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의 유효기간-<변호인>
세계 각국의 사진들과 그곳에서의 경험을 담은 원고들이 이 노트북 안에 저장되었고, 지워졌다. 그것들은 책으로 나오기도 했고, 내 선택에 의해 영원히 지워지기도 했다.
글ㆍ사진 최민석(소설가)
201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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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송변호사는 끊임없이 국밥을 먹는다. 세법 변호사로 성공해 넓은 사무실을 가지고 있고, 집도 옮겼다. 요트까지 장만했다. 그런데, 고시생 시절 국밥 값을 못 치르고 도망간 게 미안한지, 변호사가 된 후에도 같은 집에서 계속 국밥을 먹는다. 오죽하면 함께 일하는 박 사무장(오달수 분)이 “아! 이제 국밥 좀 그만 먹자”고 성화를 낸다. 점심시간에 송변호사가 국밥집 문을 열려고 하면 은근슬쩍 도망가려고까지 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떠올렸다. 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돼지국밥’은 있다고.

4년 전 이맘쯤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이유야 복잡했지만, 단순히 정리하면 내가 일할 수 없는 부서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 낯선 언어들로 가득 찬 서류뭉치를 석 달 동안 바라보다, 그것이 운명이 알려준 힌트라고 결론지었다. 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매일 아침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느니, 지금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할 수 없을지 모를지라도 생에서 한 번쯤은 하고팠던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어느 날 문득 사직서를 썼고, 나조차 실감할 수 없을 만큼 퇴사는 일사천리에 처리되었다. 그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 남겨진 것은 석 달 치의 급여에 해당하는 퇴직금과 ‘노트북 한 대’뿐이었다. 당시 내게 석 달 치의 급여라는 것은 경제적 이익을 거둘 수 없는 동안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피신처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활이라는 비에 젖고, 바람에 깎이고, 태풍에 날리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역시 내게 남은 것은 둔탁한 디자인의 검은 노트북 한 대 뿐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 검은 노트북을 쓰고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내 노트북을 보면 묻곤 한다. ‘무겁지 않냐’, ‘아직도 이걸 쓰냐?’, ‘잔 고장이 많지 않냐.’ 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언어로 표현하진 않지만 그 질문을 한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역시 글쟁이로 사는 건 녹록치 않군’ 하는 눈빛을 짓는다. 어째서 내가 그들의 마음까지 알 수 있냐고 묻는다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주저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잔뜩 담은 눈동자를 마주할 때 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같은 게 있다. 그것은 직면하지 않고서는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감성적 세계의 이해범주에 속한다. 묻지도 않은 것에 대해 일부러 나서서 답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그저 묵묵히 글을 썼지만, 사실 그 눈빛은 틀린 것이었다.

물론 그 눈빛의 추정이 맞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내게 그 시간은 지나갔다. 다행히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새 노트북쯤은 살 수 있다. 꽤나 예전부터 바꿀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이면 이고 다니느라 땀에 젖고, 8분이면 닳아버리는 배터리 탓에 매번 어댑터를 들고 다녀야 하고, 그 때문에 남들처럼 전기코드 위치에 상관없이 아무 테이블이나 앉아서 작업할 수 없는 불편을 감수하는 이유는 이것이 내게 일종의 ‘돼지국밥’이기 때문이다.

늦깎이 사회 초년생이 되어 월급으로 산 첫 귀중품이 바로 이 검은 노트북이다. 당시 나는 취재 업무를 새로 맡게 되어 노트북을 샀다. 물론, 회사의 물품이 있었지만, 나는 온전한 내 것으로, 즉 내 손가락을 온전히 받아주는 말 그대로 ‘나만의 노트북’을 원했다. 그 후로 나는 이 노트북과 함께 에티오피아와 케냐, 네팔, 볼리비아, 베트남, 인도, 보스니아, 일본, 태국 등지를 다녔다. 이 노트북과 함께 비행한 거리만 5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지구 둘레가 4만 킬로미터 남짓하니, 둘이서 지구 한 바퀴를 훌쩍 넘는 거리를 함께 다닌 셈이다. 무더운 국가에서 취재를 하고 난 후, 글을 쓰다보면 자판에 땀이 떨어지기도 했고,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 나라에서는 발을 동동 구르는 심정으로 이 노트북이 살아나길 기다렸다. 세계 각국의 사진들과 그곳에서의 경험을 담은 원고들이 이 노트북 안에 저장되었고, 지워졌다. 그것들은 책으로 나오기도 했고, 내 선택에 의해 영원히 지워지기도 했다. 결국 남은 것은 이 노트북 밖에 없다. 소설가로서의 데뷔작도, 수상작도, 실패작도 모두 이 노트북 하나로 썼다. 그리고 지금 이 글도 이 노트북으로 쓰고 있다.


사실 나는 어제 <변호인>에 관한 다른 원고를 써 놓았다. 지금도 내게는 하나의 또 다른 완성본이 있다. 그런데 오늘 퇴고를 하려고 노트북을 켜는데, 켜지지 않았다. 나는 생명을 다한 나의 노트북과 두 시간 넘게 씨름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이 태국의 시골이라, 나는 아무런 방책이 없다며 단념했다. 나를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그 먼 거리를 다니며 고생해주었으니, 내가 오히려 미안한 심정이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은퇴식이 있듯이, 이 노트북에 바치는 헌사만큼은 이 노트북으로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의 등을 밀어 회사를 그만 두게 하고, 나의 손가락을 움직여 소설을 쓰게 만들었던 그 알 수 없는 힘,-만약 당신이 이 표현을 다시 한 번 허락해준다면, ‘운명’이라고 하고 싶다-즉, 그 운명이 잠시 노트북을 살아나게 했다. 정확히는 마침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내가 쓰는 컴퓨터를 판매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품을 기꺼이 빌려주었다. 나는 그가 빌려준 부품으로 언제 다시 깊은 잠에 빠질지 모르는 이 노트북에 고별사를 바치기로 했다. ‘돼지국밥’을 먹고 도망갔던 고시생이 변호사가 되어 국밥집 아들의 억울함을 위해 변호하듯, 무겁고 검은 노트북을 들고 다니던 습작생이 너로 인해 원하는 글을 맘껏 쓸 수 있었다고. 그러니까, 너는 나의 ‘돼지국밥’이었다고. 이제 다시 깨어나지 않아도, 나는 너와 함께 하는 시간동안 내 생의 색깔이 바뀌었다고. 그러니까, 정말 고마웠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말이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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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양우석 #송강호 #오달수
10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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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ovemyself

2014.03.05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왠지 영혼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그 느껴지는 영혼이 읽기 쉽고 또 읽고 싶게끔 쓰신다는 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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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그나

2014.01.23

누구나,인생의가장힘든시기를보낼때자기만의돼지국밥을먹고조금은힘을내는것같습니다.비단먹는것만이아니겠지요.누군가의말한마디,손짓하나로도충분하다고생각합니다.좋은영화도마찮가지네요^^우리에게잠시쉬표를줍니다.정말중요한게무언지,지금정말안녕한지생각할수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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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꽃방

2014.01.20

무엇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기위해 일을 그만둘수 있었던 용기가 부럽네요. 요즘 나이들어가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주제가 그거거든요. 저도 제가 무엇을하며 살아가야할지 고민중인데 고민만 하지 말고 뛰어들어야할까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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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