 ‘바보다’라고 생각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반가워요. 어떤 쪽을 봐달라고 제가 강요할 수도 없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이 없는 것 같아요. 느끼는 대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상관없는 것 같아요. 스캔들 같은 것을 생각해도요, 사실 둘밖에 모르는 일이 많아요. 증거 자료가 아무리 나온다고 해도요. 저는 누가 나쁘다, 아니다, 라고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못하게 되는 사람이 저는 좋아요. 왜냐면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면서 말하는 게 사실 어떤 일에서 제일 배우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는 것 같아요.
마음이 참 건강하신 것 같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한 번에 훅 갈 수도 있어요(웃음). 조심해야 돼요. 항상 건강한 사람이 한 번 감기 걸리면 굉장히 아프잖아요.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돼요. 그런 얘기가 있대요. 아우슈비츠에 갔던 사람들 있잖아요? 정말 긍정적인 사람들이 오히려 빨리 죽었대요. 너무 긍정적인 사람이 먼저 죽고, 부정적인 사람이 오래 살았대요. 특히 크리스마스 때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모두 기도하고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전쟁 끝난다고 믿고 했었는데 크리스마스 지났는데도 전쟁 안 끝나니까 스트레스 때문에 다 죽었대요. 그러니까 항상 조심하고 부정적인 마음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 같다고 쓰고 있었는데요. 희망이 오히려 더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냥 무작정 긍정적이기 보다 이유를 찾아서 사는 게 긍정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생길 수도 있어요.
친구의 죽음을 이른 나이에 경험하셨더라고요. 밝기만한 모습 속에 이런 아픔이 있었다니 무척 놀랐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사람이 죽잖아요? 그러면 울고 난리 나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처음에는 못 믿어요. 죽었다고 하는 자체가 머리에서는 알아도 마음이 안 가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죽었다고 하고 그 일주일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우울증 걸리게 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이 죽고 나서 6개월 후에나 반응이 온대요. 그때 가장 조심해야 된다고 들었어요. 자기가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연락 못하고 못 만나고 하면서 알게 되는 거예요. 죽은 친구에게서 일주일 후에 편지를 받았을 때는 정말 ‘이게 천국에서 왔나?’생각했어요. 슬픈 내용도 별로 없었고요. 제가 미국에 있었는데 일본에 있는 그 친구의 남자친구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죽었다고 한 게 장난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랬더니 아마 그거 죽기 전에 보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저는 장난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말씀하시지만 마음에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라디오를 갔는데 개그우먼 정선희 언니를 만났어요. 제가 “언니, 남자친구 생겼어요? 연애 해봐요.”라고 말했더니 언니가 펑펑 울었어요. 사람들이 절대로 그 얘기를 건드리지 않았대요. 그래서 오히려 더 외로워졌대요. 남자 이야기를 하면 움츠리는 자체가 자기를 너무 차별하는 것 같다고 너무 나쁘다고요. 그걸 처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보통 사람처럼 대화해주니까 너무 놀랐다고 하셨어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아픔이 있으면 오히려 그걸 건드리지 않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이 상처 받을 수도 있어요. 보통 사람처럼 대화를 해주는 게 차별이 아닐 수도 있어요. 배려도 잘 안 되면 차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픔 있는 사람한테 상처 주는 것도 안 되지만 너무 배려하는 것도 사실 역차별이 되니까요. 솔직히 저는 아무 마음도 없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났고, 언니는 아름답고, 매력 있고, 똑똑하고, 이렇게 좋은 사람이니까 빨리 연애해요, 이런 느낌으로 얘기했어요. 근데 언니가 울어서 ‘언니가 많이 힘들었구나.’하고 생각했어요.
힘든 시기입니다.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것도 정말 죄송스러운 게, 저는 지금 힘들어하고 있지 않잖아요? 그러면서 힘내라고 하는 게 너무 두려워요. TV에서 PD님이 ‘화이팅’이런 걸 시키기도 하고 좋은 모습도 보여줘야 하겠지만 솔직히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대신 제가 아픈 것도 아니라기 때문에요. 항상 옆에서 지켜봐주는 것,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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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닦고후지타 사유리 저 | 넥서스BOOKS
이 책은 방송인 사유리를 넘어 일상인 사유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유리는 트위터를 통해 글로써 진지하게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녀의 글을 처음 본 사람들은 방송에서의 모습과 달라 당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그녀만의 무심한 듯, 담담한 듯 정직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전하는 이야기에서 그녀의 진심을 발견한다. 그녀의 짧은 글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의 일상을, 생각을, 편견을, 오해를, 사랑을, 친구를 찾곤 한다. 너무 무겁지 않지만 때론 독특한 표현으로 전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문득문득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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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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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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