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프롤로그는 ‘서울에서 여행하듯 살아보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5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서울로 돌아오며 다짐한 게 하나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서울에서의 생활을 ‘여행하듯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중략) 일상을 일상이지 않게 하는 것. 그건 삶 자체를 여행으로 인식하면 되는 일이었다.(p. 4) | ||
때로는 토박이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또 때로는 여행자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의 모습.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에서 만나는 서울은 그래서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제게 건축은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해 준 하나의 이유에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이기에 이 도시는 그가 가장 잘 알고 그만큼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곳이다. 서울을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많고, 그의 말처럼 부산이 되었든 광주가 되었든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같은 공간과 시간을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도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은 사람들의 숫자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영욱의 전문분야는 건축이다. 그리하여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는 서울 안의 수많은 건축물들과 그것들이 합쳐져 만들어내는 이미지, 분위기에 대해 말한다.
“저에게 건축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며 책을 내는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해 준 하나의 이유에요. 그림과 글, 여행들이 건축을 잘하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그것이 책으로 나오게 되면서 다시 건축사무실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처음 건축가의 시각으로 서울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건축공학과에 입학한 후 손재주만 있다고 건축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깨닫게 되었다. 철학적 사고는 물론이고 인문학적 사고와 설득력 있는 유창한 말솜씨까지 겸비해야 하는 것이었구나, 알게 된 후 방황은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책을 보며 건축을 알아갈 때, 나는 직접 몸으로 뛰며 좋은 공간들을 많이 보고 다니자.’ 생각했다. 그것이 언젠가는 자신의 건축으로 나타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역마살을 핑계로’ 서울 곳곳을 누볐다. 좋은 공간들을 만날 때마다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이 흘러 그것은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의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지도 속에서 숨은 사연들과 비밀들을 찾는 것을 좋아해요.
이 책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것은 서울의 어제와 오늘이다. 개별적인 건축물에 대한 평가나 감상이 아닌 변천사다. 각각의 건축물의 과거와 현재, 그것이 존재하는 공간의 변화과정을 이야기한다. 그 역사에 대해 작가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지향하는 ‘도시의 삶’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발생과 성장, 변화를 반복하는 까닭에 도시는 죽어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 있고 삶이 있다. 오영욱이 그리는 도시의 삶은 ‘흔적들이 남아 있는,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궁금해 한다. 서울의 지난 시간을. 이 도시는 어떤 역사를 품고 있을까.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도시의 모든 요소들은 이유가 있을 거에요. 왜냐하면 도시는 사람들이 살면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하다못해 길 하나를 만들더라도 누군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빈 땅 위에 선을 그었을 거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도시의 지도를 보면서 이건 왜 이렇게 생겼을까,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 상상해 보는 걸 되게 좋아해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찾는 걸 좋아하구요.”
계획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서울, 오영욱은 그 안에 감추어져 있을 사연들이 궁금했다. 그래서 옛날 지도들을 찾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실마리가 보였다. 기찻길이었다.
서울의 4대문 안을 제외한 나머지 동네들의 경우, 그 형상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 놨던 기찻길이다. 기찻길이 생기면 그 주변으로 집들이 들어섰다. 시대가 바뀌어 기찻길이 없어지면 새로운 건축물들이 그 빈 공간을 채워갔다. 지금의 홍익대학교 앞길이 대표적이다.
지도상에서 보면 홍익대학교 주변에는 의외로 많은 곡선들이 존재한다. 오영욱은 그 이유를 당인리발전소에서 찾았다. 발전소까지 석탄을 나르기 위해 기찻길이 생겼고, 기차의 특성상 그 길을 긴 곡선 형태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발전소까지 운반해야할 석탄도, 그것을 나르는 기차도 필요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기찻길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당인리발전소와 그곳에서 홍익대학교까지 이르는 곡선의 길들 뿐이다. 남아있는 옛 길들에 의해 도시가 변화하고 확장되는 그 사연들을 찾는 것이 작가에게는 매우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꾸밈없이 담백한 문장 같은’ 건축을 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도시는 변화의 흔적을 계속 간직하고, 그래서 후세의 사람들이 이 도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읽을 수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그는 서울의 변화 중 가장 아쉬운 것으로 청계 고가도로 철거를 꼽았다. 아름답다거나 지킬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흔적도 없이 모두 허물어 버리고 새로 짓는 것이 과연 최선의 건축일까,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때 청계천은 하수도 및 상수도로써 도시의 가장 큰 중심 하천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오폐수의 양도 상당해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다. 고가도로가 들어선 것은 1960년대. 정확히 1969년도에 청계 고가도로가 완공되었다. 한국 최초의 고가도로로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도심 교통의 대동맥’이라는 본래의 역할까지 훌륭히 해 낸, 이모저모로 역사적인 도로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와 노후화 문제가 제기되면서 끝내 철거되고 말았다.
청계 고가도로가 허물리기 한 달 전쯤 오영욱은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애타는 마음으로 청계 고가도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떠나는 친구를 마지막 배웅하는 것처럼 슬픈 마음’이었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흔적이 남아있는, 그 흔적들로 하여금 지난 시간을 말해주는 건축물과 공간을 좋아하는 건축가. 그런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건물이란 어떤 것일까.
“좋은 건물이 어떤 거냐고 묻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어요. 건물은 어쨌든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생활하고, 사용하는 곳이잖아요. 그러면 주인공은 사람이 돼야 될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자유롭게 무언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간은 담백하게 그 행동들을 담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꾸밈없이 담백한 문장 같은’ 건축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꾸밈없이 담백한 문장이 전해주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와 닿는 순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꾸밈은 결국 장식이다. 그러한 장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담아서 보여줄 수 있는 건축을 그는 꿈꾸고 있다.
특별히 이 날 강연회에는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의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이크종’이 함께 했다. 오영욱 작가와는 대학교에서 건축공학과 선후배로 만난 인연이다. 그의 진행으로 오영욱 작가와 독자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들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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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건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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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는 것 같아요. 프라하라는 도시는 프라하 사람들을 닮고, 파리는 파리 사람들을 닮았어요. 마찬가지로 서울도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닮았어요. 서울의 건축은 한마디로 ‘다양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자리에 와주신 많은 분들의 얼굴이랑 똑같은 건물들이 하나씩 다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다 모여 있는 도시가 서울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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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딱 한 곳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면, 어디를 어떻게 바꾸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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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치고 싶은 것은 별로 없어요. 만약에 고치고 싶은 게 있다면, 실현 불가능하겠지만, 서울의 모든 시민들의 의식을 아주 조금만 바꾸고 싶어요. 한국의 도시 환경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도로와 건물이 만나는 사이 공간이에요. 흔히 상가지구나 홍대 앞을 지나다니실 때 보면 그곳이 제일 지저분해요. 왜냐하면 건물 주인도 그곳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서로 방치시키고 쓰레기가 나뒹굴고 그렇잖아요.
일본은 건축을 만들어 내는 힘이나 시민의식 같은 것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일본의 도시에서 가장 잘 정돈되고 깔끔한 장소가 바로 그 곳 같아요, 건물과 도로가 만나는 부분들. 서로 자기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관리를 하는 거죠.
만약에 ‘저 길은 나의 것이다, 우리의 것이다’라는 의식이 생긴다면, 건물 주인의 입장에서도 ‘건물이 나의 소유물이기도 하지만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매일 보고 스치는 곳이니까 공공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어요. -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에서 서울을 위한 5가지 제안을 하셨는데,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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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거창하지 않은 것만 골라서 제안했거든요. 그 중에 하나 힘든 것이 있다면 건물 사이에 다리를 만드는 거에요. 홍콩 같은 도시에 가시면 볼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게, 우리나라의 모든 건물들은 건축법에 영향을 받아요. 건축법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다리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그 다리는 세금이 부과되는 면적 내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한 줄만 써지면 가능해지기 시작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보행 환경을 위해서 차가 다니는 거리가 아닌, 건물 사이의 다리를 이용해서 오고 갈 수 있는 도시가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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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많은 건물들 중에서 ‘이곳만은 꼭 남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건물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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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곳만을 지키고 싶다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장소들이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40년 정도 된 낡은 극장 건물 같은 거죠. 그 건물이 건축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들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데이트를 했고, 헤어졌고, 누군가는 첫 키스를 했을 테죠. 그런 추억들이 있을 것 같은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저의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들, 제가 졸업한 초등학교라든지 그런 공간들이 오래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찾아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각각의 소중한 기억들, 추억들이 남아있는 곳들이 남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림 그리는 건축가’ 외에 오영욱 작가를 설명하는 또 다른 수식어는 무엇이 있을까. ‘감성 충만한 건축가’는 어떨까, 생각해 본다. 오영욱은 건축물과 그것을 담고 있는 공간에 서린 사람들의 시간과 감성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안에는 그러한 마음으로 서울을 바라본 그만의 시각이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미처 몰랐던 서울의 이야기에 눈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나도 서울이 좋다!’ 고백하게 될 지도 모른다.
-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오영욱 저 | 페이퍼스토리
이 책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섬세한 지문을 오기사 특유의 감성과 시선을 담아 8가지 키워드로 읽어 낸다. 자신의 건축 설계 사무실이 있는 신사동 가로수 길과 시끌벅적한 종로 거리에서부터 청와대, 국회의사당, 서울 광장, 한강의 다리들, 고궁과 미술관, 일상적인 공간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사는 이들의 터전을 '건축'과 '도시'라는 프레임 속에서 새롭게 그려냈다. 서울에 관한 다소 불편한 진실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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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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