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만 탐정 하라는 법이 어디 있나 - 『데드 조커』
『데드 조커』는 한네 빌헬름센이 거의 모든 것이다. 물론 이야기도 대단히 흥미롭다. 모든 증거가 검사인 용의자를 가리키지만, 그토록 허술하게 사건을 저지르고 설득력이 부족한 진술을 하는 것인지 한네는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 소아성애자인 기자 이야기가 끼어든다.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살베센은 과연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맡은 것일까.
글ㆍ사진 김봉석
201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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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작가 안네 홀트의 『데드 조커』를 읽으면서, 주인공인 한네 빌헬름센에게 빠져들었다. 범죄소설에서도 캐릭터는 정말 중요하다. 70년대 미국드라마 <형사 콜롬보>의 인기에는 피터 포크가 연기하는, 어리숙해 보이는 캐릭터가 한몫했다. 후줄근한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둔하고 산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툭 던지는 예리한 질문들. 완전범죄를 꿈꾸던 범죄자들은 콜롬보의 날카로운 눈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콜롬보 캐릭터는 일본으로 넘어가 최고의 범죄드라마였던 <후루하타 닌자부로>로 변주됐다. 후루하타는 콜롬보보다 잘생겼고 패션 감각도 뛰어나지만, 용의자를 다루는 방식이나 은근슬쩍 흔들어놓는 수법은 콜롬보를 떠올리게 했다.

21세기에도 영화와 드라마로 맹활약중인 셜록 홈즈를 비롯하여 미스 마플, 엘러리 퀸, 필립 말로, 마이크 해머 등등 수많은 명탐정들이 등장했고, 시대가 바뀌면서 거칠고 매력적인 형사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아무래도 현대사회에서 범죄를 직접 다루는 이들은 탐정보다 경찰, 형사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사립탐정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강력 범죄나 연쇄 살인범과의 대결 등은 경찰, FBI 등 정부조직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일본에서 경찰물이 대세인 것도 조직문화를 중시하는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탐정은 더욱 불리하다. 『블랙 리스트』의 V.I. 워쇼스키, 『여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직업』의 코델리아 그레이, 『원 포더 머니』의 스테파니 플럼 등등 하드보일드부터 유머러스한 스타일까지 다양한 여탐정들이 존재하지만 숫자가 많지는 않다. 조직에 속하지 않은 탐정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니까. 강하지 않으면 범죄자들과의 전쟁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대신 경찰조직에서 여성이 생존하기는 좀더 나은 환경이다. 헤닝 만켈의 린다 발란더, 테스 게리챈의 형사 리졸리와 검시관 아일스, 타나 프렌치의 캐시 매덕스 등이 있고 최근 인기를 끌었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도 피아 형사가 주인공이다. 형사들은 항상 파트너와 함께 움직이고, 위급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탐정보다 여성에게 유리하다. 어느 정도의 격투가 가능하고, 범인을 제압할 만큼 터프함도 갖춰야 하지만 여성이라는 신체적 불리함을 어느 정도는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에. 또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피아가 그렇듯이, 여성은 직관적인 사고에 능한 경우가 많기에 사건수사에서도 의외의 활로를 찾는 경우가 많다. 『데드 조커』의 한네 빌헬름센 역시 그렇다.

변호사였고 법무장관까지 지낸 안네 홀트가 창조한 ‘한네 빌헬름센’ 시리즈는 500만부가 넘게 팔린 히트작이다. 고등검사 할보르스루드가 아내를 죽인 혐의로 체포된다. 하지만 할보르스루드는 범인을 보았다며, 과거에 자신이 수사를 했던 기업가 스톨레 살베센이라고 주장한다. 스톨레 살베센의 행적을 쫓아가지만, 그는 며칠 전 바닷가 근처의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죽은 사람이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지만, 수사반장인 한네는 할보르스루드에게서 살해 동기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모든 증거는 할보르스루드를 가리키고 있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 허술하고 나태했다. 수많은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모든 증거를 곳곳에 남겨두는 위험을 과연 몰랐던 것일까? 한네는 생각한다. 비논리적이고, 불완전하고, 조잡하지. 이 사건은 마치…

『데드 조커』는 한네 빌헬름센이 거의 모든 것이다. 물론 이야기도 대단히 흥미롭다. 모든 증거가 검사인 용의자를 가리키지만, 그토록 허술하게 사건을 저지르고 설득력이 부족한 진술을 하는 것인지 한네는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 소아성애자인 기자 이야기가 끼어든다.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살베센은 과연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맡은 것일까.

이야기의 후반부로 진입하면서 사건은 점점 더 애매해진다. 할보르스루드를 그냥 기소해버린다면야 간단하겠지만, 한네에겐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심증이 너무 강하다. 또 하나의 인물이 나타난다. 어린 시절 의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에는 잔인하게 살해했던 청년 에이빈 토르스비크. 에이빈의 정체는, 그가 하는 일은 대체 무엇일까? 『데드 조커』는 단순한 치정이나 복수를 넘어서, 한 인간이 사회에서 어떻게 파괴되고 매장당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만으로도 『데드 조커』는 강한 울림을 준다.

하지만 그 역시 한네 빌헬름센이 없다면, 약간 무게가 덜해진다. 『데드 조커』는 한네 빌헬름센이 등장한 5번째 작품이다. 1993년 『Blind Goddess』로 출발하여, 1999년 『데드 조커』를 거쳐 2007년 8번째 작품 『1222』까지 발표했다. 아마도 형사로 시작했을 한네 빌헬름센은 『데드 조커』에서 수사반장으로 승진했다. 친구인 호콘 검사와 카렌 변호사, 동료 형사인 빌리 티 그리고 한네와 동거하는 동성의 연인 세실리가 그동안 함께 해왔을 것이다. 그들의 전사가 조금씩 『데드 조커』에서도 드러나지만, 이 작품에서 두드러진 것은 변화 아니 변화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전환점이다. 한네는 세실리가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연인 이상으로 가깝고 의지했던 빌리 티가 다시 결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네를 가장 잘 이해하고, 그를 지켜줬던 두 사람이 멀어지는 것이다.

호콘과 빌리 티는 그들이 대체 왜 그렇게 한네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도 이유는 정확하게 모른다. 그저 한네이기 때문에, 가 유일한 답이다. 가족들과는 거의 생이별 상태이고, 대형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고, 줄담배를 피우다 화가 나면 재떨이도 던지는 괴팍한 여인. 하지만 바로 그런 거칠고 개성적인 모습이 바로 한네의 매력이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룰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같은 인간. 그런 한네가 『데드 조커』의 이야기 속에서 마구 흔들린다. 그녀의 모든 벽들이 허물어져 버린다. 세실리가 죽고, 빌리 티가 멀어진다. 그리고 ‘천사’같은 에이빈이 나타난다. 감옥에서 나온 후 소설가가 된 에이빈은 자신의 ‘삶이 글로 쓸 수 있을 만큼 굴곡졌’다고 말한다. 자신의 소설은, 다른 방식과 형태로 만들어낸 자신의 삶이라면서. 에이빈 토르스비크는 첩첩이 쳐 놓은 울타리안에 들어앉아 고독하게 살아가는 남자였다. 한네 빌헬름센처럼.

그래서 『데드 조커』를 읽고 나면, 한네 빌헬름센의 다른 이야기를 읽고 싶어진다. 과거 이야기도 좋겠지만 『데드 조커』 이후 한네가 어떻게 변했는지가 정말 궁금하다. 이미 3권이나 나와 있으니 번역만 하면 될 터. 그러려면 『데드 조커』가 잘 팔려야 한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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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조커 1 안네 홀트 저/배인섭 역 | 펄프
차가운 봄바람이 불어오는 오슬로피오르, 한 남자가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리고 고등검사 할보르스루드의 집에선 그의 아내가 사무라이 검에 목이 잘린다. 아내의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 현장에서 발견된 할보르스루드. 거만하고 냉정하기로 소문난 이 권위적인 남자는 범인으로 다른 한 남자를 지목한다. 하지만 할보르스루드는 자기 아내가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동안 바라보고만 있었을 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게다가 범인이 유유히 사라지고도 두 시간 동안이나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할보르스루드의 말을 믿어 주지 않을 때, 그가 범인으로 지목한 남자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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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조커 #안네 홀트 #한네 빌헬름센 #노르웨이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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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2012.11.30

남자만 탐장하란법은 없습니다만, 남자의 직관능력이 여기서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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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x8

2012.08.20

쭉쭉 걸들이 모인사이트




당연히 공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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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8.20

내용 보니 재미있어보이지만 책 표지 보니 왠지 촌스러워보이네요. 특히 띠 부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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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