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불행하지만 않게 해도 좋은 부모다
대부분의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지만 상처가 너무 깊은 경우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기도 한다. 그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그에 따라 세상이 그 혹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다. 결국 트라우마는 그 사람의 성격을 바뀌게 하고, 삶을 바뀌게 하며, 인생마저 바꾸고 만다.
글ㆍ사진 최명기
201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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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morguefile.com/archive/display/601408 by xololounge]

아이들이 범죄나 사고로 인해서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처럼 주위 사람들을 마음 아프게 하는 일도 없다. 아이는 무력한 존재다. 그리고 어리기 때문에 자신의 불행에 스스로 책임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아이가 다른 아이들이나 어른에게 공격적으로 대해도 아이를 용서하고 아이의 편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아이가 어른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세상은 여전히 그 혹은 그녀를 동정하지만 용서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지만 상처가 너무 깊은 경우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기도 한다. 그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그에 따라 세상이 그 혹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다. 결국 트라우마는 그 사람의 성격을 바뀌게 하고, 삶을 바뀌게 하며, 인생마저 바꾸고 만다. 이미 당한 고통만으로도 엄청나게 괴로운 아이는 평소와 다르게 변하게 되고, 그 변화가 또 다른 고통을 가져오며, 그 고통이 또 다른 트라우마를 일으켜 나중에는 마음의 감옥까지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이러한 악순환이 이어지다 보면 우울, 불안, 폭력, 범죄, 자살, 살인 같은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렸을 때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일어나는 끔찍한 비극을 잘 나타낸 영화가 있다.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감독의 <미스틱 리버(Mystic River)>이다. 어려서 납치당해 성폭행을 당한 아이와 그 주변인의 트라우마가 불러온 끔찍하지만 슬픈 이야기이다.

영화는 세 명의 꼬마들, 지미, 데이브, 숀이 놀고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셋이 놀고 있던 중 데이브가 납치를 당해서 성폭력을 당한다. 셋은 그 일을 애써 외면하며 멀어진다. 어른이 된 지미는 조직폭력배가, 숀은 경찰이, 그리고 데이브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가장이 된다. 하지만 데이브는 과거에 당했던 성폭력 때문에 항상 위축되어 있었고 제대로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고, 우울해했다. 지미는 교도소에서 나온 후 죽은 부인이 남긴 딸 케이티를 키우며 살다가 재혼을 하는데 상대는 데이브의 처형이었다. 그리고 지미의 딸 케이티가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당하고 숀이 그 수사를 맡으면서 셋은 만나게 된다.

하지만 하필 케이티가 사망한 날 데이브는 한 남성이 10대 소년과 차에서 성행위를 하려던 것을 목격하고 남자를 때려죽인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집에 온 데이브는 부인에게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케이티가 살해당한 날 데이브가 죽였다고 하던 남자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고 부인은 데이브가 케이티를 죽였다고 의심하게 된다. 형부인 지미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지미는 데이브를 죽이고 만다. 데이브를 죽이고 밤새 술을 마시다 도로에 주저앉아 아침을 맞이한 지미는 숀에게서 진범이 잡혔으며 데이브가 죽인 아동 성폭력 전과자의 시체가 뒷산에서 발견이 되었다는 것을 듣는다. 하지만 이미 복수의 일념으로 아무 죄도 없는 친구 데이브를 살해한 뒤였다. 지미와 숀은 헤어지면서 이런 말을 한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가 그 차를 탄 거야. 이 모든 것이 그저 꿈만 같아. 현실 속의 우린 겁에 질려 갇힌 11살 꼬마야. 탈출해서 다르게 살기를 상상하는 꼬마.”

아이에게 조금만 심한 말을 해도 혹시 아이가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어머니가 많다. 아이가 상습적으로 맞거나 굶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사소한 일로 아이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가 생기지는 않는다. 자신을 사랑해줘야 하는 부모로부터 육체적 학대를 받으면 죽기보다 괴롭지만 나이가 들어서 오히려 부모를 돌보고 용서하기도 한다. 육체적 질병 역시 아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지만 오히려 병을 이기고 더욱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이혼은 씻지 못할 상처를 아이에게 주지만 부모 중 한쪽이라도 아이에게 진심 어린 태도로 대하면 아이는 어려움을 극복한다.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상처를 극복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회복탄력성이 큰 아이도 극복하지 못하는 상처가 있다. 어려서 범죄나 집단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서 어른이 되어서도 사소한 일에 상처를 받고, 일어나려고 노력하다가도 주저앉는다.

<미스틱 리버>의 데이브처럼 심적 고통을 받게 되면 순간순간 다시 그 끔찍한 순간으로 돌아가는 듯한 경험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 안의 유전자는 삶의 이유를 자녀를 낳고 DNA를 전달하는 데서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성관계를 쾌락과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녀를 낳기 위해서 억지로 성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은 성관계를 통해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하다 보니 자녀도 가지게 되고 결혼도 하게 된다. 굳이 프로이트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굳이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있어서 성은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성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에 자신이 선택해서 이루어진 성관계는 사랑과 즐거움으로 이어지지만 어려서 강요된 성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폭력일 뿐이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어려서 파괴되고 왜곡되면 그 혹은 그녀의 삶 역시 파편화되어 버린다.

게다가 성폭력을 당한 아이는 자아가 훼손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 같고 수치심에 시달린다. 나를 지켜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사람들의 시선도 감당할 수 없다. 팀 로빈스(Tim Robbins)가 연기한 <미스틱 리버>의 데이브가 이를 잘 보여준다. 결혼도 하고 아들도 있으며, 한때 고교 야구팀의 유격수로 주목받는 존재였다. 그렇게 겉으로 볼 때는 그럭저럭 세상에 적응해가는 것 같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주는 압박 때문에 예상치 못한 반응을 주위에 보이고,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다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채 파멸하게 된다.

정신과 레지던트 때 소아 정신과 병동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10대였던 환자는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자주 생각한다. 어려서 당한 학대나 성폭력 때문에 지금도 괴로워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하다. 내가 레지던트 때 봤던 소아청소년 환자들도 지금 어디에선가 그렇게 고통받고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본다. 부모는 항상 자녀에게 뭔가 더 해줄 것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불행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주는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것이다. 아이의 불행만 막아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부모다. 그 이상은 옵션일 뿐이다. 아이에게 최고의 양육을 했다고 해서 그 아이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아이가 범죄, 성폭력, 집단 폭력 같은 감당할 수 없는 불행에 노출되면 평생 비참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불행만 피하게 해줘도 좋은 부모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해주고픈 말이 있다. “자녀들이여, 불행을 피하게 해준 부모에게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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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 콤플렉스 최명기 저 | 필로소픽
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반항, 공부, 게임, 왕따! 이 네 가지 주제를 통해 십대들의 심리를 조목조목 짚어주는 책. 말만 꺼내도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 과외를 시켜도 공부를 못하는 이유, 기를 쓰고 게임만 하는 이유, 왕따를 당해도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 등을 뇌 과학과 심리학 관점에서 접근하여 설명한다.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상담 사례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통해 사춘기에 접어든 십대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 고민하는 부모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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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 콤플렉스 #최명기 #미스틱 리버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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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7.3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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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전중

2013.05.28

불행을 피하기만 해주어도 좋은 부모이다 라는 말은.. 그만큼 살기 힘든 사회를
반영하는 문구인것 같아 슬프기도 하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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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리

2013.05.13

결혼 후에 정말 부모님께 감사드리게 되는 것 같아요
이만큼 키워주신 그 노력과 사랑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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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지은이 최명기는 마음경영 전문의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2003년 듀크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하고, 내친김에 건강의 통합적 방법을 모색하다 듀크 대학교 Health Sector Management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에 돌아와 부여다사랑병원을 열었다.
경영학을 공부한 정신과 전문의라는 독특한 이력을 살려, 경영학과 정신의학을 통합한 마음경영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는 방법을 연구하고 널리 알리고 있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병원경영 강의를 했으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 겸직교수를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즈리뷰」에서 마음경영을 주제로 칼럼을 썼고, 의료전문 사이트 ‘메디게이트’에 의료경영 칼럼을 연재 중이다. 한국생산성본부(KPC)에서 CEO 마인드테라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정신분열증을 대처하는 방법』, 『심리학 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마음이 경영을 만나다』, 『트라우마 테라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