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을 둘러보는 넉넉한 시간으로, 『게으른 산행』
회색 빌딩과 콘크리트 도로 속에 지친 독자들에게 『게으른 산행』은 산과 나무들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를 잔잔하면서도 호소력 있게 전달하여 10년 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글ㆍ사진 이용길(예스24 대학생 리포터)
201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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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예스24 대학생 리포터들이 ‘10년 전 베스트셀러’라는 제목으로

 2004년 큰 인기를 모았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10년 전 5월, 우종영 작가가 세상 밖으로 내놓은 『게으른 산행』은 베스트셀러가 되기 어려운 여행 관련 분야의 도서에도 불구하고 출판되자마자 독자들의 인기에 힘입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다. 월간 잡지 <사람과 산>에서 연재했던 글을 토대로, 굽이굽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21개 산길과 그 길 주변에 자리 잡은 나무와 풀, 숲이 말해주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2년, 『게으른 산행』에서 아쉽게 소개되지 못한 산과 나무의 이야기들을 모아 『게으른 산행 2』로 출판됐다.

 

게으른산행

 

땅에서 빛나는 별, 나무와 함께하는 삶

 

『게으른 산행』의 저자 우종영 작가는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어린 시절, 천문학자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색맹임을 뒤늦게 안 이후 천문학자의 꿈은 하늘의 별처럼 잡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우종영 작가는 다시 밤하늘을 쳐다보기 고통스러웠고 고등학교도 그만두고 군대로, 중동으로 돌아다녔고 결혼 후 야심차게 준비하던 원예농사까지 실패하면서 끝없는 방황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땅으로 시선을 돌려 꽃과 나무라는 존재를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종영 작가에게 나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주는 계기이자 인생의 지침서 같은 존재다. 나무는 식물의 최상위 단계에 위치하여 무기물을 유기물로 만드는 최초의 생산자이자 인간처럼 번잡하게 움직이지 않고 하늘과 땅의 기운만 받아 가장 오랫동안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리고 다른 생명체인 벌레와 새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나무이기에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것조차 인간의 오만이라 말하며 그저 나무와 함께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종영 작가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물의 최상위 단계에 위치한 인간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나무들을 병들게 하고 있었고 이렇게 병든 나무들을 치료하고 돌봐주기 위해 1985년 ‘푸른 공간’이라는 나무 병원을 세우면서 나무 의사의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 의사로의 삶은 그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도록 도와주는 초석이 되었다.

 

게으른산행

 

앞서 소개한『게으른 산행』, 게으른 산행 2』말고도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와 같은 에세이와 그림 동화책인 『나무 의사 큰손 할아버지』까지 나무라는 소재로 다양한 글을 쓰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1995년부터는 실크로드 종단하면서 중앙아시아 식물도감 제작에 힘을 쓰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나무를 지키는 일이라는 의도에서 하는 일이기에 그는 어느 하나라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상이 아닌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

 

“게으른 산행이란,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일어나서 하는 산행이 아니라 새벽밥 지어 먹고 산에 들어서서 맑은 공기 마시며 자연의 친구들과 넉넉한 시간을 보내는 행위입니다. 사계절 변하는 모습도 관찰하고 내 맘에 맞는 나무가 있으면 그 밑에 서서 말도 걸어보며 천천히 걷는 산행입니다. 이런 산행에는 목적지가 따로 없습니다. 정상을 꼭 밟으려는 욕심만 버리면 현재의 시간만이 반환점을 알려줍니다. 자유로운 산행을 위해 기능성 옷들을 준비하고 암벽 타는 방법을 배우듯, 숲의 나무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도 자유로운 산행이 될 것입니다.” (『게으른 산행』 6쪽)

 

『게으른 산행』에서 작가는 보물찾기 하듯 주변을 꼼꼼하게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며 산행에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그래서 오르는 길은 시속 0.5km, 내려오는 길은 시속 1km 안팎으로 움직이는 느림보 산행을 제안한다. 느림보 산행에 적합한 편도 3km 정도의 산행, 등반거리가 길고 교통이 불편한 종주산행보다는 원점 회귀 산행이 가능한 21개의 산행로를 엄선하여 『게으른 산행』에서 소개해주고 있다. 이러한 느림보 산행은 무분별한 산행에 따른 산의 황폐화를 막고 사람들도 산을 찾아 지속적인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 작가는 말하고 있다.

 

 

게으른산행

 

어느 순간부터 산행의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 결과물만을 중시하는 도시의 삶에 파묻혀 도시에서 벗어난 이곳, 산에서까지 어울리지 않는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산에는 정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상을 오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즐겁게 산행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정상이라는 목표물 아래 우리는 함께하며 겪어볼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무관심해왔었다. 오르는 산길에서 마주치는 많은 것들, 그 중에 작가는 나무와 꽃이라는 존재에 집중했고 이 책은 산행이 주는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길라잡이와 같은 책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단지 산이라는 존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우리는 효율성과 경제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단거리 선수처럼 전력 질주하는 삶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질주하는 삶 속 우리는 주변에서 빛나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무심코 지나치고 만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간단한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이것이 10년 전, 산행의 진정한 의미를 담담하게 전해주고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속에 크나큰 울림이 되어 준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한 이유인 것 같다.

 


게으른-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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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산행 우종영 저 | 한겨레신문사
나무와 꽃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려 한다면 이 책만한 친구는 없을 듯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별로 특히 아름다운 산을 나눠 뽑았으며, 보물찾기 하듯 등산로 주변의 나무찾기를 할수 있게 등산로 수목지도를 꼼꼼하게 곁들였다. 전부 스물한개의 산행코스는 다양한 식생을 만날수 있도록 계곡과 능선을 골고루 실었고, 보통사람들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편도3킬로 안팎의 짧은 거리에,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코스로 코스를 짰다. 또 나무와 풀꽃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특징을 살려 찍은 수목사진들도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추천 기사]



- 광기로 가득 찬 시대, 『미쳐야 미친다』

- 경제학을 만나는 시작,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큰 울림, 『호밀밭의 파수꾼』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강아지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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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산책 #게으른 산행 #우종영 #나무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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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길(예스24 대학생 리포터)

There are many things that i would like to say to you but i don't know how. - Oasis, wonder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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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영

“내가 정말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나무에게서 배웠다”고 말하는 30년 경력의 나무 의사. 어려서 천문학자를 꿈꾸었지만 색약 판정을 받고 꿈을 포기한 뒤로 다니던 고등학교도 그만둔 채 정처 없이 방황했다. 군 제대 후 중동으로 건너가 2년간 건설 일을 했고, 그곳에서 벌어 온 돈을 밑천 삼아 원예 농사를 시작했지만 3년 만에 폭삭 망해 버렸다. 가진 전부를 쏟아부어 시작한 일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자 한없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싶어졌다. 그러다 답답한 마음에 올라간 북한산에서 우연히 소나무를 발견하고 극적으로 마음을 되돌렸다. 산꼭대기 바위틈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명을 이어 가는 소나무를 바라보며 ‘나도 이 나무처럼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나무 병원 ‘푸른공간’을 설립해 30년째 아픈 나무를 돌봐 오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도심의 아픈 나무들부터 몇백 년을 인간과 함께해 왔지만 각종 병충해와 자연재해로 상태가 나빠진 오래된 고목까지, 그의 손을 거쳐 되살아난 나무만 해도 수천 그루다. 신 대신, 자연 대신 나무를 돌보는 것이 나무 의사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절대 인간의 관점으로 나무를 치료하지 않는다. 자신은 그저 새를 대신해서 벌레를 잡아 주고, 바람을 대신해서 가지들을 잘라 주고, 비를 대신해서 물을 뿌려 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약을 써서 억지로 아픈 나무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처럼 수십 년 넘게 나무를 위해 살아왔지만 그는 아직도 나무에게 배운 것이 더 많다고 말한다. “겨울이 되면 가진 걸 모두 버리고 앙상한 알몸으로 견디는 그 초연함에서,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한결같음에서, 평생 같은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애꿎은 숙명을 받아들이는 그 의연함에서,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 마음 씀씀이에서 내가 알아야 할 삶의 가치들을 모두 배웠다”고 말하는 그의 소망은 밥줄이 끊어질지라도 더 이상 나무가 아프지 않는 것이다. 현재 숲해설가협회 전임 강사로 활동하며 숲 해설가 및 일반인을 상대로 다양한 강연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를 비롯해 《게으른 산행 1, 2》, 《풀코스 나무 여행》, 《나무 의사 큰손 할아버지》, 《바림》 등 1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