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occult)라고 하면 악마나 강령, 흑마술 등이 나오는 이야기를 말한다. 초자연적인 무엇이 등장하면 대체로 오컬트물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너무 넓다. 죽은 누군가의 귀신이나 원혼이 나오는 것과 무저갱 어딘가의 악마가 나타나는 것은 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 오컬트라고 하면 <엑소시스트> <오멘> <서스페리아> <악마의 씨> 같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아미티빌 호러>나 <폴터가이스트> 같은 영화도 오컬트에 포함될 수는 있지만, 다르다. 그런 점에서 오컬트를 좁혀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단순한 유령이나 귀신이 아니라 악마나 악마 숭배자, 마법 등이 나오는 이야기. 위치크래프트, 점성술과 마법, 강령술, 악령, 사탄, 빙의, 저주, 종말론 등등.
오컬트(Occult)는 라틴어 "오쿨투스(Occultus: 숨겨진 것, 비밀)"에서 유래한 단어다. 오컬트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에 대한 탐구 그리고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신비한 지식 등을 의미한다. 오컬티즘은 신비주의, 영성주의 등으로 말할 수 있고 중국의 도교와 티벳 밀교, 이집트 종교와 유대교의 카발라, 기독교의 영지주의 등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이런 밀교, 비밀결사 혹은 이단이라 불리는 종교적, 정신적 흐름을 알고 싶다면 그레이엄 핸콕의 『탤리즈먼:이단의 역사』를 참조하면 좋다.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는 신비주의와 이단의 흐름이 유럽의 문명사에서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흥미진진하게, 경외와 조롱을 섞어 그려낸다.
오컬트를 단지 흥미로만 바라본다면 일종의 마법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 중세의 마녀들에 대한 이야기, 마법과 연금술로 황금과 호문쿨루스를 만들어내는 이야기, 악마를 숭배하고 세상의 종말을 꿈꾸는 악마 숭배 등등으로도 이어진다. 영화에서 ‘오컬트’물인 <오멘>에서는 악마의 상징인 666이란 숫자가 몸에 새겨진 적그리스도가 태어나고, <엑소시스트>에서는 악마가 소녀의 몸에 들어가 퇴마의식을 하러 온 신부를 조롱한다. <서스페리아>는 발레학교가 악마의 소굴이었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악마의 씨>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왔던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는 아이라 레빈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이후 『로즈메리의 아기』라는 제목으로 소설이 출간되었고 속편인 『로즈메리의 아들』도 나왔다. 평범한 중산층 주부인 로즈메리는 능력 있고 다정한 남편과 함께 뉴욕의 고풍스러운 아파트에 입주한다. 이웃은 친절하고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는 환경이다. 그리고 임신에도 성공하여 행복한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음모였다. 아파트는 악마를 숭배하는 집단이 모여 사는 곳이었고, 남편 역시 그들의 일원이었다. 로즈메리를 이용하여 악마의 자식을 세상에 오게 하려는 음모.『로즈메리의 아들』에서는 30년간 혼수상태에 빠진 로즈메리가 깨어나 아들 앤디의 행방을 찾는다. 그리고 아들이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로만 폴란스키는 『악마의 씨』>를 만든 후, 아내인 샤론 테이트가 사이비종교 집단인 찰스 맨슨 일당에게 살해당했다. 『악마의 씨』를 만든 저주라는 말도 나돌았다.
피터 스트라우브의 『고스트 스토리』도 오컬트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걸작이다. 밀번이라는 작은 마을의 노인들이 살해당하고 기괴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 불러온 저주라고 생각한 리키와 시어스는 유명한 호러 소설가이자 초자연현상과 심령술에 해박한 에드워드의 조카 단에게 도움을 청한다. 악마와의 계약, 늑대인간, 흡혈귀, 저주받은 마을 등 공포물의 익숙한 설정과 캐릭터들이 총출동하여 흥미진진한 오컬트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스티븐 킹의 『샤이닝』과 『닥터 슬립』도 흥미롭다. 스탠리 큐브릭이 영화화하여 찬사를 받았던 『샤이닝』은 폐점을 앞둔 고급 호텔을 관리하며 소설을 쓰려고 들어간 잭이 뭔가에 사로잡혀 미쳐가는 이야기다. 『닥터 슬립』은 성장한 잭의 아들이 신비한 능력을 갖게 되고, 비슷한 힘을 가진 악당들과 싸우는 이야기다. 스티븐 킹의 아들인 조 힐의 작품들도 재미있다. 이번에 <혼스>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뿔』은 억울하게 죽은 여자친구의 복수를 위해 악마가 되는 남자의 이야기다. 악마가 대체 뭐가 나빠, 라는 장광설이 매력적이다. 데뷔 단편집인 『20세기 고스트』는 오컬트의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고, 『하트모양 상자』는 우연히 얻게 된 양복에 깃들어 있는 악령과 싸우는 록 스타의 모험담이다. 『하트모양 상자』는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는 흥미진진한 공포 스릴러다.
동양의 오컬트물이라고 한다면 홍콩의 <영환도사> <강시선생> 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악령이 깨어나고 싸우는 이야기라면 전형적이다. 하지만 음과 양의 조화로서 인간과 귀신을 설명하기도 하는 동양의 정서상 악마가 세상을 멸망시키겠다는 오컬트물은 너무 거창하기도 하다. 하지만 만화에서는 『공작왕』 『호수와 토라』『3X3 아이즈』 등 전형적인 장르로서 존재한다. 소설로 오컬트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반도 마사코의 <사국>이 있다. 90년대 이후 일본에서 유행했던 토속 호러의 걸작인 『사국』은 시고쿠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죽은 자들이 하나 둘 돌아오는 이야기다. 영화로 너무나 유명한 스즈키 코지의 <링>은 3부작인 <라센>과 <루프>로 이어지면서 영화와는 달리 일종의 사이버펑크 호러에 근접하고 무한히 확장된다.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처럼 오컬트가 러브크래프트를 만나게 되면 무한한 우주의 ‘절대악’과 조우하는 ‘코스믹 호러’로 뻗어나가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클라이브 바커의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도 그 경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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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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