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과 우아한 가난
우아하게 가난해진 사례로 비트겐슈타인을 빼놓을 수가 없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철학자로 알려진 비트겐슈타인이 가진 카리스마와 아우라는 상당 부분 그가 오스트리아 최고 갑부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관계가 있는데,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한 푼도 안남기고 포기했다는 사실과 더욱 관련이 있다.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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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가난해진 사례로 비트겐슈타인을 빼놓을 수가 없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철학자로 알려진 비트겐슈타인이 가진 카리스마와 아우라는 상당 부분 그가 오스트리아 최고 갑부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관계가 있는데,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한 푼도 안남기고 포기했다는 사실과 더욱 관련이 있다. 1차 대전 이전에도 릴케를 비롯한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큰돈을 기부한 적이 있었지만, 전후에는 돈에 대한 생각이 좀더 과격해져서 전재산을 ‘이미 부자들인’ 형제자매들에게 양도해 버리고는 평생 동안 극도로 검약한 생활을 했다.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하지 않고 부자에게 재산을 양도했는지에 대해서 비트겐슈타인은, 돈은 사람을 타락시키는데, 부자는 이미 타락했기 때문에 돈을 더 가져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라는 다소 황당한 이유를 대기도 했다.
재벌2세에다가 철학의 역사를 두 번이나 쥐락펴락한 천재임에도 철학교수직이 아니라 산골초등학교 교사를 자원한 것으로도 전설적인 일화를 남겼는데, 어떤 작가는 이에 대해 “억만장자가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라니, 그건 일종의 도착이지”라는 악평을 날렸다. 어쨌든 비트겐슈타인은 무소유에 근접한 생활을 영위했는데, 재산이라고는 약간의 돈말고는 탁자와 의자, 침대가 전부이고 방안에 장식용 그림 한 점 걸어두지 않았으며, 친구가 찾아와도 기껏 딱딱한 빵과 코코아 정도만 대접했다. 한번은 몇 년 만에 제자가 찾아왔을 때 저녁식사로 말린 계란가루를 내 왔는데, 제자가 싫은 기색을 보이자 속물로 간주했다고 한다. 케임브리지의 철학교수로 있을 때도, 다른 교수들이 학위 가운을 걸치고 거만하게 거리를 활보하던 시대에, 그는 일부러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해진 재킷을 걸치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임브리지의 철학도들은 비트겐슈타인을 너무나 우상처럼 숭배한 나머지 사소한 말투나 제스처까지 흉내내고 다녔다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심지어 글쓰기에서도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식을 실천했는데,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평한 《논리철학논고》는 불필요한 문장들을 다듬고 다듬어서 겨우 80쪽에 지나지 않았고, 너무나 우아하게 쓰려던 나머지 아름답지만 난해한 책이 되고 말았다.
비트겐슈타인의 사례에서 보듯 전설적인 레벨의 카리스마는 단지 엄청난 부자이기만 해서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며, 오직 부자였다가 자발적으로 가난해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만일 상속녀 패리스 힐튼이나 한국의 재벌2세들처럼 유산 상속으로 부자가 되어 갑부 철학자로 살았다면 그는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누리고 있는 존경과 명성을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스티브 잡스의 경우를 들 수 있는데, 그는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만 고수함으로써(물론 이것도 엄청 비싼 거라는 혐의는 있지만) 패션 ‘따위’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일에만 매진하는 모습을 연출한 결과로 오히려 더 큰 아우라를 획득하는 역설을 보여주었다. 반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모임에 불필요하게도 300만 원짜리 럭셔리 스키용 귀마개를 걸치고 나타남으로써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강화하고 말았다.
이처럼 부자가 우아해지는 방법으로는 부를 하찮게 여기는 포기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조차도 무의식에서 솟구치는 허영심을 이기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전기작가인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에 보면 케임브리지의 지인들에게 “옛날 우리 아버지 집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일곱 대가 있었다”고 은근히 뻐겼는데, 사실은 다섯 대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사례로는 독일의 귀족 가문인 자인비트겐슈타인 가문과 연결되어 있다는 세간의 오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귀족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존경을 즐겼다는 의혹도 있다.
Margaret Stonborough-Wittgenstein(비트겐슈타인의 누이): 구스타프 클림트 |
재벌2세에다가 철학의 역사를 두 번이나 쥐락펴락한 천재임에도 철학교수직이 아니라 산골초등학교 교사를 자원한 것으로도 전설적인 일화를 남겼는데, 어떤 작가는 이에 대해 “억만장자가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라니, 그건 일종의 도착이지”라는 악평을 날렸다. 어쨌든 비트겐슈타인은 무소유에 근접한 생활을 영위했는데, 재산이라고는 약간의 돈말고는 탁자와 의자, 침대가 전부이고 방안에 장식용 그림 한 점 걸어두지 않았으며, 친구가 찾아와도 기껏 딱딱한 빵과 코코아 정도만 대접했다. 한번은 몇 년 만에 제자가 찾아왔을 때 저녁식사로 말린 계란가루를 내 왔는데, 제자가 싫은 기색을 보이자 속물로 간주했다고 한다. 케임브리지의 철학교수로 있을 때도, 다른 교수들이 학위 가운을 걸치고 거만하게 거리를 활보하던 시대에, 그는 일부러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해진 재킷을 걸치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임브리지의 철학도들은 비트겐슈타인을 너무나 우상처럼 숭배한 나머지 사소한 말투나 제스처까지 흉내내고 다녔다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심지어 글쓰기에서도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식을 실천했는데,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평한 《논리철학논고》는 불필요한 문장들을 다듬고 다듬어서 겨우 80쪽에 지나지 않았고, 너무나 우아하게 쓰려던 나머지 아름답지만 난해한 책이 되고 말았다.
비트겐슈타인의 사례에서 보듯 전설적인 레벨의 카리스마는 단지 엄청난 부자이기만 해서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며, 오직 부자였다가 자발적으로 가난해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만일 상속녀 패리스 힐튼이나 한국의 재벌2세들처럼 유산 상속으로 부자가 되어 갑부 철학자로 살았다면 그는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누리고 있는 존경과 명성을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스티브 잡스의 경우를 들 수 있는데, 그는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만 고수함으로써(물론 이것도 엄청 비싼 거라는 혐의는 있지만) 패션 ‘따위’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일에만 매진하는 모습을 연출한 결과로 오히려 더 큰 아우라를 획득하는 역설을 보여주었다. 반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모임에 불필요하게도 300만 원짜리 럭셔리 스키용 귀마개를 걸치고 나타남으로써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강화하고 말았다.
이처럼 부자가 우아해지는 방법으로는 부를 하찮게 여기는 포기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조차도 무의식에서 솟구치는 허영심을 이기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전기작가인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에 보면 케임브리지의 지인들에게 “옛날 우리 아버지 집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일곱 대가 있었다”고 은근히 뻐겼는데, 사실은 다섯 대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사례로는 독일의 귀족 가문인 자인비트겐슈타인 가문과 연결되어 있다는 세간의 오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귀족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존경을 즐겼다는 의혹도 있다.
- 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저/김인순 역 | 필로소픽
저자 폰 쇤부르크는 500년 동안 영락의 길을 걸어온 귀족 가문의 전통과 근검절약을 미학적 수준까지 끌어올려 실천했던 부모님의 생활 방식을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덕분에 경제적 곤경 속에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품위를 잃지 않고 우아하게 가난해질 수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난해지면서도 부유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화려한 시대와의 결별을 먼저 겪은 유럽 사회를 통해 우아하게 불황을 견디는 지혜를 알려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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