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은 백을 설득할 수 있을까?
대화를 이끄는 것은 흑이다. 백은 대화를 원치 않는다
글ㆍ사진 김성광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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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는 오직 방 한 칸을 배경으로 삼는다.(그 한 칸도 다 사용하지 않는다) 단 두 사람만 등장하며, 그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소설이다. 시속 130 킬로미터 급행열차에 뛰어들려한 백인 대학교수(이하 백)과 그를 구해낸 흑인 목사(이하 흑)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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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이끄는 것은 흑이다. 백은 대화를 원치 않는다. 130여 페이지의 이 짧은 소설에서 백이 도대체 몇 번이나 "가야겠습니다"라고 말하는지 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많은 거부에도 불구하고 흑은 대화를 이어간다 "전략적으로, 길게". 마지막 열차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백을 놓아줄 셈이다.

 

흑의 설득에도 백은 완강하다. 백은 삶이 고통스러워 죽으려는 게 아니다. '세계가 무의미해서' 죽으려 한다. 인간의 지성, 문화를 믿었던 그는 더 이상 아무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인간의 지성이 쌓아올린 세상의 처참한 모습에 그 어떤 행위도 무가치할 뿐 세상은 무너지게 되리라 믿는다. 흑은 백의 논리에 어지럽다. 흑이 흑인 게토에서 마주한 많은 이들은 세상이 어지럽고 삶이 고통스러워도 살려고 한다. 일상의 행복이나, '모든 일엔 의미가 있을거'라는 믿음이 그들을 지탱한다.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백의 '우아한' 이유가 죽음의 근거라고 믿겨지지 않는다. 끝내 그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다.

 

흑인 목사와 백인 대학교수라는 구도는 당연히 의도적이다. 이 구도와 함께 흑이 백을 설득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매카시가 던진 질문은 분명하다. 서구 혹은 상층(백인) 지성주의(교수)가 쌓아올린 근대문명의 붕괴를 비서구 혹은 하층(흑인) 문화나 종교(목사)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실제로 백은 '오늘의 세상'에 겹쳐진다. 흔들림없이 죽음이란 결론을 밀고가는 백과 망설임없이 붕괴되고 있는 세상. 흑은 과연 이 세상을 설득해 결과를 뒤바꿀 수 있을까? 인간의 지성이 만들어 낸 것과는 다른 세상이 가능할까?

 

모든 대화가 끝난 후, 백은 마침내 방에서 나간다. 흑은 예수님을 향해 독백한다. 둘의 대화는 어떤 결말을 맞을까. 나는 대체로 매카시의 결론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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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코맥 매카시 저/정영목 역 | 문학동네
해마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 시대 최고의 거장 코맥 매카시. 그의 작품은 출간될 때마다 어김없이 평단과 독자의 호평을 받고,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제작되면 할리우드 유명배우들이 앞다투어 출연하려 한다. 그는 명실공히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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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엠디 리뷰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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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보석

2015.02.15

이 시대 최고의 거장 코맥 매카시의 작품이군요. '세계가 무의미해서' 죽으려고 하는 백인 대학교수를 흑인 목사는 어떻게 설득을 하며,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이 책 꼭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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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5.02.11

코엔의 신간이 출간되었군요. 오직 방 한 칸을 배경으로 단 두 사람만 등장하고 그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소설이라니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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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em

2015.02.09

새로운 책이네요. 의미를 찾지못해 극단의 선택을 하는 경우라... 상상은 가지 않지만 무얼 얘기하는지는 조금이나마 알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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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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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윌리엄 포크너, 허먼 멜빌,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비견되는,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그를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 필립 로스와 함께 이 시대를 대표하는 4대 미국 소설가 중 하나로 꼽은 바 있다. 1933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에서 태어났고, 1951년 테네시 대학교에 입학해서 인문학을 전공으로 삼았고 공군에서 4년 동안 복무를 했다. 시카고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며 『과수원지기(The Orchard Keeper)』(1965)를 썼고 이 작품으로 포크너상을 받았다. 『바깥의 어둠(Outer Dark)』(1968)과 『신의 아들(Child of God)』(1974)로 평단의 주목을 받다가 『서트리(Suttree)』(1978)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1976년 텍사스 주 엘패소로 이주했다. 1985년에 발표한 『피의 자오선(Blood Meridian)』은, 남부를 배경으로 한 초기의 고딕풍 소설에서 묵시록적 분위기가 배어 있는 서부 장르 소설로의 전환점에 해당하는 수작이자 매카시에게 본격적으로 문학적 명성을 안겨 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타임]이 뽑은 100대 영문소설’로도 선정되었다. 국경 삼부작으로 잘 알려진 『모두 다 예쁜 말들(All the Pretty Horses)』(1992)과 『국경을 넘어(The Crossing)』(1994), 『평원의 도시들(Cities of the Plain)』(1998)은 서부 장르 소설을 대중 오락물에서 고급 문학으로 승격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매카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모든 다 예쁜 말들』은 미국 도서상(National Book Award)과 미국 비평가협회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을 받았다. 대재앙 이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길을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로드(The Road)』(2006)는 그에게 퓰리쳐상을 안겼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혹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존재의 물음에 대한 대답과도 같은 이 책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카운슬러』는 매카시가 쓴 첫 번째 시나리오로,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12년 영화화했다. 미국 현대문학의 4대 작가로 꼽히는 거장 코맥 매카시는 2023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