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마음을 건드린다는 건, 어떤 종류의 감각인가!
김창기와 황보령의 앨범은 진정성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뛰어난 성과다. 하지만 둘 모두 일종의 모순적인 태도와 위치를 공유한다. 이때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진정성이 작동하는 맥락에서 창작자와 창작물이 실제로 놓이는 위치다. 작가적 성취는 그 접점을 얼마나 끈질기게, 솔직하게, 성찰적으로 고민하느냐에 달려있다.
201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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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진정성으로 번역되는 ‘authenticity’는 사실 딱 ‘진정성’으로 번역되기엔 애매한 단어다. 심지어 번역된 이 ‘진정성’이란 말의 어감도 원어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 진정성은, 쓰이는 순간 원래의 의미에 가까운 ‘작가적 태도가 투영된 뭔가’라기보다는 ‘진짜의 진짜의 진짜’라는 뜻을 얻으며 꽤 큰 힘을 발휘한다. 물론 요즘 세상에 누가 ‘진정성’을 거론하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이 단어가 강렬한 권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개념에는 무엇보다 (주체가) ‘자아’를 인식/(재)발견/(재)구성하는 맥락이 중요한데 이런 ‘자아’의 존재감이야말로 근대적 세계와 싸우는 존재일 때 독보적인 가치를 얻게 된다. 순수한 자아를 협박하고 통제하려는 것은 세상의 속물성인데, 작가란 그 세계와 투쟁 끝에 본래적인 순수성을 기어코 지켜낸 존재다. 따라서 이런 진정성의 증명은 종종 자기 고백적 서사와 아마추어 같은 태도로 구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진정성의 영역을 그것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다. 이런 이유로 진정성은 (마침내) 내러티브의 핵심이 되고, 창작물은 ‘작가의 자아가 투영된 결과’로 여겨지거나, 그게 아니면 역설적으로 ‘작가로 하여금 창작하게 만드는 동기’로 작동하게 된다. 모순적이면서도 유치하게 여겨지는, 그럼에도 여전히 시장에서, 혹은 해석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게 바로 이 단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창기와 황보령 새 앨범, 진정성을 공유하다
최근 발매된 김창기의 『평범한 남자의 유치한 노래』 와 황보령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동물원 출신인 김창기의 앨범은 9개월 만의 신보로 ‘가족’이라는 테마를 평범한 남자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작은 행운과 불행의 반복, 요컨대 평범한 일상에 집중하는 중에 묵직한 위로와 성찰이 모습을 드러내는 앨범이다. 황보령의 음반은 기존의 밴드 셋과 달리 어쿠스틱으로 조율된 사운드가 지배하는 앨범으로 레인보우99, 서진실, 조용민, 정현서, 진선이 각각의 곡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황보령의 2집 『태양륜』 의 프로듀서였던 장영규가 믹싱을 맡고 작곡가 방승철, 타악기 연주자 원일, 싱어송라이터 무중력소년, 피아니스트 장경아, 첼리스트 이지영,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송은지와 한희정 같은 싱어송라이터가 참여했다. 때에 따라 불협화음이 등장할 때도 있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등장할 때도 있다. 상당히 다른 외면을 가진 두 앨범은 ‘진정성’이란 면을 공유하며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고 본다.
김창기의 앨범은 여러 면에서 아마추어적으로 들린다. 이 앨범은 시종일관 고즈넉하다.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노래들을 듣는 내내 고즈넉한 장소들을 떠올리게 된다. 앨범에 사용된 악기는 주로 기타인데, 어쿠스틱이나 이펙터가 거의 사용되지 않은 전기 기타가 주로 등장한다.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의 신시사이저나 아코디언 같은 악기가 섞일 때도 있다. 이런 악기들의 소리와 동행하는 것은 상냥한 목소리다. 김창기의 음악적 특징에서 이런 조합은 특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런 요소들을 통해 그의 보편성, 그러니까 동물원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 번도 시스템에 의해 싱어/송라이터로 훈련되지 않은 가수라는 사실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강조하자면, 김창기의 자기 고백적 서사는 종종 불안하게 유지되는 발성과 훈련된 가수답지 않은 호흡을 통해서 진정 강력한 설득력을 얻게 되는 셈이다. 이 불완전함이야말로 그의 음악이 다른 음악들과 차별되며 비로소 그의 음악으로 태어나는 지점이다. 김창기의 조카 이재희가 만들고 부른 수록곡 「Little Words」 는 그래서 중요하다. 17세 소녀와 52세 가수의 자작곡이 결과적으로 아마추어리즘이라는 특징을 공유한다는 것. 이 둘의 관계가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앨범의 테마인 ‘가족’의 메시지를 입체적으로 제시하는 구성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앨범의 특징을 아내와 아이에 대한, 그러니까 가족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소중한 기억을 더듬는 노랫말에서 찾는데, 그 뿐 아니라 앨범을 관통하는 가족이라는 테마는 구성과 구조를 통해 종합적으로 드러난다.
황보령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이제까지 황보령이라는 싱어/송라이터는 매번 자신이 발표한 기존의 성과를, 요컨대 그가 만들어낸 음악적 경험을 어떤 식으로든 다시 극복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본질적인 의미의 ‘예술가’라고 불러도 좋을 텐데, 이때 극기란 늘 과거의 자기를 부정하려는 태도와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을 동시에 취하려는 모순적 욕망에서 구현되는 감각이라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황보령의 음악이 남다른 이유는 바로 이런 자기 극복의 프로젝트란 맥락에서 창작이 작동한다는 점이고, 거의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 욕망을 기꺼이 감당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그의 정체성을 오히려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솔로에서 밴드로, 밴드 편성에서 어쿠스틱 셋으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 참으로 다양한 세션들의 참여로 완성된 앨범임에도 그 결과는 ‘언제나처럼’ 황보령의 음악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어떻게 나만의 자아를 지켜낼 것인가
두 앨범 모두 작가적 태도, 그러니까 소위 진정성에 무척 밀착되어 있는데 나는 이것을 음악적, 예술적 성취의 결과로 보는 태도를 되도록 멀리하는 편이다. 작가주의와 진정성이야말로 예술적 결과물을 이해하는 길에 파인 함정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진정성은 종종 그 실제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진정성이란, 앞서 말했듯 속물적인 세계와 싸우는 과정에서 지켜내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직결된다. 실제 삶과 창작의 결과를 끊임없이 동일한 맥락으로 만들려는, 다시 말해 자기 삶과 창작 모두에서 일관된 태도를 지키려는 엄격함. 이런 신화적인 요소 덕분에 21세기에 진정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가치를 얻는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미디어 발행인이 되는 이 몰개성의 시대에 나는 어떻게 나만의 자아를 지켜낼 것인가. 이런 맥락에서 자신의 취향이나 정체성이 진정성과 밀착되고, 내가 듣는 음악과 좋아하는 브랜드, 다시 말해 내가 ‘소비’하는 상품들이 곧 나의 진정성을 ‘보여’주는데 일조하는 시대가 바로 현재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창작과 수용, 양쪽 모두에 작동하는 이런 태도가 실제로는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세상의 속물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또한 그와 대결하는 나의 욕망이 단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진정성이란 필연적으로 모순적인 입장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진정성이 있다 없다와는 다르다. 김창기와 황보령의 앨범은 진정성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뛰어난 성과다. 하지만 둘 모두 일종의 모순적인 태도와 위치를 공유한다. 이때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진정성이 작동하는 맥락에서 창작자와 창작물이 실제로 놓이는 위치다. 작가적 성취는 그 접점을 얼마나 끈질기게, 솔직하게, 성찰적으로 고민하느냐에 달려있다. 창작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감각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음악이 마음을 건드린다는 건 과연 어떤 종류의 감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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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개념에는 무엇보다 (주체가) ‘자아’를 인식/(재)발견/(재)구성하는 맥락이 중요한데 이런 ‘자아’의 존재감이야말로 근대적 세계와 싸우는 존재일 때 독보적인 가치를 얻게 된다. 순수한 자아를 협박하고 통제하려는 것은 세상의 속물성인데, 작가란 그 세계와 투쟁 끝에 본래적인 순수성을 기어코 지켜낸 존재다. 따라서 이런 진정성의 증명은 종종 자기 고백적 서사와 아마추어 같은 태도로 구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진정성의 영역을 그것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다. 이런 이유로 진정성은 (마침내) 내러티브의 핵심이 되고, 창작물은 ‘작가의 자아가 투영된 결과’로 여겨지거나, 그게 아니면 역설적으로 ‘작가로 하여금 창작하게 만드는 동기’로 작동하게 된다. 모순적이면서도 유치하게 여겨지는, 그럼에도 여전히 시장에서, 혹은 해석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게 바로 이 단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창기와 황보령 새 앨범, 진정성을 공유하다
최근 발매된 김창기의 『평범한 남자의 유치한 노래』 와 황보령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동물원 출신인 김창기의 앨범은 9개월 만의 신보로 ‘가족’이라는 테마를 평범한 남자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작은 행운과 불행의 반복, 요컨대 평범한 일상에 집중하는 중에 묵직한 위로와 성찰이 모습을 드러내는 앨범이다. 황보령의 음반은 기존의 밴드 셋과 달리 어쿠스틱으로 조율된 사운드가 지배하는 앨범으로 레인보우99, 서진실, 조용민, 정현서, 진선이 각각의 곡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황보령의 2집 『태양륜』 의 프로듀서였던 장영규가 믹싱을 맡고 작곡가 방승철, 타악기 연주자 원일, 싱어송라이터 무중력소년, 피아니스트 장경아, 첼리스트 이지영,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송은지와 한희정 같은 싱어송라이터가 참여했다. 때에 따라 불협화음이 등장할 때도 있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등장할 때도 있다. 상당히 다른 외면을 가진 두 앨범은 ‘진정성’이란 면을 공유하며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고 본다.
김창기의 앨범은 여러 면에서 아마추어적으로 들린다. 이 앨범은 시종일관 고즈넉하다.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노래들을 듣는 내내 고즈넉한 장소들을 떠올리게 된다. 앨범에 사용된 악기는 주로 기타인데, 어쿠스틱이나 이펙터가 거의 사용되지 않은 전기 기타가 주로 등장한다.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의 신시사이저나 아코디언 같은 악기가 섞일 때도 있다. 이런 악기들의 소리와 동행하는 것은 상냥한 목소리다. 김창기의 음악적 특징에서 이런 조합은 특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런 요소들을 통해 그의 보편성, 그러니까 동물원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 번도 시스템에 의해 싱어/송라이터로 훈련되지 않은 가수라는 사실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강조하자면, 김창기의 자기 고백적 서사는 종종 불안하게 유지되는 발성과 훈련된 가수답지 않은 호흡을 통해서 진정 강력한 설득력을 얻게 되는 셈이다. 이 불완전함이야말로 그의 음악이 다른 음악들과 차별되며 비로소 그의 음악으로 태어나는 지점이다. 김창기의 조카 이재희가 만들고 부른 수록곡 「Little Words」 는 그래서 중요하다. 17세 소녀와 52세 가수의 자작곡이 결과적으로 아마추어리즘이라는 특징을 공유한다는 것. 이 둘의 관계가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앨범의 테마인 ‘가족’의 메시지를 입체적으로 제시하는 구성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앨범의 특징을 아내와 아이에 대한, 그러니까 가족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소중한 기억을 더듬는 노랫말에서 찾는데, 그 뿐 아니라 앨범을 관통하는 가족이라는 테마는 구성과 구조를 통해 종합적으로 드러난다.
황보령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이제까지 황보령이라는 싱어/송라이터는 매번 자신이 발표한 기존의 성과를, 요컨대 그가 만들어낸 음악적 경험을 어떤 식으로든 다시 극복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본질적인 의미의 ‘예술가’라고 불러도 좋을 텐데, 이때 극기란 늘 과거의 자기를 부정하려는 태도와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을 동시에 취하려는 모순적 욕망에서 구현되는 감각이라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황보령의 음악이 남다른 이유는 바로 이런 자기 극복의 프로젝트란 맥락에서 창작이 작동한다는 점이고, 거의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 욕망을 기꺼이 감당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그의 정체성을 오히려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솔로에서 밴드로, 밴드 편성에서 어쿠스틱 셋으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 참으로 다양한 세션들의 참여로 완성된 앨범임에도 그 결과는 ‘언제나처럼’ 황보령의 음악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어떻게 나만의 자아를 지켜낼 것인가
두 앨범 모두 작가적 태도, 그러니까 소위 진정성에 무척 밀착되어 있는데 나는 이것을 음악적, 예술적 성취의 결과로 보는 태도를 되도록 멀리하는 편이다. 작가주의와 진정성이야말로 예술적 결과물을 이해하는 길에 파인 함정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진정성은 종종 그 실제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진정성이란, 앞서 말했듯 속물적인 세계와 싸우는 과정에서 지켜내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직결된다. 실제 삶과 창작의 결과를 끊임없이 동일한 맥락으로 만들려는, 다시 말해 자기 삶과 창작 모두에서 일관된 태도를 지키려는 엄격함. 이런 신화적인 요소 덕분에 21세기에 진정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가치를 얻는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미디어 발행인이 되는 이 몰개성의 시대에 나는 어떻게 나만의 자아를 지켜낼 것인가. 이런 맥락에서 자신의 취향이나 정체성이 진정성과 밀착되고, 내가 듣는 음악과 좋아하는 브랜드, 다시 말해 내가 ‘소비’하는 상품들이 곧 나의 진정성을 ‘보여’주는데 일조하는 시대가 바로 현재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창작과 수용, 양쪽 모두에 작동하는 이런 태도가 실제로는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세상의 속물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또한 그와 대결하는 나의 욕망이 단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진정성이란 필연적으로 모순적인 입장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진정성이 있다 없다와는 다르다. 김창기와 황보령의 앨범은 진정성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뛰어난 성과다. 하지만 둘 모두 일종의 모순적인 태도와 위치를 공유한다. 이때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진정성이 작동하는 맥락에서 창작자와 창작물이 실제로 놓이는 위치다. 작가적 성취는 그 접점을 얼마나 끈질기게, 솔직하게, 성찰적으로 고민하느냐에 달려있다. 창작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감각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음악이 마음을 건드린다는 건 과연 어떤 종류의 감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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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차우진
음악웹진 <weiv> 편집장. 『청춘의 사운드』를 썼다. 대체로 음악평론가로 불리지만, 사실은 지구멸망과 부동산에 더 관심이 많은 아저씨.
kjkjsky
201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