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아플 땐 『제인 에어』 자존감을 회복할 땐 『레베카』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학교’에는 독특한 수업이 있다. 문학으로써 삶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문학치료’가 그것이다. 『소설이 필요할 때』의 공동저자인 엘라 베르투와 수잔 엘더킨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이들에게 소설을 처방한다. 당신을 괴롭게 하는 문제가 무엇이든, 십중팔구 답은 『소설이 필요할 때』 안에 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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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필요할 때』의 첫 장을 펼치기에 앞서, 독자들은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소설을 찾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펑펑 눈물을 쏟고 싶은 우울한 날일까, 가슴 뛰는 설렘이 그리운 무료한 날일까. 현실의 복잡한 문제들 같은 건 잠시 잊고 싶을 때일까, 그 모두를 통렬하게 깨부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는 때일까. 이렇다 할 ‘사건’이 없다고 해도 소설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돈다. 오랜만에 찾아온 한가로운 휴일에, 멀리 떠나는 여행길에, 일상의 출퇴근길과 잠들기 전 짧은 순간에도 우리는 소설책을 향해 손을 뻗는다.

 

소설을 찾는 순간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놀랄 즈음, 아마도 독자들은 두 번째 질문을 던질 것이다. ‘수많은 소설들 가운데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소설이 필요할 때』는 바로 그 의문에 응답하는 책이다. 오랫동안 문학치료사로 활동해 온 두 명의 작가, 엘라 베르투와 수잔 엘더킨이 당신의 상황에 꼭 맞는 소설들을 추천해준다.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문학 아카데미 ‘인생학교’에서 문학치료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은 『소설이 필요할 때』에서 400여 가지의 ‘소설 처방전’을 소개한다.

 

삶의 희망을 잃었을 때, 자존감이 낮을 때, 꿈이 좌절되었을 때 겪는 실존적인 문제들부터 가장 친한 친구와 사이가 틀어졌을 때, 가족에 맞설 때, 사랑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때 등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들까지 두루 살핀다. 심지어 발가락을 찧었을 때, 두통이 올 때,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소설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그들의 치료 방식은 참신하기까지 하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일이 스스로에게서 비롯된 것이든 타인과의 관계나 직장에서 비롯된 것이든, 그 고통이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소설이 필요할 때』가 제안하는 치료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신과 비슷한 상황이나 고민, 또는 반대되는 상황이나 고민에 사로잡힌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일례로, 그들은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처방한다. “잘못을 인정해서 죄책감의 뿌리를 뽑고, 원인을 분석하고, 제대로 사과하거나 합당한 처벌을 받고 나면 당신은 홀가분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겁쟁이가 된 이들을 위한 소설로는 “문학 역사상 가장 배짱 두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추천하는데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그 중 하나다. 엘라와 수잔은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 애티커스가 보여준 진정한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겁을 먹더라도 겁쟁이가 되지 마라. 무슨 일을 앞두고 있든 그 두려움을 안고 나아가라”고 덧붙인다.

 

이처럼 『소설이 필요할 때』는 독자들에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소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그 소중한 인연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까지도 알려준다. 이른바 ‘독서질환’에 대한 처방전까지도 챙겨주는 것인데, 두 작가는 ‘바빠서 독서할 시간이 없을 때’ ‘책이 너무 두꺼워서 독서를 자꾸 미룰 때’ ‘독서 취향을 잘 모를 때’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 기겁할 때’에도 변함없이 소설과 만날 수 있는 묘책을 알려준다. 또한 각 상황별, 분야별로 베스트 작품들을 추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눈물바람이 될 소설 베스트 10’ ‘병가를 낸 날 읽으면 좋은 소설 베스트 10’ ‘판타지 소설 베스트 10’ ‘오디오북 베스트 10’ 등을 참고해 소설과의 첫 만남을 시작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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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에서 시작된 문학치료


소설이 가진 치유의 힘을 전파하는 두 작가, 엘라 베르투와 수잔 엘더킨을 만난 것은 지난 16일 중앙대학교에서였다.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이들은 학생들을 위한 ‘문학 치유’ 워크숍을 진행하는 한편, 채널예스와의 만남을 통해 『소설이 필요할 때』에 담아낸 문학치료사로서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인생학교’에서 문학치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엘라 : 수잔과 저는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함께 공부했어요. 그곳에서 처음 만났고, 소설을 통한 치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죠. 시간이 흐르면서 수잔은 소설가가 되었고 저는 화가가 되었는데, 그동안 문학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서로 좋은 소설을 추천해 주기도 했어요. 힘든 일이 있을 때 치료책으로 소설을 권유해 주고요. 그러다보니 주위의 친구나 가족에게도 종종 소설을 권해주게 됐어요. 그 경험들이 쌓이면서 ‘살면서 어떤 문제를 겪든 소설이 참 효과가 좋은 치료약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죠.


알랭 드 보통 작가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엘라 : 알랭 드 보통 작가도 캠브리지 대학교 출신으로 우리는 그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어요. 그러다가 그가 ‘인생학교’를 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수잔과 제가 문학치료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보통도 좋은 생각이라면서 제안을 받아들였고요.


문학치료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엘라 : 우리의 치료는 질문지, 면담, 처방의 세 단계로 진행돼요. 먼저 질문지를 만들어 고객에게 보내는데 주로 독서와 관련된 습관이나 취향, 그리고 현재의 상황과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그 다음에는 ‘인생학교’에서 또는 전화 통화로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죠. 이 과정은 40분에서 1시간 정도 이어지는데, 고객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어떤 책을 처방해야 할지 알아보기 위한 거예요. 처방은 그 이후에 이루어져요. 어떤 책을 추천해 주어야 할지 충분히 고민한 다음에요.


처음 소설에 매혹되었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수잔 :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 기억나요. C.S.루이스의 소설인데 옷장 안의 모피 코트를 밀어젖히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이야기예요. 그 작품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제게 소설은 스토리를 결합하는 매우 특별하고 독특한 방법을 의미하는데, 한편으로 소설은 두 세계가 만나는 좋은 장소이기도 하죠. 이런 모든 것들이 모여서 소설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 것 같아요.

 

엘라 : 제가 어릴 때 부모님께서 토베 얀손의 작품을 읽어주셨는데, 무민트롤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그들은 핀란드의 숲에서 마치 마법과도 같은 삶을 살죠. 모든 것이 안락하고 안전해요. 크고 작은 해프닝이 일어나지만 무민 가족은 어떻게든 극복해 내죠. 그 이야기를 이제는 제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있어요. 아이들 방에 무민을 직접 그려주기도 했고요(웃음).


『소설이 필요할 때』 안에서 소설이 우리를 치료하는 방식은 무엇일까요?

 

수잔 : 문제가 다양한 만큼 그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양한데요. 일단,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자신의 상황과 공명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럴 때는 등장인물이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죠. 때로는 소설이 에너지와 활력을 주기도 하는데요. 『소설이 필요할 때』에서는 ‘월요일이 두려울 때’는 『댈러웨이 부인』을 ‘무기력할 때’는 『돈키호테』를 추천하고 있어요. 또 다른 중요한 치료법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거죠.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처럼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처방해 주는 거예요.

 

엘라 : 『소설이 필요할 때』나오는 증상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어요. 바로 감정적, 신체적, 상황적인 증상이죠. 감정적 증상은 우울증, 실연으로 인한 가슴앓이, 부끄럼을 많이 타는 것, 툭하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 등이 있고요. 상황적인 증상은 휴학을 하거나 이혼을 하는 것, 신체적인 증상의 예로는 다리가 부러졌을 때 등이 있죠. 소설이 부러진 다리를 붙게 할 수는 없지만 은유적인 방식으로 치료를 도울 수는 있어요. 『소설이 필요할 때』에서  ‘다리가 부러졌을 때’에 소설 『클리브』(Cleave, 니키 케멀)를 추천한 이유죠. 한편으로는 강한 충격을 주는 것이 치유에 효과적일 때도 있는데요. ‘이봐, 상황을 좀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라고 얘기해 주는 거예요. 이렇게 각기 다른 처방을 하는 건 모두의 상황이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에요. 고객이 어떤 성향의 독자이냐에 따라서 치료책을 달리 처방하고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책을 고르기 위해 고민하죠.

 

수잔 : 예를 들어서 『소설이 필요할 때』에서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를 추천하는데요. 소설의 주인공 레베카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예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에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왜 저렇게 자신을 비하하나 싶고, 자존감이 낮은 게 어떤 건지 한눈에 알 수가 있어요. 반대로 자존심이 강하고 대담한 사람을 보여줄 때는 배리 하인즈의 『케스 매와 소년』을 추천해요. 이 소설은 주인공이 자존감을 찾아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에요. 이렇게 한 가지 증상에도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할 수가 있죠. 사람들은 모두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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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때는 『제인 에어』


가장 잊을 수 없는 소설 치료의 사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엘라 : 뉴욕에 사는 30대 남성을 치료한 적이 있는데, 그는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니콜슨 베이커의 『Room Temperature』라는 소설을 추천해 줬죠. 이 소설은 한 아버지가 쇼핑센터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우유를 먹이기도 하고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상상하기도 하는, 철학적이면서 평화롭고 따뜻한 이야기예요. 이 책을 읽고 그 남성은 자신도 곧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에 흥분과 행복을 느끼게 됐어요.

 

수잔 : 우리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연인과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요. 그럴 때마다 우리가 추천하는 소설은 앤 패쳇의 『벨칸토』예요. 벨칸토는 성악 창법을 의미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오페라 가수예요. 그녀가 음악회를 여는 곳이 테러리스트에게 점령당하게 되면서 청중들과 함께 인질이 되죠. 그 중에는 그녀를 흠모하는 일본인 사업가도 있어요. 두 사람은 예술을 매개로 만나 서로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게 되죠. 『벨칸토』는 문화적인 힘과 사람들이 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에요.


『소설이 필요할 때』에 실릴 소설들은 어떻게 선별하셨나요?


엘라 : 우리가 알고 있고 좋아하는 수많은 소설들 가운데 일부만을 골라야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소설이 필요할 때』를 쓰기 위해서 우리가 가진 지식과 책들을 모두 동원해야 했고, 그동안 문학치료를 해온 경험을 되살려야 했죠. 무엇보다 실제로 고객에게 처방했던 책들을 소개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문학치료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증상에 맞는 해결책을 지닌 책들을 골랐어요. 그러니까 『소설이 필요할 때』에 실린 작품들은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고, 실제로 처방을 해서 좋은 효과를 거둔 것들이에요.

 

수잔 : ‘사랑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때’ 읽어야 할 소설로 『제인 에어』를 추천했는데요. 이 작품은 연인과 헤어지고 가슴앓이를 할 때 정말 좋은 소설이다. 비록 사랑을 잃었지만 자존감 지키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죠. 간혹 어떤 증상들은 딱 맞는 치료책을 찾아내기 어렵기도 해요. 그럴 때는 『안나 카레니나』가 무척 도움이 되죠. 이 소설은 정말 다양한 문제들을 품고 있거든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서 질투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불륜을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엄마가 되는 법 또는 되지 않는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죠. 얼마나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이 가능 하느냐 하면 ‘이가 아플 때’에도 이 작품을 읽으라고 추천했을 정도예요.


『소설이 필요할 때』의 독자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한 처방전은 무엇이었나요?


수잔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분노를 가라앉히는데 큰 도움이 돼요.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있고, 감정적으로 몹시 날카로워져 있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게 이 작품을 추천하곤 하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이 소설을 읽으면 무척 위안이 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혀 주거든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노인과 바다』를 읽고 마음이 편안해졌고 위로를 구했다고 말했어요. 직장생활이 순탄치 않고 상사와의 관계도 몹시 안 좋았는데 퇴근해서 이 작품을 읽은 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고요. 긴장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고 하더라고요.

 

엘라 : 은퇴 후 삶이 지루해진 사람에게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책으로 『원스 어 러너』(Once a runner, 존 L. 파커 주니어)라는 소설을 추천해요. 1마일 달리기 선수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이 소설을 처방받은 사람은 큰 영감을 받고 매일 달리기를 하고 싶어졌다고 해요. 그리고 이 작품을 읽고 난 후부터 나쁜 음식을 끊고 몸을 건강하게 돌보기 시작했대요.

 

수잔 : 『소설이 필요할 때』를 쓰기 위해서 자료를 조사할 때 우울증에 대해서도 조사했어요. 그 과정에서 우울증 환자가 주인공인 소설이 무척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런 인물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어요. 아마도 자신처럼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람을 보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큰 위안을 받는 것 같아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나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 같은 작품들이 좋은 예죠.


이번 책에서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문제 역시 여러 장에 걸쳐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현명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소설도 있을까요?


수잔 : 호주의 소설가 셜리 해저드가 쓴 『금성의 통과』를 소개하고 싶어요. 이야기는 호주 출신의 자매가 2차 대전 직후 독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오면서 시작되는데요. 언니는 전업주부가 되지만 동생은 자신의 일을 갖고 독립을 하죠. 결혼을 하지 않고도 직업을 갖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여자들의 1세대라고 할 수 있어요. 소설의 주인공인 동생은 약혼녀가 있는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게 되는데요. 그는 상대에게 충실하지 않고 언제나 배신을 하는 반면 그녀는 강인하고 지혜로운 사람임에도 남자를 떠나지 못해요. 아마 이 소설을 읽으면 주인공이 나쁜 남자와 지금의 삶을 떠나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게 될 거예요. 앞서 이야기한 『레베카』 역시 사귈 가치가 없는 사람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엘라 : 사랑하는 이를 잃었지만 폐인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니얼 윌리엄스가 쓴 『천국에 있는 것처럼』을 추천해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는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어요. 그렇지만 서서히 인생의 의미와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되죠. 사랑하는 이를 잃고 비탄에 잠긴 사람이 이 소설에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등장인물과 함께 슬픔을 표출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동시에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희망도 찾을 수 있죠. 등장인물과 함께 슬픔을 토해내면서 해피엔딩을 맞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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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며 읽어야 할 소설 『래그타임』 『토끼와 함께한 그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설이 필요할 때』에 소개된 작품들 중, 작가님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엘라 : 제게 도움을 주었던 소설은 탐 로빈스의 『지터버그 향수』예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책이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저의 롤 모델이에요. 이 소설을 읽으며 뭐든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관계에 대한 도움을 얻는 또 다른 책은 패트릭 게일의 『전시회에서 온 메모들』이에요. 이 소설에는 네 명의 자녀를 둔 화가 엄마가 등장해요. 저도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어요. 일과 가정을 오가면서 모두 충실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지혜를 얻었죠. 부모 자녀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설이에요.

 

수잔 :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하이 피델리티』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소설은 나이를 불문하고 영국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무척 많은데요. 일종의 남자들의 ‘칙릿(Chiclit)’이라고 할 수 있죠. 주인공은 여자 친구에게 갓 차인 남자예요. 그는 과거에 자신을 찼던 여자 친구들을 만나서 사과하기로 결심하죠. 그 과정에서 실제로 그녀들과의 관계가 어땠는지,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씩 깨닫게 돼요. 여자 친구들이 자신을 떠나갔던 이유도 알게 되고요. 실연을 당해 괴롭다면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아픔을 잊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자신을 더 이상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게 될 거고요.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소설 속 인물은 누구인가요?


수잔 : 모든 소설을 통틀어서 우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은 두 사람이에요. 한 명은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인데요.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 흑인을 위해 싸우는 변호사예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위해서라면 온 세상과도 싸울 사람의 표본이죠.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데, 부자간의 관계도 매우 훌륭하게 유지해 나가요. 사람들의 롤모델로 손색이 없죠.

 

엘라 :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절대 자신의 목표물을 놓치지 않아요. 자신이 잡으려고 마음먹은 그 물고기를 어떻게든 지키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바다에서 온갖 악천후와 고난을 겪는 동안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존경스러워요. 그는 도덕적인 사람이고 소설의 마지막에서도 존경스러운 모습은 변함이 없죠. 그래서 우리는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노인과 바다』를 권해요. 앞서 수잔이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은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소설이 필요할 때』에서 크리스마스에 읽으면 좋은 소설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추천하셨습니다. 새해 계획을 세우느라 마음이 분주한 이들에게는 어떤 소설을 추천해 주고 싶으세요?


수잔 : 미국소설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E. L. 닥터로의 『래그타임』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1899년에서 1900년으로 넘어가는, 20세기에 막 진입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데요. 여기에는 새로운 시대에 반응하는 두 가지 태도가 나와요. 첫 번째는 과거를 희구하면서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는 거죠. 다른 하나는 당시 미국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포용하는 태도예요. 당시 미국은 새로운 발명품이 속속 등장하고,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가 깔리고, 새로운 마술도 등장했어요. 그에 따라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새 시대를 반기는 사람들도 있죠. 이 소설은 창의성과 변화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그것을 적극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줘요. 그런 점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읽을 소설로 적합하다고 생각돼요.

 

엘라 : 아르토 파실린나의 『토끼와 함께한 그해』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이고 싶은데요. 이 소설에는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토끼를 다치게 한 남자가 등장해요. 그는 토끼를 치료해주고 핀란드의 숲으로 들어가 함께 지내기 시작해요. 그 뒤로 1년 동안 온갖 괴상한 모험을 거듭하는데, 그러면서 긍정적인 힘을 얻게 되죠. 평범한 기자의 삶을 살았지만 사실은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거든요. 이 이야기는 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이상한 남자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한국 독자들도 이 책을 좋아할 것 같아요.


독자들이 『소설이 필요할 때』를 효과적인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세요.


수잔 :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나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소설이 필요할 때』는 ‘다음에는 어떤 소설을 읽을까’ 고민할 때 무척 도움이 되는 책이죠. 당신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을 찾는 데에도 도움을 줄 거고요.

 

엘라 : 소설이 필요할 때』에 실린 증상들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골라서 처방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면 좋겠어요. 소설 처방이 필요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줘도 좋고요. 해당되는 증상을 찾아 읽으면서 뭔가를 깨달을 수도 있을 거예요. 관련된 증상을 따라가는 것도 좋고요. 이런저런 증상을 찾아보면서 관련사항을 따라가며 읽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죠. 『소설이 필요할 때』에는 ‘독서 질환’에 대해 다룬 코너도 있는데요. 이런 독서 질환들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해요. 집안일이 많아서 책을 못 읽거나, TV와 인터넷에 주의를 빼앗겨 책이 잘 안 읽히는, 그런 문제들을 다두고 있어요. 누구다 하는 경험들이잖아요. 이럴 때 우리는 독서기록장을 작성하거나 오디오북을 듣는 방식으로 해결하라고 조언하고 있어요. 독자들이 『소설이 필요할 때』를 통해서 새로운 독서법을 찾고 책을 더 많이 읽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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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필요할 때엘라 베르투,수잔 엘더킨 공저/이경아 역 | 알에이치코리아(RHK
『소설이 필요할 때(The Novel Cure)』는 세계적인 유명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런던에 설립한 인문학 아카데미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에서 2008년부터 문학치료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엘라 베르투와 수잔 엘더킨이 공동 집필한 책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듯이, 문학치료사인 이들은 소설을 처방한다. 「인디펜던트」에서 책 추천 코너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전화나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의뢰인들에게 일대일로 소설을 처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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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필요할 때 #엘라 베르투 #수잔 엘더킨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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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012

2015.08.21

본문에 오류가 있네요. 다섯 번째 질문인 "『소설이 필요할 때』 안에서 소설이 우리를 치료하는 방식은 무엇일까요?" 中 수잔의 두 번째 답에서 소설 『레베카』를 추천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레베카』의 주인공은 레베카가 아니에요. 수잔이 말하는 자존감이 낮은 주인공 "그녀"는 이름이 없어요. 레베카는 주인공 남편의 전처로, 자존감 낮은 주인공과 대비되는 인물이죠. 『레베카』는 이름 없는 주인공의 1인칭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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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5.01.11

“잘못을 인정해서 죄책감의 뿌리를 뽑고, 원인을 분석하고, 제대로 사과하거나 합당한 처벌을 받고 나면 당신은 홀가분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다”라는 문장 우리사회의 병폐를 딱 집어주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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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