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마련한 문화기술포럼에 다녀왔다. 음악, 뮤지컬, 영화, 게임 등 콘텐츠 제작에 활용되는 문화기술의 변화와 흐름을 살피는 자리였는데, 기조연사가 뮤지컬 <고스트>의 무대감독인 폴 키에브였다. 그가 <고스트>에 적용된 마술 같은 첨단 무대기술을 설명하는데, 기자는 홀로 우리나라 뮤지컬시장이 정말이지 빠르고 크게 성장했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했다.
<명성황후>의 경사진 회전무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 기사를 써대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무대감독들을 인터뷰하고 싶을 정도로 신기한 무대가 많다. 그런데 폴 키에브 감독은 무대에서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스토리텔링이라고 했다. 좋은 이야기에 적절한 기술이 더해졌을 때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이다. 그리고 그 완벽한 조합으로 전 세계 관객들을 감동하게 한 인기 뮤지컬들이 올 여름 국내에 잇따라 들어온다. 기대되는 뮤지컬 몇 편 미리 살펴보자!
뮤지컬 <캣츠>가 재밌어?
<캣츠> 팬들에게 발각되면 한 소리 들을 발언이지만 기자는 <캣츠>를 볼 때마다 이 작품이 세계 4대 뮤지컬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하고 카메론 매킨토시가 제작한 <캣츠>는 웨스트엔드에서는 1981년, 브로드웨이에서는 1982년부터 공연되며 상이란 상은 다 휩쓸고 각종 기록을 세웠다. 그러니까 왜?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 같다. 오랫동안 말과 글로 밥벌이를 하다 보니 구성과 전개에 치우친 것. 뮤지컬 <캣츠>의 매력은 화려한 춤과 아름다운 음악, 환상적인 무대 메커니즘에서 찾아야 한다. 아니, 그것을 그냥 즐겨야 한다.
발레에 <백조의 호수>가 있다면 뮤지컬에는 <캣츠>가 있다. 고양이의 유연하고 정교한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은 아크로바틱, 탭댄스 등을 강도 높게 훈련 받는다. 몸의 움직임이 잘 드러나도록 타이트하게 제작된 의상은 고양이의 요염함과 당당함을 뿜어낸다. 또 오로지 고양이를 생각한 재치 있는 분장과 무대세트도 큰 볼거리다. <캣츠>는 T.S 엘리엇의 우화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무대에 옮긴 것이다. 이렇다 할 시놉시스는 없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젤리클 고양이들의 축제에 각양각색의 고양이들이 모여 저마다의 인생사를 풀어 놓는데, 한 고양이에게는 환생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 다양한 우여곡절이 녹아든 20여 곡의 뮤지컬 넘버는 <캣츠>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그 가운데 늙고 초라한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메모리’는 뮤지컬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다.
올해 공연을 위해 제작진은 영국, 호주 등에서 배우 오디션을 실시해 배태랑 배우들로 투어 팀을 구성했다. 5월 30일부터 사흘간 안산 문화예술의전당에서 프리뷰를 갖고, 6월 13일부터 8월 24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본 무대를 마련한다. 무대 전체를 감싸고 있는 판타지와 그 안에 성기게, 하지만 정량으로 녹아 있는 메시지를 느껴 보자.
뮤지컬 <드라큘라> 한국 초연이라고?
2006년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됐던 뮤지컬 <드라큘라>를 봤던 관객들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신성우, 이종혁, 신성록 등 우월한 비주얼의 트리플 드라큘라가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 <드라큘라>라는 뮤지컬이 공연되기는 했다. 체코 버전이었는데 멋진 배우들과 근사한 무대 세트, 귓가에 맴돌던 넘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실패했다. 당시 공연을 올렸던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가 원작사에 잔금을 치르지 못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었다. 건진 것이 있다면 많은 관객들이 체코 뮤지컬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이번에 공연되는 뮤지컬 <드라큘라>는 브로드웨이 버전.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연출 데이비드 스완, 프로듀서 신춘수 등 <지킬 앤 하이드> 제작팀이 다시 뭉쳐 또 한 번 히트 뮤지컬이 탄생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14년 드라큘라에는 류정한과 김준수가 더블 캐스팅됐다. 며칠 전 있었던 1차 티켓판매에서는 30분 만에 김준수 회차가 전석 매진되며 다시 한 번 ‘김준수 효과’를 입증했고, 가장 고급스럽고 믿음직한 배우로 꼽히는 류정한은 여전히 열 살 이상 차이나는 후배 배우와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7월 17일부터 9월 5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같은 소재의 뮤지컬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 드라큘라는 어느 나라 귀신? ‘드라큘라’는 영국 출신의 소설가 브램 스토커가 동유럽 흡혈귀 설화를 바탕으로 지은 소설이다. 드라큘라 백작의 모델은 루마니아의 블라드 3세인데, 전쟁포로를 잔인하게 처형하고 이를 즐겨 피의 군주로 불렸다고 한다. 처형 방법 가운데 하나가 포로를 말뚝에 박아 죽이는 것인데, 흡혈귀 심장에 나무 말뚝을 박는 모습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블라드가 죽은 후에 오스만군은 그의 사체를 소금에 절인 후 햇볕에 쬐었다고 하는데, 훗날 사람들이 그의 관을 열어보니 텅 비어 있었다. 흡혈귀가 햇빛에 사라지는 설정도 여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뮤지컬 <프리실라>, 누구의 여장이 가장 예쁠까?
2006년 시드니에서 초연된 <프리실라>는 호주에서 가장 성공한 뮤지컬로 꼽힌다. <프리실라>는 동명의 원작 영화(1994년)에 마돈나, 신디 로퍼 등 1970~80년대 인기 팝송 28곡을 입혔다. 귀와 함께 눈도 호강하는 뮤지컬이다. <프리실라>에는 500여 벌의 의상, 60개의 가발, 200여 개의 머리 장식이 등장하고, 261번의 의상 체인지가 이뤄진다. 특히 이 작품의 상징인 ‘프리실라’는 길이 10미터, 무게 8.5톤에 달하는 은빛 버스로, 무대 중앙에서 360도로 회전하며 수천 개의 LED 조명을 발산한다. 컬러풀하고 현란하고 화려하고 흥겨운 뮤지컬이다.
하지만 소재는 낯설다. 성전환자, 게이 등 여장 쇼걸 세 명의 삶과 사랑을 담았다. 짙은 메이크업에 여장을 소화할 국내 남자배우들은 누구일까? 조성하, 고영빈, 김다현, 마이클 리, 이지훈, 이주광, 조권, 김호영, 유승엽이 이미 어여쁜 자태를 뽐냈다. 흥행요소는 모두 갖췄다. 문제는 여장 배우들이 얼마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 낼지, 국내에서는 아직은 불편한 소재를 얼마나 매끄럽게 이끌어 갈지에 달렸다. 뮤지컬 <프리실라>는 7월 3일부터 9월 2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어느 여장 배우가 가장 예쁜지, 제일 연기를 잘 하는지 직접 확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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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감귤
201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