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도 오르기 힘든 미시령, 자전거로 정복하다
여행 코스 짤 때 가장 두려웠던 구간이 미시령이었다. 아예 몰랐으면 겁도 안 날 텐데, 속초 여행을 할 때 차로 자주 넘어본 터라 그 엄청난 경사와 거리를 잘 알고 있었다. 꼬불꼬불 한 없이 올라가는 길을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을지, 맨 몸으로도 올라가기 힘들다고 하던데 이 많은 짐을 지고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2012.09.06
작게
크게
공유
[전국일주 28일차/ 이동구간: 속초ㆍ미시령ㆍ인제]
드디어 미시령을 정복하는 날이다. 날이 날인 만큼 라면에 밥까지 말아 든든히 속을 채웠다. 미시령 초입에서 MTB 라이더 2명을 만났다.
“아이고~ 짐이 장난이 아니네요.”
“하하하, 안녕하세요.”
“도대체 짐이 몇 kg이나 되는 거예요?”
“정확히 재보진 않았는데 20kg 정도 될 것 같아요.”
“초등학생 한 명 뒤에 태우고 올라가는 거네요. 근데 미니벨로가 무게를 견뎌요?”
“안 그래도 스포크 몇 번 부러졌어요.”
“그냥 올라가기도 힘든데, 그렇게 무거운 자전거로 아무튼 대단하시네요.”
속으로 가벼운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올라가는 MTB 라이더들이 한없이 부러워진다. 그들은 이것도 인연이라며 길에서 파는 칡즙 한 잔을 사준다. 안타깝게도 희열이는 이 맛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의 젊은 피는 벌써 나보다 한참 위를 올라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역시 무서운 녀석이다.
대부분의 차들이 미시령 터널을 이용하기 때문에 옛길에는 차가 적다. 차들이 지나가지 않을 땐 학학 거리는 내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주변이 고요하다. 페이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기로 했다. 힘을 내보려고 중간에 초코바 하나를 꺼내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달린다. 아, 달다! 두 개 사올 걸 후회가 된다.
여행 코스 짤 때 가장 두려웠던 구간이 미시령이었다. 아예 몰랐으면 겁도 안 날 텐데, 속초 여행을 할 때 차로 자주 넘어본 터라 그 엄청난 경사와 거리를 잘 알고 있었다. 꼬불꼬불 한 없이 올라가는 길을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을지, 맨 몸으로도 올라가기 힘들다고 하던데 이 많은 짐을 지고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하지만 가장 도전해 보고 싶던 곳이기도 했다.
몇 해 전 희열이와 함께 <자전거 대행진>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미시령 정상까지 가는 코스였다. 몇 개의 조로 나누어 라이딩을 했는데, 나와 희열이가 속했던 마지막 조는 미시령 초입에서 라이딩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해가 저물고 있어 행사 주최측에서 안정상의 이유로 더 이상 가지 못하도록 제지했기 때문이다. 미시령을 정복해 보겠다고 그 먼 길을 달려왔건만, 상황이 그렇게 되니 엄청나게 억울했었다. 시간 조절을 못 한 주최측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 때 좌절한 기억 때문이라도 꼭 한 번은 미시령에 다시 도전해 보고 싶었다.
있는 힘을 다해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정상 3.3km> 표지판이 보인다. 그래도 이제 반 이상 왔다. 이 지점부터는 고도가 높아서인지 바람이 심하게 분다. 역시 미시령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허벅지 근육이 당기는 건 물론이고 무릎과 허리까지 조금씩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론 언덕을 오르다가 다리가 아플 때보다 허리가 아플 때 힘이 든다. 올바른 자세를 계속 유지하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페달을 꾹 밟을 때 밟는 힘만큼 허리가 시큰거릴 때가 있다. 이 때가 가장 포기하고 싶을 때이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페달을 밟았다. 얼굴에서 땀이 물 흐르듯 떨어진다. 또 한 번의 나와의 싸움이다.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차의 운전자가 나를 보더니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그걸 보고 다시 힘을 내본다. 페달 밟는 데만 집중할 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린다.
“다 왔어요! 힘내세요!”
고개를 돌려보니 희열이가 정상에서 손을 흔들면서 소리치고 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나의 작은 꿈 하나를 이루는 이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싶어 카메라를 꺼냈다. 정상에 조금씩 가까워 지는 길을 동영상으로 담으면서 올라간다.
미시령 정상! 자전거에서 내리자 마자 다리가 풀려버렸다. 8km의 언덕을 끌바(자전거를 끌고 가는 행위) 없이 올라온 내가 대견하다. 많은 자전거인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미시령 정복을 나도 드디어 해냈다. 그런데 희열이 옆에 있던 관광객 두 분이 나를 잠시 유심히 쳐다보더니, 곧 차를 타고 갈 준비를 하신다. 먼저 도착한 희열이와 그 두 분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우와 대단하네요. 여기를 자전거로 올라왔어요?”
“하하하. 그러게요. 제가 어떻게 올라왔네요.”
“혼자 여행하세요?”
“아니요. 일행이 한 명 있어요.”
“일행은 어디에 있어요?”
“아, 이제 보이네요. 저기 올라와요.”
“근데 왜 같이 안 올라오고, 저 사람은 나중에 올라와요?”
“글쎄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아, 그냥 저 분이 저보다 10살 많아요.”
“10살이요? 저 사람이 더 대단한 거네.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겠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려오는 길은 올라온 길에 비해 거리가 훨씬 짧다. 3km 남짓 내려오니 벌써 끝났다. 반대 방향으로 여행했으면 올라갈 때 그렇게 고생을 안 했을 텐데.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다. 황태덕장 직영 식당이 많은 용대리에서 황태 정식을 먹으며 추위에 떤 몸을 녹였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4 6번 국도를 달리는데, 완전히 보너스 라이딩 구간이다. 살짝 내리막인 길이라 페달을 밟지 않아도 쭉쭉 나간다. 그 길이가 무려 10km나 된다. 또 구 46번 도로의 절경은 지친 라이더에게는 선물이었다. 깎아 내리는 듯한 계곡의 모습이 오늘 나의 고생을 보상해 주는 것만 같다.
드디어 미시령을 정복하는 날이다. 날이 날인 만큼 라면에 밥까지 말아 든든히 속을 채웠다. 미시령 초입에서 MTB 라이더 2명을 만났다.
“아이고~ 짐이 장난이 아니네요.”
“하하하, 안녕하세요.”
“도대체 짐이 몇 kg이나 되는 거예요?”
“정확히 재보진 않았는데 20kg 정도 될 것 같아요.”
“초등학생 한 명 뒤에 태우고 올라가는 거네요. 근데 미니벨로가 무게를 견뎌요?”
“안 그래도 스포크 몇 번 부러졌어요.”
“그냥 올라가기도 힘든데, 그렇게 무거운 자전거로 아무튼 대단하시네요.”
속으로 가벼운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올라가는 MTB 라이더들이 한없이 부러워진다. 그들은 이것도 인연이라며 길에서 파는 칡즙 한 잔을 사준다. 안타깝게도 희열이는 이 맛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의 젊은 피는 벌써 나보다 한참 위를 올라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역시 무서운 녀석이다.
※ 미니벨로 미니벨로(Minivelo)는 ‘작다’는 뜻의 영어 미니(mini)와 프랑스어로 ‘자전거’라는 뜻의 벨로(velo)의 합성어로, 바퀴가 작은 자전거를 말한다. 미니벨로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필자는 전국일주 때 싸이클처럼 속도를 내기에 적합하게 제작된 미니스프린터(Minisprinter)를 사용했다. | ||
대부분의 차들이 미시령 터널을 이용하기 때문에 옛길에는 차가 적다. 차들이 지나가지 않을 땐 학학 거리는 내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주변이 고요하다. 페이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기로 했다. 힘을 내보려고 중간에 초코바 하나를 꺼내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달린다. 아, 달다! 두 개 사올 걸 후회가 된다.
여행 코스 짤 때 가장 두려웠던 구간이 미시령이었다. 아예 몰랐으면 겁도 안 날 텐데, 속초 여행을 할 때 차로 자주 넘어본 터라 그 엄청난 경사와 거리를 잘 알고 있었다. 꼬불꼬불 한 없이 올라가는 길을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을지, 맨 몸으로도 올라가기 힘들다고 하던데 이 많은 짐을 지고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하지만 가장 도전해 보고 싶던 곳이기도 했다.
몇 해 전 희열이와 함께 <자전거 대행진>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미시령 정상까지 가는 코스였다. 몇 개의 조로 나누어 라이딩을 했는데, 나와 희열이가 속했던 마지막 조는 미시령 초입에서 라이딩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해가 저물고 있어 행사 주최측에서 안정상의 이유로 더 이상 가지 못하도록 제지했기 때문이다. 미시령을 정복해 보겠다고 그 먼 길을 달려왔건만, 상황이 그렇게 되니 엄청나게 억울했었다. 시간 조절을 못 한 주최측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 때 좌절한 기억 때문이라도 꼭 한 번은 미시령에 다시 도전해 보고 싶었다.
있는 힘을 다해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정상 3.3km> 표지판이 보인다. 그래도 이제 반 이상 왔다. 이 지점부터는 고도가 높아서인지 바람이 심하게 분다. 역시 미시령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허벅지 근육이 당기는 건 물론이고 무릎과 허리까지 조금씩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론 언덕을 오르다가 다리가 아플 때보다 허리가 아플 때 힘이 든다. 올바른 자세를 계속 유지하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페달을 꾹 밟을 때 밟는 힘만큼 허리가 시큰거릴 때가 있다. 이 때가 가장 포기하고 싶을 때이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페달을 밟았다. 얼굴에서 땀이 물 흐르듯 떨어진다. 또 한 번의 나와의 싸움이다.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차의 운전자가 나를 보더니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그걸 보고 다시 힘을 내본다. 페달 밟는 데만 집중할 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린다.
“다 왔어요! 힘내세요!”
고개를 돌려보니 희열이가 정상에서 손을 흔들면서 소리치고 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나의 작은 꿈 하나를 이루는 이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싶어 카메라를 꺼냈다. 정상에 조금씩 가까워 지는 길을 동영상으로 담으면서 올라간다.
미시령 정상! 자전거에서 내리자 마자 다리가 풀려버렸다. 8km의 언덕을 끌바(자전거를 끌고 가는 행위) 없이 올라온 내가 대견하다. 많은 자전거인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미시령 정복을 나도 드디어 해냈다. 그런데 희열이 옆에 있던 관광객 두 분이 나를 잠시 유심히 쳐다보더니, 곧 차를 타고 갈 준비를 하신다. 먼저 도착한 희열이와 그 두 분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우와 대단하네요. 여기를 자전거로 올라왔어요?”
“하하하. 그러게요. 제가 어떻게 올라왔네요.”
“혼자 여행하세요?”
“아니요. 일행이 한 명 있어요.”
“일행은 어디에 있어요?”
“아, 이제 보이네요. 저기 올라와요.”
“근데 왜 같이 안 올라오고, 저 사람은 나중에 올라와요?”
“글쎄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아, 그냥 저 분이 저보다 10살 많아요.”
“10살이요? 저 사람이 더 대단한 거네.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겠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려오는 길은 올라온 길에 비해 거리가 훨씬 짧다. 3km 남짓 내려오니 벌써 끝났다. 반대 방향으로 여행했으면 올라갈 때 그렇게 고생을 안 했을 텐데.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다. 황태덕장 직영 식당이 많은 용대리에서 황태 정식을 먹으며 추위에 떤 몸을 녹였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4 6번 국도를 달리는데, 완전히 보너스 라이딩 구간이다. 살짝 내리막인 길이라 페달을 밟지 않아도 쭉쭉 나간다. 그 길이가 무려 10km나 된다. 또 구 46번 도로의 절경은 지친 라이더에게는 선물이었다. 깎아 내리는 듯한 계곡의 모습이 오늘 나의 고생을 보상해 주는 것만 같다.
※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실전 보너스 팁 <숙소편> -마을에서 도움을 얻고 싶다면 이장님부터 찾아라. 어촌일 경우 어촌 계장님을 찾으면 된다. -해수욕장과 초등학교는 화장실과 물을 이용할 수 있어 야영하기 가장 적합하다. -둘 이상이 함께 여행하고 있다면 찜질방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민박 가격을 흥정해서 들어가는 편이 훨씬 저렴하다. | ||
- 내 생애 한 번은 자전거 전국일주 김효찬 글,사진 | 프라하
이 책은 뻔한 한강 자전거 코스를 달리는 게 지겨워서 좀 더 먼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하려는 사람들, 새로운 일에 뛰어들기 전에 특별한 여행으로 마음을 다잡고 싶은 사람들, 온 몸으로 전국의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싶은 사람들, 삶에 대한 열정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벤트를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자전거 여행 이야기이자 안내서이다. 저자의 30일 자전거 전국일주 에피소드를 통해 자전거 여행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8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김효찬
빛나는 열정
2015.02.25
멋진 경치와 신선환 공기 좋아요. 그런데 정말 차들이 달리니 조심해야겠어요.
다대기
2012.10.02
클라이스테네스
2012.09.30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