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심리 수사극 장르, 첫 선을 보이다
다양한 소재의 오리지널 수사물을 만들어 나가는 OCN의 시도는 한국형 범죄 수사물에 목마른 드라마 팬들에게는 언제나 기대와 감격이 있었다. 희귀병을 소재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신의 퀴즈>, 강력범죄를 다루는 <특수사건 전담반 TEN>, 가상의 설정을 수사물에 차용해서 죽은 사람을 보는 형사가 등장하는 <처용>, 뱀파이어가 된 검사가 피를 단서로 사건을 추적하는 <뱀파이어 검사>는 긴장감 있게 잘 만들어진 이야기와 한국형 범죄 즉 현재 한국사회의 병폐를 사건으로 재구성하여 팬층을 확보해 나가며 시즌제로 이어나가고 있다.
이종범 작가의 네이버 인기 웹툰 '닥터 프로스트(Dr. Frost)'를 원작으로 만든 동명의 드라마 역시 OCN의 오리지널 수사물로 기대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원작의 인물 설정을 빌려와 천재 심리학자 프로스트가 수사에 합류해 범죄를 해결하는 내용은 범인뿐만 아니라 용의자와 피해자의 심리까지도 심층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흥미로울 거라 생각했다.
현대사회의 일상은 다양한 정신적 문제를 유발할 만큼 여유도 없고 압박이 가득하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에 늘 시달리며 자신의 내면을 돌볼 시간도 없고 강박적으로 자신을 몰아세우곤 한다. 그런 긴장감 속에서 충돌하는 인간의 욕망이나 병적 행동들을 소재로 다룬다면, 사회면에 몇 줄로 간략하게 사라졌던 사건들의 이면을 보여주고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준다면 의미 있는 수사극이 될 것이다.
프로스트만의 개성은?
<닥터 프로스트>의 첫 화가 방영되고 난 뒤, 영드 <셜록(Sherlock)>과 비교되는 평이 많았다. 예고편에서부터 <셜록>의 연출을 따라 한 부분도 있었고 처음 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여 심리 상태를 유추하는 것이나 주인공인 프로스트(송창의 분)가 공감능력이 없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 소시오패스인 셜록과 여러모로 비슷해 보였을 것이다.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프로스트는 <라이투미(Lie To Me)>의 칼 라이트만 박사처럼 사람들의 무의식적 행동이나 표정으로 거짓이나 진실을 판단하는 정도의 능력만 보여주는 느낌이다. - <라이투미>에서는 그 미세한 표정을 읽어내기 위해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들의 표정을 녹화해서 몇 번이나 살펴보고 여러 사람과 그 의미를 읽어내려고 애쓴다. 전문가도 한 번에 읽어내기 힘든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의 숨은 의미로 실제로 상반된 감정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기도 한다. 반면 프로스트는 0.2초 사이에 사라지는 미세 표정 7가지를 분석하고 주변 물건이나 공간을 보고 성격이나 행동양식을 파악하는 스누핑 등의 심리학을 통해 상대를 꿰뚫어 본다. 척하면 척이니 효율적이고 천재적이긴 하다마는 어째서인지 설득력은 떨어진다. 프로스트가 캐치해 내는 것들은 전문적이라고 하기엔 교양 수준의 정보를 나열하는 느낌이었다.
프로스트는 감정 없는 관찰자이다. 흔들림 없고 주관 없이 읽어내는 것에 충실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 “심리학은 독심술이 아니라 뇌과학이다. 인간의 행동과 감정은 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말하며 주변의 상황에 별반 동요가 없다. 좋은 관찰자가 될 수 있는 요건이 될 순 있지만 그런 그가 사람들을 관찰하고 심리학을 전공하며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 어떤 설득력도 필요 없는 인물의 매력이 드러났나 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저 기계적으로 말하고 뚱하고 퉁명스러워 보일 뿐이다. 프로스트보다 더 제멋대로이고 괴짜스러운 셜록은 오직 자신의 흥미와 호기심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것이 자신의 지적 우월을 드러내는 오만함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기꺼이 즐거워하며 지켜볼 매력이 존재한다.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해 사건을 해결하는 또 다른 미국드라마 <멘탈리스트(The Mentalist)>도 이 드라마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타고난 관찰력과 심리학적 기술을 이용하여 심령술사인 척 하던 패트릭 제인도 어떤 사건을 계기로 범죄수사 고문으로 일하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제인이 독심술이라고 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나가고 심리를 조정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 전에 언제나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정보를 얻어낼 단서가 존재했었다는 걸 보여주는 연출이 세밀하게 존재했다. 다시 보기를 해서 확인해 보면 냉장고에 붙어있던 사진, 수납장 속의 차 브랜드처럼 스쳐 지나갔던 장면이지만 정교하게 단서로써 역할을 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화면에 담아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닥터 프로스트>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판단할 수 있는 행동을 보고 곧 바로 프로스트의 대사로 그 모든 걸 설명해 버린다. 굳이 독백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조차 설명적이다. 그 결과 프로스트가 전문적으로 느껴지기보단 투덜이 스머프 같아졌다. 특히 윤성아(정은채 분)과 엮일 때마다 감정이 없는 사람치곤 그녀에게 곧잘 휘둘려 버렸다. 프로스트는 공감 능력이 없지만 인물 자체는 공감을 사야 함에도 3화가 방영된 지금까지 그만이 가진 매력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공감능력을 되찾아 나가는 과정?
드라마는 회를 거듭하면서 프로스트가 왜 공감 능력이 없는지에 대한 비밀이 풀어질 것이다. 윤성아 조교를 통해서 변하게 되는 프로스트의 모습이 보여질 것이다. 셜록 홈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미드 <엘리멘트리(Elementary)>에서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주요한 내용 이외에 마약 중독의 홈즈가 재활 과정에서 조안 왓슨의 도움을 받으며 마약을 하게 된 경위를 고백하고, 자신이 품고 있는 두려움과 오만한 천재성 뒤에 어린 아이 같은 나약함을 인정하면서 서로 동료의식을 가지는 된 것처럼 프로스트와 윤성아도 그 둘만의 역사를 쌓아나갈 것이다.
제멋대로에다 컨트롤이 안 되는 셜록 홈즈를 다루는 조안 왓슨은 차분하고 이해심 넘치지만 지지 않아야 할 부분에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을 보여준다. 그에 반해 프로스트를 변화시킬 주요 인물이 될 윤성아는 감정과잉에 산만하기 짝이 없어서 캐릭터 설정이 조금 아쉽다. 발랄하고 사람 좋은 모습이 아니라 쓸데없이 이상주의적이고 오지랖 넓고 민폐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누군가를 변모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피해자나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선택한 이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혀 없는 프로스트의 수사방식과 사건을 대하는 태도 탓인지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도 힐링되고 후련하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극이 끝날 때 윤성아의 마무리용 나레이션도 사건에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바를 한 번 더 짚어주며 감동이나 깨달음을 주기에는 극중 캐릭터와의 격차가 큰 느낌이라 감정이입이 쉽게 되지 않는다.
닥터 프로스트만이 공감능력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니라 이 드라마 자체도 좀 더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인물을 촘촘하고 설득력있게 구성하고 심리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절묘한 사건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남은 회차에서 캐릭터의 역사 쌓이면서 점점 나아지길 바라보는 수밖에 없지만 아직까진 두근두근거리에 부족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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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
앙ㅋ
2015.01.21
감귤
2014.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