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가지 소설이 있다. 밝은 소설과 그렇지 않은 소설. 김휘 소설집 『눈보라 구슬』은 후자다. 밝지 않은 소설이 모인 소설집이다. 아니, 어둡다기보다는 기괴하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자아는 분열하고, 도시에는 전염병이 돌며, 이런 시대에 예술은 마케팅의 영역으로 전락한다.
소설가 김휘는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장편소설 『해마도시』를 냈다. 전작에서는 조작된 기억을 다룸으로써 디스토피아를 그려 냈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실재와 환상, 주체와 타자는 뒤섞인다. 예를 들어보자.
단편 「감염」은 괴생명체가 도시를 급습하는데, 알고 보니 그 괴생명체의 존재가 노인 보호 시설에 맡긴 아버지였다는 내용이다. 도시가 노인을 대하는 자세, 의학이 인간을 보는 시각 등 현재 세태를 반영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다지 어떤 여유를 생각해본 적 없이 지냈던 것 같습니다. 혼자만의 긴 여행도 가고 싶었지만 그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어요. 또 늘 개인적으로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았는데, 혼자만의 시간이 망가지지 않도록 긴장과 리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자료를 뒤적거리면서 책 읽기며 소설 쓰기며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이어갔지요. 그런 와중에 작년 겨울에 첫 장편소설 『해마도시』가 출간되었고, 이후 약 8개월 만에 첫 소설집 『눈보라 구슬』이 세상에 나왔어요.
보통은 수록한 단편의 하나를 단편집 제목으로 하던데요. 소설집의 제목을 ‘눈보라 구슬’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래는 수록 작품인 ‘괴담 라디오’가 소설집 제목이었는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에세이 제목이랑 비슷했어요. 아무래도 걸리는 부분이기에 편집자와 함께 고민했고, 그래서 나온 제목이 ‘눈보라 구슬’입니다. 보통은 수록 작품 중에서 제목을 뽑지만, 수록된 단편들이 가진 다양한 느낌과 색깔을 아우를 수 있는 제목으로 가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어요. 제목은 작품 혹은 작품집의 운명 같은 것이라고 보는데 ‘눈보라 구슬’을 입술 끝으로 발음해보는 순간, 제 첫 소설집의 원래 제목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일곱 편의 소설 속에서 공통적으로 독자가 느끼고 발견하게 될 서늘한 시선을 상징적이면서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책 띠지에 있는 표현처럼 소설집에 실린 중단편은 불편하게 하는 소설인데요. 소설로 표현하고 싶은 감성은 어떤 것인가요.
‘작가의 말’에서 “인간을 숙주 삼아 자라고 부풀려지는 수만 개의 욕망이 하얗게 웃고 있는 세상을 본다. 나는 그 서늘하고 슬픈 웃음들을 기록한다.”라고 언급했듯이 욕망하면서도 그 욕망에 함몰되어 가는 인간의 아이러니하면서도 연민할 수밖에 없는, 또 한편으로는 섬뜩하기까지 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결국 욕망하고 욕망에 지배되고 욕망에 스러지는 인간이란 경계에 선 존재이죠.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이구요. 그 끊임없이 흔들리는 갈등의 진폭이 독자에게 일종의 현기증 같은 불편함을 줄 수도 있을 겁니다.
「목격자」와 「아르고스의 눈」은 분열하는 자아를 그린 듯합니다. 작중 인물이 정신분열을 겪는 듯도 한데요. 이런 병리적인 인간을 첫 번째, 두 번째 단편에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느 별나라에 사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죠. 누구나 내적인 이유든 외적인 이유든, 또 작든 크든 다양한 성격의 트라우마라는 걸 안고 삽니다. 강박은 그 트라우마가 표출되는 방식이죠. 강박에 시달리는 자는 무의식적으로 탈출구를 찾는데 그게 환각으로 나타나곤 하지요. 환각은 일종의 탈출구 찾기라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해결이 안 되니까 무의식적으로 환각과 조우하는 거죠. 살기 위해서 말이에요. 더 나은 현실로의 탈출구 찾기에 매달리는 현대인들 역시 그런 병리적 인간 유형에서 멀리 있지 않죠. 우리 모두가 이런 병리적인 증상을 앓고 있다고 봐도 그리 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트숍」에는 현대 예술이 처한 기묘한 상황을 그린 것 같은데요. 문학도 창작이라는 면에서 예술일 텐데, 예술의 본질과 기능은 무엇인가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예술은 기억과 마찬가지로 회상하기에 의한 재구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재구성은 다른 말로 ‘창조’일 겁니다. 창조는 이미 있는 세계,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한 낯설게 하기라는 의미에서 가능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구요. 바로 그것이 예술의 기능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소통’을 들 수 있겠지요. 예술의 창조성은 작가와 작가의 삶, 그리고 그 작품을 대하는 타인과의 대화도 가능하게 하니까요. 세 번째로는 예술 작품을 통한 끊임없이 지속되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삶의 ‘영속화’도 언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술의 본질은 자유이자 해방이 아닐까 그렇게 하고 생각해봅니다.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틀에 갇히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니까요.
「감염」은 좀비물을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었는데요. 다른 작품에 비해 훨씬 SF적인 느낌이 강했는데,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듯합니다.
생명 산업과 관련한 사건 기사들을 접하게 되면서 머릿속에 어두운 이미지가 계속 맴돌았어요. 생명과 관련된 특허 경쟁이 제약과 의료 부문에서 전쟁 수준으로 치열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의 모 거대제약회사의 임상실험성 약이 아프리카 에이즈 환자들에게 제공된다는 사실을 우연히 접하고는 무섭고 착잡했습니다.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실험용 쥐가 되는 거잖아요. 이런 사례는 우리가 아는 아주 작은 것일 뿐 감지하지 못하는 더 무서운 일들이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자연을 수탈하고 동식물을 자원의 대상으로 삼았던 인간이 인간의 생명과 인체 조직을 상품화하고 자원으로 삼아 이윤 창출을 꾀하는 세상이라는 사실이, 또 그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무기력감이 소름 돋게 하더군요. 그런 일련의 기사 및 자료 내용과 평소 지니고 있던 생각들이 어우러져 「감염」을 쓰게 되었어요.
「나의 플라모델」에서는 새터민이라는 사회ㆍ정치적인 이슈를 다뤘는데요. 딱 떨어지지는 않더라도 순수문학과 사회참여문학이라는 두 축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시나요.
전 사실 선을 긋고 싶지 않습니다. 순수문학과 사회참여문학, 뿐만 아니라 소위 장르문학이라 불리는 축도 있는데요, 문학의 선 긋기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요즘 발표되는 순수문학에서도 사회참여적이거나 장르적인 장치와 소재가 다 녹아 있지 않습니까. 사회참여적인 문학이나 장르문학에서도 순수문학 소설 못지않게 주제의식과 인간 내면의 천착, 삶의 보편적 의미성에 대한 사유가 녹아든 매력적인 작품들이 많습니다.
결국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이런 전제하에서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이 유의미하다고 보구요. 순수문학이건, 장르문학이건, 사회참여문학이건 독자와 소통하는 이야기, 그리고 독자에게 거울을 혹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확대경을 선사하는 이야기가 좋은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통, 문학적 울림,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방식의 낯섦에서 오는 매혹, 여기에 재미까지. 이런 부분들에서 만족할 수 있는 소설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거울이니 확대경이니 이런 말은 사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되찾은 시간’ 편에 나오는 말인데요, 프루스트는 소설을 확대경에 비유했습니다. 아주 적확한 비유인 것 같아요. 소설이 독자에게 답을 주고 희망을 제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소설이 가치가 있는 건 독자에게 ‘환기’를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거울이거나 자신이 보지 못했던 주변을 사회를 인간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확대경 같은 의미로 말이지요.
김휘는 필명인가요.
필명입니다. 본명은 김휘주(金輝珠)이구요. 가족이나 지인들이 기억해주고 불러주는 김휘주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다른 이름으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필명이 김휘인데, 원래 이름 김휘주에서 ‘주’ 자만 뺐어요. 줄인 거죠. 마치 무라카미 류가 원래 이름 무라카미 류노스케라는 이름을 줄인 것처럼 간명하고 기억하기 좋게 줄였다는 것 이외의 복잡하고 대단한 의미는 없습니다. 아, 휘는 원래 이름에 있는 빛날 휘(輝) 자를 그대로 씁니다.
철학과 불어불문학을 전공해서인지, 작품 세계가 꽤 난해하게도 느껴지는데요. 어떤 글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글쓰기는 무엇인지요.
한마디로 뭉뚱그려서 말하자면 읽은 뒤에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랄까요. 여운을 오래 남기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인상적인 문체나 서사의 깊이에서 오는 울림과 사유, 인간 심리에 대한 집요하고 깊은 통찰, 독특한 설정과 분위기에서 오는 진한 매혹 등. 이를테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같은 작품이 제게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욕망의 이면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룬 작품들에 시선이 많이 갑니다. 빙산의 수면 아랫부분처럼 거대하고 깊은 것이 인간 욕망의 어두운 이면이라고 보는데요, 농도에 따라 아이러니한 슬픔과 우울을 낳을 수도 있고, 섬뜩하거나 공포스러울 수 있다는 면에서 매력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글쓰기도 큰 틀에서 볼 때 그런 작품들에서 많이 벗어나진 않겠지요. 서사의 힘을 잃지 않은,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지닌 은밀한 비밀을 들킨 것처럼 불편하지만 동시에 매혹적인, 그런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다음 작품이 궁금합니다.
다음 작품은 장편소설입니다. 작품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환경이 지금보다 더 파괴된 근미래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또 그 과정에서 인간의 탐욕과 폭력성, 그리고 인간의 사랑은 어떤 모습을 지니는지를 다룬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
눈보라 구슬 : 김휘 소설집 김휘 저 | 작가정신
2007년「나의 플라모델」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한국소설의 신영토를 개척했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데뷔한 김휘 작가의 두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소설집 『눈보라 구슬』이 출간되었다. 첫 장편소설 『해마도시』에서 조작된 인간의 기억을 통해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려낸 바 있는 김휘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실재와 환상, 악몽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들면서 독자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김휘의 소설은 한국 문학의 계보에서 닮은 누군가를 찾기 어렵다.
[추천 기사]
- 섬이 된 사내, 김영갑
- 광안리 밤바다와 청춘의 까대기
- 포르부에서의 한나절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 오페라 하우스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빛나는보석
2014.09.29
서유당
2014.09.26
앙ㅋ
2014.09.25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