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별 장르소설 읽기 프로젝트 – 입문 (2)
앞에 어떤 딱지가 붙건 미스터리라면 갖춰야 할 필수 요소 세 가지가 있다. 흥미로운 수수께끼, 논리적 전개, 그리고 뜻밖의 결말. 이 세 요소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미스터리로 불릴 수 없다. 미스터리 작가들은 이미 발표된 작품과 내용이 비슷하지 않도록 애를 쓰는 한편, 세 가지 요소를 담는 미스터리의 틀은 두루 함께 쓴다.
글ㆍ사진 권일영
201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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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나누어 그 틀 안에 작품을 담는 일은 쉽지 않다. 작가들까지 나누고 갈라 장르에 묶어두기는 더욱 그렇다. 한 장르만 고집하는 작가가 드물고, 한 가지 성향만 담긴 소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수수께끼 풀이에 몰두하는 골수 본격추리를 제외하면 대개 다른 장르의 특성도 아울러 갖추기 마련이다. 하드보일드의 스타일을 빌리는가 하면 과학소설이나 판타지의 장치를 도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편해도 구분하고 나눠야 할 때가 있다. 이 ‘단계별 장르소설 읽기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편의상 명칭을 붙이고 구분하지만 장르 용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김봉석의 장르 키워드 사전>으로 넘긴다.

 

애크로이드살인사건.jpg

 

앞에 어떤 딱지가 붙건 미스터리라면 갖춰야 할 필수 요소 세 가지가 있다. 흥미로운 수수께끼, 논리적 전개, 그리고 뜻밖의 결말. 이 세 요소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미스터리로 불릴 수 없다. 미스터리 작가들은 이미 발표된 작품과 내용이 비슷하지 않도록 애를 쓰는 한편, 세 가지 요소를 담는 미스터리의 틀은 두루 함께 쓴다. 예를 들어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처럼 뜻밖의 결말로 독자를 놀라게 하는 기법은 애초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이제 많은 작가들이 즐겨 사용한다. 이 기법의 명칭은 중급부터 밝히기로 한다.


1980년대 말에 시작된 일본 신본격의 인기는 2006년까지 꾸준히 유지되었다. 본격추리의 부활이라는 깃발을 내건 신본격은 고전 황금기와 달라진 환경 때문에 자주 이 기법을 사용해 ‘뜻밖의 결말’이 주는 효과를 높였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기본으로 마련되어 있는 ‘뜻밖의 결말’에 이 기법으로 한 차례 더 뒤집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관’ 시리즈를 첫 미스터리로 읽고 자란 세대가 작가로 성장하자 더 많은 작가들이 이 기법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제는 거의 미스터리 하위 장르로 자리를 잡은 상태다. 마치 밀실트릭이나 알리바이 트릭처럼.


이 기법을 사용한 작품 가운데 입문에 어울리는 소설로는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 슈노 마사유키의 『가위남』이나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 쓰쓰이 야스타카의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을 들 수 있다. 뒤의 두 작품은 발표 연도가 각각 1963년, 1990년이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의외성을 극대화하는 수법을 맛보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 미스터리 독자와 대화하기 위해서도 읽어두면 좋을 작품이다.


성인이라면 ‘19금’인 오츠 이치의 『GOTH』를 먼저 읽어도 좋다. 제3회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단편이 모여 마치 하나의 장편처럼 연결되는 ‘연작단편집’ 형식인데, 특히 「개」라는 단편에서 이 기법을 멋지게 구사하고 있다. 심화편, 마니아 단계에서는 이 기법의 명칭을 언급하며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로 한다.

 

 

마쓰모토 세이초에게 붙는 여러 수식어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그를 흔히 사회파 미스터리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사회파는 본격추리와 함께 일본 미스터리를 이끌어온 큰 흐름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사회파 미스터리를 쓰고 있으며, 혹은 사회파 미스터리‘도’ 쓴다. 이 미스터리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중요하게 여기며, 그 동기와 사회 문제의 관계를 파악하여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형식을 취한다. 말하자면 미스터리의 세 가지 요소를 사회성으로 반죽한 셈이다. 하지만 요즘 미스터리 가운데 동기를 중시하지 않는 작품은 없고, 사회성을 뺀 작품도 없다. 결국 퍼즐 미스터리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회파라고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난번 글에서 언급한 많은 작품들이 사회파 미스터리다.


비교적 최근작으로 입문 단계에 읽을 만한 사회파 작품으로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추천한다. 입문 필독서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큼 깔끔한 미스터리다. 데뷔작이면서도 2009년 서점대상, 2008년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를 차지해 큰 화제를 모았다. 데뷔 이후 유사한 스타일의 작품을 계속 내놓아 기대감이 많이 줄었지만 외면하기에는 아까운 작가다. 『고백』이 마음에 들었다면 『속죄』『왕복서간』, 『망향』을 더 추천한다. 단편집 『먕향』에는 2012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부문을 수상한 「바다별」이 수록되어 있다. 최근작인 「먕향」을 나중에 읽도록 한다.


『13계단』, 『그레이브 디거』의 다카노 가즈아키는 작품을 드문드문 내는 편이지만 늘 주목할 만한 사회파 미스터리를 내놓는 작가로 꼽힌다.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 『푸른 불꽃』, 누쿠이 도쿠로의 『난반사』, 『우행록』, 『미소 짓는 사람』은 입문 단계에서 빼놓고 가면 후회할 빼어난 작품들. 입소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본격적으로 다룬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문』도 사회파 미스터리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원래 본격추리로 출발했지만 사회파 미스터리로도 유명해진 작가로 모리무라 세이치를 꼽을 수 있다. 일제의 세균전 부대를 폭로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한 모리무라 세이치는 엄청나게 많은 소설을 써냈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인간의 증명』, 『청춘의 증명』, 『야성의 증명』으로 이루어진 ‘증명 3부작’. 시대감이 느껴지지만 독자가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지난번에 예로 든 미야베 미유키나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들과 함께 사회파 미스터리의 참맛을 볼 수 있는 시리즈다. 내용이 서로 이어지는 시리즈가 아니기 때문에 읽는 순서는 관계없다. 기회가 된다면 드라마도 찾아 원작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를 누릴 수도 있다.

 

 

사회파와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하드보일드에도 입문 단계에서 빼놓기 힘든 작품들이 많다. 하라 료의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를 권한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도 함께 읽는다면 더 풍성한 미스터리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유키 쇼지의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는 오래된 스파이소설이지만 작가가 일본 하드보일드의 기초를 닦은 인물인 만큼 그 스타일을 맛볼 수 있다. 하드보일드를 스타일로 비교적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히구치 유스케의 『나와 우리의 여름』을 추천한다. 고등학생들이 등장하는 미스터리로 잔잔한 하드보일드를 체험할 수 있다.

 

일본 미스터리에는 독특한 명칭을 지닌 하위 장르들이 있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상의 미스터리’. ‘코지 미스터리’와는 다른 야릇한 재미를 준다. 일본 미스터리 입문 단계에서 필독서로 꼽을 만한 대표작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연작 단편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으로,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와 함께 읽으면 일상의 미스터리에 대한 윤곽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최근 우리말 판이 나온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로 입문해도 좋다. 고전부 시리즈는 발매 순서를 따라 읽기 바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미스터리에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가 라이트노벨 작가들의 진입, 혹은 라이트노벨과의 융합이다. 2006년 이후 침체 양상을 보이는 일본 미스터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지, 더 침체의 늪으로 밀어 넣을지 아직 그 향방을 알 수 없다. 다만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점은 라이트노벨이 ‘가벼운 소설’이라는 뜻이 아니며, 미스터리나 과학소설, 판타지와 같은 구체적인 장르의 명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여러 장르를 두루 포함한, 일본 출판 마케팅이 만들어낸 대중문학의 또 다른 흐름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어린 시절 신본격의 세례를 받고 자란 작가들이 많아 라이트노벨은 미스터리 계열 작품이 많다.


앞에 이야기한 오츠 이치나 요네자와 호노부는 물론, 최근 소개된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의 작가도 라이트노벨로 데뷔했다. ‘만능감정사 Q의 사건수첩 시리즈’는 라이트노벨에 머물며 미스터리를 추구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라이트노벨 가운데 읽고 넘어가면 좋을 미스터리로는 순문학과 장르소설을 오가며 활약하는 마이조 오타로의 『연기, 흙 혹은 먹이』, 사토 유야의 『플리커 스타일』, 니시오 이신의 『잘린 머리 사이클』을 들 수 있다. 읽어두면 다른 미스터리 독자들과 대화할 때 도움이 된다.


아쉽지만 라이트노벨에 속하는 미스터리에 대해서는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심화, 마니아 단계에서는 제외하기로 했다. 읽은 작품이 적어 작품을 고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라이트노벨 관련 커뮤니티나 사이트, 마니아의 블로그를 이용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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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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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ru

2014.09.16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하죠. 요즘이야 그다지 드문 일도 아니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정말 뒤통수를 세차게 내려치는 반전이었죠.^^ 입문작의 교과서로 불릴 법한 [13계단]도 보이고 -저의 일미 입문작이기도 했죠, 아마도,,^^-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도 눈에 띄네요. 단, 고백을 입문작으로 하면 다른 작품들을 읽었을 때 충격이 덜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말이죠. 더불어 아직 읽지 않은 [망향]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권일영 번역가님께서 라이트 노벨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시는 것도 신기하고~ 요 칼럼 넘넘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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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4.07.08

오! 읽고 싶은 책들만 콕! 찝어주셨네요.
흥미로운 수수께끼, 논리적 전개, 그리고 뜻밖의 결말. 이 세 요소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미스터리로 불릴 수 없다는 말씀에 끄덕 끄덕~
번역가 권일영님의 다음편도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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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영

전업 번역자. 중앙일보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번역을 업으로 삼고 있다. ‘일본미스터리즐기기’ 카페 운영자이며 아직 창작은 하지 않지만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원이기도 하다.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기리노 나쓰오의 《다크》, 《IN》,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 존 딕슨 카의 《셜록 홈즈의 미공개 사건》을 비롯해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오리하라 이치 등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또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나니와 몬스터》을 비롯한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와다 료의 《노보우의 성》, 《바람의 왼팔》을 비롯한 시대·역사소설을 번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