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여행, 닭갈비 막국수 빠지면 서운하죠
춘천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 단연 닭갈비가 아닐까?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도 배가 따뜻해야 더욱 듣기 좋은 법이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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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김유정 ‘춘천 김유정문학촌에서 동백, 봄봄을 만나다’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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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다녀온 ‘책 속 그곳’ 세 번째 장소는 강원도 춘천. 서울에서도 가깝게 다녀올 수 있는 춘천은 지난 2009년, 춘천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지하철까지 연결되면서 여행객들이 부쩍 늘었다. 춘천 여행을 갔다 오면 너도 나도 질문한다. “어디 닭갈비집 갔어?” “서울이랑 확실히 다르디?” 과연, 서울의 맛과 달랐을까?

 

대학생갈비, 서민갈비로 불렸던 닭갈비


올해 ‘춘천 닭갈비 막국수축제’는 오는 9월 23일부터 6일간 춘천역 앞 행사장에서 열린다. 5월에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김유정문학제와 함께 세월호 참사의 추모 분위기를 고려해 9월로 연기됐다. ‘2014 춘천 닭갈비 막국수 축제’에서는 막국수 빨리 먹기, 100인분의 닭갈비, 막국수 무료 시식을 비롯해 다양한 공연과 체험 행사가 진행된다. 

 

닭갈비와 막국수는 어떻게 춘천을 대표하는 음식이 됐을까? 닭갈비의 역사는 1960년대 말, 선술집 막걸리 판에서 숯불로 굽는 술안주 대용으로 개발됐다. 이후 값이 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어 휴가 나온 군인들이나 학생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됐다. 춘천에서 닭갈비가 발달한 배경은 춘천지역이 양축업이 성했고 도계장이 많았기 때문. 닭갈비는 현재 1인분에 1만 원 정도지만, 1970년대 초 닭갈비 1대 값은 100원이었고, 대학생갈비, 서민갈비로 불리기도 했다.

 

춘천닭갈비춘천, 가평 여행을 떠나면 반드시 먹고 온다는 닭갈비. 서울에도 많은 지점이 있지만, 춘천에서 먹는 맛과는 비견할 바가 아니다. 닭갈비를 먹고 난 후 양념에 비벼 먹는 볶음밥이 필수가 아니라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숯불 닭갈비를 먹어 보는 걸 추천한다. 소양댐 근처에 자리한 ‘농가 숯불 닭갈비’는 철판 닭갈비에 비해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1960년대 닭갈비 맛을 내는 곳으로 소문이 나 주말에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춘천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철판 닭갈비집으로 학곡리 닭갈비, 후평동 우성닭갈비 등이 있다.

 

 

 

춘천에서 즐기는 전통 막국수의 맛


닭갈비를 먹고 후식으로도 먹지만, 푸짐한 막국수 한 그릇은 끼니를 때우기도 좋은 음식. 막국수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복잡한 조리 과정 없이 만들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이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것으로 전해진다. 막국수는 메밀의 겉껍질만 벗겨낸 거친 메밀가루를 굵게 뽑아 거무스름한 빛깔을 낸다. 뽑아낸 면에 김치나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거나, 야채와 양념을 버무려 먹는다.

 

춘천막국수

 

서울에서 먹는 막국수는 새콤달콤한 맛을 자랑하지만, 춘천 토박이들이 손에 꼽는 전통 막국수는 단 맛이 강하지 않다. 춘천시 근화동에 위치한 ‘남촌 막국수’는 40년째 한자리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고기와 김치가 고명으로 올라가고 육수를 직접 부어서 먹는다. 달콤한 맛을 위해 식초와 설탕, 겨자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먹는 손님들도 많다. 곁들어 먹을 수 있는 감자전, 빈대떡도 인기가 좋다. 춘천 토박이들이 즐겨 가는 또 다른 막국수집은 ‘유포리 막국수’. 춘천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신북읍 유포리에 자리했지만, 입소문으로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많다. 춘천 3대 막국수 맛집으로 손꼽히는 ‘유포리 막국수’는 면수와 동치미 육수를 따로 제공한다. 막국수에 동치미를 하나 얹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동치미 맛 때문에 찾아오는 단골들이 상당하다.

 

레일바이크, 풍물시장도 색다른 재미


춘천의 풍경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북한강변의 옛 경춘선 철로를 달리는 레일바이크를 타보는 것도 좋은 방법. 커플, 가족 단위로 함께 탈 수 있는 레일바이크는 김유정역, 강촌역, 경강역 등 총 3코스가 있다. 2인승은 25,000원, 4인승은 35,000원으로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해 출발역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춘천 레일바이크는 오는 9월까지, 가평까지 700m를 연장할 예정이다.

 

춘천레일바이크,시장

레일바이크와 춘천 풍물시장

 

강원도의 5일장이 궁금하다면, 춘천 풍물시장을 찾아보자. 풍물시장은 남춘천역 부근 온의동에서 2일과 7일이 들어간 날에 열린다. 장을 보다 출출하다면 다양한 군것질을 즐길 수 있다. 살짝 기름칠만 해서 담백한 옛날호떡, 금방 튀겨낸 도너츠, 메밀부침, 즉석에서 만드는 각종 떡이 일품이다. 맛집으로는 족발구이로 유명한 ‘풍물생고기’, 감자옹심이 메밀칼국수가 이색적인 ‘만두맛집’ 등이 인기다. 풍물시장이 열리지 않는 날에는 ‘춘천 중앙시장’에서 새 옷을 입은 ‘춘천 낭만시장’을 들리는 것도 좋은 방법. 춘천 낭만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춘천 도심에 들어선 이 지역 최초의 시장이다. 춘천시 죽림동에 위치해 있으며, 춘천의 명물 ‘명동 닭갈비 골목’이 근방에 있어 식도락을 즐기기에도 좋다.

 

커피 마니아라면 춘천에서 꼭 들리는 카페가 하나 있다. 1968년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원두커피 전문점 ‘이디오피아집(벳)’. 한국에 원두커피라는 것이 생소할 무렵, 대학생들의 입소문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갖게 됐다. 199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이디오피아 커피만 1,260잔이 팔린 전설이 있다. 근화동 이디오피아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1년부터 ‘춘천 이디오피아길 세계커피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춘천고등학교 정문에 자리한 다방을 개조해 카페로 만든 ‘조선커피’도 춘천 토박이들의 아지트. 과거 시인, 작가 등 문인들이 즐겨 찾던 카페다. 오래된 풍금을 비롯해 고서, 낡은 쇼파들이 지나간 세월을 짐작하게 만든다.

 

춘천카페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사색을 즐기고 싶다면, 전통찻집에서 휴식을 취하자. 유포리에 위치한 전통카페 ‘차 마실 산’은 도예가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주인의 솜씨가 오롯이 담겨 있다. 카페는 오전 10시에 열고 해 질 무렵 문을 닫는다. 발효차, 국화차, 감잎차를 비롯해 각종 유기농 음료와 연잎밥, 수제로 만든 양갱은 단골들의 발길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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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닭갈비 #막국수 #레일바이크 #김유정문학관 #풍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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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선영

2014.05.21

몇 년 전에 춘천에서 숯불 닭갈비 먹고 이런 맛이 있다니! 하고 놀랐던 생각이 나네요. 찾아가느라 고생해서 같이 갔던 사람에게 멱살 잡힐 뻔한 기억도 함께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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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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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하여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작품을 많이 남긴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가이다. 노다지를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그린『금 따는 콩밭』,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희극적인 갈등을 소박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봄봄』등 한국의 옛 농촌 정서를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풀어내 그만의 문학세계를 그려나갔다. 그 밖에 『동백꽃』, 『따라지』 등 다수의 단편이 있다. 1908년 1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명(人名) 기차역인 ‘김유정역’이 있는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그로서는 안타깝게 차남으로 태어난다. 1914년, 유정 일가는 서울 진골(현 종로구 운니동)의 1백여 칸짜리 저택으로 이사하는데, 셋째 누이 김유경은 이곳을 유정의 출생지로 증언한다. 1915년 어머니가, 2년 뒤인 19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다. 9살, 유정은 아직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가장이 된 형 유근은 동생을 돌보는 대신 주색잡기에 빠져 산다. 유정은 책상 위에 놓인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보곤 하며,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미인임을 자랑하기도 하며,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횟배를 자주 앓으며 소년기를 보낸다. 또한 말더듬이어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과묵했다. 1929년, 한 번의 휴학을 거쳐 휘문보고를 졸업한다. 그동안 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몰락한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지만 결석으로 인해 곧 제적당한다. 스스로는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했지만. 이후 얼마간의 방랑 생활을 거친 후 귀향, 야학당을 여는 한편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를 조직 농촌계몽 활동을 벌인다. 그 와중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한다. 1933년, 서울로 돌아온 유정은 누나들 집을 전전하며 폐결핵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산다. 그런 유정을 안타까워하던 친구 안회남이 소설 쓰기를 권유,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연이어 발표한다. 그리고 1935년「소낙비」가 『조선일보』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식으로 등단한다. 1935년에는 〈구인회〉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이후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소설 30편, 수필 12편, 그리고 번역 소설 2편을 남긴다. 죽기 한 해 전인 1936년 가을, 이상으로부터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는 동반자살 제의를 받지만,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듬해 3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살을 먼저 제의한 이상보다 19일 먼저. 사인은 둘 모두 폐결핵. 같은 해 5월 15일,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기리는 합동 추도식이 치러진다. 발기인은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안회남 등 25명. 1938년, 김유정의 첫 책, 제목은 『동백꽃』이 삼문사에서 출간된다. 대표작으로는『금따는 콩밭』,『봄봄』,『따라지』,『두꺼비』,『동백꽃』,『땡볕』등이 있다. 일제 강점의 혹독한 현실 가운데에서 주로 회화적인 해학의 오목거울을 통해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곤궁한 삶을 제시하였다. 김유정의 소설은 인간에 대한 훈훈한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미있게 다루고 있는데 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을 한 끈에 꿸 수 있는 사랑, 그들의 마음과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이어주는 사랑을 우리의 전통적인 민중예술의 솜씨로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어리석고 무지한 인물들은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주인공의 가난하고 비참한 실제 삶과 이어져 진한 슬픔을 배어나게 하는 등, 해학과 비애를 동반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또한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 비어의 구사 등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1930년대 한국소설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였으며 약 2년 동안 30여 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길 정도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여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그 후 폐결핵에 시달리다가 1937년 2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 경춘선 철도에는 김유정 역이 있기도 하다. 그의 사후 1938년 처음으로 삼문사에서 김유정의 단편집『동백꽃』이 출간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깊은 감동적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