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범신, 왜 고향 논산으로 다시 내려갔을까
소설가 박범신이 데뷔 만 40년이 되는 해에 마흔 번째 장편소설 『소금』을 펴냈다. 홀연히 고향 논산에 내려가 쓴 첫 소설이자,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드러낸 3부작,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에 이은 마지막 작품이다. 소설의 소재는 아버지. 그러나 가족의 이야기를 할 때 흔히 나오는 눈물 젖은 ‘화해’의 이야기가 아닌,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글ㆍ사진 박현희
201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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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동의어는 책임감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시대에는 아내와 남편이 함께 가정을 책임지고 있지만, 우리의 아버지 세대인 ‘베이비부머’는 대체로 홀로 그 무게를 감당해왔다. 소설 『소금』은 베이비부머인 이 시대의 아버지를 다루고 있다. 지난 5월 9일, 예스24와 상상유니브가 함께하는 상상 북 토크에서 만난 박범신 작가는 지금의 젊은 층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 거대한 소비 문명을 가로지르면서, 그 소비를 위한 과실을 야수적인 노동력으로 따 온 ‘아버지’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부랑하고 있는가. 소비의 ‘단맛’을 허겁지겁 쫓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늙어가는 아버지들의 돌아누운 굽은 등을 한번이라도 웅숭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바람기 잠재우려 논산으로 전입

작가님이 논산에 내려간 것이 2011년 11월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4월 30일에는 그곳에서 크게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고 하던데요.

일종의 신고식 같은 거죠. 고향 사람들에게 인사를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출판기념회를 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500석이 넘는 큰 공간에서 지역사람들과 함께 했는데, 내 평생에 그렇게 큰 출판기념회는 처음이었어요. 자리도 다 차고, 시민들도 좋아하는 걸 보니 ‘내가 정말 논산 사람이 다 됐구나. 이제 보따리 싸기가 어렵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논산시장이 감사패를 주자 그에 대한 답례(?)로 주민등록등본을 주셨잖아요. 논산으로 주소지를 옮긴 의미는 무엇입니까?

논산에 처음 내려갔을 때는 매일매일 보따리를 싸는 심정이었습니다. 탑정호변에 있는 제 집 뒤뜰에는 암반 사이에 아름다운 연못이 있어요. 저는 그 연못 곁에 자그마한 정자를 하나 지었죠. 정자 이름을 지을 때 좀 멋있게 지으려고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심유정’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룻밤 자고 보니 ‘이건 뻥이야’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날로 ‘유유정(流留亭)’이라고 다시 붙였습니다. 편액에는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다’라는 뜻풀이도 곁들여 놓았지요. 논산에서의 처음 2년 동안은 이곳에 마음이 머물지 않았습니다. 1년이 지나도 내 마음은 여전히 천안쯤 가 있더라고요. 그렇게 2년을 꽉 채우고 보니 내가 논산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내적 개연성을 작가로서 찾았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떠날 수 있는 상태로 나를 두는 것이 고향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바람기 많은 나를 제어하는 방법도 아닌 것 같아 주민등록을 옮겼습니다.

작가님이 고향 논산에서 서울로 처음 올라온 게 직장을 잡으면서죠?

대학을 졸업한 것도 논산, 신춘문예에 당선한 것도 논산입니다.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결혼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1973년 봄에 무작정 상경을 했어요. 젊은 아내를 데리고 대책 없이 올라왔죠. 그러니까 만 40년 만에 고향 논산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한 거예요.

만 40년 만에 고향 논산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등단 40년 만에 마흔 번째 소설을 펴냈습니다. 이번 소설을 내기까지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우리는 1980년대보다 더 암흑한 독재 속에 살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모시는 독재자는 ‘자본’이죠. 이 자본이야 말로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독재자예요. 나는 ‘왜 우리 문학판은 여기에 대해 더 적극적인 발언들을 과거와 같이 하지 않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나의 존재론적인 번뇌의 소설을 쉬고 자본의 실행에 대한 반인간주의적인 세계에 대해 말해야 겠다’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자본 3부작’의 첫 번째 소설인 『비즈니스』를 썼습니다. 쓰고 나니 이 소설이 굉장히 불만족스럽더군요. 동어반복인 것 같고, 내가 1980년대에 썼던 소설 방식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썼어요.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작품이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얻지 못했죠. 일종의 실의에 빠졌을 무렵에 논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처음에는 외로우니까 술만 마셨어요. 문학적으로 좌초해있다고 할까, 알집 속에 갇힌 느낌으로 2년을 보냈죠. 그런데 평생 글을 써와서 그런지, 쓸 수가 없는데도 손이 자꾸 움직여요. 논산으로 내려간 그 해 겨울에 스마트폰으로 원고지 900매를 썼어요. 그리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를 펴냈죠.

소설의 배경은 논산입니다.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이번 소설의 소재는 새로울 게 없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염부에요. 원래 구상은 염전 옆 폐교에 주인공 가족이 사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논산에 와서 살다 보니 고향을 배경으로 삼고 싶은 거예요. 논산에 강경이란 곳이 있어요. 강경은 젓갈로 유명하잖아요. ‘옳거니! 소금 이야기를 강경에 할 수 있겠구나’ 싶어 고향을 배경으로 뒀어요. 또 강경은 개발의 광풍이 비켜간 곳이에요. 가출한 늙은 아비가 살기에 문화적으로 딱 맞다, 라는 생각에 이곳을 배경으로 썼어요.




가족이라는 빨대에 꽂혀 산 ‘아버지’

『소금』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소금』의 주인공은 1951년생입니다. 자의적으로 산 적이 없는 세대인 동시에 절대빈곤과 경제개발 등 위로부터의 거대담론에 짓눌려 살아온 세대죠. 그 세대의 희생으로 인해 지금의 부를 어느 정도 누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이런 경제적인 뒷받침에 의한 편의성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솔직히 『소금』은 20∼30대 젊은이들이 읽기를 바라며 쓴 소설입니다.
나는 한 세대는 한 가지의 위대한 일만 하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온갖 그늘을 늙어가는 아버지에게 책임이 있다고 외쳐요. 물론 아버지의 책임이죠. 이 나라를 잘못 끌고 온 책임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절대 빈곤을 끊으라는 사회적 명령에 따라서 야수적인 노동력으로 온갖 치사한 것을 참으면서 살아온 세대예요. 그런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들이 함께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오늘날의 아버지는 왜 쓸쓸할까요?

거대한 소비문명이 자식들을 다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이에요. 아버지가 자식들 밥 먹이는 것만이 의무겠어요? 바른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마땅히 잘 가르치는 것도 큰 의무죠. 그런데 이 시대에는 아버지의 말은 영향력이 없어요. 무언가를 가르친다거나, 한 인간으로 키워내는 역할은 소비문명이 하다 보니 아버지가 설 자리가 없는 거죠. 오늘날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먹일 과실을 따내는 책임을 하는 것만으로 겨우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시대의 아버지가 가장 쓸쓸하다고 봐요.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박범신 작가는 좋은 아버지입니까?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좋은 아빠래요. 저는 끊임없이 가출을 꿈꿨지만 아이들을 버린 적은 없어요. 나는 책임과 의무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타입의 인간이거든요. 바람기도 많지만 책임감도 아주 강한 사람이에요.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어요. 전 열심히 아버지 노릇도 했어요. 그런데 나는 왜 평생 가족 속에 있으면서도 거기에 있지 못할까요? 나는 가족에게도 ‘작업’을 걸어요.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까, 고민하죠. 좌우간 나는 집에서도 인기가 있고 싶어요. 하지만 나와 가족 사이에는 아무도 모르는 아주 먼 거리가 있어요. 다행히 겉으로는 좋은 남편, 비교적 좋은 점수를 받는 아버지 노릇을 해오고 있습니다(웃음).

작가님의 자녀들이 혹시 이 소설을 보고 오해하거나 섭섭해 하지는 않을까요?

지난 날 제가 이 아이들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린 적이 있어요. 1980년대 후반쯤이었는데, 원고만 쓰려고 하면 손이 벌벌 떨리는 거예요. 원고를 안 쓰면 밥을 못 먹으니까 어떤 때는 소설을 쓸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책임감에 의해 쓴 적도 있어요. 아주 극단적인 원고 노이로제에 걸려 글을 쓰지 않으려고도 많이 했죠. 장사라도 해서 돈을 벌려고 했지만, 아내는 무조건 반대했어요. 가족이 원망스러웠죠. 나는 또 동시에 작가로서 연재소설을 많이 쓴다고 문단으로부터 얻어터지고 있었어요. 이중삼중의 스트레스가 날 감고 있었습니다. 그땐 정말 내가 빨대 박힌 몸체가 된 느낌이었어요. 빨대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은 빨대가 닿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것뿐인데,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내 기본에 깔려 있는데 어떻게 도망가겠어요. 정말 비참하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커서 아마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들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할 거예요. 혹시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나에게 말 하겠어요?(웃음)

작가님의 다음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다음 소설의 제목은 『소소한 풍경』이에요. 나는 극적인 이야기라던가, 비상하고 장엄한 이야기를 좋아해요. 하지만 비장하고 장엄한 것이 이미 개그가 된 시대죠. 『소소한 풍경』은 세 남매가 사는 이야기예요. 소소하고 심심하게 사소한 에세이 같은 소설을 써보려고 합니다. 나는 더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 연애하는데 불편하기만 하고(웃음). 그럼 왜 쓰느냐? 글쎄요. 아주 솔직히 이야기하면 ‘우울’에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써요. 나에겐 우울 숙주가 있어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삶의 유한성이 주는 근본적이고 존재론적인 고절함인가? 어쨌든 탄생 이전으로부터 부여받은 슬픔 같은 것이 내 안에서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나는 그런 것에 대한 적응력이나 내공이 안 쌓이는 것 같아요. 늘 무섭고 늘 아득하고 늘 버림받는 느낌입니다. 그런 우울의 숙주가 내 영혼의 심지에 너무나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원고를 안 쓰면 그것이 비대해지죠. 심한 경우에는 나를 해칠 정도가 되요. 나는 강력한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 놈한테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거고, 내 인생에서 나아갈 길은 현재로선 소설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소설이라는 길로 내달리는 거겠죠. 정확한 설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나의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과의 일문일답

이 시대에 아버지의 자화상을 본 듯해서 뒷맛이 쓰고 짭조름합니다. 오늘날의 아버지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신다면?

요즘 90세까지 산다고 하잖아요. 그럼 60세라고 해봤자 전반기 30년은 배우고 익히는데 다 썼으니까 제대로 된 인생을 30년 밖에 못 산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90세까지 산다면 60세면 인생의 반을 산 거죠. 그럼 우린 앞을 준비해야 해요. 우리가 지금 고독하다면, 가족과 소통이 안 된다면 무슨 수를 쓰던 간에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배워야죠. 노후대비는 단순히 경제적인 대비만이 아니에요. 정서ㆍ문화적인 대비를 해야죠. 60세에 은퇴하면 우리는 찬스를 맞은 거예요. 시집가고 장가간 자식들이 내 등에 빨대를 꽂도록 허용하면 안돼요. 우리는 좀 이기적일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그들이 독립해서 살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와줬다면 이제 우리 인생을 살아야 해요. 차라리 우리가 자식들에게 빨대를 꽂읍시다. 그래야 공평하죠.

여전히 청년작가로 불릴 만큼 순수한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누가 뭐래도 난 청년작가예요(웃음). 청년보다 더 예민하고 청년보다 더 순수하다고 믿어요. 물론 나도 몇 가지 세상살이의 술수가 있죠. 그러나 깊은 밤 홀로 나를 들여다 볼 때면 나는 순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 마음 속에는 분명하게 훼손되지 않는 어떤 순정이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이 문학 순정주의로 나타나고 있죠. 훼손되지 않은 감수성. 예민하다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사물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면 자국이 남아요. 그런 순정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글감이 절대 떨어지지 않아요. 또 그런 순정을 유지한 사람이 문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젊은이들이 괴로운 것은 그들의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죠. 자기 길만 찾을 수 있다면 지금 갖고 있는 불안의 대부분을 줄일 수 있어요. 물론 자기 길을 찾는다고 해서 가난을 면할 수는 없죠. 여전히 그는 가난할 거예요. 이 거대한 소비문명에서 가난은 고통이지만 그러나 자기 길만 발견하고 찾을 수 있다면 이 가난이나 경쟁에서 밀렸을 때 오는 쓸쓸함의 많은 부분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죠. 많은 젊은이들은 찬스가 오기만을 기다려요. 빨대를 들고 왔다 갔다 하죠. 그러면 영원히 불안을 해소하지 못해요. 중요한 것은 내 길을 찾는 거죠. 남과 상관없이 ‘그래, 너는 포장도로로 갈래? 나는 그냥 좁은 들길로 갈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자신이 걸어갈 길만 찾을 수 있다면 청춘의 아픔은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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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박범신 저 | 한겨레출판
이 이야기는 특정한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1’, ‘아버지2’, 혹은 ‘아버지10’의 이야기다. 늙어가는 ‘아버지’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붙박이 유랑인’이었던 자신의 지난 삶에 자조의 심정을 가질는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소비 문명을 가로지르면서, 그 소비를 위한 과실을 야수적인 노동력으로 따 온 ‘아버지’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부랑하고 있는가. 그들은 지난 반세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아니, 소비의 ‘단맛’을 허겁지겁 쫓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늙어가는 아버지들의 돌아누운 굽은 등을 한번이라도 웅숭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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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소금 #논산 #비즈니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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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선

2014.07.23

박범신 작가님의 작품은 언제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 이 작품도 기대가 큽니다. 항상 좋은 작품으로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살지우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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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꼬

2013.05.30

한겨레출판, 믿고 봅니다. 기사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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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5.27

멋진 작가님. 새 소설 <소금>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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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희

담백한 만남, 담백한 인생. hhpar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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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1946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원광대 국문과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78년까지 문예지 중심으로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ㆍ단편을 발표, 문제작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1979년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풀잎처럼 눕다』등을 발표, 베스트셀러가 되어 70~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낸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작품 중 70년대와 8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은 폭력의 구조적인 근원을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또한 도시와 고향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구조를 통해 가치의 세계를 해부하려는 시도로 인해 대중작가라는 곱지 않은 평을 듣기도 했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문학과 삶과 존재의 문제에 대한 겸허한 자기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사유의 공간으로 선택한 곳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멀게 느껴지던 히말라야였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를 여섯 차례 다녀왔으며 최근에는 킬리만자로 트레킹에서 해발 5895미터의 우후루 피크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1996년 유형과도 같은 오랜 고행의 시간 끝에 [문학동네] 가을호에 중편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재개한 후 자연과 생명에 관한 묘사,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 세계로 문학적 열정을 새로이 펼쳐보이고 있다. 명지대 교수, 상명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외등』은 그가 글쓰기를 떠나기 전의 문학세계와 그 후의 문학성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으로, 해방 후의 현대사의 흐름을 같이 걸어온 주인공 서영우와 민혜주, 노상규 이 세 인물들을 통해 잃어버린 사랑의 원형을 찾아 결국엔 죽음에 이르는 피빛 사랑을 그려내면서 해방 후 현대사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더러운 책상』은 특이하게 '단장'으로 이뤄져 있다. 박범신의 자전적 소설로도 볼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가 겪었을 젊은 날의 고뇌들이 그렇게 표현된 것처럼 평가받는다. "새벽이다. 무엇이 그리운지 알지 못하면서, 그러나 무엇인가 지독하게 그리워서 나날이 흐릿하게 흘러가던, 그런 날의 어느 새벽이었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살고자 했던 그의 고민을 엿보게 해준다. 작가 박범신은 이 작품으로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2003년 제18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들, 쓸쓸하다』에서 박범신은 그의 문학인생 못지않게 녹록치 않았던 남자인생 60년을 이야기한다. 오로지 아들 하나를 욕망하던 어머니의 늦둥이 외아들로, 수많은 복병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 한 울타리를 지켜온 남편으로, 수십 년간 밥벌이를 감당해야 했던 고단한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 땅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짚어본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어가는 사회 구조 안에서 이제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남자들, 즉 구시대의 ‘화려한 권력자’에서 이 시대의 ‘쓸쓸한 인간’으로 자리바꿈한 중년 남자들의 현주소를 살펴봄과 동시에, 이제는 사회의 구석자리에서 불안한 헛기침만을 날릴 수밖에 없는 그 ‘쓸쓸한’ 남자들의 진솔한 속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비우니 향기롭다』는 더욱 더 소유하고자 하는 물질 만능주의 현실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안내서이다. 내면의 깊이가 더욱 확장된 저자가 히말라야에서 깨달은 바는 진정한 삶의 행복은 가지려는 마음보다 비우려는 마음에 있다는 것. 이는 바로 불교 철학의 '무소유'와 직결된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만 살아가는 기쁨이 더 줄어든 시대.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이 외의 작품으로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물의 나라』 『겨울강 하늬바람』 『킬리만자로의 눈꽃』 『침묵의 집』 『와등』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등이 있고, 소설집에 『토끼와 잠수함』 『덫』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등이, 연작소설에 『빈 방』 『흰수레가 끄는 수레』 등이 있다. 2001년 소설집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로 제4회 김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나마스테』로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1월까지 5개월동안 네이버 블로그에 「촐라체」라는 소설을 연재하였다. 이 소설은 2005년 1월 히말라야 촐라체봉(6440m)에서 조난당했다가 살아 돌아온 산악인 박정헌·최강식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또한 『촐라체』와 『고산자』와 함께 ‘갈망의 삼부작(三部作)’인 은교에서는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소설은 또 무엇인가. 젊음이란 무엇이며, 늙음이란 또 무엇인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풀어내는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은 최근에도 『비즈니스』, 『빈방』, 『외등』, 『힐링』,『소소한 풍경』등을 발표하며 꾸준히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