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촌스럽단 말인가
은 아시다시피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그 바보같은 전쟁에 대해 시적 상징을 가진 자책의 노랫말을 외친 전설의 밴드 롤링 스톤즈의 명곡이다
글ㆍ사진 박상 (소설가)
201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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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베트남이다. 아니 또 베트남 얘기냐고 식상해 하실까봐 쫄린다. 이번이 마지막이고 이 원고가 업데이트 될 즈음엔 귀국할 것이며, 여독(旅毒)에 지쳐 엉망진창 뻗을 예정이니… 딱 한 번만 더 봐주세욤.^^;
 (귀여운 척을 하다니! 이미 여독이 발작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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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베트남의 고원도시 달랏(Da Lat)에서 들은 음악 얘기다. 기온은 사시사철 딱 우리의 가을 날씨고 예쁘장한 프랑스풍의 도시라 베트남 신혼부부가 허니문을 많이 와 있었다. 나 역시 순식간에 달랏을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카페들 마다 틀어놓는 음악만은 곤란했다. 예외 없이 8-90년대 팝 발라드인데 목에 힘주는 창법, ‘연주’가 아니라 ‘반주’인 신디사이저, 감정을 과잉 폭발하는 후렴구 등이 내 귀엔 너무 촌스럽게 들렸다. 


 아, 그래도 오랜만에 들으니 빛바랜 추억이 새록새록…은 개뿔, 조악한 스피커로 어찌나 짱짱하게 트는지 고문에 가까웠다. 베트남 시외버스에서 몇 시간동안 강제로 베트남 뽕짝을 듣는 것에 비하면 덜 고통스러웠으나 카페만 가면 자꾸 몸이 스크류바처럼 꼬였다.


 아니 근데 달랏에선 왜 2015년에 이런 음악을? - 이유를 예상해 봤다. 


 1. 달랏 시민들이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어서. 


 2. 관광객이 많이 오는 도시니까 아무 팝송이나 틀어놓으면 외국인들이 좋아할 거라고 오판해서. 


 3. 촌스런 음악만 골라 담아 싸게 대량 유통하는 개똥같은 업자가 있어서.  


 답은 모르겠다. 인터넷에 따로 달랏만의 뮤직차트도 없고 해서 궁금증만 커져갔다.

 

 어쩐지 현장감 있는 음악을 듣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나는 물어물어 달랏의 어느 뮤직라이브 클럽을 찾아갔다. <매일 밤 8시부터 10시 30분까지 생음악>이라는 안내가 적혀 있고 안에선 기타 조율하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오오, 이거야 이거. 하고 들어갔는데 객석은 캄캄하고 손님은 나 혼자였다. 촌스런 별 조명이 설치된 무대에서 반짝이 셔츠를 입은 중년의 연주자들이 구성진 색소폰과 함께 공연을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딱 세 음절이었다. 카.바.레. 


 술값이 시중의 세 배였지만 매니저겸 남자 보컬이 내 옆에 앉아 어찌나 친절한지 나가기도 애매했다. 왠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애잔한 느낌도 들고 해서 탈출은 포기했다.

 

 나중에 베트남 중년들이 한두 테이블 오긴 했지만 손님이 별로 없어선지 연주자들도 점점 흥을 잃었고 음향도 좋지 않았다. 주 레퍼토리는 엘레지 트로트였고, 톰 존스의 Delilah, Grean green grass of home 같은 올드 팝을 종종 섞었다. 팝은 번안 가사로 불렀는데 ‘쎄시봉’ 같은 분위기가 날 뻔했지만 아쉽게도 아쉬운 수준이었다. 그곳에 나 말고 또 한 외국인이 들어오길래 반갑게 눈인사를 했는데 그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가버렸다.
 
 상당히 촌스러운 곳에 낚인 기분을 해소하려 다음날 폭풍 산책을 하다 그 친구와 우연히 마주쳤다. 


 “엇, 너는?”


 “아니 어제 거기?”


 서로 알아본 우리는 함께 맥주를 마시러 갔다. 그는 디자인이 촌스러운 스웨이드 무스탕을 입었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의외로 통하는 점이 많았다. 


 이름은 띠오(Theo). 영국인이고 음악하는 사람이며 관광객이 아니라 달랏에 살면서 재능 나눔도 하고, 관광업 이면에 소외된 빈민들을 도울 방법이나 뭔가 가르칠 방법을 찾고, 커피 농장에서 죽어라 일하고 돈도 못 버는 사람들도 돕겠다는 계획으로 와서 분위기 파악 중이라고 했다. 어우, 그의 내면을 보니 그가 겉에 입은 무스탕이 전혀 촌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생각 없이 관광이나 하고 자빠진 내 인생이 촌스러운 패션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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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꽤 멋지잖아.”


 “아냐, 그동안 의미 없이 살았기 때문에 이제라도 찾고 싶을 뿐. 잘 해낼진 모르겠어.”


 내 촌스런 영어실력 때문에 굉장히 띄엄띄엄 소통했지만 정중하고 눈이 맑고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그런데 그와 음악 이야기와 맥주를 나누다 문득 시원한 생음악에 대한 식탐이 또 발작했다. 우리는 동네 악기점 주인에게 여쭤 한 클럽을 소개 받았다. 주소만 듣고 어렵게 찾아간 그곳엔 이미 거나하게 취한 늙다리 미국인 사장이 있었다. 베트남 여자와 결혼해 현지에 정착한 케이스였다. 클럽엔 온통 서양인들뿐이었다. 


 “어서와 친구들. 록앤롤을 즐기기 딱 좋은 밤이라구.”


 록앤롤이라. 좋아하는 장르이긴 하고 베트남 젊은 친구들로 구성된 밴드의 실력은 훌륭했지만 몇 곡 듣다보니 으음, 연주에 영혼이 없었다. ‘Sweet home alabama’ 라던가 ‘Wind of change’ 같은 지나간 정서를 아마도 매일 밤 똑같은 레퍼토리로 연주하면서 영혼을 담기는 힘들지도 몰랐다. 잘 알려진 히트곡만 똑같이 연주할 뿐인 공연은 듣는 쪽이나 하는 쪽이나 참 의미 없는 일이다.


 실망감이 밀려왔다. 띠오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중엔 술 취한 사장이 트럼본, 색소폰, 하모니카 등등 각종 악기를 들고 나와 곡의 의미나 분위기와 상관없이 과도한 음역대의 재롱을 부리기까지 했다. 박자를 놓치고 숫제 연주를 방해하는 수준이었다. 밴드는 자기들 고용주라 어쩔 수 없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덕분에 겨우 음악적일 뻔한 분위기도 계속 망쳐졌다. 


 “음악이라기 보단 쇼 타임에 불과한데.”


 띠오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는 탈출을 결심하고 일어서려 했다. 그때였다. 사장의 베트남인 아내가 남편에게 “술 좀 그만 마셔 이 주정뱅이야!” 하고 외치면서 등장하자 사장이 찌그러지면서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것도 쇼의 일부인가 했는데 절대 아니었다. 그녀의 잔소리엔 롹 스피릿이 충만했고 급기야 무대에 올라 베트남어로 된 알 수 없는 장르의 힘 있는 노래를 불렀다. 


 “아 이건 진짜 음악이야!”


 띠오와 나는 동시에 외치며 스르륵 주저앉았다. 찌찌뽕이라 볼때기를 잡아당길 뻔했다.

 

 자, 오늘의 주제곡 얘기다. 오래 끌어 송구스럽다. 그 이름 모를 신선한 진짜 음악에 이어 굉장히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기타 소리가 이어지더니 롤링 스톤즈의 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롹정신 사모님으로 인해 각성의 스위치가 켜졌는지 연주자들 눈빛이 갑자기 궁서체였다. 오오 더구나 롤링스톤즈 저리가라 싶은 독창적인 솔로파트를 섞으며 훌륭하게 재해석 해내는 것이었다. 비로소 자신들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사실 롤링스톤즈가 카페에서 듣던 마이클 볼튼이나 필 콜린스보다 한참 더 오래된 아티스트인데 전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오래 된 게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은 아시다시피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그 바보같은 전쟁에 대해 시적 상징을 가진 자책의 노랫말을 외친 전설의 밴드 롤링 스톤즈의 명곡이다. 그리고 그 연주는 각성한 클럽의 밴드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는 소리 같았다. 훌륭한 실력으로 외국인 관광객들 앞에서 쇼에 불과한 연주나 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선지 연주에 혼이 담겼다. 나는 그들의 사정에 감정이 이입되었다.

 

 클럽에선 관광객들이 비싼 술을 마시며 쇼를 즐기고 밖에선 무거운 봇짐을 진 행상 아주머니들이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언덕길이 많은 달랏 시내를 지친 모습으로 걷는다. 누군가는 커티스처럼 서양인 관광객을 위해 철지난 록앤롤 쇼를 하고 누군가는 띠오처럼 이곳의 약자를 도와야 한다고 나선다. 나는 그냥 음악 탐욕에 속만 시커멀 뿐이었다는 게 느껴져 의 노랫말이 착착 감겼다.

 

 아름다운 달랏에 왜 8-90년대 팝 발라드가 흐르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일부 관광업은 시끄럽게 쿵짝거리며 밀고 들어오는 서양식 록앤롤인 반면, 대다수의 소외된 계층 현지인들은 구슬픈 엘레지나 호소력 짙은 발라드가 착착 감기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 음악들이 현재 그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소리라면 단지 촌스럽다고 할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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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부터는 카페에서 암만 옛날 팝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작은 산골도시 달랏의 순박한 사람들이 자기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데 뭐. 도대체 시대에 뒤떨어져 촌스럽다는 게 뭔가. 우월감에서 비롯된 편협한 시각이지 않았나. 아니 좋아하는 음악을 듣겠다는데 팝 발라드면 어떻고 엘레지면 어떻고 롤링 스톤즈면 어떤가. 모든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음악은 마음을 열고 들을 때 빛나는 보석인 것이다. 음악이 비즈니스가 되는 것 말고는 세상에 촌스러운 음악이란 없다.


 아아, 달랏의 음악을 잠시 촌스럽게 생각한 내 편협한 감각이 몹시 부끄러웠다.
 
P.S. 띠오, 달랏에서 꼭 부조리를 까맣게 칠해버리길. 권투를 빈다. 원투 스트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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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즈 #박상 #턴테이블 #Paint it black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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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5.02.09

작은 산골도시 달랏의 순박한 사람들이 자기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것 만큼 낭만적인곳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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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em

2015.02.09

비지니스가 된 음악이 아니라면 촌스럽지 않다... 정말로 그렇네요. 마음을 담은 것중에 촌스러운 것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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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낙

2015.02.05

롤링스톤즈 좋네요, 젊은 믹재거의 모습도 매력적이고, 잼나게 읽고 갑니다,,,
홧팅하세요, 무거운 인생이지만 최대한 가볍게 살아가시지만 깊이를 잃지 않으시는 모습 너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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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 (소설가)

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