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예테보리에 가고 싶다
이게 뭐니, 작가의 말 재도전
솔직히 예테보리가 어디에 존재하는 도시인지
모름.
솔직히 도시인 줄도 몰랐음.
내가 모르는 곡물인 줄 알았지 뭐요.
솔직히 쌍쌍바를 안 사먹은 지도 좀 됐음.
그래서 소설 제목을 이렇게 하면 딱 좋겠다며
양팔을 발딱 세웠던 거요.
소설이란 쌍쌍바 같은 건지도 모름.
마음먹은 대로 딱 떨어지질 않음.
아마도 정확하게 쪼개지면 재미없을 거요.
어쨌거나 타조는 날지 않아도 괜찮음.
꽤 빠르잖소?
아니 젠장 다시, 작가의 말 3차 도전
벌판에네번째책을올려놓소삼년공백이있었소그동안스뽀오츠정신이라곤없었소소주를많이마셨소
갈수록개판이되는소설가는안멋지잖아웃기면다된다고믿으면안웃기잖아술주정을일삼았소
면상이고펜이고세울수없는처량한처지였소소설로부터마구달아났소
…
(230~232쪽)
본문보다는 ‘작가의 말’을 먼저 읽으면 소설 감상하는 데 도움될 때가 있다. ‘작가의 말’에는 소설가의 개성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 개성은 이야기에 투영된다. 위에 인용한 글은 『예테보리 쌍쌍바』에 수록된 ‘작가의 말’이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문장에서 보듯, 박상은 특이한 작품을 써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험’을 해온 셈이다.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에서도 이런 실험은 계속 이어왔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15번 진짜 안 와』 이후 3년 동안 그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썼다고는 해도, 발표한 작품은 없었다. 『예테보리 쌍쌍바』는 긴 침묵 끝에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공백 동안 소설가의 심경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실험은 계속 하겠지만, 좀 더 지능적으로 하겠다는 것. 파격을 추구하되, 그 전에 격부터 알아야겠다는 말을 소설가는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은 가장 박상스럽지 않은 작품일지도 모른다. 유쾌한 문장은 여전하지만, 기존의 박상 작품과는 다른 점이 나타난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과 이를 형상화하려는 장치는 기존 소설의 문법에 충실하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해서 묘사되는 서술 방식은 여타 소설도 즐겨 쓰던 방식이었다. 그리고 묘사도 좀 더 탄탄하게 했다. 결정적으로, 소재다. 일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주된 이야기를 일에 맞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다수가 일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좀 더 많은 독자와 이야기로 소통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드러난다.
아직도 소설 쓰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먹고살아야 하니까 일을 이것 저것 했어요. 하나를 오래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여러 일을 했죠. 그런데 일을 하면 소설 쓸 시간이 없더라고요. 퇴근하고 나면 녹초가 되니 못 쓰고, 다음 날 또 출근해야 하고요. 주말에 써야지, 했는데 주말 되면 놀아야죠. 소설로만 먹고 살 수 없으니, 일을 관둘 수도 없고요.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돈 좀 벌면 글 쓰고 돈 떨어지면 일하고, 그렇게요.
소설가가 면접 보는 장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데요.
머리가 짧으면 소설이 안 써져서 머리를 기르는데요. 면접 때는 머리도 짧게 하고 수염도 깎죠. 그러면 박상이 박상 같지 않아요. 이력서 쓸 때나 면접 볼 때 소설가라는 이야기는 안 합니다. 이야기했더니 안 뽑아줘요. 소설가라고 하면 꼴통이겠지, 또라이겠지, 하는 생각이 깔렸나 봐요.
나중에라도 회사에서 알게 된 적은 없나요?
있었죠. 아직도 소설 같은 걸 쓰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하는 표정을 짓던데요. 상사들은 “근무 중에는 쓰지 마”, 이렇게 말하는데, 사실 못 쓰죠. 근무 중에 집중 안 되는데 어떻게 써요. (웃음)
3년이라는 공백이 있었는데, 작품을 내지 않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15번 진짜 안 와』 이후로 갑자기 문학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꼭 내가 해야 하나, 내가 쓴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게 들릴까, 이런 고민을 하니까 모든 게 두렵고 안 쓰기 시작했죠. 소설이 버릴 수 없는 꿈이라 다시 쓰게 됐습니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다른 방식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소설을 읽기 전에 독자가 알아두면 좋을 ‘일독 설명서’라는 게 있다면.
그전에는 제 얘기만 했다면 이제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던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매번 특이한 소설만 고집한다거나 실험만 한다면, 다른 사람 삶과 상관이 없잖아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소재를 택했어요. 그래서 직업인들을 스포츠 '선수’로 비유했는데요. 독자들에게 조촐한 위로 혹은 해법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제목에 관해서는 후기에도 썼지만, 설명 부탁할게요.
예테보리에는 가 본 적 없고 어디 있는 도시인지도 몰랐고요. 쌍쌍바도 안 먹은 지 오래됐는데요. 예테보리라는 도시 출신의 록 밴드가 많아요. 주로 고딕, 멜로딕 메탈 밴드들이죠. Dark Tranquillity 같은. 소설 내용에서 록 사운드와 같은 스피드를 추구하니, 이 작품에 어울리겠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쌍쌍바는 갈라 보면 딱 갈라지지 않잖아요. 소설이 딱 떨어지는 게 아니니까. 제목을 이렇게 지었더니, 너무 궤변이지 않으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재미를 못 찾으면 아저씨가 된다
소설 속에서 ‘아름다움’, ‘노동’, ‘승부’, ‘스뽀오츠’ 등이 소설 속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번 소설을 꿰는 키워드를 꼽는다면?
결국은 아름다움이죠. 사람 사는 모습이 다양하죠. 직업도 다양하고, 인생관도 다양한데요. 이것들을 하나로 꿸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해 보니까 아름다움이더라고요. 스포츠나 승리욕 등은 남자에게는 잘 어울리는데 여성까지 포괄하지는 않는 것 같고요. 누구나 아름답게 살고 싶은 욕망은 있잖아요. ‘아름다움’으로 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상 작가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름답잖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걸 해내는 것도요. 이 둘이 합쳐지면 매우 아름다워지죠.
아름다움에 대비되는 존재로 아저씨를 묘사했습니다.
제가 사회생활하며 만난 아저씨마다 유난히 매너가 없고, 좀 더럽고 안 웃기더라고요. 농담해도, 쌍팔년도 감각이고요. 화이트칼라 직종 아저씨들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아요. 대한민국 아저씨들은 피곤하고 지쳐 있고, 재미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책임과 의무 때문에만 산다면 점점 그렇게 변해갈 수밖에 없다고 봐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다 귀찮고 싫은 거죠. 인생이 재미없으면 아저씨가 된다고 소설에 썼는데, 저는 아저씨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재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최근에 찾은 재미는?
디아블로 3요. 그런데 이것도 거의 끝나가요. 더는 먹을 아이템이 없어서. 아, 최근엔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소설가, 일 그리고 다른 활동도 다양하게 했잖아요.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의 일환이었나요?
네. 하고 싶은 건 일단 해봤죠. 야구 좋아해서 사회인 야구 리그에서 뛰었는데 저야 재미있었지만 너무 못하니까 계속 벤치 신세고, 한두 번 안 나가다 보니 계속 안 나가게 되더라고요. 팀에서 나오라는 연락이 와서 후반기부터는 나갈까 싶기도 하네요. 밴드 활동도 했었는데, 원래는 메탈을 하고 싶었는데 제 연주 수준이 모자랐어요. 메탈을 하려면 실력이 받쳐줘야 하겠더라고요. 글 쓰는 사람끼리 모여서 취미 삼아 했던 밴드라서, 제 실력이 형편없는데도 끼어있을 수 있었죠. 밴드도 잘하면 재미있었을 텐데 못하니까 재미없더라고요. 한번은 장기하 밴드가 서는 데서 공연을 했는데 실력이 너무 크게 비교가 되니까 쪽 팔렸어요. 최근에는 주로 집에서 술 마시고 놀아요. 동네 친구랑 농담하고 떠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작품 속에 작가를 닮은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는데요. 이번 소설에서 주인공의 삶과 소설가의 삶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가가 되기 이전에 주인공처럼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소설가가 되기 전에도 그랬고, 소설가가 되고 나서도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3년 동안 글쓰기 공백이 있었는데, 이때 했던 일이 다 블루칼라 직종이었죠. 소설 속 주인공과 제 삶이 비슷할 수밖에 없어요. 주인공 신광택이 했던 일들, 살아가는 모습이 제 삶이기도 했고요. 자기가 아는 경험을 이야기할 때 전문적으로 들어갈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소설 속 주인공은 인공적인 인물입니다. 일례로 주인공 신광택에게는 속도가 중요한데요. 실제 저는 보시는 대로 느긋합니다. 약속에 늦을 때만 좀 급해지죠.
선수가 되면 자기 자신은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전작인 『말이 되냐』, 『15번 진짜 안 와』, 『이원식 씨의 타격 폼』에 등장했던 이원식이 이번 소설에서도 등장하는데요. 박상에게 이원식은 어떤 존재인가요?
이원식이라는 이름이 여기 저기 갖다 붙이면 어디에나 잘 어울려요. 이번 소설에서는 세차장 주인으로 나오죠. 개똥 철학 창시자이기도 하고요. 원래는 친구 이름이에요. 정말 소설 잘 쓰는 문예창작과 친구였는데, 그 친구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소설을 못 쓰게 됐죠. 소설을 쓰려면 일 멈추고 써야 하는데, 일 안 하고 쓰는 게 힘들잖아요. 저는 그 친구에 비하면 되게 못 썼어요. 누군가의 꿈과 재능이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져도 되는가, 싶더라고요. 그런 이원식을 최소한 소설에서라도 기념을 하자, 이렇게 쓰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도 캐릭터가 맞으면 계속 쓰려고 합니다. 어떤 작품에서는 모든 인물을 이원식으로 쓰기도 했어요. 재미는 있었는데 헷갈려서 못 읽겠다는 평을 들었죠.
모든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예테보리 쌍쌍바』가 던지는 물음이기도 할 텐데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워낙 팍팍해진 세상이죠. 특히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고 개인은 무력한 존재죠. 블루칼라 직종에선 십 년 전 월급이나 지금 월급이나 똑같아요. 물가가 그렇게 올랐는데도요. 이런 시대에서, 어쨌든 알아서 극복하고 자기가 하는 분야에서 딴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 ‘선수’일 텐데요.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게 선수라는 용어의 의미가 되면 좋겠습니다. ‘선수’가 되면 지금의 불합리한 구조에서도 자기 자신의 가치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듣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콘텐츠 소비하는 인구는 정해져 있는데, 소설의 경쟁 상대가 다양하잖아요.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웹툰도 있고요. 소설은 이런 것과 경쟁하지 말고 소설 자체와 경쟁하자, 이렇게도 들리네요.
어려워졌죠. 소설 읽는 인구가 많이 줄었고요. 저만 해도 웹툰 애독자이고요. 웹툰 수준도 높아졌어요. 소설은 다소 고답적인 형식이죠. 무기라고 해 봐야 활자의 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활자문명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살아남았으니 조금 축소되더라도 싹 없어지진 않겠죠. 책에도 썼듯,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소설 쓰는데 의미는 있어요.
박상 소설가에게 고정 독자가 꽤 있지 않나요? 특유의 B급 정서를 좋아하는, 그런 독자요.
없어요. (웃음)
B급 하면, 주성치가 떠오르는데요. 주성치 좋아하세요?
네. 제가 좋아하는 개그가 딱 주성치 식의 개그인데요. 전 주성치라는 이름만 들어도 터져요.
혹시 B급을 두고 경쟁자로 삼는 소설가가 있나요?
경쟁자가 있을까요? 그런 걸 좋아하는 작가가 별로 없을 텐데요. 더구나 문단에선 제가 인지도 면에서 말단인데요. “박상이 누구야?” 하는 마당에 경쟁자라니요. (웃음)
결말이 첫사랑인데요. 박상에게 첫사랑은?
첫사랑은 뭐, 역시 여자죠. 소설 속의 현희란 이름도 첫사랑 이름이에요. 첫사랑이라는 느낌 자체가 좋지 않나요? 처음으로 좋다고 느꼈던 강렬한 감정은 한참 지나도 기억이 나요. 영원히 기억에 남는 격한 순간, 이런 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많지는 않죠. 첫 월급, 첫 여행, 이런 느낌이요. 여전히 기억에 남아요.
작가의 말을 무려 4번 썼습니다. 쓰는 데 시간 많이 걸렸을 것 같은데요.
1주일 고민했어요. 첫 번째로 ‘예테보리에 가고 싶다’라고 썼는데, 분량이 너무 모자라지 않나, 해서 다시 썼어요. 그렇게 쓰고, 또 쓰고 했죠. 나중에 읽어 보니 도전이라는 소설의 주제랑도 부합되는 것 같고 재미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다 넣었죠.
웃기고 싶은 욕구는 포기할 수 없어
창작관, 문학관에 관해 물어볼게요. 20세기 소설과 21세기 소설이 약간 다르잖아요. 20세기 소설은 진지하고, 어느 정도는 정해진 서사 법칙을 따르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있죠. 이른바 ‘순수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그에 비해서 21세기에 등장한 소설, 소설가 중에서는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꽤 있었습니다. 박상 소설가의 작품도 그렇게 볼 수 있을 듯한데요. 지금 시대 소설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매우 어려운 질문이네요. 출판사에서 책 띠지에 ‘한국문학의 이단아’라고 썼는데요. 한국문학의 교리가 엄숙주의라면, 제가 그 교리를 위반하는 건 맞아요. 박민규 작가가 이단옆차기를 제대로 날렸다면, 저는 자동차 기어로 치면 1단 정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 이단아가 아니라 일단아 정도겠죠. 제 작품이 관습이나 규범을 거부하려는 모습은 있죠. 순수문학의 엄숙한 느낌도 좋지만, 다양하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많았죠. 그래서 남들이 안 썼던 문장도 쓰고, 남들이 안 했던 이야기도 해보고 싶기도 하고, 다양하게 실험을 했는데요. 시도하는 건 좋지만 격이 떨어지면 아웃사이더도 못 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파격을 추구하지만, 요즘은 격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4권째 책을 냈으니, 이제는 마음대로 쓰면 안 될 것 같아요. 첫 번째, 두 번째 때야 처음이니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제는 포용 받기는 힘든 상황이에요. 실험하더라도 지능적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험하고 싶은 욕구는 넘치지만 이단옆차기를 날리더라도 확실하게 날릴 수 있게, 많이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예테보리 상쌍바』가 나왔는데요. 이 작품을 가장 박상스럽지 않은, 하지만 앞으로 박상스러운 작품이라 이해해도 될까요?
네. ‘박상스럽다’는 말이 ‘말도 안 되는 말장난’, 이런 거라면 이제 새로운 걸 하려고요. 여러 번 했는데 별로 재미없었거든요. (웃음)
등단 이후에 소설 쓰면서 가장 변한 것이랑, 절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많이 변한 건, 일단 점점 늙어가고 있고 나이를 먹었죠.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정신 쪽에, 뇌 쪽에 뭔가 영역이 넓어져요. 예전에 안 보이던 게 보인다든지, 모르던 게 이해된다든지 하는. 이런 점이 소설에도 반영돼요. 예전 작품에서는 묘사도 잘 안 했거든요. 진술을 던지고 ‘내가 이렇게 느꼈으니 너도 느껴!’, 불친절했죠. 이번 작품에서는 묘사를 꼼꼼하게 해 봤어요. 안 하던 걸 하려니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묘사한 문장이 진술한 문장보다 힘이 있어요. 절대 안 변하는 건, 웃기고 싶다는 참을 수 없는 욕구. 웃겨야 해! 이게 일반적인 개그본능이라기보다는 소설의 재미, 소설을 끌고 가는 힘이 되어야겠죠. 독자가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써 유머, 이건 안 변할 것 같아요.
『예테보리 쌍쌍바』에 이동수단이 많이 등장하고, 『15번 진짜 안 와』도 한국을 떠나, 영국에 체류하면서 겪은 경험을 쓴 작품인데요. 박상과 노마디즘에 관해 한마디 한다면.
나 자신이 워낙 유목민처럼 살았죠. 여기저기 떠도는 걸 참 좋아하고요. 『예테보리 쌍쌍바』 주인공도 많이 움직이는 직업을 선택해야 속도로 승부할 수 있겠다고 봤어요. 주인공이 추구하는 게 일단 속도여야 한다는 점에서 어울리는 직업이 중국집 배달원, 운전기사, 세차장직원만 남더라고요. 배달원이나 운전기사는 다소 중복되기도 하지만, 속도를 추구하는 면에서는 남는 직업이 이것밖에 없었어요.
영국에는 큰 목적 없이 갔어요. 여행 갔다가 여기 분위기 괜찮은데 눌러앉을까, 했는데 마침 일자리가 구해졌어요. 돈을 버니까 오래 살아보고 싶었고, 온 김에 뭔가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는데요. 물가가 세니까 투잡을 뛰어도 생활비 빼면 남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문화를 즐기기로 했죠. 할 게 워낙 많았거든요. 개인 소장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공짜예요. 자기들 게 아니고 빼앗아 온 거니까요. 그런 데만 찾아다녀도 시간이 모자라요. 2년 동안 있으면서도 못 가 본 데가 많았어요. 일 하느라 고생도 좀 했지만 문화적인 측면을 많이 배우고 즐겼으니 좋았죠.
한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 계획은 당분간 없나요?
이제 여기 가만히 있으면서 좀 열심히 쓰려고 해요. 외국 가면 안 써져요. 가만히 숙소에 있기 싫으니까요. 지금은 써야 할 글이 많이 밀렸어요. 에세이도 준비하고 있는 게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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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테보리 쌍쌍바 박상 저 | 작가정신
한국 문단의 이단아 박상의 신작 장편소설『예테보리 쌍쌍바』가 출간됐다. 세상과의 승부, 종국에는 자기 자신과의 승부에서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펼치는 한 ‘선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들에게 “당신은 일반인인가? 아니면 선수인가?”라고 묻는다. 박상의 사전에서 선수란 “단순한 투지와 경쟁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멋진 승부를 펼치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재미도 없고 공평하지도 않은 이 세상”을 다르게 살아보기 위해 선수가 되어 일반인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과정이 역동적으로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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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j3llyfish
201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