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의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의 관계력
테드 창은 SF 속 인공지능 로봇과 현실 속 기술의 발전 양상에 괴리를 느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는 그가 느낀 괴리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인공지능의 다른 형태를 제시한 작품이다.
201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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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는 다르게, 이 책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를 위한 책이 아니다. 아마, 어쩌면 금방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작은 청사진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말하면 충분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소개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는 ‘테드 창의 신작 중편 소설’ 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테드 창은 장르 독자라면 모를 수 없는 작가이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를 소개하기에 가장 적당한 설명은 ‘발표된 단어 수 당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작가’ 이다. 그가 13년의 작가 경력 중에 발표한 소설은 총 12개의 중편과 단편 뿐이지만, 이들 작품의 대부분이 휴고 상, 네뷸러 상, 로커스 상 등 장르 문학의 상이란 상들을 죄다 휩쓸었다.
따라서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단 두 권이 책이 실제로 그의 전작을 망라한다고 할 수 있는데, 한 권은 2004년에 발간되어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판매중인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이 바로 이 책, 이번달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 중편 소설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이다.
소설을 배경은 가까운 미래. 주인공인 애나는 동물원에서 동물 조련사로 일하고 있었으나 동물원이 폐업되면서 직장을 잃게 된다. 실직 상태이던 그녀는 동물 조련이라는 경력에 관심을 보이는 벤쳐 게임 회사인 블루감마사(company)에 취직한다. 블루감마사는 가상 인터넷 세계인 데이터어스(Data Earth)에서 사용자들을 위한 새로운 가상 애완동물을 만들고 있는데, 애나의 일은 아기처럼 백지상태인 가상 애완동물에게 경험과 지식을 교육시켜 소비자들이 좋아한만한 상품으로 만드는 것. 이들 가상 애완동물은 주인의 애정을 갈구하고 주인의 애정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어 시장에서 괜찮은 성공을 거두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소프트웨어 환경의(예를 들자면 OS 같은) 빠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서 버려질 위기를 겪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가 느끼는 가장 큰 당혹감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가상 애완동물들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다마고치와 다르지 않은 물건의 일종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갈구하는 애정의 정도와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보면 마치 애완동물처럼 하나의 독립적인 생명체로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컴퓨터이면서도 처음에는 백지상태여서 하나하나 애정을 가지고 주인이 가르쳐야 한다는 점과, 보통 아이들만큼 지능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점에 이르면 어느 정도 인간의 아이와도 유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이렇게 정체성이 혼돈스럽기 그지없지만 사랑스다는 점에서는 진짜 애완동물 뺨 치는 가상 애완동물들과 그들의 주인의 관계를 내 보인다. 재미있게도 소설에서 가상 애완동물의 주인들의 행동 양식은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진짜 애완동물들을 위해서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인간 아이를 위해서) 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전자 애완동물을 위해서 어느 정도 자신의 노력과 금전을 희생하고, 그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며, 결국 강한 애착을 가진다.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우리는 그들은 (애완동물을, 혹은 인공지능을) 인격체로 대해야 하는가?” 라는 뻔한하고 소모적이며 답 없는 질문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대신 이 책은 우리 밖에 존재하는 대상들과 우리 간의 깊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마 애완동물을 길러본 적이 있는 사람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일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동물 한 마리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애완동물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와 맺은 관계와 같이 보낸 시간이라는 점. 기실, 물건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하찮은 물건이더라도, 내가 거기에 가지는 의미와 애착, 다시 말해 물건과 맺은 관계에 따라서 그 물건을 대체 불가능한 무엇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간에, 우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과 그동안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가’ 라는 것이다.
이 책의 디지털 애완동물들은 상당한 수준을 지성을 지니고 있고, 주인과의 상호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상호적인 관계는 우리가 많은 친구, 애인, 애완동물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 정도는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우리가 믿을만한 친구나 좋은 배우자에게 가지는 최소한의 기대감은 이런 것이다. “내가 약간의 희생을 강요해도 그는 나에 대한 애정으로 이걸 참아줄 거야.”
이 책에서도 관계에 강한 사람들은 적당한 희생을 견뎌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장 관계에 무능력한 사람들은 (현실에서와 같이) 그들의 가상 애완동물을 학대하거나 방치한다. 가장 관계에 유능한 사람들은 그들의 가상 애완동물을 위한 희생을 감수하는 인내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책은 소프트웨어와의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관계력(力)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온다. 아마 어떤 시대외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가 인간인 이상, 관계력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일 것이다. 사람 사이의 유대를 만들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스스로에 대해서 다시금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 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지금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추천하고 싶다. 관계와 희생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고, 스스로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보는 책이니까. 게다가 가상 애완동물에게 애착을 가지는 그들의 주인들에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
테드 창은 장르 독자라면 모를 수 없는 작가이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를 소개하기에 가장 적당한 설명은 ‘발표된 단어 수 당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작가’ 이다. 그가 13년의 작가 경력 중에 발표한 소설은 총 12개의 중편과 단편 뿐이지만, 이들 작품의 대부분이 휴고 상, 네뷸러 상, 로커스 상 등 장르 문학의 상이란 상들을 죄다 휩쓸었다.
따라서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단 두 권이 책이 실제로 그의 전작을 망라한다고 할 수 있는데, 한 권은 2004년에 발간되어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판매중인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이 바로 이 책, 이번달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 중편 소설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이다.
소설을 배경은 가까운 미래. 주인공인 애나는 동물원에서 동물 조련사로 일하고 있었으나 동물원이 폐업되면서 직장을 잃게 된다. 실직 상태이던 그녀는 동물 조련이라는 경력에 관심을 보이는 벤쳐 게임 회사인 블루감마사(company)에 취직한다. 블루감마사는 가상 인터넷 세계인 데이터어스(Data Earth)에서 사용자들을 위한 새로운 가상 애완동물을 만들고 있는데, 애나의 일은 아기처럼 백지상태인 가상 애완동물에게 경험과 지식을 교육시켜 소비자들이 좋아한만한 상품으로 만드는 것. 이들 가상 애완동물은 주인의 애정을 갈구하고 주인의 애정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어 시장에서 괜찮은 성공을 거두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소프트웨어 환경의(예를 들자면 OS 같은) 빠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서 버려질 위기를 겪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가 느끼는 가장 큰 당혹감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가상 애완동물들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다마고치와 다르지 않은 물건의 일종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갈구하는 애정의 정도와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보면 마치 애완동물처럼 하나의 독립적인 생명체로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컴퓨터이면서도 처음에는 백지상태여서 하나하나 애정을 가지고 주인이 가르쳐야 한다는 점과, 보통 아이들만큼 지능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점에 이르면 어느 정도 인간의 아이와도 유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이렇게 정체성이 혼돈스럽기 그지없지만 사랑스다는 점에서는 진짜 애완동물 뺨 치는 가상 애완동물들과 그들의 주인의 관계를 내 보인다. 재미있게도 소설에서 가상 애완동물의 주인들의 행동 양식은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진짜 애완동물들을 위해서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인간 아이를 위해서) 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전자 애완동물을 위해서 어느 정도 자신의 노력과 금전을 희생하고, 그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며, 결국 강한 애착을 가진다.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우리는 그들은 (애완동물을, 혹은 인공지능을) 인격체로 대해야 하는가?” 라는 뻔한하고 소모적이며 답 없는 질문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대신 이 책은 우리 밖에 존재하는 대상들과 우리 간의 깊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마 애완동물을 길러본 적이 있는 사람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일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동물 한 마리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애완동물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와 맺은 관계와 같이 보낸 시간이라는 점. 기실, 물건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하찮은 물건이더라도, 내가 거기에 가지는 의미와 애착, 다시 말해 물건과 맺은 관계에 따라서 그 물건을 대체 불가능한 무엇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간에, 우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과 그동안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가’ 라는 것이다.
이 책의 디지털 애완동물들은 상당한 수준을 지성을 지니고 있고, 주인과의 상호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상호적인 관계는 우리가 많은 친구, 애인, 애완동물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 정도는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우리가 믿을만한 친구나 좋은 배우자에게 가지는 최소한의 기대감은 이런 것이다. “내가 약간의 희생을 강요해도 그는 나에 대한 애정으로 이걸 참아줄 거야.”
이 책에서도 관계에 강한 사람들은 적당한 희생을 견뎌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장 관계에 무능력한 사람들은 (현실에서와 같이) 그들의 가상 애완동물을 학대하거나 방치한다. 가장 관계에 유능한 사람들은 그들의 가상 애완동물을 위한 희생을 감수하는 인내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책은 소프트웨어와의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관계력(力)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온다. 아마 어떤 시대외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가 인간인 이상, 관계력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일 것이다. 사람 사이의 유대를 만들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스스로에 대해서 다시금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 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지금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추천하고 싶다. 관계와 희생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고, 스스로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보는 책이니까. 게다가 가상 애완동물에게 애착을 가지는 그들의 주인들에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
-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테드 창 저/김상훈 역 | 북스피어
전직 동물원 조련사인 애나는 신생 게임 회사인 블루감마사에 취직한다. 블루감마사는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사교 게임인 〈데이터어스〉에 가상 애완동물(virtual pet)인 디지언트를 제공하는 회사다. 애나는 백지 상태의 디지언트를 교육시켜, 인간 사회의 언어와 지식, 사회성을 익히도록 훈련하여 ‘팔릴 만한 상품’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디지언트는 오너의 애정을 갈구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고, 애나는 디지언트를 가르치며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애정을 느낀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생태계에서 디지언트는 끊임없이 존속의 위협을 받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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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